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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화 〉봄개학 (168/201)



〈 168화 〉봄개학

칼로 에어캡을 묶은 테이프를 갈랐다. 그제야 둘둘 말린 에어캡을 풀  있었다.

'와우.'


비닐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실리콘 딜도는 핏줄이 현실적으로 징그럽게 도드라져있었다. 갓이 작은 버섯을 연상케하는 귀두가 인상적이었다. 딜도의 밑바닥에는 고정할 수 있는 흡착고무가 달려있었다.


불알까지 만들어져있었는데 만져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비닐포장지를 뜯어다가 맡아지는 실리콘 냄새에 깜짝 놀랐다.

'한 번 세척하고 써야겠네.'


실리콘 불알의 느낌은...


'오... 물컹물컹한  만지는 감촉은 좋네.'

 딜도는 과장을 더해 말하면 그녀의 팔뚝만한 크기였다.


이 딜도를 사용하고 난 뒤에 세척해야할 것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현타가 오는 듯했다. 쓸 때는 좋을 것 같긴 한데...


택배 상자 안에는 추가상품으로 구입한 러브젤 1통과 실리콘 세척 전용 세제 1통.


'러브젤 바른다고 해도... 이게 정말 내 보지 속에  들어갈까...?'


꿀꺽.

커다란 딜도를 사용하는 건 기분 좋기는커녕 고통만 준다고 들었다.

'하지만 익숙해져야지. 재준이한테 박히면서 고통스러워하면  되니까.'

 딜도로 미리 대물 자지에 익숙해지고자 했다.


사실 신재준과의 섹스할 것을 염두해두고 구입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재준과 섹스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대리만족 용도로 구입한 것이었다.

'후... 용기가 안 난단 말이지.'

안유리는 싸움질 해대는 것과 동생들을 챙기는 건 잘했지만, 남자 대하는 건 잘 하지 못했다.


특히 좋아하는 남자 앞에만 서면 머리가 새하얘지고 마는 타입이었다.

중학생 때, 김하늘의 싸움 실력을 모르고 섣불리 까분  있었다. 그때 불었다가 싸움에서 지게 되고, 김하늘에게 협박을 들었었다.

<"재준이한테 접근하면 오른손 박살낼 거야. 내 눈에 띄지 마, 알았어?">


절대로 김하늘에게 협박을 받고 쫄아서, 여태까지 신재준에게 접근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신재준에게 몇 번이나 말을 걸려고 했었다.

하지만 신재준 앞에 설 때마다, '말을 하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리게 되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됐다.


입술을 벌려지지 않고, 혀도 굳으며, 어떻게 성대를 울려야할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하아..."

'난 죽을 때까지 재준이 손도  잡을 거야. 그리고 2학년 때 재준이랑 같은 반이었으면... 같은 반인 걸 핑계로 말이라도 쉽게 걸 수 있었을 텐데... 시발.'


안유리는 겨울방학 초기에 2학년 반 배치를 확인하려고, 맨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신재준과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는 것에 절망하게 됐다.

살펴보니  기회를 박슬기와 기미정이 얻었더라.

'아오... 부러운 년들. 그런데 박슬기 그년, 정말 재준이 안 좋아하는 거겠지? 그래도 공부 잘하는 공통분모 있어가지고, 같은  되면 같이 공부도 하고 그러는  아니야? 스터디 그룹?  이런 거. 아~ 시발. 난 왜 이렇게 빡대가리지?'

안유리는 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부하기 싫어서 안 했다. 다른 일진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일진이면서 전교 1등을 하는 박슬기가 특별한 케이스인 것이었다.


대부분 일진들은 놀거나 연애하거나 떡치거나 하는 것에 관심있었다.

래퍼 노래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핸드폰이 진동했다. 전화가  것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아빠]였다.


물건이  왔음을 확인했으니 박스를 닫고서 책상 아래 책장에 박아넣었다.


"응."
[유리야, 학교 끝났어? 유진이랑 유은이  먹였어?]
"유진이는 친구네 집에서 먹겠대. 유은이는 먹였고."
[잘 했다. 너도 먹었지?]
"유은이랑 같이 먹었어. 아빠는?"
[먹었어. 근데 라면으로 대충 떼운  아니지?]
"아니야. 집에 있는  먹였어."
[잘 했어. 그럼 끊을게.]
"아빠, 열심히 일해."
[응.]


전화를 끊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님은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자신은 자위기구나 구매하고 흥분하고 앉아있다니. 갑자기 스스로가 한심했다.


물론, 그런 한심함을 느끼면서도, 구입한 딜도로 버리겠다는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침대 위에 올라가 누웠다. 그러다가 세탁 돌리고 있는 교복이 떠올랐다.

'유은이한테 시켜야지. 세탁 끝나면 건조대에 말리고, 선풍기로 바람 쐬게 하라고.'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거실을 살펴봤다가 안유리는 미간을 좁혔다.


식탁 위가 아직도 치워지지 않고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야. 안유은, 맞을래?"
"응? 아, 식탁 치울게..."
"당장 치워."
"응..."

게임하던 것을 방해받자 안유은의 표정이 구겨졌다.

"표정관리  하냐? 뒈진다?"


안유은이 구겨진 얼굴을 폈다. 그리고 식탁 위를 치우기 시작했다.


'아오... 어릴 때는 엄청 귀여웠는데. '언니언니'하고 계속 따라다니고 그랬는데.'

좀 크더니 귀염성은 사라지고,  대 때려주고 싶은 밉상짓만 골라서 하게 되었다.

또한 언니랑 노는 것보다 친구랑 놀거나 컴퓨터 게임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고.

안유리는 그게 좀 씁쓸했다.

안유리는 거실 구석 벽에 기대고 있는 건조대를 바라봤다. 장패드 하나 널려있었다.

'안유은, 이 년이 내 교복을  때 널어줄 리가 없겠지. 장패드 회수해달라는 것도 까먹었는데.'

안유리는 화장실에 들어가 세탁기에 표시되어있는 남은 시간을 보고 핸드폰 알람을 맞춰뒀다.


'이젠 뭐하지? 롤이나 할까.'

집에 컴퓨터가 한 대였다. 롤을 하기 위해선 동생이 하는 컴퓨터를 뺏어야했다.


안유은이 컴퓨터를 빼앗기기 싫어할 게 틀림없었다. 그럼 뭐 어째. 언니가 비키라면 비켜야지.

"유은아, 나 컴퓨터한다."
"나 아직 출석체크  못 했어!"
"맞을래?"
"...그, 켜놓고 있어주면 안 돼?"
"알았어. 켜놓고 있으면 돼? 언제까지?"
"2시간..."
"알았다. 2시간 뒤에 끈다?"
"응."

그렇게 컴퓨터를 빼앗고서 롤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 목록에 친구들이 온라인 상태였다.

'피시방, 재밌겠다...'

[집에서 접속한 거??]
[3:3 내기  ㄱㄱ?]


들려오는 귓속말에 안유리가 대답했다.

[걍 니들끼리 놀아]

피시방에서 같이 웃고 떠들고 욕해대면서 하는 게 재밌지. 혼자 집에서 하기 뭐했다.


혼자 랭겜을 돌리길 1시간째. 다시 래퍼 노래가 들리며 핸드폰이 진동했다.

또 [아빠]였다.

"응? 여보세요."
[유리야. 유진이가 고기 먹자는데. 아빠가 오늘 야근이거든?]
"사서 먹이라고? 알았어."
[그래, 우리 유리 밖에 없다.]
"엄마는?"
[모르겠네. 엄마한테 전화해봐. 정시퇴근한다고 하면, 엄마랑 같이 구워먹어.]
"넹."

전화를 끊고서 안유리는 아버지한테 표현하지 않았던 귀찮음을 얼굴을 찌푸리며 표현했다.


"아, 나가기 귀찮네."

'엄마한테 전화는 나중에 하고...'


"야! 안유은!"
"응? 왜?"

안유은이 자신의 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카드 줄 테니까 고기랑 쌈이랑 콜라 사와."

안유리의 용돈이  체크카드를 지갑에서 꺼냈다.

동생들 먹이라고 장을 보기 위해 쓴 돈은 나중에 아버지가 도로 채워줄 것이었다.

"나 고기 살 줄 모르는데..."
"그냥 정육 코너 가서 삼겹살 4인분 달라고 해."
"쌈은 어떻게 사..."
"야채코너 가면 보여."
"콜라는 무거운데..."
"아놔."


'잠깐만.'


동생인 안유은에게 시킬까 하다가도,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던 안유진에게 시키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안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언니.]
"야 너 고기 먹고 싶다고?"
[응. 아빠가 사온 댔는데? 나 잘 했지?]

돼지고기는 언제 먹어도 진리이긴 했다.


"어, 잘 했는데. 아빠 늦게 온댄다. 네가 먹자고 했으니까 네가 사와."
[아... 나 돈 없는데.]
"아씨, 집에 들렸다가 나한테 카드 받아서 가. 알았어?"

안유리의 통화를 엿듣던 안유은의 얼굴이 밝아졌다. 심부름 나가기도 싫었던 모양이었다.


[알았어...]


귀찮음이 묻어나는 안유진의 목소리였지만, 안유리는 그냥 넘어갔다. 자기가 갔다온다고 했으니.


'아, 그냥 내가 갈까.'

오늘 따라 랭겜이 잘 안 풀렸다. 컨디션이 안 좋은지 필승이라고 생각하고 다이브 했다가 죽고, 딜교도 계속 손해만 봤다.


그러자니 자꾸 적팀에겐 실력에 대해 칭찬을 듣게 되고, 같은 팀원들에게 부모님 안부를 듣게 됐다.

머리에 스팀이 차올라 바람이라도 쐬고 싶은 심정이었다.

창문을 열어보니 짜증나던 장대비는 그쳐있었다. 지금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안유리는 비는 싫지만 눈 맞으면서 걷는 건 좋아했다.

"아니다. 내가 갈게 그냥."
[어? 정말? 응!]


귀찮은 걸 안 하게 돼서 좋은지 안유진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안유리는 바지를  것으로 갈아입었다. 외출하는 거니까 브래지어를 안에 입을까 하다가 귀찮아서 말았다. 외투도 챙겨입었다.


'이왕 가는 거, 유은이도 데려가야겠네.'

"안유은! 옷 입고 따라와. 고기 사는 법 알려줄게."


이참에 동생의 사회성도 기르기로 했다. 10살이나 됐는데 고기 하나 못 사냐.

"응..."


안유은은 귀찮지만 언니가 시키니까 어쩔  없다는 얼굴로 외출할 준비를 했다.

"우산 챙겨. 눈 많이 오더라."


안유리는 집 밖으로 나가려다가 동생의 외투 지퍼가 열려있는 게 보였다.


"밖에 추워. 지퍼 올려."

안유은이 언니의 말에 따라 외투 지퍼를 올렸다.

5층 계단을 모두 내려와 현관 밖으로 나왔다.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지 않으려고 우산을 펼쳤다.


함박눈이 내린지 좀 됐는지 밟는 재미가 있었다.


"꺄악!"

근데 안유은이 눈밑에 숨어있는 빙판에 넘어질 뻔해 휘청거렸다.


"야, 조심해라. 아까 비 내린  때문에  밑에 빙판 많은가 보다."
"응..."


그렇게 동생에게 주의를 준 안유리도 발을 조심하며 걸었다.


마트에 들어가며, 카운터 옆에 쌓인 장바구니를 챙겼다. 그리고 동생한테 건넸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고기 사는 법 배워. 알았어?"
"응, 알았어. 근데 언니. 과자 사도 돼?"
"너랑 나랑, 유진이 같이 먹을 거. 이렇게 3개만."
"아싸."

안유은은 과자코너에 가서 과자부터 담았다.


음료수 코너로 가려는 동생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엑!"
"콜라는 무겁잖아. 나중에 넣어."
"아, 알았어, 언니."
"무게 신경 안 쓰면 콜라부터 집어넣던지."
"아니야, 나중에 넣을래."

야채코너부터 가려다가, 정육코너가 가까워서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낯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재희야, 고기 뭐 먹고 싶어?"
"삼겹살? 아, 갈매기살 먹을까?"
"5초 안에 대답해.  그럼 생선 먹을 거야. 5, 4, 3..."
"삼겹살!"


'재희? 신재희? 그리고 이 목소리는...'

뒤를 돌아보니 심하다 싶을 정도의 폭유를 지닌 쪼그마한 여자애가 보였다. 그 옆에는 안유리가 중학생 때부터 짝사랑을 품고 있던 신재준이 있었고.


순간, 안유리는 매장의 복잡한 상품들은 보이지 않고 신재준의 모습만이 보였다.


세차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장 보러 나오길 잘 했네...'

신재준을 아는 척할 수 있는 타이밍이 찾아왔다.

'뭐, 뭐라고 하지? '안녕, 나 알지?' ...이건 너무 자의식 과잉 같은데. '신재희, 선배들한테  하더라' ...아니, 신재희가 일진 나갔는데 그게 뭔 소리야. 아! 신재희 일 때문에 일진인 나를 싫어하려나? 아, 시발... 싫어할 게 뻔하잖아. 차라리 지금 안 만나는  나은  아니야?'

괜히 트러블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설레었던 감정이 걱정과 초조함으로 뒤바뀌었다.

"어?"

신재희와 신재준이 안유리를 발견했다.

둘은 곧 바로 경계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안유리 옆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안유은을 쳐다봤다.


18살인 안유리보다 8살은 더 어린 안유은이었다. 생긴 게  닮아서 어딜 가든 '자매'냐는 소리를 들어왔다.

어린 안유은의 존재 때문일까?


신재준과 신재희의 얼굴에 떠올랐던 경계심이 상당히 가셨다.

일진 안유리라도, 자기 여동생 앞에선 패악질 부리진 않을 거라 여기는 듯했다.

그렇다고 해도, 사이가 좋지 못했다. 안유리는 린치 가해 예비자였고, 신재희는 린치 피해 예비자였다.


둘은 그냥 안유리를 모르는 척하기로 했는지 스쳐지나갔다.

안유리는 신재준을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게 '운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떠나보내기 아쉬웠다.

'아...'


신재준을 멈춰 세우려던 입이 본드가 붙은 것처럼 붙어버렸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또한 말하는 방법조차 까먹어, 너무나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신재희의 뒷통수를 보게 됐다.


 순간, 쉽게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신재희.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 쌩까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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