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4화 〉봄개학 (164/201)



〈 164화 〉봄개학

정수린 만큼 빈유는 아니지만, 박슬기의 가슴은 작았다.


완전히 작다는 건 아니었다. B컵 이상은 되어보였다. 내가 그간 거유나 폭유를 지닌 여성과 만나다보니 작게 보일 뿐이었다.

비너스 둔덕에 물기 어린 음모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

박슬기는 내 시선을 눈치채더니 곧장 욕실 안으로 도망치듯 숨었다.

그리고 고개만 내빼고 말했다.

"다 씻었냐?"
"어."


박슬기의 얼굴은 딱히 수치스러워 하거나 창피한 얼굴은 아니었다.

"잠깐 뒤돌아있어봐. 나 옷 방에 있어서 복도 지나가야돼."

난 뒤돌아봤다.


후다닥 소리에 다시 앞을 보니, 흰색 엉덩이가 방 속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가슴이 빈약하긴 해도 예쁘긴 예쁘네.'


요즘 여고생들은 발육이 너무 좋았다.


난 발기하려는 자지를 내려다봤다. 노팬티 상태라 자지 모양대로 바지가 볼록하게 튀어나와있었다.


'가라앉아라.'


내가 명령한다고 해서 자지는 쉽게 발기가 풀리지 않았다.

일부러 발기를 풀고자 신경쓰면 오히려 피가 쏠려서 발기가 유지된다는  경험을 통해 알기에, 그저 무념무상의 상태로 대기했다.

그러자 발기가 풀렸다.

"들어와."


박슬기가 방문 바깥으로 고개를 쏙 내밀더니 말했다. 그녀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아 고정한 상태였다.

'머리 수건으로 감아둔 거 귀엽네.'


그런 생각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박슬기는 얇은 셔츠를 입고 있어서 브래지어가 다 비쳤다. 바지는 분홍색 돌핀팬츠였다.

'쌩얼되니까 뭔가 되게 순진하게 생겼네.'

고집스러운 눈매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눈화장을 본 것 때문에 생각한 것이었다.

평소에 화장을 연하게 하길래, 눈화장도 별로 하지 않은 줄 알았더니. 눈화장을 지우자 순둥순둥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녀는 샤워 직후인 얼굴에 로션과 스킨을 발랐다. 뺨을 손으로 찰싹였다.


머리카락을 수건에 모아올린 터라, 잔머리카락 빼고 뒷뒷목이 드러나있었다. 예쁜 곡선에 마른침이 삼켜졌다.

"너도 로션 바를래?"
"아니, 됐어. 아무튼 덕분에  씻었다."
"교복 마르는데 얼마나 걸린대? 아저씨한테 물어봤냐?"
"1시간 정도라는데."
"그래? 그동안 밥이나 먹자."
"안 그래도 양식 만드시겠다는데, 그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라고 하면 싫어할 걸. 그냥 아저씨라고 해. 그리고 아저씨가 해주시는  맛있어. 기대해도 좋아."
"응."

'뭐냐... 아줌마가 할머니 소리 듣기 싫어하는 것하고 비슷한 건가.'

 그녀의 방을 둘러보았다.


우리집 큰방보다도 넓은 방이었다.


'공부랑 운동 만하고 사나?'


아령이나 악력기 같은 게 바닥 한 쪽에 정리돼 있고, 책상 위에는 교재들이 꽂혀있었다.

"야."

그녀가 날 불렀다.

"어?"
"너  좋아하냐?"
"뭐?"

난 뚱딴지 같은 박슬기의 말에 어이없었다.

'그 예쁜 몸은 좋아하지. 돈 많은 집안인 것도 좋아하는데... 애인으로선 아니지.'

"개소리하네."
"우리 집에서  녹이고 가란 거. 그냥 해본 소리였는데, 우리집에 오니까 놀랐잖아."
"내가 미안하네. 괜한 기대하게 했겠네.  너 안 좋아해."


나한테 성인 여자친구가 있다는 얘기는 학교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 오늘 나한테 고백한 여자애한테도 그저 공부에 집중하려고, 아무하고도 사귈 생각 없다고 대답했다.


김하늘, 소희정, 나예성. 걔네들한테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미성년자가 '성인'이랑 사귄다고 알리면, 학교에 괜한 구설수가 오르내릴  있으니 숨기겠다고 내가 의사를 밝혔다.

'사실은 딴 여자애한테 따먹힐 거 염두해서지.'

임자가 있다는 딱지가 붙어있는 것보다, 임자가 없다고 알려지는 게 더 여자를 꼬시기 쉬울 거였다. 난 그것을 노렸다.

"너 나예성 좋아하잖아. 그래서 나한테 점수 따고 싶어하는 거 아니었어?"
"..."

박슬기는 내 말에 긍정하지 않았지만,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맞게 추리해낸 듯싶었다.

"그래서 네가 나한테 딱히 아무 짓도  할  알았고, 또 날씨가 추우니까. 도움이나 받으려고  거지."
"그러냐..."

박슬기네 방에 있는 컴퓨터는 딱 봐도 성능이 좋아보였다.


본체 케이스의 강화유리 내부로 부품들이 보였는데 화이트톤으로 맞추고 있었다.


케이스도 흰색, 메인보드도 흰색, CPU 수냉 쿨러도 흰색, 그래픽카드 기판도 흰색이었다.


다만, 램의 방열판이나 그래픽카드 방열판, 후면 팬은 RGB 빛깔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흰색인 다른 부품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RTX2080TI... 개비싼데 이거.'

그래픽카드 방열판에 적힌 제품명에, 박슬기가 자신의 컴퓨터 부품을 하이엔드로 맞춘다는 걸 알  있었다.

"부품 볼 줄 아냐?"


박슬기가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은근슬쩍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응? 뭐지? 왜 나한테 스킨십...? 얘, 나예성 좋아하는  아닌가? 아... 얘는 설마 내가 자기 방에 왔다고 내가 자기 좋아하는 줄 아는 건가? 그래서 쉽게 스킨십하는 거고?'

나예성을 좋아하면서, 내가 쉬워보이니 건드는 걸 보니 박슬기도 착한 여자는 아니었다.

 일단 그녀의 손을 떨쳐냈다.

"볼 줄 모르는데.  컴퓨터, 좋은 거야?"
"인텔 10700K, 삼성 16기가램 2개에, 2080샤. 좋은 거야."
"아... 그래?"

'얘 좀 깨네... 내가컴퓨터 부품 관심 없는 티 냈는데도 굳이 그걸 설명을...'


순간 최아란이 떠올랐다. 그녀도  좋아하기 시작할 즈음, 내 앞에서 김하늘과 롤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적 있었다.


날 꼬시려면 좀더 내가 흥미를 느낄만한 얘기를 해줬으면 했다. 그래야 내가 넘어가주든 말든  거 아닌가.

"배그해볼래?"
"아니, 게임은 별로..."
"그래도 해보지. 재밌는데."

자기가 하는 게임을 같이 하자고 날 끌어들이는 꼴을 보니 데자뷰가 느껴졌다. 최아란과 김하늘도 그랬지. 롤하자고 했었다.

'집에 와서는 운동하고, 공부만 할 줄 알았는데. 얘도 게임 중독자였구만.'


"나 졸려운데. 잠깐 눈 좀 붙여도 되냐?"
"뭐...?"

여자 꼬시는데는, 그 여자 앞에서 무방비하게 자는 게 효과적이었다.

소희정의 침대에서 아무 생각없이 자려다가,  힐끔거리는 소희정을 보고 새삼 깨달았었다.


'그 무당집에서 나도 모르게 소희정을 꼬시고 말았지.'

생각해보면 이 방법으로 신재연과 신재희도 꼬셨다.


'김하늘도 내가 자는 틈에 키스하고 그랬으니... 김하늘한테도 통했던 거고.'

최아란도 마찬가지였다. 최아란이 내가 자는 줄 알고 키스하자, 난 그것에 모욕을 선사해 그녀의 강간을 유발했었다.


'치트키네, 완전.'

"졸렵냐? 그래, 자라. 밥 다 되면 깨어줄 테니까."
"네 침대 써도 돼?"
"어."

이 방은 박슬기는 혼자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침대도 더블사이즈였지만, 베개가  하나였고.

난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이불을 코까지 덮고 코를 들이키자 박슬기가 주로 쓰는 시원한 계열의 향수 냄새가 났다.

박슬기가 컴퓨터를 부팅했다. 내가 자는 동안 게임이나 하려는 모양이었다.


"근데 넌 형제 없냐?"
"어,  외동이야."

'외동은 별로지. 막내가 좋아.'

만약 결혼한다면 처가댁을 모셔야하는데, 최아란은 막내라서 최아란의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명절 때나 하면  것이었다.

하지만 박슬기는? 박슬기네 부모님도 모시고 살아야 될 확률이 높았다. 이 좋은 집을 놔두고, 박슬기가 독립하진 않을 것 같았다.

정말로 의미없는 신부감 대전. 박슬기vs최아란. 2차전.


그 승리도 최아란이었다.


1차전은 아까 '수많은 손자손녀  하나인 최아란'이냐, '직계 딸 박슬기'냐 였다. CY그룹 핏줄인 최아란의 승리였다.


'아란이가 승점 2점 따가네.'

뭔가 누워있으니 자꾸 잠이 왔다.

'음... 자면 안 되는데. 박슬기가 뭔짓 하는지 맨정신으로 느껴야돼.'


버티고 버티다가 잠깐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긴장하고 있어서 그런지  잠에서 깨긴 했다.

박슬기가 내는 키보드 자판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 클릭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끼고 있던 헤드셋에서 총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박슬기... 나  건드리려나?'


쓸데없이 참을성이 좋네.  입술 좀 빨고 그러지.

뉴페이스하고 오랜만에 키스하고 싶었는데.


'나예성을 좋아하니까, 괜히 관계 꼬이지 않으려고 나예성의 친구인 나를  건들이는 건가.'

그냥 잠을 자기로 했다. 왠지 박슬기가 안 건드릴 것 같아서.


막상 자려고 하니 잠을 방해하는 제3자가 나타났다.

똑똑.


"아가씨, 식사 준비 다 됐습니다. 아가씨?"

박슬기는 헤드셋을 끼고, 게임 볼륨을 높여두고 있어서 가정부 아저씨의 말이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결국 가정부 아저씨는 방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봤다.


"아가씨!"
"어?   됐어요?"
"네. 남자친구 깨우고 내려오세요."
"남자친구 아닌데..."
"식으니까 얼른 내려와요."

가정부 아저씨가 방문을 닫는 기척이 났다.


'슬기가 어떻게 날 깨우려나.'

기대됐다.

 어디 하나 건드리려나. 키스까지 몰래 하려나.

"신재준. 밥 다 됐대. 일어나."


박슬기는 처음엔 큰 목소리로  깨웠다.

난 깨지 않은 척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찰싹찰싹, 하고 기분 나쁘게  뺨을 두들겼다.

더 이상 자는 척하면 이상하니 그냥 깼다.


"아, 뭐야."
"너 기절한 줄."
"그렇다고 뺨을 때리냐."
"그만 징징거리고 일어나. 밥 먹자."


박슬기의 손을 내밀었다. 일으켜주려는 뜻 같아서 붙잡으니까 확 잡아당겼다.


"헉!"


내 몸이 팔에 확 끌려가고, 내 고개는 뒤로 꺾였다.

상체가 일으켜지긴 했는데... 난 순간 꺾여서 통증이 느껴지는 목을 어루만졌다.


"아니, 야..."
"킥킥, 이젠 잠 다 깼냐?"

박슬기가 장난스러운 미소로 지으며 물었다.

처음 보는 듯한 박슬기의 맑은 미소였다. 여태껏 학교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일진으로서의 비릿한 미소, 그런 것뿐이었는데.


 침대에서 내려가는 것을 대답을 대신했다.

박슬기와 함께 2층으로 내려가던 중에 물었다.


"너 원래 장난 잘 치는 성격이냐?"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박슬기가 평소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몰랐다.

그래도 가끔 학교에서 지나가다가 보게 되는 모습이나, 수학과 영어의 우수반에서 같은 교실을 쓸 때. 그때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녀는 거의 혼자 조용하게 지냈다.

일진회 학년장이라는 게 무색하게, 일진회인 애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도 별로 없었다.


항상 공부하는 모습만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의 모습은 일진회 학년장이 아닌, 오히려 '일진회 애들에게 괴롭힘 받을 만한 모범생' 같은 모습이었다.


"너 친구 없냐? 맨날 혼자 있던데."
"흐응, 나한테 관심 있었냐? 어떻게 그렇게  알아?"
"뭐래. 너 도끼병 있냐?"


갑자기 날 돌아본 그녀가 내 손목을 잡더니 확 계단 아래쪽으로 당겨버렸다.


"으악!"

난 그녀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균형을 잃고 계단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철렁였다.

다행히 박슬기가 내 양겨드랑이를 잡더니 끌어올렸다.

그녀는 가느다란 팔로 쉽게 내 몸을 들었다.

난 발을 더듬어 계단 위에 똑바로 섰다. 그제야 그녀가 내 겨드랑이를 놓았다.


"아씨... 야, 뒈질래?"

난 아직도 아찔함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킥킥, 미안미안. 왜 자꾸 장난걸고 싶어지지."
"아놔.  내 누나한테 혼날래?"
"네 누나? 아, 재희한테 언니 하나 있다고 듣긴 했는데."
"너 내 누나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박슬기가 날 비웃듯 코웃음 쳤다.

"얼마나 무서운데?"


그녀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마치 애를 타이르는 듯한 손길이었다.

어린 여고생한테 이런 손길을 받으니 영 이상한 기분이었다.

"기미정, 참교육 시켰잖아. 기미정 오늘 모습 봤지? 그거 우리 누나 작품이야."
"허... 진짜? 기미정을 그렇게 박살냈다고? 너희 누나가?"
"그렇다니까."

나는 기미정을 쓰러뜨린  신재연임을 알리면, 일진회 애들이 신재연의 동생인 신재희를 건드리지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미정네 어머님은 기미정 참교육 실패했고, 신재연이 성공한 건데. 일진회 애들이 신재연의 활약을 모르는 게 답답했다.

신재연의 활약한 바를 들은 박슬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신재희 건들면  되겠네, 그럼?"
"어. 건들지 마라."

나는 신재희가 백호수랑 같이 다니는 걸 귀찮아하던 걸 떠올렸다.

나도 신재희가 일진회가 두려워서 아침마다 그 개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친오빠'로서 답답했다.

"재희가 백호수, 그 여자랑 같이 안 다녀도 건들지 마."
"백호수? 아,  일진회 선배?"
"뭐야. 그 여자도 성연고 일진 출신이었어?"
"어. 그래서 일진회에서 신재희랑 정수린, 둘을 안 건들고 있던 거거든."

우리가 그 얘기를 하는데 계단 밑에서 가정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에서 연애하는 건 좋은데, 밥 먹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음식 식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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