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봄개학
"네?"
난 순간 잘못 들은줄 알았다.
내 되물음에 그녀는 눈만 깜빡였다. 자신이 큰 실수를 하고 있단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나는 한 가지 인터넷 썰이 떠올랐다. '오석준'으로서 원래 세계에서 살다가 들었던 썰이었다. 편의점 알바생이 저지른 사고 썰이었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창녀가 택시비 안 내고 튀었다며, 타투 위치까지 설명했단다.
나중에 근무할 때, 딱 그 타투를 한 여자가 찾아왔단다. 그러자 알바생은 저도 모르게 그 여자 손님한테 '혹시 창녀세요?'하고 물어버렸다고... 그 여자 손님이 화나서 성희롱으로 경찰에 신고까지 됐다고 했다.
그 썰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고, 아마 이 여자도 바로 그 편의점 알바생처럼 내가 알몸을 보이고서도 쉽게 용서하자, 내가 남창이라고 지레짐작해버렸고, 그 지레짐작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술김에 사고논리도 제대로 안 되는 듯했고...
'아무리 따먹혀도 이런 정상인 범주를 떠난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한테는 따먹히기 좀 그러네... 아니, 매우 위험하지.'
"하아..."
나는 그냥 미친년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녀는 그래도 물리적으로 날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다행이었다. 만약 날 덮쳤다면 난 저항했을 테고... 그랬다면 최아란이 분노하고, 폭주할지 몰랐다. 그럼 난 원치 않는 피해 입을지도 몰랐다.
'장군님은 왜 이런 여자가 나타나는데 안 도와주시지?'
사실 장군님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나는 파쇄석을 밟고 텐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뒷덜미가 싸해서 뒤를 돌아봤다.
가로등 밑에 서있던 여자가 내가 아닌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쪽을 쳐다보니 끝도 없는 어둠이 펼쳐져있었다.
나는 '어둠공포증'을 갖고 있었다. 보통 저런 어둠 속은 생리적으로 무섭게 되는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친숙함이 느껴졌다.
"아, 알몸을 드러내고도 안 놀래길래... 그쪽 사람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녀는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변명을 했다.
"이, 일부러 남자를 엿보려던 게 아니었어요. 어차피 새벽이니까, 남자화장실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갑자기 남자화장실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져서 구경하려고 들여다본 거였는데..."
'뭐?'
저 여자... 애초부터 변태이긴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선입견도 이상하게 갖고 있는 듯했고. 알몸 보였는데 안 놀랬다고 남창이란 게 말이 되나.
"네?! 경찰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장군님에게 홀려서, 장군님에게 혼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우... 소름...'
그때 바지 속에 핸드폰이 진동했다. 난 습관적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톡이 하나 날아와 잇었다.
(알 수 없음) [죽일까]
'아니, 뭘 죽여 죽이긴...'
장군님 너무 과격하시네.
성희롱도 상대방이 불쾌해야 성희롱이었다. 난 심하게 불쾌하진 않았다.
난 답장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손에 힘이 빠져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아씨.'
바닥 밑은 파쇄석 투성이였다. 쉽게 액정이 깨질지도 몰랐다.
핸드폰을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핸드폰을 찾았다.
'아, 맞다... 나 핸드폰 텐트에서 안 가져왔잖아...'
핸드폰을 떨어뜨렸을 때,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난 뒤늦게 방금 전 핸드폰이 허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닥을 뒤지는 걸 관두고 고개를 들었다. 화장실 건물 쪽을 바라보니 사색이 된 여자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무서운 얼굴이길래 나한테 해코지하려나 순간 걱정이 들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화들짝 놀라서 멀찍이 떨어져 다른 텐트쪽으로 향했다. 아마 그녀의 텐트 쪽으로 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저 여자. 바지가...'
가랑이 부분부터 젖어있었다. 바지에 소변을 지린 듯했다.
나는 다시 그녀가 바라보고 있었던 어둠 쪽을 쳐다봤다.
이제 보니 그곳은 관리사무소가 있던 장소였기에, 가로등이 불을 비추고 있었다.
'아무튼... 날 지켜주시긴 하구나. 감사합니다.'
텐트로 돌아가보니 최아란이 땀을 뻘뻘 흘리며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상체가 오르내릴 때마다 거유가 출렁거렸다.
알몸으로 운동하는 여자의 모습에 자지에 피가 쏠리기 시작했다.
'안 돼. 그냥 잘 거야.'
난 발기를 일부러 참았다.
"왔어?"
"응."
침실 텐트로 와보니 땀냄새와 이상야릇한 냄새가 후덥지근한 공기에 떠돌고 있었다.
"으, 땀냄새."
"흐흫... 씻고 올게. 1세트만 더 하고."
나는 침실텐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납박스 위에 테이블상을 올려서 만든 책상에 내 핸드폰이 놓여있었다.
'역시 아까 그 핸드폰은 헛것이었구나.'
"후욱... 후욱..."
그녀가 운동하며 내쉬는 호흡소리가 야릇해서 자꾸 아랫도리에 신호가 갔다. 난 애써 참으며, 화장실의 그 여자가 자신의 텐트로 잘 돌아갔을지 궁금했다.
'공포에 질린 것 같던데... 그 정도는 괜찮은데. 장군님, 살해는 안 돼요. 아침에 막 사람 죽어서 난리나고 그런 건 끔찍하지...'
나와 관련된 사람이 아니니 죽든 말든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사망소식이 나면 경찰이 수사하고 막 그럴 거 아니야.
그 당시에 캠프를 찾아왔고, 그 여자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날 경찰이 조사하러 올 테고.
'캠핑장에 CCTV도 달려있을 테니 화장실 앞에서 대화 나누던가 다 찍혔겠지. 나 경찰한테 조사 받게 되는 거 신재연이나 신재희가 알게 되면 난리나겠지...'
장군님이 부디 가볍게 벌만 주시고 넘어갔으면 하고 바랐다.
"후우! 운동하니까 성욕 땡기네."
"반대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몸에 힘뺐는데 오히려 달아올라서 이상하네. 누나, 머리 좀 식히고 올게."
"응."
나는 최아란이 샤워장으로 가기 위해 옷을 걸치고, 새 옷을 챙기고, 워시백을 드는 모습을 눈여겨봤다.
그녀도 나처럼 수건을 빼먹고 간다면 알려줄 생각으로. 그녀가 날 보며 물었다.
"왜?"
"응?"
"혼자 텐트에 남는 게 무서워? 왜 자꾸 누나 쳐다봐?"
"뭐래. 나 혼자 샤워장도 갔다왔는데."
그녀가 땀내 풍기는 몸으로 내 머리를 품에 끌어안았다.
"오구오구. 잘 했어. 용감하네. 어두워서 무서웠을 텐데."
"아, 헛소리 말고 씻고 와."
"흐흫... 그럼 갔다올게."
최아란은 지퍼를 열고 나갔다. 그녀가 닫으려고 하자 난 말했다.
"환기 좀 시켜야할 것 같은데."
출입구 좀 열어두고 가란 말이었다.
"아, 그럼 출입구 말고 커넥터... 그러니까 텐트 사이에 있는 거 지퍼 좀 열어둬. 그게 낫겠는데."
"아, 그래. 알았어."
냄새가 나는 게 침실 텐트였으니, 침실 텐트 바로 앞에 있는 커넥트에 구멍을 만들어주는 게 환기가 더 빠를 터였다.
최아란이 떠나고 커넥터 지퍼를 열어 환기를 시작했다.
찬바람이 들어오니 이불 속에 들어갔다.
난 혹시나 해서 속으로 장군님한테 말을 걸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아란이는 혼내지 말아주세요. 아, 근데 제 여자들이 막 '균형' 깨뜨리려는 짓 좀 하면 좀 막아주세요. 혼내서라도... 지금 내 생각도 들었으려나?'
나한테 신기가 별로 없어서 그런가.
장군님이 항상 내 곁에 있고, 내 속마음도 다 읽는 것 같긴 한데 내 눈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예견되는 '장면'이나 불길한 '촉', 정보를 알려주는 '톡' 따위로 알려주고.
'꿈에서만 볼 수 있나. 여군 같은 스타일 별로일 줄 알았는데, 꽤 미녀시던데.'
시간이 지나 샤워를 마치고 온 최아란이었다. 그녀와 몸을 겹친채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야한 짓을 하느라 미처 몰랐는데, 조용해 지니 물 흐르는 강가 소리가 들렸다.
쏴아아 하고 흐르는 소리가 푹신하고 따듯한 이부자리에서 최아란의 몸을 껴안은채 듣자니 기분 좋았다.
그런데 지이이익 하고 지퍼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뭔가 싶어서 고개를 들려고 했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눈만 움직일 수 있었다.
눈꺼풀을 뜨자 나와 고개를 마주한채 옆으로 누워자던 최아란의 얼굴이 보였다.
거실 텐트의 파쇄석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가위에 눌렸나? 하필 이럴 때...'
난 혹시 강도이려나 싶어 두려워졌다. 얼른 몸을 움직여, 최아란을 깨우고 싶었다.
"나야."
허스키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왜인지 두려웠던 마음이 물에 빠진 솜사탕처럼 녹아내렸다.
오, 장군님이 오셨다. 본능적으로 그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침실 텐트로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그런데 뭔가 지이이익 하고 지퍼 소리가 왜인지 한 번 들렸다.
나 역시 최아란쪽을 바라보며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장군님은 그런 내 등 뒤에 누웠다.
그리고 바짝 몸을 붙여왔다. 등에 짓눌리는 물컹한 두 개의 반구체. 한국인... 아니, 조선인 치고 꽤나 풍만하신 아기맘마통을 가지셨다.
'흐으... 차가워...'
그녀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꿈 속에서 펠라치오 당해 착정 당했을 때는 이런 차가움은 느끼지 못했는데. 오히려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 펠라치오하는 것처럼 따듯했었다.
꿈이 아닌 물질계에 영향을 끼칠 때에는 지금처럼 차가운 모양이었다.
"자렴. 나 아무짓도 안 할 거야. 너한테 이상한 짓하면... 나 혼나, 그놈한테."
'아, 네...'
'그놈'이라면 역시 소희정네 아버님을 말씀하시는 거겠지.
'하긴... 나는 장군님한테 정기 뽑히면, 걸신 들린 듯 막 먹어야되야 하니까... 그런 초현실적인 모습을 일반인들 앞에서 보여주면 안 되지.'
"또 희정이네 놀러와."
'예?'
갔다간 또 장군님한테 뽑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 왜 거기 만져요...'
차가운 손이 슬그머니 내 자지로 다가갔다.
바지와 팬티 두 겹 위에서 잡힌 것인데도 얼음처럼 차가운 손이었다.
차가운 손에 붙잡히자 불알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반대로 내 자지는 폭발하듯 발기하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손에는 미약이라도 있는 듯, 금방 흥분하게 됐다.
"실한가 확인해보려고. 우리 아가... 역시 실하네"
'그, 그만...'
난 심각한 조루처럼 당장이라도 사정할 것만 같았다.
"아... 아가한테는 자극이 심했나보구나."
그녀가 얼른 내 자지에서 손을 떼었다. 자꾸 장군님이 아가라고 부르니까 듣기 민망했다.
그런데 16세기 사람한테 난 까마득한 '아가'이긴 하겠다.
"나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
'예...'
귀신이 바로 뒤에서 껴안고 있는데 쉽게 잘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장군님은 전장에서 호령했을 그 입으로 따스한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생존했을 시대에는 없었을 자장가일 텐데.
'톡도 쓰실 줄 아는데... 신기할 건 없지.'
게다가 그녀의 자장가는 강한 수면 능력이 있었다. 난 금방 피곤해져서 수면 속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나는 잠에 빠져들기 전,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 여자는 어떻게 했어요? 죽이지는 않았죠?'
화장실 앞에서 만난 그 변태 여자.
"요앞 강가에 사는 물귀신한테 맡겼어."
'예?'
난 다른 귀신을 부려서 그 여자를 익사라도 시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악몽 꾸게 하라고. 익사하는 악몽."
'아...'
"크큭, 놀랐니?"
장난기가 많으셨다.
장군님이 그렇게 장난하시니 내 심장 건강에 좋지 못했다.
"미안하구나.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그녀는 내 팔을 가볍게 토닥이면서 자장가를 이어나갔다.
그녀의 손이 차가웠지만 그 어떤 이의 손보다 따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아침에 깨어났을 때, 최아란은 수납상자로 만든 테이블 위에다가 노트북을 펼쳐놓고 문서 작성을 하고 있었다.
'주말에. 캠핑장까지 와서도 일하네.'
내가 몸을 세우자 기척을 느낀 최아란이 뒤돌아봤다.
"일어났어?"
"응. 잘 잤어, 누나?"
"어... 그런데 어디 바람 새는데가 있나? 왠지 춥더라."
"아, 그거..."
장군님 때문인 것 같은데...
그보다 난 현실적인 원인이 떠올랐다.
"응?"
"내가 환기 시켜두려고 커넥터 열어뒀잖아. 그거 안 닫은 거 같은데."
"아하."
"미안, 지금 닫을게."
"아니야, 누나가 할게. 피곤하잖아. 좀 더 자."
"됐어. 나도 잠깨야 돼."
바닥을 기어서 텐트와 텐트를 연결시켜주는 커넥트를 살폈다.
'어? 닫혀있네?'
"누나가 커넥터 지퍼 잠갔어?"
"아니? 난 안 건드렸는데. 흐흣... 준아, 네가 잠결에 잠근 거 아니야?"
"그런가. 그렇겠네..."
'아... 그때구나.'
장군님이 침실 텐트 안으로 들어오실 때, 뭔가 지이이익 하고 지퍼 소리가 났는데. 그때 장군님께서 닫아주셨던 모양이었다.
'되게 섬세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