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2화 〉봄개학 (142/201)



〈 142화 〉봄개학
"어. 진짜 모르겠는데..."

소희정의 대답에 나예성이 밥맛이 떨어졌는지 수저를 내려놓았...


아니, 짬뽕국물을 먹기 위해 내려놓은 것이었다.

우리는 소희정이 어떤 모습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주었다.

"어우씨... 웬만하면 나는 내가 했던  다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아니네. 준아, 내가 그렇게 말했어도 신경쓰지 마."
"응..."

어떻게 신경을 안 쓰나.

대답으론 신경 안 쓰겠다고 했으나 신경쓰였따.

그리고 내가 때마침 궁금해하던 게 있었다.


소희정과 단둘이 되면 물어보려던 것 말이다. '신재준'은 잘 지내는가 하는 궁금증...

귀신이 그것에 힌트를 내준 것 같았다...


'어우... 여름도 아닌데 으스스해지네.'


귀신의 말을 믿을만 하다고 가정할 때, 북동쪽에  가라는 걸까?

'북동쪽... 태연시가 있는데.'

그리고 태연시에 '신연주'가 살고, '최아란'이 살았다. 하지만 그들이 '신재준'의 영혼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리가 없었다.

'설마...'


나는 떠오른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오석준'. 만약 그의 몸 속에 '신재준'의 영혼이 들어가있다면?

세상의 이치가 주고 받는 것으로 돌아가는 만큼, 내가 이 '신재준'의 몸에 들어왔으니, 반대로 '신재준의 영혼'은 '오석준의 몸'으로 들어가야 이치에 맞을 것이었다.


'신재준'도 내 몸의 기억을 읽어서 '오석준'으로서 잘 연기해 살아가고 있다면?


'내 질문에 대답해줄 순 있겠지...'


그러나 '오석준'에게는 신경 끄기로 했다. 만나고 싶지 않았다.

썰렁해진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쳤다. 소희정은 괜히 우리에게 미안한 눈치였다.

식사를 마치고 시내로 나가서 놀았다.

저녁시간에 최아란이 찾아와 '옆집'에 가서 놀았다.

"흐음, 재연이가 잘 해결해서 다행이네."
"그러게."
"화난다."
"응? 뭐가?"
"내가 너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럼, 나중에 도와줄 거 생기면 그때..."


최아란과 '옆집'에서 다 논 이후엔 신재연과 함께 '꿈'을 꾸었다. 야한 꿈이었다.


봄개학 3일차가 되었다.


첫날과 둘째날에는 빡세게 집중했지만, 슬슬 수업이 물리기 시작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앞으로 4시간이 지나야 집에 갈 수 있네. 아... 섹스하고 싶다. 따먹히고 싶다...'

대학, 군대, 직장 생활로 잊혀졌던 고등과정 지식을 떠올리는 경험은 즐거웠으나... 평소에 예습을  해뒀기 때문인지, '깨달음의 재미'는 덜 보게 됐다. 나원, 예습해서 손해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기미정은 학교에 안 나온 모양이더라."

김하늘이 말했다.

지금은 1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이었다.

김하늘이 쉬는 시간이 되자 마자 교실 바깥으로 나갔었는데, 기미정의 상태를 염탐하러 갔던 모양이었다.


"우리 누나한테 듣기로는... 전신 타박상에 갈비뼈 골절, 손가락뼈 골절, 정강이도 뼈에 금간 것 같다고 했어."
"역시 재연 언니야. 빡치면 무섭구나..."
"기미정네 어머님도 우리 누나한테 기미정 좀 참교육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하더라고. 그래서 잘근잘근 다져놓았네."
"그 아주머니는 그렇게 착하신데, 기미정은 왜 그렇게 빻았지?"
"그러게 말이다."


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소희정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마주 바라보고 있자니 흠칫하며 고개를 딴데로 돌렸다.

지금 뿐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개학  날부터 그랬다.

수업시간에도 볼이 따갑다 싶으면 소희정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 다음, 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나예성과 함께 화장실에 갔다.


우리는 소변기 한 칸 건너뛰고 서서 동시에 방광을 비었다. 나예성이 눈높이에 맞춰 벽에 붙여진 '명언 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희정이 너 좋아하는  아니냐?"

소희정이 자주  빤히 쳐다보는 걸 나예성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아닌 것 같은데."

'내 영혼이 특이해서 그런 것이겠지.'

"맞을 걸.  마려운 강아지마냥 너한테  걸려고 망설이는 모습도 몇 번 봤어. 네가 딴짓하느라 못 볼 때 말이야."
"흐음, 그래?"
"뭐, 너한테 여친 있으니 고백은  할  같지만서도."


소희정도 따먹힐만 하게 예뻤다. 그런데 그놈의 '균형' 때문에  건드리고 있어서 아쉬웠다..

'잠깐... 이러다가 나 '균형' 생각하느라 영원히 새로운 여자한테 못 따먹히는  아니야? 그건 싫은데.'

어떻게든 수를 마련해야겠다.


이왕 여자 꼬시기 좋은 몸에 빙의한 거, 십분 활용하고 싶었다.


그 다음 3교시 끝난 쉬는 시간. 이번엔 소희정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

"재준아, 나랑 잠깐 얘기 좀..."
"응? 해."


소희정의 짝꿍이었던 김하늘은 엎드려자고 있었고, 나예성은 전화를 하러 간다며 나갔다. 아마 자기 와이프랑 통화하러간 듯싶었다.

소희정은 내가 혼자 있는 타이밍을 노린 듯했다.

"잠깐 복도로 나와줄래?"
"추운데... 그래, 알았어."


나는 무릎 담요를 내려두고, 소희정을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내가 무릎 담요를 쓰는 이유는,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공부방에서 공부하느라 징크스가 생겨서 그랬다. 추운 공부방에서 늘 담요를 덮었는데, 그래서인지 무릎 담요를 사용하지 않으면 공부할 때 영 거슬렸다.

'이번엔 무슨 말을 해서 날 소름 돋게 해주려나.'


복도에는 학생들의 수가 적었다. 히터 빵빵한 교실에서 빠져나가기 싫어하는 학생들이 절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아니,  말하려고.  말부터 하냐."
"우리 집에 놀러와 줄래...?"
"확실히... 오해할 만한 말이네. 혹시 '그거'에 관련된 거야?"

내가 말하는 '그거'란 '영적인 것'을 얘기했다. 소희정은 척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있잖아."

 마침 단둘이 되자, 전에 소희정에게 물어볼까 했던 것을 물었다.

"불행을 피해서 떠난 둘째는 행복할까?"


나는 어차피 내가 이런 '영적인 질문'을 던져도, 소희정이 다른 애들에게 '나의 이상함'을 알리지 못할  알아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보는 거였다.

"뭐...?"
"네가 전에 우리집에 와서 했던 말에 궁금해져서 그래."
"무섭게 그런 걸 왜 물어보냐... 이것 좀 봐. 내 팔, 소름 돋았어."

소희정이 왜 무서워하는 걸까?


소희정은 내가 '귀신'인데 자기를 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지금  말을 무서워한 걸까?


완전 오해는 아니었다. 다른 영혼이 빙의한 거, 어떻게 보면 귀신이 들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너도 '신재준'이 어떻게 된 건지 몰라?"
"너... 누구야?"

소희정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난 웃음이 나왔다.

여고괴담 같은 영화에서, 자기 친구인 척하는 귀신에게 '너 누구야?'하고 물어보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희정이 딱 그거지 않은가.

나는 평생 '귀신'에 마음을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느꼈다. 소희정의 놀라하는 게 재밌었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신재준이야."
"...야."
"흐흫... 야. 농담이야. 네가  무섭게 해서, 너도 무서워하라고."


난 소희정의 표정이 심각해보이자 '장난'이었다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소희정은 오히려 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본모습을 드러내."

근데 그녀가 내뱉는 말은 장난말  자체였다.


"흐흫... 본모습을 드러내라는 건 또 뭔 개소리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올 정도로.

"...너 진짜 재준이지?"
"그렇다니까. 만져볼래? '그거'인지, 아닌지?"


나는 그녀의 손을 깍지 껴서 잡았다. 손가락끼리 착 감겨서 얽혔다.


소희정은 그렇게 잡힌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가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 뭐하는 거야."
"내가 '그거'면 잡을 수도 없을  아니냐. 근데 잡혔네?"

여기서 '그거'란 당연히 '귀신'을 뜻했다.

소희정은 깍지로 잡혀있던 자신의 손을 빼냈다. 그리고 화난 표정을 말했다.

"재준이 몸으로 이런 짓하지 마. 난 다 보인다고...  얼굴."


그러고 보니 첫 날에 그랬지. '오석준'의 얼굴과 '신재준'의 얼굴이 융합돼서 보인다고.

나도 오랫동안 보지 못한 '오석준'의 얼굴이었다. 소희정은 그런 '오석준'의 얼굴을 보고 지내고 있겠구나.

난 불현듯 궁금해졌다.


"내 다른 얼굴은 어때?  생겼냐?"
"...어차피 가짜잖아. 멋지게 꾸민 거."

부정하진 않는 걸 보면, 잘 생겨 보이는 모양이었다.

소희정 같은 여고생한테 잘 생겼다는 소리 들으니, 25살의 '오석준'으로서 콧대가 세워졌다. 슬슬 여고생들한테 '아저씨' 소리를 듣기 시작했었는데.


"꾸민 거 아닌데.  얼굴 원래 잘 생겼었는데."
"역시 넌..."
"아씨, 흐흫... 장난 그만하자. 그리고 종도 곧  것 같고. 아, 맞다. 너희 집 가자고? 언제 갈까?"
"오늘..."
"하늘이랑 예성이랑 비밀로 하고 가야돼?"

다 같이 가도 되면 처음부터 이렇게 따로 얘기하지는 않았을 거였다.

"어..."
"흐음, 역시 너희 아버지한테  보여주려고 그러는 건가? 네 눈에 내가 이상하게 보여서?"
"응..."
"흐음, 그래. 희정이, 네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고, 고마워..."
"그럼 하교할 때 동선을 어떻게 하지? 하늘이는 우리 집에 와서 또 놀러와서 자리 지키려고 할  같은데..."
"미안한데, 핑계 좀 만들어줘. 부탁해."

'음... 웬만한 변명은 '나도 같이 할래'라면서 집에 붙어있을 것 같은데. 나 따먹으려고.'

어제 4인방으로 몰려다녀서 김하늘은 날 따먹지 못했다. 그래서 몸이 달아올라있을 거였다.


'4교시 때 생각해봐야지.'

마침 수업시간 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뒷짐을 진채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소희정이 내뱉은 소리에 놀랐다.

"재준아,  왜 손톱이 안쪽에 있냐?"

난 얼른 뒷짐을 풀고,  손을 확인했다.


 손톱은 제대로 바깥쪽에 있었다.

놀란 얼굴로 소희정을 쳐다보니, 그녀가 푸흣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장난이었어."
"아놔... 뒈질래?"


나는 소희정에게 다가가 헤드락을 걸었다. 소희정의 작은 머리가 내 품에 바짝 붙었다. 말랑말랑한 여자아이의 몸이 스킨십하게 되자 자지에 피가 저절로 쏠렸다.

난 발기하려는  참으며, 소희정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에 묻어있던 샴푸향이  코를 찔렀다.



* *



꿈을 꾸었다.


나 말고 3명의 인물이 나왔다.


쌍둥이 같은 '오석준' 2명.


그리고 '신재준' 1명.

난 거울을 보지 안아도 지금 내 모습이 '신재준'의 모습을 취하고 있을 거란 걸 깨달았다. 확신했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

누군가가 말했다.

'오석준' 2명과 '신재준' 1명이 모두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너는?"

분위기상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 같았다. 나도 역시 돌아가고 싶지 않기에 고개를 저었다.

"뭔가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

누군가가 보고하라고 하자, 오석준1이 가장 먼저 말했다.

"술 마시고 여사친 임신 시켰어."

그 다음에는 '신재준'이 말했다.

"시발. 재연이가 콘돔에 바늘구멍 뚫어놨더라. 야, 너도 조심해. '신재준', 너 말이야."


그 다음, 오석준2가 말했다.

"질내사정했는데 걱정 중이다."

"그럼 제 33회차 영혼순환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차렷, 경례."



개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나보니 반장이 일어나서 선생님을 향해 일동 경례를 시키고 있었다.


다들 인사를  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아, 깜빡 졸았네.'


3일차 4교시는 국어 수업이었다. 50대 국어선생님의 자장가 같은 낭독.

막강한 수마가 덮쳐오니, 오히려 버텨내보고 싶단 오기가 생겨났다. 그 수마와 싸웠지만 결국 패배해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영혼순환회의? 참 작명 센스하곤...'


특히 '특이사항 보고' 부분이 너무 압권이라, 꿈이었는데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전부 '피임'에 관련된 것이었다.

술 마시고 피임에 실패해 임신, 피임을 위한 콘돔에 구멍 테러를 당함, 피임을 잘못해 질내사정 후 걱정...


'내 평소 불안이 꿈에 표출됐나보네. 그런데 콘돔에 바늘 구멍? 에이, 신재연이 그럴 일은 없겠지...'


근데 성격이 좀 사이코 같은 여자랑 할 때는 콘돔을 사용하더래도 주의해야하긴 하겠다.

'사이코 하니까 기미정이 생각나네, 시발년.'

난 아직도 김하늘과 신재희를 때린 기미정에 대한 분노하고 있었다.


종례까지 마치고 가방 싸고 나갔다.


김하늘이 말했다.

"으아... 울아빠가 화분에 물주다가 넘어뜨려서 깨뜨리고 밟아서 크게 찢어졌다네. 그래서 지금 응급실이래. 피 많이 났나봐."
"하늘아, 빨리 병원에 가봐."
"어. 예성아, 희정아. 재준이 좀 집에 데려가줘."

김하늘이 떠나자 나예성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 녀석은 왜인지 3교시 쉬는 시간 때부터, 그러니까 전화를 받고 난 다음부터 개빡친 상태였다.


"나도 좀 먼저 간다. 소희정, 네가 재준이  잘 데려다줄 수 있지?"
"어, 어..."


 호기심에 나예성에게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나중에. 톡으로 알려줄게."

나예성은 소희정을 힐끔 보더니 대답을 뒤로 미뤘다.


난 대충 짐작이 갔다.

그 아줌마랑 전화로 싸우고 빡친 거 아닐까.

나와 소희정은 나란히 교정을 걷기 시작했다.

나랑 단둘이 된 게 긴장되는지 소희정은 자꾸 마른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난... 살짝 무서웠다.


'하필 이때, 하늘이하고 예성이하고 사라진 거... 다 소희정을 좋으라고 벌어진 거 아니야? 귀신이 뭔 수를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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