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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화 〉봄개학 (140/201)



〈 140화 〉봄개학

'그만 좀 놓아달라고 애걸복걸해볼까. 에이, 안 돼.'

그만해 달라고 하면 오히려 날 사로잡으려고 하지 않을까 싶었다.

차라리 인형처럼 당해줘야 최아란이 내가 질려서 버릴 확률이 높았다.  생긴 인형이니까 가끔씩 찾고, 떡고물을 던져주고, 신재연을 자기라인으로  챙겨주고. 그러면 내 입장에선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신재연과 함께 누웠다. 그녀는 나를 마치 인형처럼 매만졌다. 머리, 어깨, 옆구리, 가슴, 배, 음모, 자지, 허벅지...


'그런데 기미정, 그 미친년은 왜 나한테 전화해서  달라고 지랄이지. 또라이인가?'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년이었다. 김하늘의 얼굴도 흠집내고, 신재희도 괴롭히고. 개양아치년.


'아란이가 사람 시켜서 기미정을 처리하려는 거...  살인까진 하진 않겠지?'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재벌가의 뒤에서 움직이는 조폭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아란이한테 말해놔야겠다. 죽이진 말라고... 근데 내가  말하면 막 귀엽다고 그 지랄하는 건 아니겠지?'


"재준아. 무슨 생각해?"


신재연은 코로  목덜미를 문질렀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폭유를 주물럭거렸다. 세상만사의 절망과 슬픔과 고통이 지금 이 밀가루 반죽 같은 감촉의 폭유를 만지는 동안에는  날아갔다.

"그냥... 재희 생각."
"그 시발년. 내가 혼낼게."
"뭐?"

난 놀란 얼굴로 그녀를 돌아봤다.


'신재희'보고 '시발년'이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었다.

'신재희'와 관련된 '기미정'에 대한 것이겠지.


'난 아직 재연이한테 말  했는데... 아까 편의점 갔을 때, 아란이한테 들었나보네. 그리고 내가 부탁한 게 뭔지도.'


그런데 신재연도 최아란이 재벌 손녀란 거 안다. 처음에 최아란이 재벌 손녀라는 사실을 알려준 게 그녀였으니까. 그녀는 최아란의 출신 성분이 재벌이니, 사귀면 결국 내가 불행해질 거라고 했었다.

'재연아... 전문가가 나서는 게 확실할 텐데, 뭣하러 나서냐... 왜 그런지 알긴 하겠다만...'


"우리 가족 일인데 왜 아란이한테 부탁해."

그녀는 가볍게 혼내듯 내 코를 꼬집었다. 살짝 아팠다.


난 뭐라고 답변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모범적인 답변을 했다.


"누나가 걱정할까봐 그랬지..."
"그래도... 그러면  누나가 뭐가 돼..."

이런. 가족 얘기하다가 '꿈'이라는 역할극이 깨지려고 했다. 나와 그녀의 사이가 현실로 넘어오려고 했다.


'꿈'의 역할극이 끝나버리면 신재연에게 '브레이크'를 걸가 힘들어졌다.


그것은 곧 '균형'의 붕괴에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네가 왜 '누나'야..."
"뭐...?"


나는 손을 그녀의 보지로 향했다. 풍성한 음모를 지나 애액으로 흠뻑 젖어있는 보지에 도착했다.

"지금은 '누나' 아니야."
"그래..."

신재연이 내 위에 올라탔다. 사방에서 자지를 꾹 조여오는 질에  쾌락의 신음을 냈다.

"기미정...  싸움 잘 하는데..."
"하악...! 뭐, 뭐라고?"
"싸움 잘 한다고."
"나도 잘 해. 후욱...!"
"하늘이도 주먹으로 때려서 몸 날려버렸고, 재희가 조폭 3명을 동시에 이겼대."
"나도 이겨."
"아씨, 농담 아니라고. 재희랑 일진애들이 직접 봤다고 했어."

신재연은 스무스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내 말에 대답했다.


"그걸 말하는 이유가 뭐야? 하아..."
"조심하라고... 걔 진짜 싸움 잘 하니까."
"알았어. 내가 걱정돼서 그랬던 거구나?"
"응..."
"난 또 아란이가 하려던  내가 한다고 하니까 싫은 줄 알았네."
"아란이 누나한테는 하지 말라고 했어?"
"어... 하앙...! 후욱...! 내가 지켜지킬 거야. 너랑 재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래..."

신재연의 마음을 잘 알겠다. 나라도 가족의 맏이였다면, 동생들의 문제를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진 않을 거였다.


심지어 '연적'에게 활약상을 넘겨주고 싶진 않았을 거였다.

어쩌면 나와 최아란이 키스한 것보다도, 내가 최아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신재연에겐 충격이고, 분노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 따로 불러다가 설득이나 때린다고 해도 안 통할 애인데... 자기 엄마가 때려서 응급실로 갔는데도 정신  차린 것 같던데."
"나만 믿어."



/ / /





다음날, 신재연은 반차를 냈다.


성연고등학교의 보충수업이 끝났을 시간이었다.


신재준에게 기미정의 번호를 얻어냈던 연락을 걸었다.

[여보세요.]
"나 재준이랑 재희 언니야."
[흐음... 이젠 우리 엄마에 이어서, 자기 누나한테 일러바쳤나.]
"좀 보자. 너 싸움 잘 한다며? 나랑  맞짱 까자."
[킥킥킥. 근데 몇 살이세요?]
"스물다섯."
[그 나이 먹고 고삐리랑 싸우고 싶은가?]
"너 조폭 3명하고 싸워서 이겼다며. 그냥 고삐리는 아닌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근데 싸워서 이기면 뭐해줄 건데? 치료비 명목으로 한 500만 원 정도 줘야할 것 같은데, 어때?]
"내가 이기면 다신 재준이랑 재희 건들지 마."
[킥킥, 내가 질 리는 없을  같은데... 좋아. 일단 250만 원은 줘.]
"현금으로 가져간다. 500만 원 전부."
[그러시든가.]

신재연은 슬그머니 반말을 하는 기미정이 아니꼬왔지만, 어차피 이번에 두들겨팬 다음 다신 보지 않을 상대였다.


'시발년... 싸가지 없는 새끼... 재희도 건들이고, 재준이도 건드려? 이젠 내 성질도 건드렸고...  진짜 뒈졌다.'

순간 베갯머리송사리로 신재준이 주문했던 것이 떠올랐다.

'죽이지만 말랬던가. 그래, 죽기 직전까지만 때릴게, 재준아.'


[장소는?]
"네가 정해. 나중에 지고서 내가 꼼수 써서  거라고 하지 말고."
[하. 그쪽 낯짝이 궁금해. 짓밟아줄게. 지도 캡처해서 보낼 거니까 거기로 와.]


신재연은 MMS에 첨부된 이미지 파일을 열었다. 성연 시내여서 그다지 멀지 않은 장소였다.

어느 폐빌딩 앞이었다. 창문틀은 전부 빠져있었고, 햇볕이 들어가 보이는 내부는 가구없이 비어있었다. 몇 달, 혹은 몇   청소가 되지 않은 개방된 계단이 매우 더러웠다.


교복 치마 속에 학교 체육복 바지를 입은 여고생이 근처 담벼락에 엉덩이를 기대고 있었다. 양쪽 귓볼에 꼬맨 실이 있었고, 한쪽 뺨은 부어있었다.

"네가 기미정이냐?"
"어."


기미정은 신재연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키 크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걸까. 신재연은 기미정을 노려봤다.


"마음에  드네."


자꾸 무슨 개소리를 혼자서 씨부리는 건지 모르겠다.

미친년이 미친소리를 지껄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무시하고 본론부터 말했다.


"돈 가져왔다."


백팩의 지퍼를 열어 돈다발을 보여줬다.


"오... 진짜 돈 가져왔네?"
"이제 싸울 거냐?"
"그래, 에휴... 기대했는데."
"저 안에서 싸우면 되냐?"
"어. 따라와. 에이씨, 괜히 기대했네."

'뭘 기대한 건데.'


신경을 끄려는데 자꾸만 저러니까 신경쓰였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바깥은 벌건 대낮이었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어두워졌다. 먼지로 가득한 지하주차장 내부가 얼른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킥킥, 누가 여기서 떡쳤나 보다."


먼지 가득한 보닛에 누군가가 올라가 앉은 자국과 손자국이 남아이었다.

신재연이 그 보닛을 쳐다볼 때, 기미정이 갑자기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신재연은  유치한 수작에 놀라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피했다.

"빨리 맞고 살려달라고 빌어라, 어?"


기미정이 여러 차례 공격을 강행했으나 신재연의 눈에는 그 주먹이 모두 보였다. 기미정이 설렁설렁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신재연의 동체시력이 우수하고, 몸이 민첩한 까닭이었다.


"아, 좀 맞으라고!"

신재연이 어렸을 적에 잘못 먹은 보약은 몸을 뜨거운 체질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동체시력을 좋게 만들었다.


몸을 날쌔게 만들었고, 힘도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신재연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오는 기미정의 주먹.


신재연은 손등으로 밀어내는 것으로 그 궤도를 바꿔버렸다.

그리고 주먹을 내질렀다.


기미정의 두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내 주먹을 보고 놀라다니. 보였다는 거잖아. 제법인데? 하지만...'

기미정이 피하려고 했지만 느렸다.

아니, 신재연의 주먹이 너무 빨랐다.

"큭!"


기미정은 최대한 피해를 줄이고자 고개를 뒤로 내뺐다. 코가 얼얼하게 아팠다. 쌍코피가 터졌다.

뒷걸음질 친 기미정은 자신의 손을 코에 대고 코피를 확인했다.


신재연은 그런 틈을 안 봐주고 뒤이은 주먹을 날렸다.


기미정은 놀란 눈을 치켜뜨며 두 팔을 얼굴 앞으로 올려 가드했다.

퍽!

"아악!"

신재연은 아쉬움을 느꼈다. 기미정이 가드를 하면서 몸을 뒤로 내빼, 충격을 흡수한 까닭이었다.

'특수부대원 중에서 이런 녀석은 몇 없었는데. 잘 싸우네.'

군대에 있을 때, 싸움을 잘 한다고 소문이 난 신재연이었다.


군대에서 그냥 힘을 숨기고 조용히 있다가 전역하려고 했으나, 상근예비역으로 빼주지 않겠다는 연대장의 말에 분노가 풀 필요가 있었다.

부조리를 저지르던 선임들부터 시작해, 병사들의 주적이던 간부들 '정당한 대련 경기'를 통해 폭행했다.

이후 연대장이 외박증과 휴가증을 상품으로 육군 특전사, 해군 UDT, SEAL 해병대 수색대대 따위의 특수부대원과 싸워보라고 했다.

단순한 전투력만 따지는 1대1 겨루기에선 신재연이 전승을 했다. 직업군인이 되라는 무수한 악수 요청을 받았지만, 군인 체질이 아니어서 거부하고 전역했다.

"시발... 볼라 세네. 개 같이 큰 년."
"내가 큰 편이긴 한데... 엄청 큰 건 아니지 않나?  자꾸 키 타령이냐."


자꾸 키 갖고 그러니까 결국 궁금해서 물어봤다.

"몰라도 돼, 시발년아."
"그래? 나도 사실  궁금했..."

사람이 말을 하는데 발차기를 날려왔다.


신재연은 발을 슬쩍 들어서, 발창으로 기미정의 정강이를 밟아서 쉽게 발차기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기미정의 정강이를 발판 삼아, 나머지 발을 강하게 올려찼다.

기미정은 자신의 턱을 노리고 날아든 발차기를 피할  없었다.

기미정은 턱을 맞고 뒤로 나자빠졌다. 바닥에 있던 먼지가 위로 솟구쳤다.

신재연은 먼지에 입을 가리고, 눈을 찌푸리며 기미정을 내려다봤다.


"으... 퉤. 개같은 년..."


기미정은 눕게 되면서 목으로 흘러들어간 코피를 뱉으며 얼른 일어났다.

'끈질기네. 실력 차이 이젠 알 때 되지 않았나? 그럼... 나야 좋지.'

마음껏 팰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기미정의 머리를 향해 사커킥을 날렸다.

"큭!"

기미정은  팔을 올려 얼굴을 방어했다.

일어나려했던 몸이 다시금 뒤로 눕혔다.

신재연은 기미정의 몸 위로 올라가 곧 바로 묵사발낼 수 있었지만 일부러 참았다.

기미정에게 무력함을 계속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평생 져본  없겠지? 그런데 어쩌냐. 세상에는 너보다 더 강한 년도 있는데.'

기미정은 확실히 강하긴 했다. 그러나 하늘 위에는 더 높은 하늘이 있는 법이었다.


"개 같은..."


기미정이 바닥에 먼지를 쥐고, 신재연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

연막치고 공격한다는 계산이었겠으나, 신재연에겐 소용없었다.

신재연은 먼지를 가르며 날아드는 주먹에 주먹으로 맞부딪쳤다.


따악!

뼈끼리 부딪친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퍼졌다.


'부러졌네.'


신재연은 짧은 사이에 느꼈다. 기미정의 손가락 뼈가 부러졌다고. 일부러 노린 것이기도 했다.

기미정은 손가락 뼈가 부러져 고통스러울 텐데도 연속해서 양주먹을 날렸다.

신재연은 가볍게 피하거나 쳐내면서 기미정을 약올렸다.

"으아아악!! 이 개년이!!"
"슬슬 질리네. 좀  재밌는 거 없냐? 보여줘봐."
"시바아알!!!"


'칼 같은 건 없나?'

기미정은 극도로 분노하고 흥분했음에도 무기를 꺼내지 않았다. 없는 듯했다.


'그럼  여유 부려도 되겠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신재연은 기미정의 행동 하나하나와 호흡, 근육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시정일관 기미정을 갖고 놀았다.

신재연은 기미정의 옆구리에 바디블로우를 날렸다.


부득.

손을 통해 갈비뼈 하나 정도 부러진 느낌이 났다.


'끝나겠네.'

갈비뼈가 부러지면 몸을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괴로울 것이었다. 손가락 뼈와는 다르게.

"아아악...!"

기미정은 자신의 옆구리를 감쌌다.


부러진 갈비뼈. 부러진 손가락뼈. 쌍코피. 곧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거친 호흡.

신재연은 미소지었다.

기미정은 자기 부모를 죽인 원수 보듯 노려보았다. 아직도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최아란 때문에 짜증났는데...  됐네.'

그리고 뒤도 걱정없었다.


신재준을 통해 기미정네 어머니가 일하는 정비소를 알아냈고, 그곳에 전화를 걸어 기미정의 어머니에게 허락받았다. 기미정을 때려도 되겠냐고.

그러자 오히려 부탁을 받았다.

기미정을 반죽여서라도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면, 평생 은혜로 삼겠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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