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봄개학
자신의 말에 뭐든지 따르는 미남.
여자라면 한 번 즈음 하는 망상이었다.
하지만 기미정은 단 한 번도 그런 망상을 해본 적 없었다.
그런 미남이 있어봤자 남자에게 성욕을 못 느끼는 정신과 몸인지라 그런 망상을 할 리가 없었다.
이젠 달랐다. 자신을 흥분케 하는 신재준이 생겼으니.
'개새끼... 내 다리 사이에서 볼라게 허리 흔들게 만들어야지...'
그 상상만으로도 아랫배가 두근거리고, 신경말단이 찌릿찌릿해졌다.
'그리고 신재준한테 여장 좀 시켜볼까. 오, 괜찮을 것 같은데.'
기미정은 동성을 좋아하면서도, 동성애에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신재희를 똑닮은 친오빠인 신재준을 여장시킨다면?
이성애를 나누는 것인데다가, 신재희를 따먹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미정은 톡 어플에 들어갔다. 핸드폰 번호를 추가하자 자동으로 톡 친구로 '신재준'이 추가되어 있었다.
"아, 시발..."
남자애한테 톡을 보내려니까 손가락이 턱 정지해버렸다.
'그냥... 대충 보낼까. 튀어나오라고.'
다른 년들은 자신의 말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재준은 자신의 말을 씹을 것 같았다.
남자라고, 자신이 맞게 될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시발, 다음에 만나면 패줘야지.'
그러면 배우게 될 것이다. 남자도 여자한테 맞을 수 있다는 걸. 그러면 신재준을 조종하기도 편할 것이었다.
기미정은 남자를 때리는 것에는 저항감이 들었지만, 신재준 만큼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애초에 그녀의 성벽이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을 때리고 싶은 성벽. 신재준을 때리면서 따먹고 싶었다. 자신에게 굴복하는 신재준을 보고 싶었다.
"하아... 하아..."
그 상상만으로도 호흡이 거칠어졌다.
기미정은 그 사실을 담배를 물면서 깨닫게 됐다.
"후우..."
담배 연기를 뿜으며 거칠어졌던 호흡을 진정시켰다.
'일단 한 번 때려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해야하는데 말이지... 내일까진 못 기다리겠고. 오늘 부를까. 아. 근데 신재준, 이 새끼. 여자친구 있는 건 아니겠지?'
기미정은 연락처 어플을 뒤져서 그 사실을 알만한 사람을 찾았다.
신재희는 당연히 예외.
신재희와 절친인 엄지혜가 눈에 띄었다.
전화를 걸었다.
[네, 미정이 언니.]
"야. 너 신재희랑 친하지."
[네...]
"신재준 여자친구 있냐?"
[예, 예?]
"시발년아. 두 번 말하게 할래?"
[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왜인지 너한테 말해줘야 하냐? 시발, 우리 지혜 언니한테 내가 다 말해줘야지. 시발, 우리 지혜 언니 궁금해하면 안 되지. 우리 지혜 언니가 나 때문에 궁금해 뒤지겠네."
[죄, 죄송합니다...]
"너 좀 많이 아는 것 같다? 좀 나와 봐. 여기 성연고 근처야. 가끔 집합했던 은행나나무맨숀 뒷쪽."
[넵, 바로 가겠습니다.]
'흐음... 신재준한테 여자친구가 있다고?'
짜증이 났다. 이미 동정을 떼었으려나. 요즘 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도 떼니까, 고등학생인 신재준도 뗐을 것 같았다.
평생 '동정남'을 따먹고 싶다던 주위 여자애들의 말을 이해 못 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었다. 신재준의 동정을 다른 누군가가 가져갔다고 생각하니 열불이 났다.
'신재희'의 순결에는 크게 신경쓰이지 않은 것과는 달랐다. 어차피 여자애의 처녀막이니 다른 남자의 자지로 뚫려도 상관없었다.
다른 여자와 가장 먼저 보지를 비비는 상상을 하면 짜증이 나긴 했는데, 신재희가 레즈비언이 아닌 이상 그런 일이 없을 테니 여태껏 쓰이지 않았다.
'시발. 나도 동정충이었네.'
엄지혜에게 위치를 알려주자 10분 만에 왔다.
10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너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기미정은 너무도 늦는 엄지혜가 오면 몇 대 갈겨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 엄지혜를 향했던 불만이 단숨에 녹아버렸다.
엄지혜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동반하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오, 시발. 재희야!"
엄지혜는 기미정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기미정은 엄지혜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신재희에게 다가가 그 폭유를 우악스럽게 쥐었다.
'시발년... 젖탱이 볼라게 감촉 좋네...'
이 젖가슴을 만질 때면... 동성애를 하긴 싫지만, 역시 동성애를 하고 싶어졌다.
"윽... 야... 네가 우리 오빠한테 왜 관심을 갖는 건데."
"시발년. 언니한테 반말 까는 거 보소."
기미정은 즐거움에 히죽 웃었다. 그래, 이거다. 이런 괘씸하게 구는 신재희가 꼴렸던 것이었다.
다시 겁대가리를 상실해 왈왈 되는 꼴이... 재차 짓밟아서 굴복시키고 싶었다.
같은 여자가 젖가슴을 장난식으로라도 건드는 것은 기분이 더러운 일이었다. 신재희는 지금 불쾌할 텐데도 기미정의 손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것은 깝치면서도, 기미정에게 두려움을 품고 있다는 증거였다.
실시간으로 신재희를 굴복시키고 있음을 깨닫자, 기미정은 아랫배가 두근거렸다.
"너, 신재준 건들면 죽여버린다."
기미정을 웃음을 터뜨렸다. 친남매가 쌍으로 같은 경고를 해댔다.
사실은 두려워서 반항조차 못하는 주제에.
신재준은 결국 핸드폰 번호를 알려줬고, 신재희는 가슴을 대주고 있었다.
"건들면 어쩔건데?"
"이 시발년이!"
기미정의 무의식이 '공격'를 느꼈다. 갑자기 빨라진 인식이 느릿하게 날아오는 신재희의 작은 주먹을 포착했다.
순순히 맞아주는 것은 기미정의 취향이 아니었기에 손을 들어서 주먹을 붙잡았다.
"애교 부리냐?"
"시발!"
신재희가 붙잡히지 않은 주먹을 날렸다. 매섭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주먹이었으나 기미정은 그 역시 쉽게 잡아챘다.
두 주먹이 다잡히자 신재희는 이마를 사용했다. 박치기를 해오는 이마에, 기미정도 이마박치기를 했다.
퍽!
기미정의 머리가 더 단단했다.
"큭!"
신재희는 뇌가 울리는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했다.
기미정은 순간 신재희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충동을 억누르며 발로 찼다. 자신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랫배를 맞은 신재희가 뒤로 나자빠졌다. 신재희의 교복 블레이저에 신발자국이 남았다.
짧은 교복 치마였다. 벌리게 된 두 다리 사이로 팬티가 보였다. 팬티스타킹에 덮인 팬티는 하얀색으로 보였다.
'시발... 저것만 뜯어내면 보지가 있는건데.'
확 뜯어버리고, 자신의 젖은 보지를 맞대어 비비고 싶었다.
그러면서 하기 싫었다.
동성애를 하고 싶은 자아와 동성애를 혐오하는 자아가 격돌했다.
언제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쪽이 약간 우세해서 승리했다.
기미정도 머리가 단단했지만, 제대로 신재희의 머리와 부딪쳤으니 욱씬거렸다.
욱씬거리는 이마에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신재희의 젖가슴을 발로 짓밟았다.
자신의 더러운 신발로 짓밟혀지지는 물컹함에 아랫배가 두근두근 뛰었다.
기미정은 핸드폰을 들어서 짓밟힌 신재희의 사진을 찍었다.
"윽... 왜 찍어."
"네 오빠한테 보내려고. 걔 이런 거 보내면 좋아할 것 같더라."
"시발년이...!"
기미정은 발을 올리고, 신재희의 면상 바로 옆을 찍었다.
시멘트 바닥이 쿵 울었다.
신재희는 자신의 얼굴이 신발로 밟힐까봐 꾹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기미정이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무릎을 구부렸다. 손을 뻗어 신재희의 코를 비틀어쥐었다.
"재밌네. 잘 놀았다, 재희야."
"뭐?"
"다음에는 재준이랑 놀아야지."
"시발... 신재준, 건들지 말라고!"
"싫은데? 네가 막아보던가."
기미정은 신재희를 내버려두고,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던 엄지혜에게 턱짓했다.
엄지혜는 신재희를 한 번 쳐다봤다. 신재희는 무력함에 분노하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엄지혜는 기미정을 노려봤다.
"전 신재희랑 있겠습니다."
"하하, 시발. 오늘 따라 진짜... 말 쳐 안 듣는 것들로 한 가득이네. 꼴 받게. 야... 깝치지 마. 뒈진다?"
"그냥 저도 일진회 관두려고요."
"큭큭... 그래, 시발년아?"
기미정은 주먹을 날렸다.
퍽! 소리가 났고 엄지혜의 고개와 몸이 돌아갔다. 중심을 잃고 자빠졌다.
시멘트 바닥에 부딪친 스타킹의 올이 찢어지고, 생채기가 나 피가 흘렀다.
'약했네.'
기미정은 손으로 느껴진 약했다고 생각했다. 엄지혜가 멀쩡하게 일어날 것임을 알았다.
그 생각대로 엄지혜는 자신의 터진 입술을 매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뭐... 친구 위한다고 저러는 꼴 보인 건 나쁘지 않네.'
엄지혜가 까분 것 그쯤해서 봐주기로 했다.
"너희들 빨리 성연고 올라와라. 재밌게 해줄게."
물론, 이번 만큼만 봐준다는 것이지 자신에게 대든 것들을 용서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굴복하지 않으면, 굴복할 때까지 압력을 가하는 게 기미정이었다.
/ / /
나는 김하늘, 소희정, 나예성과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늘아. 넌 그냥 집에 가. 아니, 병원가. 흉지겠다."
"그냥 얼음찜질 하고, 마데카솔 바르면 돼."
"푸풋...!"
소희정이 김하늘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김하늘이 투덜거렸다.
"야이씨. 소희정. 너는 친구가 사이코년한테 맞아서 눈탱이 밤탱이 된 게 웃기냐?"
"그래, 희정아. 나빴다."
나도 소희정을 힐책했다. 어떻게 김하늘의 다친 얼굴을 보고 웃을 수 있지. 난 마음이 아프기만 한데.
"앗... 미안..."
소희정이 사과를 하자, 이번엔 나예성이 김하늘의 얼굴을 쳐다봤다.
"킥킥..."
"예성아, 너도 그러는 거 아니다..."
내가 나예성을 탓하니 김하늘이 "역시 재준이 뿐이야..."라고 중얼거렸다.
"야, 신재준. 뭐 어때. 여자애가 싸우다가 다칠 수도 있는거지. 뭐, 널 위해 싸운 거니까 네가 그렇게 걱정하는 게 이해는 된다만."
"맞아맞아."
나예성의 말에 소희정이 동의했다.
"하아... 기미정, 그 시발년. 진짜. 나한테 뭘 시키려고 그러지?"
"재준아. 그 년 번호 차단 걸어. 시발년이 선 넘네."
내 말에 나예성이 함께 기미정을 욕했다.
함께 같은 사람을 욕하니까 나예성과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야... 근데 다들 우리 집 오는 거?"
나는 이들을 집에 초대한 적이 없었다.
요 며칠 여자들에게 착정당하다 보니, 낮시간에 집안일을 하지 못했다. 밀린 청소와 빨래, 설거지, 가계부 정리를 해야했다.
오늘처럼 전날에 아무 여자하고도 섹스를 하지 않아 기운이 팔팔할 때 할 생각이었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또 나중으로 미뤄야할지 몰랐다.
"일진 애들이 갑자기 찾아와 너 해꼬지 할지 모르잖아."
"맞아맞아."
나예성의 말에 소희정이 동의했고, 김하늘은 입 열면 아픈 건지 고개만 끄덕였다.
"설마 그러려고."
"그렇게 방심했다간 험한 꼴 당하면 어쩌려고. 남자애가."
"맞아맞아."
"신재준, 너도 그냥 심부름센터 직원 고용하고 같이 다니는 게 낫지 않겠냐?"
나예성의 말에 난 부정적이었다.
"하아... 정수린한테 들어보니까 엄청 비싸더라고. 하루에 십 만 원."
김하늘이 돈 걱정하는 내게 금전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나섰다.
"우리 아빠한테 말하면 도와주실 거야. 아니, 꼭 도움 받아, 재준아."
말하자 움직이게 되는 관자놀이가 아픈지 얼굴을 찌푸린 채로.
나는 상상해봤다. 기미정을 비롯한 박슬기 같은 미녀 일진이 날 갱뱅하는 상상을.
어딘가 버려진 폐건물에서 내 옷을 벗겨내고 순서대로 내 자지를 사용하고, 그 장면을 모두 핸드폰으로 촬영해 다음번에도 대주지 않으면 그 동영상을 뿌리겠다고 협박하는 거다...
그 상상만으로도 쿠퍼액이 줄줄 새어나왔다.
'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지...'
꼴리긴 한데 그렇게 되긴 싫었다.
어떤 한 집단에 종속 성노리개가 되는 것은 싫었다.
그리고 그 상황이 김하늘, 신재연, 신재희가 알려지게 되면 그녀들이 마음 아파할 것이었다.
"내 생각에도 그냥 심부름센터 직원 고용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예성과 소희정마저 나한테 지켜줄 사람을 붙이고 싶어했다.
난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은 오버를 떠는 게 아닌가 싶었다.
"선생님이나 기미정의 부모님한테, 기미정에 대해 말하고 도움 청하면 되지 않을까. 다른 일진들은 잠잠하고, 기미정만 난리치는 것 같던데."
"그것도 한 방법이긴 하겠지..."
내 말에 나예성이 동의했다.
난 이왕 말나온 거 행동으로 옮길 생각이 들었다.
"그럼 말해보자. 일단 학교 선생님보단, 기미정네 부모님한테."
"내가 기미정의 어머님 어디서 일하는지 알아. 그리고 말이 통하시는 분 같아."
김하늘이 말했다.
소희정이 김하늘의 얼굴에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저 얼굴 보여주면서 말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지금 가자고?"
나예성의 물음에 소희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지 않나?"
나예성과 소희정, 김하늘 모두가 날 쳐다봤다.
내 선택에 따라서 움직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 가자."
우리는 일름보가 되기로 했다.
'이걸로 사태가 진정되면 더 바랄바 없겠지.'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까 싶은 불안감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