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봄개학
소희정은 초등학생 때부터 '신재준'의 외모를 보고, '귀엽긴 귀엽지.' 정도만 생각했지, 흑심이 생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부터 보이게 된 '귀신'의 얼굴은... 딱 소희정의 이상형이었다.
'으아... 미친. 반해도 귀신한테 반하냐.'
신재준이 자신의 눈을 빤히 쳐다봤을 때, 순간 신재준의 얼굴이 귀신의 얼굴로 변했었다. 그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에는 피가 쏠려 뜨거워졌다.
'아버지가 그랬지... 음마는 원래 못 생겼는데, 사람의 정기를 흡수하려고 멋지거나 예쁜 모습으로 변신한다고. 그것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한다고. 신재준한테 붙은 귀신도 그런 종류인가...?'
소희정은 '신기'가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보면서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있는 정신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무당이 되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아버지는 '용한 무당'으로 유명했기에 국회의원이나 재벌 사업가도 점을 받거나 굿을 받기 위해 찾아오곤 했다. 그러한 것을 보면 유망 직업 중 하나였다.
귀신을 보기 시작한 어렸을 때부터 작두 타는 걸 억지로 배웠다. 그 당시에는 아동폭행 아니냐 싶었지만, 지금은 강력한 인맥과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깨달아 열심히 수행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신재준처럼 융합하는 귀신은 배운 적도 없고,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본 적도 없는데... 게다가 신기 있는 나한테 과민반응도 안 보이고.'
귀신은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무당을 만나면 펄쩍 뛰면서 싫어하거나, 끈덕지게 좋아하거나 했다.
전자는 자신을 괴롭히거나 성불 시킬까봐 두려워서 그런 거고.
후자는 자신이 무당하고 맞다이 까도 이기거나 혹은 언제든 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악귀인 경우. 너무 어린 귀신이라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였다.
'아직 음마는 못 봤지만... 자길 알아본 무당을 피해 도망간다거나, 먹잇감으로 삼은 희생자한텐 끈덕지게 붙는다는데... 신재준한테 붙은 귀신은 안 그러잖아. 그럼 음마는 아닌가? 아, 모르겠다.'
역시 아버지한테 물어보고, 아버지가 데려오라고 하면 데려가봐야겠다.
만약 악귀에게 씌인 거라면, 완전히 악귀한테 몸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일반인 기준으로 하면, 신재준이 정신이 오라가락해서 헛소리를 일삼는 미친놈이 되어버리는 거지.'
소희정은 무당들이 '정신병'으로 인해, 타인의 '정신병 진행 정도'까지 육감적으로 알아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굿이라는 의식을 통해서 그 정신병을 고칠 수 있는 거라고 여겼다. 씨그러운 꽹가리, 방울, 북소리... 칼에 베인 닭의 목에서 쏟아지는 핏줄기, 위험천만하게 작두를 타는 무당의 퍼포먼스... 그것은 굿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나가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영향을 줬다.
굿은 '정신적 치료'인 셈이었다.
소희정은 세계가 많이 변했으니 무당도 21세기식으로 생각해야한다고 여겨, 무속세계의 현상을 21세기식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지금 재준이 상태가 위험한 상태라면... 고쳐줘야돼.'
소중한 친구니까.
그리고 가장 절친한 친구 년이 좋아하는 남자애니까.
종이 울렸다. 화장실에서 나갔다.
'그런데 만약 악귀이고 사라지게 된다면... 난 다시 그 남자를 못 보는 건가?'
그 사실을 깨닫자, 이래선 안 되는데... 그 귀신이 신재준에게 씌인 걸 아버지한테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경과를 한 번 지켜볼까...? 신재준의 상태가 심각해지거나 하면, 그때 말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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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 수업은 국어였다.
국어는 특성상 독서를 해야하다 보니, 정신이 쉽게 피곤해졌다.
천장에 달린 시스템에어컨에서 뿜어지는 뜨거운 공기. 놀라울 정도로 느릿느릿하고 조용해서 할머니의 자장가 같은 50대 여자 선생님의 낭독.
그녀 역시 학생들이 자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자면 안 되는데... 아닌가... 어차피 국어잖아?'
나도 졸음에 굴복하고야 말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1교시 영어 수업 때도 공부하던 그 3인방이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있었다.
'대단하네... 학년 2등 자리를 왜 쟤들한테 안 뺐겼지?'
만약 내가 마지막 '경청자'였다면, 계속 낭독하는 국어 선생님한테 죄송해서 졸음을 참았을 거였다.
하지만 나보다 정신력 강한 애들이 셋이나 되니 안도하며 잠을 청했다.
"재준아."
"어..."
김하늘이 날 깨웠다.
난 자다 일어난 까닭에 초점이 잘 안잡히는 눈을 깜빡였다.
자던 중에 풀발기 했음을 깨달았다. 바지춤을 비집고 올라가 셔츠 속에 들어간 자지였다.
교복 셔츠가 교복 조끼에 덮여져 있었지만, 옷 안에 기다란 원통 하나를 숨긴 듯한 그 윤곽을 완전히 가릴 순 없었다.
대다수가 쉬는 시간인데도 아직 잠을 청하는 가운데, 운 좋게 잠에서 깨어난 여학생들이 막 내 자지를 힐끔거렸다.
김하늘이 바짝 내 몸에 붙으며 내 자지를 가렸다.
"네가 웬일로 수업 도중에 잤네. 피곤했나봐?"
'신재준'은 아무리 피곤하더래도, 자신의 허벅지를 쥐어뜯으며 모든 수업을 맨정신으로 들으려고 하는 독종이었다.
오늘 내가 잤던 행위는 '신재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니, 어젯밤에 잘 잤는데. 오랜만에 학교와서 그런가."
어젯밤에 잠을 잘 잤다. 신재희도 다음날 학교가야 하니까 엄지혜의 집에 놀러가지 않았고, 그러자니 신재연이 날 밤새도록 괴롭힐 수 없었다.
신재연은 완전 착정 머신이었다. 지금 그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알이 부르르 떨렸다.
"재준아, 바람 쐬러갈래?"
"아니..."
"너 그러다가 또 수업시간에 자는 거 아니냐?"
"안 간다고."
지금 못 간다. 아직 낮잠 발기가 덜 풀린 상태였다.
난 찌푸리며 김하늘을 올려다봤다.
김하늘은 내가 발기한 걸 알고서, 다른 애들이 못 보게끔 가린 상태였다.
내가 낮잠 발기해서 일어나지 못하는 걸 알텐데 이러는 것은, 내가 수치를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난 그것에 복수했다.
"발기해서 지금은 안 돼."
내가 속닥거리며 말하자, 김하늘의 얼굴이 단번에 새빨개졌다.
"어, 어..."
어딜 까불어.
2교시 때 잘 자서 그런지 3교시, 4교시 때에는 또렷한 정신 상태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4교시가 끝나고 떠들썩해졌다. 이젠 아침에 봤던 남자 담임선생님이 찾아와 종례 시간을 가지면, 하교해도 좋았다.
"야."
그런데 뚱보 일진녀가 나한테 다가와 불렀다. 고혜미의 하반신을 봤다가 코끼리 같은 두 다리가 치마에 둘러진 걸 보고 눈을 찌푸렸다.
"왜."
"학교 끝나고 나 좀 보자."
"오올~ 혜미야. 또 신재준한테 고백하게?"
"또 차인다, 킥킥."
고혜미의 친구인 여자애들이 킥킥거렸다. 쟤들은 일진까지는 아니지만 노는 부류였다.
"난 너랑 볼 일 없는데."
"엌. 고백하기도 전에 차임. 킥킥킥."
"이게 바로 고혜미의 클라스지."
"아놔... 내가 언제 신재준한테 고백하겠대? 기미정이 보잰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하늘이 다가섰다.
"기미정이 왜?"
"나도 몰라. 아무튼 학교 끝나면 나 따라와라."
김하늘이 어이 없다는 듯 웃더니, 고미혜가 옆에 책상을 발로 밀었다.
"야. 신재준이 볼 일 없다잖아. 왜 네가 오라마라야."
"미, 미정이가 불렀다니까?"
고미혜는 오늘 아침에 자신이 위협했던 찐따처럼, 김하늘 앞에서 쫄았다. 그리고 기미정의 이름을 팔아먹었다.
일진 중에서도 서열이 가장 밑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볼 일 있으면 기미정 보고 오라고 해. 왜 신재준보고 오라는 거야?"
"미정한테 말한다? 네가 막았다고."
"어, 말해, 병신년아."
"시발... 지금 뭐랬냐?"
"병신년아. 왜? 꼽냐, 시발아?"
<"왜? 꼽냐, 시발아?"> 아침에 고미혜가 찐따를 위협하며 했던 말이었다.
그때 김하늘도 교실에 있었으니 다 들었을 거였다. 하지만 자신이 나서서 막거나 하진 않았다. 나처럼.
그래도 그랬던 고미혜의 언행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같은 대사를 들려주며 비아냥거렸다.
'근데 체급 차이가 나는데... 하늘이가 이길 수 있으려나?'
애들 싸움이 깡다구 싸움인 만큼, 체격이 그리 상관없을 지도 모르겠다.
"김하늘, 이 시발년아. 너 맨날 나대는 꼴이 마음에 안 들었어. 너도 학교 끝나고 남아라. 도망가면 죽여버린다."
처음엔 쪼는 모습을 보이더니.
김하늘한테 욕 얻어먹고는 분노한 모양이었다.
'봄개학 첫 날부터 일진하고 얽히네. 짜증나게.'
"선생님 오신다!"
한 여자애가 외쳤다. 김하늘과 고미혜는 서로를 노려보다가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기미정이 널 왜 보자는 거냐?"
내 옆자리인 나예성이 물었다.
"재희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여자애들끼리 싸우는 건데, 남자는 왜 불러? 기미정, 미쳤나?"
"그러게."
담임선생님은 간단히 종례를 끝마쳤다.
"청소는 그냥 자기 자리 밑에 있는 거 줍자. 다 주웠어? 그럼 반장."
"차렷, 경례."
선생님이 떠났지만, 김하늘과 고미혜의 싸움을 구경하려는 것인지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리에 남았다.
김하늘과 고미혜가 교실 뒤로 갔다.
'싸우지 말지. 얼굴 다치면 어쩌려고...'
얼굴이 상하면 안타까울 것이었다.
나예성이 내 옆에서 속상였다.
"둘 다 너 좋아하는 애들이네. 누구 응원할 거냐?"
"너무 당연한 걸 묻는 거 아니냐."
"킥킥, 그런가. 근데 고미혜, 쟤 너 좋아해서 김하늘하고 싸우려는 거겠지? 봐봐, 너 쳐다본다."
나예성의 말처럼 고미혜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고미혜의 커다란 볼살이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을 깎게 만들었다.
"어딜 쳐다보냐."
김하늘이 치사하게도 고미혜가 날 보고 있을 때, 선빵을 가격했다.
고미혜는 김하늘이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으나 막지 못하고, 얼굴을 주먹으로 맞았다.
고미혜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시발!!!"
고미혜가 김하늘의 멱살을 잡아챘다. 둔하게 생긴 몸과 다르게 그녀의 팔길이는 길었다.
김하늘은 멱살을 잡혀끌려가는 힘을 이용해, 고미혜의 얼굴에다가 이마 박치기를 했다.
"큭!"
고미혜는 한 손으로 자신의 코를 감쌌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손으론 김하늘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미련하게도 스스로의 두 손을 그렇게 낭비했다.
김하늘은 멱살이 잡혀있는 채로, 바디 블로우를 여러차례 먹였다.
고미혜는 몸집이 큰 만큼 때릴 곳이 많았다.
그런데 지방 탓인지 별 다른 타격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고미혜가 반격을 시작했다.
자신의 코를 감싸던 손으로 김하늘의 작은 얼굴을 때린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김하늘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고, 쌍코피가 터져 허공에 흩뿌렸다. 고통과 놀람으로 일그러진 김하늘의 얼굴에 안타까움과 분노가 밀려왔다.
하지만 난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고미혜가 뚱보라고 해도 여자는 여자였다.
'여자를 때리면 개양아치 새끼.'라는 세계를 살다온 나는 여자를 때리는 것에 저항감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세계의 약자인 '남자'가 여자들 사이의 싸움에 끼어들면, 이기든 지든 김하늘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었다.
김하늘은 한 대 맞았다고 전의를 잃지 않았다.
날아오르듯 무릎을 올려서 고미혜의 명치를 적중시켰다.
김하늘의 치마도 요새 여학생들 것이 다 그렇듯 짧은 교복치마였다. 그런 거친 행동에 치마가 위로 올라가며, 하늘색 팬티가 드러나게 됐다.
야하다는 생각보단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하늘은 나를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이번 싸움에서 이기면 감사를 담아서 김하늘의 질내에서 씨를 뿌려주고 싶었다. 물론, 콘돔의 절대방어에 막힐 테지만.
고미혜가 명치를 존나 세게 맞았는지 컥컥 거렸다.
김하늘이 연이은 공격을 하려고 자신의 팔꿈치를 뒤로 당기자, 고미혜가 겁에 질린 얼굴로 두 팔을 들어올렸다.
전의 상실한 게 보였다.
고미혜의 패배, 김하늘의 승리였다.
하지만 싸움에 난입자가 발생했다.
지름이 큰 귀고리를 찬, 짧은 치마 속에 학교의 파란색 체육복 바지를 입은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주먹질 한 방을 김하늘에게 날렸고, 김하늘은 난입자의 습격을 못 알아채 제대로 맞았다.
퍽!!!
수박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김하늘의 고개 뿐만 아니라 몸까지 날아갔다. 옆에 있던 사물함에 몸을 부딪친 뒤 바닥에 쓰러졌다.
"미, 미정아!"
"야이, 씨. 돼지쉐리야. 끝나면 바로 신재준 데리고 오라니까 처 놀고 있네."
"노, 노는 게 아니라... 싸, 싸운 건데..."
"그럼 싸움에서 진 거네?"
"윽..."
"넌 시발, 나중에 보자."
"..."
"대답 안 하냐?"
"어, 어..."
난 나도 모르는 사이 김하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김하늘이 힘없이 푹 숙인 게 정신을 잃은 듯했다. 설마 해서 코에 손을 대보니 숨을 쉬고 있긴 했다. 기절이었다.
고미혜한테 맞은 코에서 아직도 쌍코피가 났다. 그녀의 코에 대고 있던 내 손가락이 피로 젖었다.
기미정에게 맞은 관자놀이가 울긋불긋해졌다. 부어오른 김하늘의 얼굴에 이가 갈렸다.
"안녕."
기미정의 인사에 난 노려봤다.
"시발년아, 뒤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