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7화 〉겨울방학 (127/201)



〈 127화 〉겨울방학



김하늘은 인터넷 성인몰을 둘러보다가 사람 목줄을 발견했다. 안쪽 재질도 인조가죽 쿠션이 탄탄하게  있어서 거칠게 잡아당겨도 상처를 입을 것 같지 않았다.


가격은 3만 원 정도로, 그녀가 받는 용돈에 비하면 전혀 부담될 게 없는 금액이었다.

그녀는 꼼꼼하게 리뷰를 살폈다.

착용자가 상처를 입지 않는지, 접촉하는 피부에 두드러기 같은 것은 나지 않는지, 내구성은 어떤지...

[착용해봤는데요 ㅎㅎ 완전 푹신푹신하고, 타이트하게 조이면 압박감도 좋아요. 그 공장 냄새? 같은 게 나긴 하는데 하루 지나면 사라져요.]

최신 후기를 읽으며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목줄을 착용하는 사람은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고, 이 후기의 작성자 역시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기에.


남자가 성인용품 후기를 올리다니 므훗했다.


[좋아하는 오빠랑 잘 사용했어요 ㅎㅎ]

'아, 씹...'


하지만 마지막 문구를 보고, 이 후기의 작성자가 '여자'임을 알게 되니, 방금까지 므훗했던 기분이 증발해버리고 그 빈 자리를 역겨움이 채웠다.


'왜 여자가 남자한테 목줄에 채워지는데? 변태인가?'


남자한테 복종당하길 원하는 취향이기에 목줄에 묶였을 터였다. 변태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하늘은 자신은 변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고,  남자에게 '의존'을 받으려는 것은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들키지 않게 포장  하나 보네. '

상품 설명을 보니 송장에 적히는 상품명은 '사무용품'으로 해준다고 되어있었다. 포토 리뷰를 보니까 사용하는 택배상자도 그냥 무지였다.

성인용품인 티를 내선 안 됐다. 들키면  팔렸다.

'구매는 계좌이체.'

결제는 계좌이체를 선택해 폰뱅킹으로 이체했다.

성인몰 입장 및 가입을 위한 성인인증은 어머니의 핸드폰이 필요했지만, 결제할 때는 입금자가 성인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기에, 자신의 계좌에서  수 있었다.

오후 3시까지 당일배송이었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토요일에도 배송을 하니까 내일 올지 모르겠다.

다음날, 김하늘은 낮 시간에 원하는 물건을 받아냈다.


거실에서 아버지가 예전에 인기였던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있었다.

그는 김하늘이 택배 상자를 들고 지나가자 물었다.

"딸, 그거 뭐야?"
"헤드셋. 볼래?"
"아니, 됐다."

김하늘은 괜히 비밀이라고 했다간 보여달라는 얘기가 나올까봐, 평소 자주 시켰던 컴퓨터 용품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항상 그렇듯 컴퓨터 용품이란 말에 관심을 껐다.

방으로 들어와 상자를 열었다.

옷을 택배포장할 때 곧잘 쓰는 포장지가 빵빵했다. 스티커를 뜯었다. 안에 있는 걸 떨어뜨렸다.

물건은 뽁뽁이에 칭칭 감겨있어서 거의 반투명했다. 검은색의 뭔가가 보이긴 하는데 그 정체를 알아볼  없었다.

뽁뽁이에 감고 있는 투명테이프를 손을 뜯으려다가  안 돼서 가위로 북북 잘라냈다.

휘감긴 뽁뽁이를 펼치자 비닐 포장되어있는 목줄이 드러났다.

허리띠처럼 조인 뒤에 고정쇠를 꽂아 결착하는 방식이었고, 목줄의 끝에는 손잡이도 있었다.


작은 비닐 포장 속에 들어있어서 짧을  알았던 목줄은 의외로 길었다.

"후우..."


신재준에게 이 개목걸이를 채우고 키우고 싶었다.


밥을 주는 것이든, 씻는 것이든, 산책하는 것이든  해주고 싶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욕구라고 김하늘을 생각했다.


'잘 하지 않는 플레이라는 건 알아. 그래도 이 욕구는 다 갖고 있을 거라고.'


사랑하면 모든지  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하늘은 자신이 신재준을 사랑하기에 모든지 다 해주고 싶은 것뿐이라고 여겼다.


"킁킁."

'확실히 공장 냄새가 나네. 생각보다 심하진 않고.'

그래도 나긴 나니까 어디 바람 잘 드는 곳에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슬슬 신재준을 보러 가고 싶었다.

오늘 아침부터 신재준을 보러가고 싶었지만, 아버지한테 들키면 안 되는 택배가 올 예정이었기에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아버지가 자신의 택배를 함부로 뜯는 사람은 아니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니까.

냄새를 나중에 빼기로 하고, 열쇠로 잠글 수 있는 서랍에 목줄을 넣은 뒤 잠갔다.


"재준이랑 놀다 올게."
"응, 올 때 베라."
"넵."


집을 나섬과 동시에 신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오늘은 반드시 놀러간다? 아무도 날 막을  없으셈."
[뭔 지랄이야, 또. 와라, 와.]
"오키."


신재준네 집에 빨리 가기 위해서는 시내를 관통해서 가야했다.


시내를 관통하며 기미정네 정비소를 지나가게 됐다. 슬쩍 보니 기미정이나 그녀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개학 때 별 일 없어야할 텐데.'

신재희도 걱정되지만, 신재희가 다치면 마음 아파할 신재준이 더 걱정됐다.


신재희야 여자애고, 신재준은 연약한 남자애였다.


'에휴... 아, 시바. 그런데 재준이, 진짜 그 언니랑 계속 사귈 생각인가?'


신재연처럼 최아란이 성인이라 끌린 것일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신재준과 언제라도 섹스를 할 수 있는 사이였지만, 김하늘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신재준의 마음을 독차지 하고 싶었다.

신재준이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만 의지하고, 자신만 연모했으면 하고 바랐다.

"씁..."


길가로 쓸어 쌓여있던  무더기를 괜히 발로 찼다. 눈가루가 뿌려졌다.

'근데 뭐 때문에 재희 친구랑 약속이 생긴 거지?'

그러고 보니 물어보질 못했다.

그저 신재준과 오늘날에 만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전화를 끊었을 따름이었다.


어차피 만나서 확인할  있을 건데, 지금 전화해서 물어보기 뭐했다.

''언니'로서 뭔가  쏠까. 걔들이 뭔가  일 있어서 모여있는 자리에 내가 갑자기 끼는 거니까.'


편의점에 들어갔다. 장바구니를 챙기고 과자와 음료수 따위를 쑤셔넣었다.


그렇게 계산한 봉투를 들고서 신재준의 집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자 신재희가 문을 열어줬다.

"재희야, 안녕."
"안녕."

'오... 오늘은 제법 적의가 없네.'

일진이 되지 말라고 했던 자신의 참견 때부터일까. 신재희와 사이가 좋지 않아졌다. 신재희와 마주칠 때마다 적의를 받아야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쳐다보는 눈에는 적의가 없었다.

'왠지... 재준이가 내가 아니라 그 언니랑 사귀게 되니까, 날 경계대상에서 제외한 느낌이네.'


그래서 신재희의 지금 태도가 아주 기분 좋진 않았다.

"그건 우리 먹으라고 사온 거야?"
"어."
"땡큐."

신재희가 편의점 봉투를 대신 들어주기까지 했다.


얼마 전까지 자신에게 가시를 세웠던 신재희였다면, 절대 이런 대응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신재희의 뒤를 따라 큰방에 들어갔다.

신재준은 열심히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신재준의 옆에는 낯익은 소녀가 한  서있었다. 지금은 친하진 않았지만, 초등학교 시절 김하늘, 신재준, 신재희, 엄지혜 넷이서 몇 번 논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마주칠 때면 인사하고 지나치는 정도의 사이.


"안녕하세요."
"응, 안녕. 어, 뭐야? 재준아!"
"왜?"

김하늘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루는 신재준의 모습에 경악했다.

...






...

평생 신재준이 프로그래밍 언어를 하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그것을 공부하는 모습도  적 없었고.


그런데 지금의 신재준은 능숙하게 써내리고 있었다.

모니터의 반쪽은 에디터였고, 다른 반쪽은 웹페이지가 떠있었다. 신재준이 태그를 쓸 때마다, 웹페이지에는 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너 누구야?"


김하늘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신재준의 모습이 너무나 뜻밖이이어서, 너무 낯설어보여서.


신재준의 프로그래밍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도 놀라웠다.

신재준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돌아봤다.


"킥킥, 뭘 그렇게 놀래. 농담인데."
"아... 그냥."
"왜 그렇게 심각해, 킥킥."
"오빠. 하늘이 언니가 과자 사왔는데. 먹고 하지?"
"아, 몇 개 챙겨서 책상 위에 놔줘. 오랜만에 해보니까 재밌네."


''오랜만'?'


김하늘은 신재준의 말에 이상함을 느끼고, 신재희에게 말했다.


"재희야. 쟤 전부터 웹프로그래밍 잘 하고 그랬어? 아니면 배우거나."
"처음 보는데..."

김하늘과 신재희의 대화를 들은 신재준이 변명하듯 말했다.


"몰래 배웠어."
"아항. 재희야. 우리 그냥 한두 개씩 뜯어서 책상 위에서 먹을까? 재준이 하는 거 구경하면서."
"응."
"재준아, 뭐 먼저 먹을래?"

신재준은 홈런볼과 오징어땅콩을 골랐다. 둘  동그란 모양의 과자였다.

"음료수는  먹을래?"
"핫식스."
"어... 그건 안 사왔는데. 콜라, 사이다, 환타."
"그럼 콜라."

신재준은 이따금 구글링을 하면서 사이트를 만들어나갔다.


사이트 제작툴을 제공해주는 에디터로 사이트를 만드는 게 아니라, 소스를 직접 입력해가며 만드는 모습이 신기했다.


신재준의 몸에, 프로그래머를 했던 사람의 영혼이라도 들어간 것만 같았다.


'세상에 그럴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김하늘은 '몰래 배웠다'라는 신재준의 말을 믿었다. 현실적으로 그 말이 맞을 것이기도 했고.

"근데 무슨 사이트 만드는 거야?"
"리세계 사이트."
"리세계? 모바일 게임?"
"응. 지혜 만들어달래서. 나도 실력 쌓기용으로 만들어보고 싶었고."
"대박이네..."

신재희의 친구와 잡혔던 약속이 사이트를 만들어주려는 약속이었다니.

전화를 통해서 신재준에게 미리 들었다고 해도 믿기 힘든 약속이었다.

눈앞에서 신재준이 리세계 사이트를 정말 완성해나가고 있으니 믿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이트는 겉모습 뿐만 아니라, 기능성을 갖춰나갔다.


cmd 창도 이용하고, 김하늘은 몰랐던 오라클이나 자바스크립트 등 온갖 프로그램을 사용해 사이트를 실제로 작동시켰다.

임시로 데이터를 집어넣은 유닛을 선택하고 검색하자, 마찬가지로 임시로 집어넣은 리세계정의 보유 유닛들과 그 가격, 상품번호 등이 떡하니 나왔다.


이미지가 전혀 없어서 투박했지만, 작동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재준이가 언제 이렇게 배운 거지...'

표 따위의 HTML 태그야 김하늘도 인터넷을 보면 따라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CSS를 사용하고, 자바스크립트를 사용하고, 오라클을 이용해 서버와 DB를 이용하는 건 오랫동안 공부와 연습을 할 필요가 있었다.


신재준도 많은 공부와 연습을 해왔을 것이었다.


'대단하네... 이 정도 프로그래밍 실력을 갖출 때까지 숨기고 있었던 거야? 나뿐만 아니라 가족인 신재희한테도?'


"이 정도면 되려나..."
"네, 넵! 와... 대단해요, 오빠."
"만족해서 다행이네. 으윽..."


신재준은 기지개를 폈다. 그러자 셔츠가 들어올려져 배꼽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김하늘 뿐만 신재희와 엄지혜까지  배꼽을 곁눈질해댔다.


 박자 늦게 신재희가 김하늘과 엄지혜에게 눈을 부라렸다.


'자기도 훔쳐봤으면서...'

보통 여동생은 친오빠를 원수처럼 보고, 절대 남자로  본다는데.


그 친오빠가 너무 귀엽게 생겼다 보니, 신재희도 친오빠의 속살에 눈이 가는 모양이었다.

"벌써 밤이네."


시간은 어느새 오후 6시를 훌쩍 지나서 캄캄해졌다. 겨울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슬슬 누나가 오려나."
"맞다. 재연이 언니는 어디감?"


김하늘은 이제야 신재연의 부재에 궁금증을 품었다.

오늘은 토요일, 그것도 설날 연휴의 첫날이었다.

"엄마랑 얘기하러."
"아, 그래? 어떻게 얘기가 잘 됐나?"

김하늘은 썩은 얼굴이 된 신재준과 신재희의 얼굴을 보고 깨달았다.


"아닌갑네..."
"아침부터 와서 선물주더라고. 아이패드랑 자동차. 누나가 꺼지라고 해도 안 가고, 막 무릎 꿇고, 이마를 땅에 찧고. 개난리를 쳤지. 집 앞에서."
"으아..."

김하늘도 신재준의 어머니를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양가 부모가 친했기 때문에.

생긴 것은 지금의 신재연을 똑닮은 여인이었다.

성격은 신재연과 정반대.

신재연의 어머니는 '어른'답지 않았다. 아직 철이 덜 든 젊은 이모 같은 느낌이었다. 일도 안 하고, 노는 걸 좋아하고, 무게감 없던 여인.

"집앞에서 난리 피우니까 집주인 아저씨가 나와서 사정을 들었고, 아저씨가 누나랑 엄마 태우고 어디 갔어."
"아, 그래?"
"하늘아. 근데 너 집주인네 가족 몰라? 저번에 보니까 집주인 딸도 모르는 것 같던데."
"응? 모르는데."
"우리가 이 집에 거의 공짜로 살고 있는 게, 너희 어머님이 집주인분하고 지인이라서 그래."
"아... 그랬어?"

김하늘은 처음 알았다.

"누나는 언제 오려나... 밤 됐으니까 슬슬 돌아오지 않을까 싶은데..."
"오빠, 내가 전화해볼까?"
"됐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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