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겨울방학
하지만 신연주의 재능은 개화될 기미가 없었고, 수년 간 허송세월을 보내게 됐다.
그래도 남편은 경제적 외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편을 탓하지 않았다. 어차피 집안에 돈이 많았기에.
신연주는 7년 동안 피사체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남편의 말을 듣고 안식년을 보내기로 했다.
푹 쉬려고 했던 안식년이 둘째를 품게 돼, 절대 안정을 취해야하는 시기가 된 것은 금방이었다.
게다가 1년만 쉬려던 안식년이 2년 가까이 늘어났다. 둘째를 낳자마자 또 셋째를 잉태한 까닭이었다.
언제나 금슬이 좋았다. 단, 하루도 남편과 싸운 날이 없었다.
물론,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을 때마다 돈도 없고 능력이 없던 신연주가 매번 져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연주의 불행이 시작된 건, 남편이 미국으로 함께 가자고 했을 때였다.
신연주는 모국인 한국이 좋았고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남편이 일방적으로 이혼 통보를 했고, 양육권과 한국의 부동산을 넘겨준 뒤 미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세상이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 돌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 정신망상을 가지고, 진수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수도 결국 돌아오지 않았지.'
박진수. 전 남편의 이름이었다.
남편이 떠난 이후, 슬슬 신연주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님을 알게 됐다.
신연주는 자신에게 사진작가의 재능이 없다고 여겨, 앞으로 소소하게 스튜디오나 열고 살 계획을 짰다. 남편이 양육비 명목으로 남겨주고간 재산으로.
'진수가 두고 간 재산... 그냥 갖고만 있었으면 평생 돈 걱정 안 하며, 난 사진쟁이 놀음이나 하고... 내 아이들도 돈 때문에 힘든 일 없었을 텐데...'
이혼 2년 후, 가상화폐 투자하기로 했다.
3만 달러 정도에 불과하던 가상화폐가 1년 만에 200만 달러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세계적인 핫이슈였다.
미국의 전문투자업체에서 가상화폐의 가치가 400만 달러까지 올라갈 것이란 전망을 내놓자, 신연주는 가상화폐 투자가 재산을 크게 불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둘체도 아파트를 담보로 해서 대출하고, 사채까지 써가며 가상화폐 투자에 올인했다.
투자에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여태껏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갔으니... '대체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투자는 대실패했다.
3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까지 치솟았던 가상화폐의 성공 신화.
그것은 딱 200만 달러에서 신화 만들기를 멈추었다. 시세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가치가 급락했고, 한 달 만에 그 가치는 반토막이 되었다.
200만 달러짜리가 100만 달러가 된 것이었다.
신연주는 가만히 있다간 사채 이자가 눈덩어리처럼 불어날 것임을 깨닫고, 피해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가상화폐를 모두 팔았다. 투자를 실패했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둘체도 아파트를 은행에 넘겼다. 그런데도 사채업자에게 돈을 갚으려면 모자랐다. 결국 집에 있는 고가의 가구까지 모두 급하게 처분했다.
"큭큭... 미친년... 그때만 생각하면 진짜... 죽고 싶다."
글렌캐런 위스키잔에 위스키를 가득 채웠다.
물처럼 위스키를 넘겼다. 몸 속에서 발화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이 들정도로 목과 가슴, 배가 뜨거워졌다.
'재연이가 어렸을 때부터 똘똘했지... 절대 날 닮은 게 아니야. 진수를 닮았어.'
신재연에게 자신의 투자 실패와 전재산을 날렸음을 고백했다.
아직 중1 밖에 안 됐던 큰딸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꺼지라고 했다.
자신이 두 동생을 챙길 테니까, 꺼지라고.
평생 일도 안 하지, 돈도 안 벌어오지, 그렇다고 자식들을 위해 뭔가를 한 적도 없지. 그런 여자가 무슨 엄마냐고.
그나마 있던 게 재산이었는데, 그것마저 한심하게 홀라당 날려버렸으니 제발 사라져달라고.
모두 옳은 말이었기에, 신연주는 떠났다. 아직 미성년자인 장녀에게 어린 두 동생을 떠맡긴 채.
신재연에게 내쳐질 때, 신연주는 부끄러워서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러면서 가슴 한 구석에선 양육의 의무가 사라지니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했다. 정말로 수치스러운 과거였다.
'내가 재연이한테 내쳐진 게 아니라, 결국 내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거지... 그때 나는 재연이한테 막노동이라도 하면서 돈을 벌어올 테니, 함께 살자고 해야 했어.'
그때는 그래야만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몸만 어른이지, 정신은 그렇지 못했기에.
그저 아이처럼 어려운 현실이 싫어서, 눈돌려 도망쳤을 뿐이었다.
미성년자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갔다.
신재연이나 신재준, 신재희에게 이제와서 용서를 빌고, 같이 살자고 빌어봤자 받아줄 리 없었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회장님]이라고 박혀있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바짝 긴장했다.
'후원자'의 전화였다.
한국을 우스갯소리로 'CY공화국'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CY그룹의 회장이었다.
"네, 선생님."
'회장님'이라고 부르면 '작가님이 저희 회사 직원도, 거래처 회사 직원도 아닌데 왜 저를 회장님이라고 합니까?'라고 했다.
[신 작가님. 어떻게, 가족 일을 잘 풀렸나요?]
CY그룹 회장은 신연주의 어머니뻘 나이였다. 그런데도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항상 존댓말을 했다.
신연주는 그녀에게 반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야 그녀와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는 증거라고 생각되기에. 여러차례 말을 편히 하시라고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거절당했습니다..."
[미운 살이 단단히 박혔나보군요.]
"하하... 네, 그런가봅니다. 제가 했던 잘못이 크니까 어쩔 수 없지요."
회장은 신연주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매년 억대 후원금과 좋은 집, 스튜디오을 차려주고, 사진전까지 열어준 후원자였다. 그런 후원자가 예민한 가정사를 물어오니, 전혀 불쾌감 없이 자신의 삶을 모두 털어놓게 되었다.
회장은 신연주의 삶에 대해 알고 있었다. 작년부터.
이후, 신연주는 신재연이 CY전자 기획팀에 들어간 것에 대해 알게 됐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신재연과 통화를 해서 알게 됐다.
회장은 말한 적 없지만, 신연주는 왠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회장이 손을 쓴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연주의 추측이었다. 신연주는 회장이나 신재연에게 자신의 추측에 대해 말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은 신재연의 노력과 두뇌로 자력으로 입사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포기하실 겁니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엔 지금 작가님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회장의 말에 신연주는 움찔했다.
과거의 자신은 부끄러워서 책임지지 않고 도망쳤다.
지금의 자신은? 면목이 없어서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한테 용서를 받고, 부모로서의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은 사진 찍는 거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으시군요.]
"하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감히 회장한테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장난스러운 힐책이 돌아왔다.
['진심'을 보여주세요.]
"'진심'이요...?"
[아이들과 같이 살고 싶고, 어머니로서의 책무를 다 하고 싶다는 진심. 그걸 전달해보세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생각입니까?]
신연주도 물론 자신의 '진심'을 전달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적의를 받았다.
[그리고 '진심'은 원래 전해지기 힘든 법입니다.]
하지만 말로만 한다고 해서, 고개를 숙였다고 해서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기에, '진심'을 말한다고 한들 그 말을 거짓으로 여기거나, 기만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또한 바로 전달되기도 힘들고요.]
혹은 '진심'이라고 전달됐어도 말로만 보여준 '진심'은 신뢰받기 어려웠다.
행동과 꾸준한 신뢰를 바탕으로 '진심'을 보여줘야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거 참. 제 자식들이 화내겠는데요.]
"네?"
[왜 자기들한테는 엄하게 가르치면서, 생판 남인 작가님한테는 친절하게 가르치냐고요.]
"하하..."
[그건 제가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건강한 정신으로 좋은 작품을 찍어주시길 바래서요.]
"조언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음 작품은 언제일 것 같습니까?]
"죄송하지만...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아쉽군요. 그래도 이해합니다. 조급하게 엉망인 작품 말고, 천천히 좋은 작품 찍어주시길.]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여전히 인물 사진은 안 찍습니까?]
"아, 예..."
[작가님의 풍경 사진은 언제나 좋지만, 인물이 한 명도 안 들어가는 게 좀 아쉬웠습니다.]
이 후원자가 곧잘 하는 소리였다. 사진에 인물 좀 넣으면 안 되겠냐고.
하지만 신연주는 자연 풍경, 그것도 모국인 한국의 자연 풍경에 매료된 사진 작가였다.
자신의 사진에 자연 풍경 말고, 사람이 들어가는 건 꺼림칙해 견딜 수가 없었다.
"단 한 명..."
[네?]
"아, 아닙니다. 인물도 함께 찍는 것,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이거 제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니,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그럼 다음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네, 들어가십시오."
신연주는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위스키의 알코올에 의해 얼얼해진 손끝을 매만졌다.
'다시 만나봐야지. 싫다고 해도. 전해주지 못했던 선물도 안겨주고 오자.'
신연주는 인생에서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을 가졌다.
첫번째는 남편 박진수.
세번째는 CY그룹 회장이었다.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그 운을 여태껏 너무 쉽게 잃었어.'
신연주처럼 가난했다가 인연에 의해서 부유해지고. 다시 가난해졌다가 또 다시 인연에 의해서 부유해진 사람은 드물 것이었다.
거실 소파 옆에 놓였던 가방을 열었다.
신재준과 신재희에게 주려고 했던 최신 아이패드 2개. 신재연에게 주려고 했던 국산 고급차의 스마트키.
'마침 설날이기도 하니까... 정면 돌파하자. 쫓겨나면 다음에 또 찾아가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진심'이 받아들여질 지도 몰랐다.
'재준이... 엄청 귀엽게 자랐지.'
신연주는 남은 위스키와 잔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닫힌 문 앞에 섰다.
잠옷 바지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열쇠를 찾았다.
문고리에 열쇠를 꽂고 돌렸다.
문을 여니 방은 캄캄했다.
전등 스위치를 켰다.
방이 밝아지자 수백 쌍의 눈이 자신을 쳐다보는 듯했다.
천장이며 벽이며, 바닥이며.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어린 신재준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리본 타이에 꼬마 턱시도를 입은 어린 신재준, 학교 교복풍의 옷을 입은 어린 신재준, 유치원복장의 어린 신재준... 그리고 알몸의 어린 신재준.
옷을 입은 것보다 알몸 사진이 더 많이 붙어있었다.
"하아..."
아찔해지는 정신.
다리와 손에 힘이 풀려서 넘어지고 위스키와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얼른 서랍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거유와 보지를 더듬었다.
부드러운 실크 원단 밑으로 유두와 음핵이 자극당했다. 노팬티 였기에 애액은 곧바로 잠옷 바지를 적셨다.
신연주는 인생에서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을 가졌다.
첫번째는 남편 박진수.
세번째는 CY그룹 회장이었다.
그리고 두번재는 친아들 신재준이었다.
'어쩜 그렇게 귀여운 모습으로 자란 거니?'
신재준은 자신의 아버지인 박진수를 닮은 점도 있긴 했지만, 신연주 본인을 더 닮았다.
신연주는 자신의 이상형이었던 박진수와 자신의 모습이 뒤섞인 신재준의 외모를 보고 반해버렸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박진수에게 일방적으로 이혼 통보를 받고, 박진수가 미국으로 떠나버린 뒤. 매일 남편을 그리워했다.
어린 신재준을 남편 박진수 대신에 목욕시켰다가,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한국 성인 남성의 자지보다 큰 그 물건에 흥분하고 말았다.
남편이 없이 살아가다 보니 신재준이 자꾸 남편의 대체제로 보였다.
점점... 볼수록 남편보다 더 사랑스러운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들키면 안 돼... 이 감정...'
과거에 그렇게 버리고 떠났다.
'진심'을 전달해서 화해하고 가족으로 합해진다면, 정말 행복한 일일 것이었다. 그것에 만족해야했다.
친엄마가 친아들을 범한다?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보다도 훨씬 질이 나빴다.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었다.
'참기 힘들다... 여기서 풀고 가자...'
"재준아..."
신연주는 방의 침대 위로 올라갔다.
길이가 1.5미터 정도 되는 다키마쿠라가 있었다. 이 베개에는 어린 신재준의 알몸 사진이 프린팅 되어있었다. 또한 아들 사진의 하반신에는 딜도가 솟아나, 흉측한 핏줄이 도드라져있었다.
그 흉측한 물건을 보지로 물었다.
"하앙...! 하윽...!"
가상의 아들을 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