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겨울방학
먼지로 가득한 폐빌딩의 지하주차장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거기 폐 썩을 것 같은데..."
그곳에서 신재희와 떡을 친 뒤, 집에 도착해 콧물을 풀어보자 콧물이 검은색이었다.
"그럼 룸카페 가자."
"하아... 하루라도 좀 참아."
"...나 공부 안 한다?"
철이 든 줄 알았더니, 여전히 애였다.
"나도 더 이상 안 해준다?"
애한테는 애처럼 구는 게 제격이었다.
내 말에 신재희는 입을 다물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험보고, 재시험을 보면서 결국 100점을 맞긴 했다.
신재희는 자기도 날 못 따먹으면, 신재연도 날 못 따먹게 하려는 건지 오늘도 엄지혜의 집에 가지 않았다.
신재연은 최아란을 떠나보내고, 집으로 들어와 팬티바람이 되었다. 그녀는 신재희에게 눈치만 주다가 결국 말로 직접 물었다.
"오늘도 친구네 집 안 가냐?"
"왜? 내가 집 나갔으면 좋겠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근데 너 지금 나한테 까부냐?"
"...아니."
신재연은 그동안 '신재준'과 내 앞에선 신재희를 힘으로 누르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다.
애초에 신재희가 신재연에게 까분 적이 적기도 하고, 신재연이 '신재준'과 내 앞에서 '착한 소녀가장' 가면을 쓰느라 참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나랑 섹스하지 못해서 몸이 올랐는지, 신재연이 신재희한테 짜증을 부렸다.
내가 놀란 듯이 신재연을 보자, 신재연은 아차 하는 얼굴로 신재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즘 공부 열심히 하더라. 잘 하고 있어."
"아, 응..."
'와... 진짜 '신재준' 앞에서 자상한 척한 거는 꾸민 모습이었나 보네. 저렇게 수습하는 거 보면...'
결국 신재희는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두 누이는 사이 좋게 내 자지와 고환을 나눠서 주물럭거리며 잤다.
* * *
다음날 오후 1시 즈음, 엄지혜가 왔다. 나는 이 소녀를 실제로 본 게 처음이지만, '신재준'은 몇 차례 본 적 있어서 '안녕. 오랜만이네.'라고 인사했다.
"네, 넵... 아, 안녕하세요."
엄지혜는 나를 만난다고 해서 딱히 꾸며오지는 않았다. 쌩얼에,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집은 듯한 긴팔셔츠와 긴바지.
엄지혜는 꼬부기를 닮은 듯한 귀여운 외모를 지녔다. 그리고 큰 가슴의 소유자였다.
'친구끼리 서로 닮는다더니.'
신재희의 폭유는 따라갈 수 없어도 최아란보다도 큰 거유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신재희처럼 마른 체형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미모했다.
"새끼. 말 볼라 떠네. 너 울오빠 좋아하냐?"
"아, 아니!"
"재희야. 나 지금 차인 건가?"
"킥킥, 그런 듯."
"앗, 아니! 제가 감히 어떻게 오빠를 차요..."
엄지혜가 내 앞에서 쭈삣쭈삣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초창기의 정수린 느낌이 약간 났다.
"지혜야. 설날인데 집에는 안 가?"
"아... 저희 부모님이 친척들 반대 무릅쓰고 결혼하신 거라. 친척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그래?"
엄지혜도 뭔가 가정사가 있었다.
"밥은?"
"먹고 왔습니다..."
나는 지갑에서 체크카드를 꺼내 신재희에게 내밀었다.
"응?"
"과자랑 음료라도 사와."
"올... 웜, 너 맨날 놀러와라. 오빠가 이렇게 쏘는 거 처음 본다."
"그, 그럴까? 하핳..."
설날인데 친척집에도 못 가는 게 좀 안타까웠고, 또 신재희의 친구니까 간식이라도 챙겨주고 싶었다.
친구집에 가면 친구네 부모님이 먹을 거 사주지 않은가. 내가 그 부모님 역할을 하려는 것이었다.
신재희가 편의점에 갔다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기획부터 짤까?"
"네?"
"사이트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그걸 먼저 알려줘야 내가 만들기 편하거든. 집도 설계도가 있어야 짓잖아."
"아하... 오, 오빠 굉장히 전문적이시다, 하핳..."
'아... 엄지혜도 엄청 귀엽게 생겼는데, 애한테도 따먹히고 싶은데... 위험하겠지?'
엄지혜는 신재희하고 너무 가까웠다. 방학 시즌만 되면 신재희가 우리집보다 엄지혜의 집에서 잠을 더 많이 잘 정도였다.
엄지혜한테 함부로 따먹혔다가는, 현재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더 지키기가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와... 생각해보니 나 수린이 다음에, 하늘이한테 따먹히려고 군 거. 그리고 재연이 친구인 아란이한테 따먹히려고 군 거. 진짜 위험한 행위였구나.'
지금처럼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진 것도 천운이 따라서 가능했던 일이지 않나 싶었다.
'다음부터는 내 주위 여자들하고 사이가 먼 여자들을 공략해야지...'
큰방 전기장판 위에 테이블을 깔았다. 나는 무지 공책과 볼펜, 색연필을 가지고 와서 앉았다.
"지혜야, 앉아."
"..."
"지혜야?"
위를 올려다보니 엄지혜가 내 목이 늘어진 셔츠 속을 훔쳐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쳐자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계속 서있을 거야?
"아, 아, 넵."
나는 엄지혜의 나쁜 시선을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한창 성욕이 올라올 시기이기도 하는 거 다 이해갔다.
엄지혜가 나와 마주 앉았다.
'신재희처럼 노브라 파는 아닌가.'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크게 출렁이는 거유였지만, 브래지어 윤곽이 셔츠에 비쳤다.
"내가 실력이 미흡하거든? 그래도 괜찮아?"
"아, 전혀 상관없어요. 잘 작동만 한다면... 저야말로 돈 드리고 싶은데 학생이라서 자금이 별로..."
"응? 근데 너 돈 많이 번다며? 재희한테 들었는데?"
"아... 그, 그럼 돈 드리겠습니다...!"
"농담이야. 실력도 없는데 무슨 돈을 받아. 그리고 동생 친구니까 그냥 만들어줄게. 결과물이 별로면 안 써도 되고... 너도 재희한테 그렇게 들었지?"
"아, 옙. 그래도... 영화 티켓이라든가, 밥이라든가... 사드릴게요."
"응? 그러면 너만 좋은 거 아니야? 내가 데이트 해주는 건데."
"그, 그냥... 티켓과 기프티콘으로 드릴 생각이었어요..."
'놀리는 재미가 있네."
날 따먹기 전에 최아란처럼.
'최아란한테 이런 장난 다시 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따먹힌 이후에는 쳐본 적이 없네.'
"오빠...?"
"아. 흐흫... 방금 그거 농담이야. "
"하핳... 그, 그럼 저랑 같이 영화 봐주실거란..."
"나 여친 있어."
"아. 그, 그러셨죠. 재희한테 들었어요."
"응? 재희가 나 여친 있다고 말했어?"
"네... 그 재연이 언니의 친구분이시라고."
'재희... 막 떠벌리고 다니네. '막'은 아닌가. 지혜가 절친이라 말한 거겠지.'
"어? 나한테 여친 있는 거 알면서 영화 같이 보자고 한 거?"
"재, 재희랑 셋이서 가려고 했었습니다..."
"농담이야. 뭘 쪼냐, 자꾸. 흐흫..."
"하핳... 저 물 좀..."
"응. 냉장고에 보리차 물 있어. 그거 마셔."
"넵."
부엌에서 컵을 가져다가 냉수를 떠마셨다. 그리고 컵에 물을 채워서 내 앞에 가져다놓았다.
"물 드세요..."
"응? 땡큐."
목을 축이고 온 엄지혜의 입술이 물기에 의해 새빨갛게 번들거렸다.
'빨고 싶네... 내가 키스하자고 하면 키스할 거고, 내가 섹스하자고 하면 좋다고 할 텐데... 참으려니까 답답하네.'
섹스까지는 안 가고, 애랑도 진한 스킨십이랑 알몸보기까지만 가볼까?
일단, 지금 당장은 엄지혜의 입술에서 시선을 뗐다.
"사실 대가는 안 바래. 나도 내 실력테스트 할 겸 하는 거라서. 대신 너도 결과물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말고."
"괜찮습니다. 엄청 대충 하셔도 좋아요. 그냥 사이트 행색만 갖추면 돼서..."
"근데 너 도메인이랑 서버는?"
"둘 다 월정액 내서 빌리려고요."
웹사이트의 개념적인 것들을 아는지 물어봤는데, 꽤 조사한 모양이었다.
고객이 아예 컴맹일 경우, 저런 사소한 것들까지 설명해줘야했는데 그 걱정은 덜었다.
"오, 사이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아나 봐?"
"하핳... 조금 공부 좀 했습니다. 원래는 제가 스스로 만들어보려고 했거든요. 근데 좀 공부해보니까 내가 할 게 못 되구나 싶어서 포기했어요."
"그래도 네가 원하는 사이트의 모습은 다 머릿속에 있겠네?"
"넵."
"그럼 네가 한 번 설명해줄래? 그림으로 그리면서."
"저 그림 잘 못 그리는데..."
"상관없어. 어차피 UI는 마지막에 수정해야 할 거니까."
"UI라면 사이트에서 눈에 보이는 거 말씀하시는 거죠?"
"응."
엄지혜는 좋은 고객이었다. 이렇게 용어도 다 아니까.
"우선 사이트의 화면은 크게 2개만 쓸 거예요."
계속 생각하게 되는데... 정말 엄지혜는 우수한 고객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사이트 컨셉이 명확하고, UI나 UX(유저 경험)에 대해 원하는 바가 있었다.
무엇보다 엄지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정말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사이트였다.
"그러니까 첫번째 화면에선 원하는 유닛의 조합을 고를 수 있고, 검색 버튼을 넣으면 되는 거지?"
"넵."
"두번째 화면에서는 DB에서 검색 된 결과가 출력되면 되고... 이러면 세번째 화면이 필요하겠네."
"네?"
"관리자도 사이트 사용자야. 관리자 만을 위한 페이지가 있어야지. 그 페이지에서 DB 관리가 돼야 네가 편하겠지. 새로운 유닛도 추가할 수 있어야할 거고, 리세계 데이터도 페이지에서 추가, 수정, 삭제 할 수 있어야 할 거고."
"아하. 확실히 그게 편하겠네요. 추가해주실 수 있나요?"
"사실 좀 귀찮은데..."
"앗..."
"그래도 해야지. 게임 할 때 '설정' 메뉴 없는 게임 있냐? 사이트는 '관리페이지'가 있어야지."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오빠."
신재희가 도착했다.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바리바리 사갖고 왔다.
"도대체 얼마 어치 산 거냐?"
"2만 원."
"재희야?"
"내 돈으로 샀는데?"
"어? 그래?"
그러고 보니 내 핸드폰으로 체크카드 사용내역이 날아오지 않았다.
신재희가 내 체크카드를 돌려줬다.
"네가 웬일로 쏘냐?"
"생각해보니까 내가 오빠한테 뭐 사준 게 없더라고. 그래서 한 번 쏴봤어."
"어이구, 착하다."
"킥킥, 그렇지?"
"근데 돈은 언제 갚을래? 200만 원."
"아씨, 그거 정말 갚아?"
"농담이야. 가족끼리 뭘 갚으라고 하겠냐."
신재희가 끝까지 철 안 들었다면 받아내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철 들었으니 그냥 받지 않기로 했다.
가족이나 친구끼리는 돈은 빌리는 게 아니라, 돈 주는 거라는 말도 있고.
엄지혜가 옆에서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으악... 신재희, 너. 너희 오빠한테 200만 원이나 빌렸냐?"
"시발, 다 갚을 거. 나중에 오빠 집 사주면 되지."
"재희, 네가?"
"아놔... 오빠, 지금 나 비웃은 거?"
"아니, 기특해서. 말이라도 고맙다."
난 신재희의 마음에 감동했다가, 어제 나한테 집을 준 최아란이 생각났다. 정말 나한테 명의를 준 건 아니지만...
'어? 재희도 그건가... 아란이처럼 특정한 집에서 날 독점하고 싶어하는 거?'
이러다가 다른 여자들도 나한테 집 한 채씩 사주면... 집 부자되겠다.
신재희는 1+1이라고 많이 사왔던 아이스크림을 냉동고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의자의 등받이를 껴안으며 거꾸로 앉아서 쭈쭈바를 빨았다. 나와 엄지혜가 얘기를 나누는 걸 구경했다.
고객이 원하는 게 명확했고, 원하는 게 간단했고, 고객이 사이트 만드는 법도 수박겉핥기로 나마 배웠던 탓에 사이트 기획은 빠르게 마무리됐다.
"오빠,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응, 그래."
엄지혜가 떠나고, 나는 메모와 색연필로 칠해진 사이트 기획서를 살폈다. 그리고 어떻게 구축해야할지 머릿속으로 대강이나마 틀을 잡아갔다.
기획 짜는 동안 엄지혜는 탄산음료를 많이 마셨다. 화장실 문이 닫히더니 곧 소변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과자의 비닐 소포장을 뜯어다가 입에 넣었다. 그때 신재희가 내 옆에 앉았다.
신재희의 손끝이 내 셔츠 위로 내 유두를 만졌다. 얇은 셔츠 한 겹 너머에서 행해오는 희롱이 자극적이었다.
비록 엄지혜가 화장실 같지만 '들키면 안 되는 짓'을 하는 게 신재희가 짜증났다.
신재희를 노려보며 소녀의 손을 밀어냈다. 신재희가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엄지혜, 시발년이 네 젖꼭지 비치니까 자꾸 엿보잖아. 그리고 네가 고개 숙일 때마다 속살 훔쳐보고. 당장 옷 갈아입어."
"아, 응..."
사이트 기획 생각하느라 정신없어서, 엄지혜의 응큼한 시선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서랍에서 두꺼운 목티를 꺼냈다.
"야, 근데 너 오빠한테 그렇게 말할래?"
공부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재희한테 말했다. 날 욕한 건 아니지만, 나한테 말할 때 욕한 게 마음에 안 들었다.
"미안."
"...그래."
순순히 사과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공부방에서 상의를 갈아입는데, 큰방으로 돌아온 엄지혜와 신재희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재준이 오빠는?"
"옷 갈아입으러."
"아, 그, 그래?"
엄지혜는 찔리는 게 있었는지 말을 더듬었다.
또한 큰방에선 핸드폰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껀가?'
상의를 갈아입고 나가니, 신재희가 내 핸드폰을 들고 발신자를 보고 있었다.
그 정도 보는 것 즈음이야, 상관없으니 가만히 냅뒀다.
"하늘이 언니네."
신재희가 공부방에서 나온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는 방금까지 입었던 상의를 세탁기에 넣으려고 화장실로 향했다. 이동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
[오늘은 반드시 놀러간다?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으셈.]
"뭔 지랄이야, 또. 와라, 와."
[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