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겨울방학
정수린을 보내고 뒷정리했다.
핸드폰이 진동해서 보니 신연주가 약속 장소와 시간을 보내왔다.
신재희에게 그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알렸다. 신재희와 CGV 건물 1층에서 만나 신연주가 기다리고 있을 카페로 가기로 했다.
"아."
혀 밑에서 침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로 역류성 위액이 올라올 징조였다.
가슴이 아직 아프진 않았지만 약간 불편한 느낌이 났다.
'대리만족하러 가는 건데, 왜 스트레스 받고 있냐.'
스스로에게 말을 걸면서 스트레스를 잠재웠다.
냉장고에 있던 냉수를 마시자 가슴의 시원해지며, 불편함이 상당히 가셨다.
집안일을 좀 하다가, 슬슬 나가야 시간이 맞을 것 같아 외투를 입고서 나갔다. 김하늘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함?]
"엄마 만나러 감."
[헐. 잘 됐네?]
"지랄하지 마. 욕이나 하려고 만나러 가는 거니까."
[같이 가줄까?]
"재희랑 갈 거."
[아하... 어떻게 잘 됐으면 좋겠네.]
통화 중에 전화가 왔는지, 아님 톡이라도 왔는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래, 끊어."
[야... 보고 싶다.]
"엊그제 봤잖아."
[또 보고 싶어. 맨날. 넌 안 그러냐?]
김하늘이 듣고 싶은 건 내가 자신에게 의존하는 듯한 말일 것이었다.
"어, 나도 그래."
립서비스를 해줬다.
[킥킥... 그 영혼 없는 말투는 뭐냐. 알았다. 그런데 내일은 볼 수 있지?]
"내일은 나 약속 있는데."
엄지혜가 우리집에 오기로 했다. 리세계 사이트를 만들어줘야 했다.
[아! 보고 싶다!]
"너도 내일 오던지. 집에 재희랑 재희 친구 있을 텐데."
[재희 친구? 누구?]
"엄지혜라고."
[사람 이름이 어떻게 엄상희지?]
"엄지혜라니까?"
[드립인데...]
"그러냐. 끊는다."
[응! 내일 봅시다!]
김하늘과의 전화를 끊었다.
'얘도 단둘이 있을 때는 변태짓하는데... 평상시에는 평소처럼 착한 척한단 말이지.'
그러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면 신재연과 신재희도 다 평소랑 똑같이 굴었다. 신재연은 소녀가장처럼 굴고, 신재희는 철 없다가 이제야 철든 여동생처럼 굴고.
정수린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굴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나아졌다. 내 말도 잘 듣고.
'상황이 좋아. 언제 들킬까봐 조마조마하긴 하지만.'
약간 두터운 빙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금이 그어진 빙판. 재수없어서 깨지면 깊고 차가운 강물 속에 빠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김하늘과 통화 중에 뭔 알림이 온 건가 살피니, 최아란이 전화했었다. 부재중 전화로 표시돼있었다.
나는 전화를 걸까 하다가 톡을 보냈다.
(나) [전화했네?]
최아란 [준아, 만나러가도 될까?]
(나) [지금 엄마 만나러가는 중이라]
(나) [다음번에]
최아란 [아]
최아란 [(만두가 응원봉을 흔드는 이모티콘)]
최아란 [원하는 대로 됐으면 좋겠네 ㅎㅎ]
그녀에게 답톡을 보내지 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 재연이한테도 말해둘까? 아니다. 어차피 금방 끝날 텐데. 재연이가 집에 도착하면 말해주면 되지. 아란이가 말해줬을 수도 있고.'
CGV건물 1층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신재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퇴근하고 지금까지 뭐했어? 심심했겠다."
5시에 퇴근했을 텐데, 6시로 약속 잡아서 이 건물에 있어야했던 그녀였다.
"영화관 오락실에서 놀았는데?"
"아, 그래."
괜히 걱정했다.
"갈까?"
신재희와 함께 성연시의 핫플레이스를 걸으니 남녀할 거 없이 한 번씩 쳐다봤다. 한국인답지 않은 폭유 때문이었다.
외투의 지퍼를 올리지 않고 있었고, 노브라였다. 큰 유두가 도드라져서 절대로 뽕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야."
신재희가 날 불렀다.
"왜?"
"다 너 쳐다보는데?"
"네 가슴 보는 거잖아."
"내 가슴도 보고, 네 얼굴도 보고. 그리고... 네 거기도 보고."
나는 아래쪽을 쳐다봤다. 세번째 다리인 것처럼, 한쪽 다리의 허벅지에 바짝 붙은 대물자지가 바지 밖으로 도드라져있었다.
신재희의 말을 들어보니, 사람들이 신재희뿐만 아니라 내 얼굴과 내 하반신도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낯선 여자들이 성적 호기심을 갖고 내 자지를 훔쳐보는 건 꼴렸는데, 남자도 신기해하며 내 것을 쳐다보니 징그러웠다. 꼴림과 징그러움이 상쇄돼 발기가 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 여기구나."
"왜? 몇 번 와봤어?"
"응."
전에 정수린과 과외했던 카페였다. 김하늘이 2층에 칸막이가 있다고 알려줬던 카페.
"어서오세요."
남자 알바생의 인사에 대충 고개를 까딱여 인사해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2층에서 1층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난간에 신재연을 똑닮은 여자가 있었다.
가슴 크기가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거유, 최아란 만해서 그런지 인상이 너무 달랐다.
그녀는 블라우스와 치마, 검정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비싸보이는 것으로 자신이 성공했음을 표현하려는 걸까?
어쨌든 격식을 차리려는 차림이었다. 친자식한테 격식을 차려야하는 어머니라니.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었다.
신재희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진짜 엄마네. 가자."
내가 혼자 못 움직일 거라 생각한 걸까? 신재희가 날 잡고 계단을 올랐다. 나도 덩달아 올라가게 됐다.
'피부에 돈을 쏟고 있는 건가. 아니면 타고난 건가.'
원숙미와 여성미가 공존하는 30대 초반의 외모였다. 그녀의 실제 나이가 40대 중후반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20살 가까이 나이를 먹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안녕, 재준아. 재희야."
"안녕 못하는데."
신재희가 나보다 먼저 선빵을 날렸다.
신연주의 미소가 뚝 굳었다.
"나도 안녕 못하지. 그런 식으로 버린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만나자고 한 거야?"
"재준아... 애들아, 앉아서 얘기할까?"
"됐고. 시발, 꺼져. 우리한테 연락도 하지 말고. 이 얘기 하고 싶어서 나온 거야. 재희야, 가자."
오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욕이 많았다. 그 욕을 쏟아부으면 평생 쌓아뒀던 묵은 분노가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어머니' 앞에 서니까,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다. 더 이상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신재희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뜻밖에도 신재희가 멈춰서 가만히 있었다. 나는 덩달아 멈추게 됐다.
"사과는 듣고 가자, 오빠."
"...해봐. 사과."
"미안하다. 너희들한테 정말 몹쓸 짓을 했어."
신연주가 고개를 푹 숙였다.
카페의 손님들이 막 이쪽을 쳐다봤다.
쪽팔림이 느껴지고, 스트레스에 위액이 역류했는지 가슴 안쪽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가 고개를 들라고 할 때까지 들 생각이 없었는지 계속 그러고 있었다.
신재희가 날 쳐다봤다.
나보고 언제까지 신연주를 고개 숙이게 할지 결정하라는 것 같았다.
"고개 들어."
"응... 그러고 보니 곧 재준이 생일이지...? 축하해."
그녀는 신재연을 닮은 얼굴로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날 강제로 따먹고 미안해하는 신재연이 떠올랐다.
신재연은 어머니를 대신해준 누나였기에, 나쁜 짓을 해도 용서해줬지만.
신연주는 어머니면서, 어머니의 역할을 져버리는 짓을 했기에 용서할 수 없었다.
"당신이 그딴 짓만 안했다면..."
"..."
"'날 태어나게 해줘서 고마워'고 대답했을 텐데. 당신이 그런 짓했으니 이 말밖에 못 하겠네."
"..."
"재연이 누나랑 재희를 낳아줘서 고마워. 천애고아로 살 뻔했잖아."
빙의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시 천애고아가 될 뻔했다.
'오석준'일 때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보육원 신세로 지낼 뻔했다.
보육원장이 심심할 때마다 쓰이는 샌드백이 될 뻔했다. 남녀역전세계인데다가 '신재준'이 엄청난 미남이니까, 완전 못생긴 노파 원장의 성노리개가 되었을 수도 있고.
신연주는 아무 말 못하고 땅바닥만 쳐다봤다.
나는 신재희를 바라봤다. 난 할 말 다 했으니, 너도 할 말 있으면 하라는 시선을 보냈다.
"언니랑 오빠는 불렀으면서 나는 왜 만나자고 안 불렀어?"
그 사실에 의미 갖지 말라고 했지만, 어지간히 신경쓰였던 모양이었다.
"그건 한 명, 한 명씩 만나서 얘기하려고..."
"한 명씩 공략해보려는 수작은 아니고? 한 명이 엄마한테 넘어가면 다 넘어갈 거 노린 거 아니야?"
'오. 그런 것일 수도 있었겠네.'
신재희가 감정적인 삐친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 논리적으로 추측한 것이 있었던 거였다.
"재희야...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나랑 언니보다 오빠한테 가장 먼저 연락한 거. 오빠가 만만해서 그랬던 거지?"
"재희야. 아니야."
"그럼 오빠한테 가장 먼저 연락한 이유는 뭔데?"
<"혹시 엄마한테 전화 받은 사람?">
<"나 오늘 일하는데 부재중 전화왔어. 나중에 할까 하다가 까먹고 있었어.">
<"나는 어제 전화왔어. 보자는데 싫다고 하고 끊었어.">
엊그제 가족끼리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신재희는 그때부터 신연주가 나한테 하루 먼저 연락한 것에 의아심을 품고 있었던 걸까.
"사실... 재준가 가장 먼저 보고 싶어서..."
"하... 그래? 알았어. 소원대로 마지막으로 오빠 얼굴 봤지? 이젠 절대로 연락하지 마."
이번엔 신재희가 나를 잡아당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내려갔다.
드디어 신연주로부터 멀어지자 답답함이 가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신연주와 떨어지는 만큼,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뒤를 돌아봤다.
'자식들한테 버림받은 것'이 슬픈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는 신연주가 보였다.
여자가 잘 울지 않는 세상이고, 특히나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지 않는 세상인 걸 고려하면. 신연주가 엄청난 슬픔에 빠진 듯했다.
'마음 약해지면 안 돼.'
신연주의 눈물에 죄책감이 느껴졌다.
먼저 사과도 해왔는데.
성공하고서 가족을 합쳐서 그 성공한 걸 나눠주려는 걸 보면... 그녀도 나름 '가족'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 '어머니의 노력'을, 단순히 화가 난다는 이유로 깔아뭉개고 있는 게 아닐까?
카페에서 나왔다.
신재희가 날 계속 잡아끌어 집 쪽으로 향했다.
"왜 자꾸 뒤돌아보냐."
"어? 아니, 그냥."
"엄마랑 같이 못 살게 된 게 갑자기 후회되냐? 돌아가?"
"아니."
괜히 뒤돌아봤다. 신연주의 눈물을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심란하지 않았을 거였다.
평생 겪어보지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눈물'... 그것은 너무나 강렬하게 내 감정을 뒤흔들어놓았다.
"치사하게 처 우네. 시발."
"너도 뒤돌아봤구나?"
"저거 다 악어의 눈물이야. 거짓으로 흘린 거면 진짜 사악한 년인거고, 진짜라고 해도 우리를 버렸던 걸 용서할 수 없어."
신재희가 논리적으로 말하자, 감정적이게 된 내 마음도 다 잡아졌다.
"그렇지. 용서할 수 없지."
"그딴 식으로 우릴 버렸을 때, 저 년도 다신 우릴 보지 않을 걸 각오했을 거라고."
"네 말이 맞네."
"에휴, 괜히 봤어."
"그러게... 별로 속도 안 시원하고."
"킥킥. '시발, 꺼져.'. 이게 끝이야? 욕한다길래 완전 퍼부을 줄 알았는데."
"그럴 생각이었는데. 그냥 자리 뜨고 싶더라고."
"나도 그럼."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신재희가 나보다 어른스러워 보였다.
난 25살이었고, 신재희는 고작 17살인데.
난 진짜 어머니도 아니었고, 신재희는 진짜 어머니를 대하는 것이었는데.
"재희야, 손..."
"왜? 놓고 싶어?"
"친남매끼리 이러면..."
"뭐 어때? 손 잡는 것 정도는 친남매끼리 친해서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이 나이 먹고도 손잡고 다니면 좀 징그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신재희한테 손을 잡혀있었다.
"언니는 아직인가."
집은 비워져있었다.
현관문 안쪽 신발을 봐도 신재연이 출근할 때 신고 나가는 구두는 보이지 않았다.
"오빠."
신재희가 내 두 볼을 잡았다.
소녀의 입술이 가까워졌다.
"...잠깐."
나는 신재희의 손을 떨어뜨리고, 화장실과 큰방, 공부방까지 모두 살폈다.
조심, 또 조심해야했다.
"언니 없지?"
"응. ...야."
신재희의 손이 내 자지를 붙잡았다. 소녀의 손길에 내 자지가 빠르게 크기를 크게 만들었다.
"시발년들이 네 자지 쳐다보니까 볼라 꼴받았어."
"이제 곧 누나, 와..."
"언니가 곧 오려면 아란이 언니가 태워줄 경우잖아. 대중교통 이용하면 더 느리고. 아란이 언니랑 같이 오려나? 시발... 근데 역시 네가 다른 여자랑 사귀는 거 마음에 안 들어."
신재희의 손이 바지 속으로 들어와 생자지를 붙잡았다. 그리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란이 언니랑 어디까지 갔어?"
"키스..."
"섹스는 안 했고?"
"안 했어."
"잘 했어. 섹스는 웬만하면 나랑 언니랑만 해. 아..."
신재희는 갑자기 내 바지에서 손을 뺐다.
이를 악물더니 내 눈치를 살폈다.
"왜?"
"미안."
'갑자기 자책감이라도 느끼나.'
자신의 친오빠를 강간한 것에 대해.
'신재준'을 버렸던 신연주나 '신재준'을 강간한 자신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안 미안해 해도 돼. 괜찮아, 이리 와."
두 손을 벌려주자 신재희가 망설이더니 내 품 속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