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5화 〉겨울방학 (115/201)



〈 115화 〉겨울방학

'엉큼하네...'

(나) [우리집에 맛있는 거 없는데]
(나) [그냥 밖에서 사먹어]


나는 밖에서 남자나 사먹으라고 응수했다.


신재연 [ㅇㅇ 아란이하고 밥 먹고 들어갈게]
최아란 [ㅎㅎ...]

내가 최아란하고 만나는 걸 탐탁지 않아 하는 신재연이 바로 컷했다.

'그래도 외식하고서 우리집에 들리겠지?'


그리고 신재연의 반응을 보면 내가 최아란 집에서 자고 온 걸 들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예성 [어제 어케 됨?]

나에게 무관심한 줄 알았던 나예성이 톡을 보내왔다.


나는 신재희를 힐끔 봤다. 그녀는 롤을 켜서 큐를 돌리고 있었다.

엿볼 사람도 없는  확인하고 답톡을 보냈다.

(나) [자고 옴]
나예성 [엌ㅋㅋㅋ]
나예성 [어땠냐 ㅋㅋㅋㅋㅋ]


 연애에 별관심없어 보이던 나예성이었지만, 내 첫경험에는 관심이 큰 모양이었다.

나예성은 최아란이 내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였다.

(나) [좋음]
나예성 [ㅋㅋㅋㅋㅋㅋ]

이후 나예성은 톡을 보내오지 않았다. 나도 안 보냈고.

상품을 미리 당겨서 줬던 신재희를 공부 시키고, 시험 문제를 만들어 풀라고 내밀었다.  즈음  앞에 차량 한 대가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렸다.

"넌 왜 들어오냐?"
"온 김에 준이 좀 보려고. 그리고 같이 먹어야지."

최아란이 왔다.

현관문 밖에서 신재연과 최아란이 주고 받는 대화소리가 났다.

나와 신재희가 서로를 바라봤다.

"난 시험문제 푼다."
"그래도 얼굴이라도 비추지."
"알았어."

우리는 공부방에서 나왔다.


큰방 문을 열고서 들어오는 신재연과 최아란이었다.

"준아, 재희야. 안녕."
"누나들, 수고했어."
"안녕하세요."

나는 자지가 오싹오싹해졌다. 여기 모여있는 여자들 전부 나를 따먹고 싶어서 환장한 여자들이었다. 그리고 모두와 눈치게임을 해야 했다. 내가  셋 여자와 모두와 섹스한 걸 들켰다간 대참사가 벌어질 거였다.


"아란이 누나, 그건 뭐야?"
"아, 시장 통닭. 너희들 주려고. 혹시 밥 먹었어?"
"아뇨."

신재희가 시장 통닭에 시선을 고정한채 대답했다. 안 그래도 공부하기 전, 식사를 차려주려고 하니 집에 고기 반찬이 없다면서 자기 용돈으로 치킨을 시키겠다던 신재희였다.

치킨은 밤에 먹는 게 맛있다고 시험까지 다 치르고 먹자고 해서 알았다고  참이었다.

최아란이 마침 잘 사왔다.

"우리 배부른 상태면 어쩌려고. 말  하고 사오지."
"그럼 나랑 재연이가 술안주로 먹거나 하려고 했지. 남은 건 뒀다가 너희가 내일 데워서 먹으면 되겠다 싶었어."
"재준아, 재희랑 공부 중이었어?"


신재연이 공부방의 열린 문으로 켜진 전등이나 켜져있는 난로를 보고 물었다.

"응."
"와. 재희, 공부 열심히 하네. 오빠가 잘 알려주니?"
"넵."
"아, 공부하는데 방해됐나? 통닭은 나중에 먹을래?"

나는 지금 먹어도 상관없었다. 신재희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시험을 볼 사람은 신재희였다.


"지금 먹을게요. 식으면 맛이 없어지니까."

신재희는 공부할 때나 시험 볼 때 여유가 생겼다. 내가 '오답풀이'와 '재시험'을 도입했기에, 결국 100점을 맞는 것이 쉬워졌기 때문이었다.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하고 있었다.


큰방에 테이블을 깔고, 콜라를 따를  4개를 가져왔다.

신재희가 종이포장을 펴내자 통으로 바삭하게 익혀진 두 마리 닭이 드러났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치킨 양념통을 열고, 치킨무 비닐을 뜯었다. 그런 뒤에 콜라를 컵마다 따랐다.

배고팠던 신재희나 밥을 먹고 왔을 신재연이나 최아란 모두 게걸스럽게 통닭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나들은 밥 먹고 온 거 아니야?"
"흐흫... 먹어도 배가 고프네. 먹고 운동해야지."

최아란이 닭다리살을 씹으며 답했다.

그러나 밥을 먹고 와서 그런지 얼마 먹지 못하고 손에 묻은 기름을 물로 씻었다.

'신재준'도 위장이 작은 편이라 먹다가 배불러서 그만 먹었고, 신재희 혼자 남은 통닭을 해치워갔다.


"너 다 먹었는데 안 가냐? 재준이도 봤잖아."
"준이랑 소화 겸 산책 좀 하고 가려고. 준아, 나갈래?"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신재연과 신재희, 최아란 모두 날 쳐다보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 갈까?"
"그래. 흐흫..."
"밤길 어두우니까 빙판 조심하고."
"응, 누나."


신재연의 걱정을 뒤로 하고 외투를 걸친 뒤 집밖으로 나왔다.

집 앞에 주차된 최아란의 차를 지나쳤다. 작은 골목을 지나치자 차량들이 잔뜩 주차되어있는 큰 길이 나왔다.

"으음, 준아. 어느쪽으로 가면 될까?"
"저쪽으로 가다보면 국도가 나오니까, 이쪽으로 가자."
"그래?"


내가 정한 방향은 성연고등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집에서 성연고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


내가 '신재준'에게 빙의된 뒤로 성연고등학교에  적이 없었다.

핫플레이스인 성연CGV 쪽과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신재준'의 기억이 있기에 길을 헤맬 리는 없을 테지만, 이번 기회에  번 가보기로 했다.

최아란이  손을 잡아가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말했다.

"길이 캄캄하네."


주택가이다 보니 밤길에 인적이 드물었다. 지나다니는 차량도 잘 없었고. 가로등의 간격도 꽤나 멀리 떨어져 설치돼 있어 그녀의 말대로 어둑했다.

그래도 가로등도 있고, 근처 주택의 전등이 새어나오고 있으니 나의 '어둠 공포증'이 발현되지는 않았다. 최아란이 곁에 없었어도  혼자 이 거리를 걸어도 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야간자습'할까?'

성연고등학교는 인문계열 고등학교로 지원자에 한하여  8시 20분이나, 10시, 11시 20분까지 야간자습을 할  있었다.

'밤중에 학교에서 야릇한 거   있을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굳이 야간자습을 신청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평소에는 그냥 정규수업만 듣고 집에 가고, 야간자습  야한 짓하고 싶으면 그냥 남은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척하면 되겠다 싶었다.


"준아. 아침에 집에 잘 돌아갔어? 헤매지 않고?"
"아, 응."
"오므라이스 해놨는데. 그거 먹고 가지."
"밥맛이 없어서..."
"오늘 나 보기 싫었어?"
"아니..."
"그래? 나는 또 밖에서 밥먹으라고 하길래 싫어하는 줄 알았지."
"잘못했어..."
"아, 아니야. 네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잘못 없어. 어제 일은 내 잘못이야. 그런  겪고도 날 만나줘서 고마워."
"그럼 안 만나도 돼...?"

난 소심한  물었다.


'되겠냐.'

최아란이 날 놓아줄 리가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녀가 보일 반응이 궁금해 떠봤다.


"준아."
"응?"
"또 혼날래?"


'아... 이런 반응인 건가.'

평상시에는 착한 누나인 척 굴지만, 내가 자신에게 벗어나려고 굴면 슬쩍 가면을 벗어내고 '경고'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준아."
"응."
"저 집 어때?"

집에서 한 5분 걸었다. 신축 빌라가 세워져있었다.


1년 전부터 터를 잡아다가 서서히 키를 키워나가 최근 완공된 빌라였다. '신재준'은 성연고등학교를 등하교를하면서  빌라가 지어지는 걸 목격해왔다.


아직 모든 가구가 팔리지 않은 것인지, 집매매 문의안내 천막이 2층 베란다 걸려있었다.


"저 집이 왜...?"
"너 주려고."
"뭐?"
"명의는 내 명의겠지만, 네 집처럼 쓰면 돼. 기본적인 가구는 누나가 채워줄 거고. 원하는 물건이나 가구가 있으면 말하면 되고."
"우리 누나가 알면..."
"재연이 몰래 살아야지. 아, 재연이 눈치보고 지내면, 그걸 보고 사는 거라고 하기 뭐하겠네. 그냥 가끔 와서 지내. 별장처럼 머물렀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되잖아. 그렇지?"


최아란은 졸부가 애인에게 집 선물을 하듯 굴고 있었다. 내가 저 집에 머물다보면, 최아란이 가끔씩 찾아와 날 따먹고 가거나 함께 자거나  것이 분명했다.

'저 집을 내가 요긴나게  수 있을까. 어렵겠지?'

최아란 말고, 다른 여자들과 섹스하기 위한 아지트로 쓰기가 뭐했다.

그녀들한테  집이 어떤 집인지 어떻게 알려줄 것이며, 또한 다수의 여자가 집을 동시에 찾아와버리면 좆될 가능성이 있었다.


"준아. 어때?"
"아니, 괜찮아. 그러지 마."
"흐음... 사실 내가 필요해서 사려고. 지금처럼 산책 나와서 섹스할 공간이 필요한데, 매번 구하기 귀찮잖아."
"..."


최아란의 의도야 일찍이 알아챘지만, 그녀의 말이 워낙 직설적이라 뭐라 말이 안 나왔다.


주택가를 지나다보니 언덕길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왔다. 낮은 언덕 위로 학교가 지어져있었다. 성연고등학교였다.

"학교?"
"내가 다니는 학교..."
"한 번 올라가볼까?"
"경비원이 있지 않을까?"
"없을 것 같은데. 한 번 올라가보자."

낮은 언덕길은 금방 올라갔다.

"태연고는 엄청 높이 있는데, 성연고는 완전 애교네."
"그러네."
"응? 준아, 태연고 올라가봤어?"
"아니. 누나랑 갔을 때 산 중턱에 있는  봐서."
"아, 그랬지."


교문은 굳게 닫혀서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있었다. 허리 높이까지만 오는 스테인리스강의 접이식 교문이었다.

잠겨있지만 억지로 넘어가자면  넘을  없었다.

"들어가볼까?"
"그랬다고 혼나면?"
"내 생각엔 안 들킬 것 같지만... 만약 들킨다면 준이, 네가 학교에 뭐 두고 와서 가지러왔다고 하자."
"하아..."


최아란은 내가 이 학교의 재학생이니 만약 걸리면  핑계를 댈 작정인 것이었다.


제법 괜찮은 생각같았다.

'학교에까지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네.'


철커덩. 최아란은 교문을 밟고 넘어갔다. 나도 어떻게 어떻게 교문 위로 올라갔다가, 최아란이 내 착지지점에 두 팔을 벌리고 섰다. 내가 밟고 있는 교문이 흔들려 중심을 잃을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할 수없이 그녀 품 속에 뛰어들었다.

날 끌어안아 붙잡았던 그녀가 천천히 날 내려놓았다.


"이런 학교를 다녔구나. 준이랑 재연이가."


식당 겸 기숙사 건물이 교문 바로 옆이었다. 다른 학교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기숙사 역시 불이 꺼져있었다. 겨울방학이라고 기숙사생들 전부 고향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아...'

언덕길을 올라올 때는 가로등이 존재했고, 모두 켜져 있었는데, 교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어두컴컴했다. 아무도 없는 것인지 조명이 모두 꺼져있었다.

수없이 많은 학교 창문들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심이 뇌리를 장악했다.


나는 '어둠 공포증'에 최아란의 옷깃을 붙잡았다.


"아... '어둠 공포증'이야?"
"응..."


최아란은 캠핑장에서 나와 밤에 산책하려고 했고, 내가 '어둠 공포증'이라고 하자 산채로가 아닌 주차장으로 날 데려갔던 적 있었다.

"내 손 잡아. 그래도 무서워?"
"손 잡아주면 괜찮아..."

최아란이 내 손을  잡고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타인의 스킨십에 공포증이 상당히 완화됐다.


그녀가 가장 가까운 학교 입구로 다가갔다.

"들어가려고? 잠겨있을 텐데."
"아니, 그냥 들여다보려고."


건물 입구는 손잡이에 쇠사슬과 자물쇠가 채워져있었다.


최아란이 살짝 밀어봤다. 문의 밑이나 위로 잠금쇠가 걸렸는지 꼼짝하지 않았다. 손잡이에 걸린 쇠사슬과 자물쇠가 없었어도 우린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었다.


교문은 쉽게 넘을  있지만, 학교건물 안으론 쉽게 못 들어가도록 이중잠금장치를 해두었다.


그리고 문 옆에는 세콤 조작기기가 달려있는데, 억지로 들어갔다간 경비업체가 출동할 것 같았다.

최아란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길 포기하고 교정을 걷기 시작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아니지만, 학교에 오니까 뭔가 기분 이상하네."


 역시 그랬다. 25살이나 먹어서 다시 이 학교를 앞으로 2년은 다녀야한다는 것에 기분이 묘했다.


"준아, 저기가 강당인가?"
"응."


강당 건물 역시 정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그런데도 최아란은 강당을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고 캄캄한 강당의 모습은 제법 음산했다.

최아란은 강당의 문도 열어보다가 잠겨있자, 나를 강당 뒷쪽으로 데려갔다.

개학하여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대낮에 왔어도, 인적이 잘 찾아오질 않을 만한 강당 뒷쪽이었다.

'신재준'도 와보지 않아 기억에 없었다. 나는 이 강당 뒷쪽 모습을 처음 봤다.

시멘트 바닥이 발라져있었고, 전기 관련시설이라며 철창이 쳐진 시설이 위치하고 있었다.

"여기서 학생들이 고백도 여기서 주고 받고 하겠다. 아니면 학생들이 밀애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일진들 집합 장소거나...'

난 어쩐지 최아란이 이곳에서 날 따먹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최아란이 날 강당의 벽으로 천천히 밀어냈다.

내 등이 강당 벽에 닿았고, 그녀는 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내 양옆을 팔로 막았다.


"누나..."
"재연이 찾는 거야? 아님 나를 부르는 거야?"
"아란이 누나... 여기선 하지 말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