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누나 친구한테 따먹힘
최아란은 내 손목을 다시 잡고서 침실 밖으로 끄집어냈다.
화가 나긴 했는지 손아귀가 아프긴 했다. 날 거실로 끌고가는 팔힘도 거칠고.
드레스룸으로 간 최아란은 자신도 외투를 입고, 내 외투를 가지고 왔다.
"택시 타고 너희 집 가자."
"화났어?"
"아니... 어. 화났어. 방금 네 행동은 혼내야겠다. 절대 그러지 마, 여자한테. 알았어?"
"'강예진'은..."
"그 녀석은 석녀라도 되는가보지."
나는 ''강예진'은 내가 이런 장난해도 아무렇지 않아했는데.'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렇게 말 할 것을 짐작한 그녀가, 내 말을 끊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최아란이 내게 외투를 입혀주고, 손목을 잡아당겨 현관문 쪽으로 갔다.
"내 대답은 안 궁금해?"
"...그냥 말해주지 마. 그냥 '임시'로 계속 사귀자."
역시 최아란은 내가 '이별 선언'을 할 것이란 걸 짐작했는가 보다. 내 대답을 안 들으려고 했다.
하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면 내 입을 틀어막고, 내 손을 묶어뒀어야 했다.
주머니에서 작은 하바리움 병을 꺼냈다. 보라색 수국. 꽃말이 뭐랬더라. '진심'이랬나.
이 꽃의 꽃말은 나에게 절대 어울리지 않았다. 난 언제나 거짓말을 했다.
"돌려줄게."
"준아..."
"좋은 누나로 있어줘. 내가 누나를 좋아했던 건, 재연이 누나 같은 사람이 더 늘어나니까 좋아했던 거였었나 봐. 여자로서가 아니라."
"준아..."
그녀는 내가 내밀고 있는 하바리움을 빤히 쳐다봤다.
분노해.
화를 내라고.
그리고 거칠게 날 강간해.
나는 속으로 그렇게 기도하면서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최아란은 내 손목을 놓았다.
내게서 하바리움을 건네받았다.
"응... 알았어. 네 마음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허... 또 참는다고? 이걸?'
강간당하지 않으면, 그에 뒤이어서 '섹스파트너' 관계도 만들기 힘들 것이었다. 나는 최아란에게 강간 당한 다음에 '난 괜찮아'라고 말하고, 만날 때마다 대줄 생각이었다. 김하늘한테 그러는 것처럼.
그런데 강간 당하는 게 막히다니.
'일단 시간을 끌어야 돼.'
마침 적당한 핑계도 있었다.
"맞다. 누나, 내 옷..."
링 피트 하다가 땀에 젖은 옷을 세탁기 돌렸다.
내 상태는 반팔셔츠와 반바지차림이었다. 외투를 입는다고 해도, 이 차림 만으로 바깥에 나가면 추울 것이 분명했다.
나나 최아란이나 정신이 딴데 나가있어서, 내 차림을 뒤늦게 알아챘다.
"아... 세탁은 다 됐을 거고, 건조도 15분이면 될 거야. 건조기 돌리고 올게."
그녀는 혼자 다용도목적실로 향했다.
'15분... 왜 그렇게 빨리 건조되냐.'
난 최아란에게 강간당하는 법을 찾아야했다.
'급하다고 서두르지 말자.'
조급하게 굴면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만 높아진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야했다.
'그런데 진짜 가드가 너무 센데?'
강력한 한 방, 한 방을 날려봤다. 마지막 '피날레'로 '이별 선언' 카드를 내놓았지만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내 이별 선언에 수긍했다.
'아... 생각해보니 '오석준'일 때 내가 그걸 당했을 때도... 나는 걔를 강간하지 않았잖아.'
그냥 속으로 '시발년...'이라고 곱씹으며, 이별 선언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최아란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시발놈...'이라고 생각하며 이별 선언을 받아준 것일지도.
'그럼... 걔가 '이별 선언'과 함께 추가로 무엇을 했다면 내가 강간했을까?'
술과 애교.
성적인 장난.
독립적인 공간.
시간적 여유.
듣기 좋은 달콤한 말 몇 마디.
인사불성 상태.
그리고... '그것'.
'좋아, 해보자... 지금이 아니면 시도도 못하게 될 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헤어졌다간, 최아란이 더 이상 날 안 만나려고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럴 경우에 내가 억지스럽게 만남을 요청하면 다시 만날 수는 있겠으나, 그런 다음에 당하는 강간은 내가 '매달리는 쪽'이 된 터라 재미가 덜할 것이었다. 최아란이 나한테 매달리는 동안 강간당하고 싶었다.
최아란이 돌아왔다.
"예상 건조시간 20분이네. 조금만 기다려줘."
"누나."
"응?"
"미안해..."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거 나도 알아... 준아,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뭐?"
"그, 그걸 하자는 식으로 하는 장난은 맨날 쳐? 다른 여자들한테 말이야."
그녀는 '섹스를 하자는 장난'을 얘기하는 거였다.
"누나 말고는 '강예진'한테만 해봤는데."
"'강예진'이 어떤 사람이길래..."
"착해."
"그래... 너한테 그런 장난을 받고도, 널 안 건드린 걸 보면 착한 애인 건 분명하겠네."
"누나."
"응?"
"안아도 돼?"
"또... 장난이야?"
"아니, 그냥. 나 사람의 온기가 좋아."
"그래...?"
최아란은 팔을 벌렸다. 나는 그 품 속으로 들어갔다. 키 차이 때문에 내 턱이 그녀의 거유 사이로 들어가게 됐다.
"애교가 많네, 우리 준이."
"다른 여자들한테도 이렇지 않아. 아란이 누나니까."
"그래..."
"'강예진'하고, 누나한테 그런 장난을 친 것도... 놀리려고 한 건데. 왜냐면 내가 그런 장난을 쳐도 다 받아줄 것 같아서."
"그래그래."
"이렇게 누나 안고 있으니까 졸립다."
"안 돼, 자지 마. 집 가서 자."
"나 집에 못 가. 와인 냄새 풍기면서 우리 누나한테 가면 혼나."
"앗... 그, 그럼 친구네 가."
"연락해보니까 여자친구랑 데이트하고 있대. 아... 예진이네 가야겠다."
"하아... 준아, 술 먹고 여자애 집에 가면 안 돼. 그것도 이 밤 중에."
"괜찮아. 누나처럼 걔도 착해."
"안 된다니까. 차라리 술 깰 때까지 우리 집에 있어. 양치도 하고 오고."
'오, 잘 됐다.'
20분이라는 짧은 옷 건조 시간이었다. 촉박했던 최아란에게 작업 걸 시간이 확 늘어났다.
나는 손을 들어 최아란의 젖가슴을 문질렀다. 최아란의 몸에서 나는 달콤한 체취와 부드러운 신체 때문에 내 자지가 발끈해버리고 말았다. 내 자지가 그녀의 배를 찔렀다.
쿵쿵쿵.
그녀의 쇄골에 귀를 대어보니 그녀의 심장박동이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내가 더듬는 못된 손을 최아란이 붙잡아서 아래로 내려버렸다.
"누나, 나랑 헤어졌다고 나 안 보러 올 거야?"
"지금처럼 매일 놀러가진 못할 거지만... 종종 들릴게."
"난 누나 맨날 보고 싶은데."
"그럼 사귀어 줘."
"미안..."
"...나야말로 미안하다. 그렇게 조건을 내걸고. 어른답지 못하게."
아니다. 최아란이야말로 진짜 성인이었다.
무수히 많았던 나의 유혹에도 넘어오지 않고 버텨냈다.
그녀와 동갑내기인 신재연이었다면, 내 정액을 수십 번은 뽑아냈을 거였다.
"누나."
"응?"
"나 잠깐 자면 안 될까? 와인 때문에 좀 어지러워."
"그래..."
내가 고통을 호소하니까 결국 나에게 잠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최아란은 내 손목을 잡아서 자신의 침실로 이끌었다.
그녀에게 입혀졌던 외투를, 그녀 앞에서 다시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었다.
"집에 언제까지 돌아가야 돼? 재연이가 통금시간 같은 거 정했어?"
"나 예성이네서 자고 간다고 누나한테 거짓말했어."
"뭐? 그냥 친구네 놀러간다는 게 아니라?"
"이상한 생각하지 마. 아란이 누나네서 자고 가려고 그런 게 아니라, 누나 집에서 놀다가 예성이네서 자려고 한 거였으니까."
"그, 그런 이상한 생각 전혀 안 했어. 진짜로..."
"10시 정도에 깨워줘. 예성이가 그때는 데이트 끝날 거라 그때 예성이네 나 데려다주면 돼."
"아. 응."
"무조건 깨워야 돼? 나 누나 집에서 자버리면... 예성이가 나 누나랑 잘 거라고 상상할 거란 말이야."
사실 나예성은 그런 상상하지 않을 테지만, 최아란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었다. 하여튼 밤 10시에 날 깨워야만 하는 의무감을 갖게 됐을 거다.
"아, 알았어..."
최아란은 내가 잘 수 있도록 방의 불을 껐다.
"잘 자, 준아."
'어딜 가려고.'
"누나, 나 혼자 자는 거 무서운데. 옆에 있어주면 안 돼?"
"...그럼 여기 앉아있을게."
그녀는 화장대 의자에 앉았다.
"누나. 나랑 헤어졌다고 나 미워하지 마, 알았지?"
"안 미워. 진짜로."
"그럼 맨날 찾아와."
"되도록이면 그럴게."
"거봐. 미워하는 거네."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냥 회사일에 집중하려고. 그럼 퇴근시간이 늦어질 거니까."
'그러면 우리 재연이는 이젠 누가 데려다주냐...'
이대로 가다간 신재연이 다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해야할 듯했다.
"누나."
"응?"
"내가 누나 좋아하는 거 알지?"
"...잘 알지. 그리고 그게 여자로서 좋아하는 게 아닌 것도 잘 알고."
"..."
"..."
나는 말을 아꼈다.
잠에 빠진 척, 고른 숨소리를 내도록 노력했다.
10여 분 지났을까.
스윽, 의자에서 일어나는 기척이 났다.
최아란이 내 몸을 건드릴까 두근거리며 기다렸지만, 최아란은 침실을 나갔다.
거실의 밝은 불빛이 방으로 들어왔다가 방문이 닫히자 도로 사라졌다.
'술과 애교, 성적인 장난, 독립적인 공간, 시간적 여유, 그리고 듣기 좋은 달콤한 말 몇 마디...'
이 카드들로도 최아란은 넘어오지 않았다.
'아직 카드 두 개 남았어.'
나는 인내하고 기다렸다.
누워있으니까 잠이 왔다.
소주보다 도수가 낮긴 하지만, 화이트 와인도 도수가 있었다. 뱃속에 들어간 알코올이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런 상태니 수마의 공격에 내성이 떨어졌다.
힘겹게 수마와 싸우며 수십 분이 흐를 때까지 버텨냈다.
"준아? 일어나. 10시야."
그녀의 부름에 일어나지 않았다. 최아란이 나를 깨워도 확실하게 '자는 척'하기 위해서 일부러 잠을 청하지 않은 것이었다.
진짜로 잠을 잤다간, 날 깨우는 그녀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눈을 뜨거나 일어나는 등 반응을 보였을지도 몰랐으니까.
"준아?"
그녀는 내가 말로 안 일어니 내 팔을 잡아 흔들었다. 그럼에도 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남아있던 두 개의 카드 중 인사불성의 카드를 지금 사용할 것이었다.
"하아..."
최아란은 침실 밖으로 나갔다.
'설마 나를 이 방에 자게 놔두고, 거실에서 잘 생각인가?'
'나예성이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될지 모른다'며, 날 깨워줘야하는 의무감을 심어줬는데도?
'아니야. 또 깨우러오겠지.'
내 생각대로 최아란은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이번에 방의 불을 켰다.
"준아. 준아?"
내 어깨를 힘껏 흔든다.
"주, 준아?"
내가 죽은 줄 알았는지, 손가락 하나를 내 코밑에 대어봤다.
"하아..."
내 콧바람을 확인한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오해가 귀여워서 웃을 뻔했다.
초인적인 인내로 참아냈다.
그리고 그 인내가 빛을 발했다.
내 코 밑에다가 대고 내 호흡을 확인했던 그녀의 손가락. 그것이 콧구멍 아래에 있는 내 입술을 건드렸다.
최아란의 손가락이 내 입술을 더듬었다.
그 손가락이 떼어지더니 내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내 볼 위로 머리카락이 닿기 시작했다.
물컹한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인사불성' 카드가 효과를 발휘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 효과적이진 않았다.
그녀는 입술도장만 찍은채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내 몸을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준아. 일어나."
'후... 이젠 마지막 카드 하나만 남았네. 그리고 이제야 쓸만 해졌고.'
이 카드를 효과적으로 쓰려면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했다. 그리고 방금 막 그 조건이 달성됐다.
'이게 안 통하면, 진짜 최아란은 대단한 거다. 인정해야지.'
"누나."
"어. 깼니?"
"지금 뭐한 거야?"
"뭐?"
"지금 나 자는데. 내 입술에 뭐했냐고."
"미, 미안..."
"누나, 변태야?"
내가 마지막으로 꺼내든 카드는 바로 '모욕'이었다.
구타 유발과 강간 유발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카드.
'이거 실패하면 진짜 최아란하고 관계 쫑이다.'
나는 배수진을 치기로 했다.
"주, 준아... 내가 잘못했어."
최아란이 잘못한 게 맞았다. 우리가 캠핑장에서 키스를 나눴었다고 한들, 그건 '임시로 나마 사귀고 있을 때' 했던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헤어진 상태였다. 키스하면 안 되지.
물론, 누군가가 나 같은 처지에 빠졌더라면 보통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면 중 키스 당한 걸 모른 척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최아란과의 좋은 관계를 깨뜨려야했다.
최아란의 마음을 흔들어야했다.
그녀의 향미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서 마시고 싶었다.
자지가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지 쿠퍼액을 흘리는 게 느껴졌다.
"누나는 쓰레기야."
"준아... 누나가 잘못하긴 했지만, 말이 너무 심한..."
"시발."
"뭐?"
"더러워."
나는 손등으로 내 입술을 마구 문질렀다.
최아란의 입술이 닿았던 부위가 차라리 떨어져나가길 바라는 듯한 거친 퍼포먼스.
미안함이 가득했던 최아란의 얼굴이 울긋불긋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두 눈이 증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동안 날 따먹은 여자들이 보내온 '정욕'이 담긴 눈과는 그 종류가 확연히 달랐다.
"야... 하, 시발."
언제나 나에게 다정다감했던 그녀가 나를 '야'라고 불렀다.
또한 항상 내 앞에선 예쁜 말만 사용했던 그녀가 쌍욕을 입에 담았다.
'아... 성공인 것 같다...'
최아란의 주위로 스파크가 터지기 시작했다.
내게만 보이는 스파크였다.
난 정신적이 오르가즘에 도달해버렸고, 그탓에 '쿠퍼액 사정'이라도 하는 건지 아랫도리가 빠르게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