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누나 친구한테 따먹힘
돌다리까지 갔다. 다리 가운데 멈춰서 함박눈이 녹아내리는 강물을 구경했다.
"준아, 학교는 어때? 재밌어?"
등교하는 것과 수업을 받아야하는 게 귀찮을 것 같지만 기대가 되긴 했다. 새로운 여자 애들과의 만남과 학교에서 따먹히는 것이.
"학교를 재밌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흐흫... 그렇긴 해. 준이는 학교에서 인기 많겠다."
'고백'하니까 같은 남학생한테도 고백 받은 기억이 떠올라 흠칫해버렸다.
"인기 별로 없어."
"이상하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고백 받는 꼴?"
"흐흫... 준아, 그게 뭐가 인기 없는 거야."
"내 친구는 일주일에 두 번은 고백 받는데?"
"오... 그 친구 대단한데."
"나예성이라고, 키도 크고 잘 생김."
"남자?"
"응."
'나예성'이란 이름이 중성적이라 그런지 물어보는 듯했다. 김하늘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미녀 여사친이 있을까 봐 걱정되는 걸까.
난 20살 많은 애인이 있는 남사친 얘기를 최아란에게 실수로 해버린 적이 있었다. 다행히 '나예성'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나예성이 그 20살 많은 애인을 가진 친구임을 알려주진 않았다.
"혹시 친구들한테 말했어? 나랑 사귄다고..."
"말 못할 건 아니니까."
"친구들이 걱정했겠네. 7살이나 많은 여자랑 사귄다고."
"친구들 걱정 안 시키게 헤어질까?"
"..."
"농담이야."
"준아... 그런 말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줘."
"미안. 누나도 인기 많았지?"
"흐흫... 많았지. 너 만나기 전까진, 왜 여자들이 굳이 애인을 만드려는 걸까 이해를 못했어. 그걸 이해하게 된 게 널 만난 후야."
"어린 남자가 좋은 거 아니야?"
"아, 아니라니까. 마침 좋아하는 사람이 어렸던 거지."
"그거 왠지 변태나 할법한 소리 같은데."
"윽... 객관적으로 보면 확실히 그렇네. 부정을 못하겠다."
"변태."
나는 그녀의 주머니 속에 붙잡혔던 손을 빼냈다.
그리고 눈을 만졌다. 차가워서 금방 버렸다.
"준아, 눈사람 만들까?"
"손 시려워."
"그럼 내가 만들게. 기다려봐."
우리 둘 다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다. 최아란은 맨손으로 눈을 뭉쳐 굴리기 시작했다. 하얗던 그녀의 손이 금방 빨개졌다.
돌다리에 난간은 없지만 낮은 턱은 있었다. 낮은 턱에 쌓여있던 눈을 치우고 앉았다. 그녀가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을 바라봤다.
'최아란한테 따먹히는 건, 캠핑 끝나고 단둘이 있을 때.'
캠핑장에서 따먹히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다.
나와 최아란 사이에서 떠도는 의미심장한 기류를 신재연과 신재희가 포착해낼 가능성이 컸고, 트러블이 생기면 그 트러블에 대처할 시공간이 부족했다.
"누나."
"응?"
바닥을 구른 눈은 제법 커다래졌다. 눈놀이를 좋아하는 건지, 최아란은 즐거워보였다.
"누나 집에 놀러가봐도 돼?"
최아란이 눈덩이를 굴리던 것을 멈추고 날 바라봤다.
"되기는 하는데..."
"되기는 하는데?"
"여자 집에 함부로 놀러오려고 하면 안 돼, 준아."
"왜?"
"왜냐면... 위험하니까."
"누나가?"
"아니, 내가 위험한 게 아니라. 여자의 집에 함부로 놀러가는 거 자체가."
"아니, 나도 위험한 사람, 안전한 사람 가릴 줄 안다니까? 누나 집이니까 놀러가려는 거지. 안 돼?"
"응, 안 돼. 난 위험한 사람이야."
난 입이 턱 막혔다. 따먹혀주려고 밥상을 차리니까 최아란이 뒤집어 엎어버렸다.
내가 말을 잃고 바라보자 최아란이 후회하는 낯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막 억지로 키스하고 싶고 그래. 집에 단둘이 가면 못 참을 거야."
최아란은 솔직하고 정직하고 미련했다.
나의 천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당해주자 좋다고 급발진한 정수린과 슬쩍 자극주자 넘어온 김하늘과는 달랐다.
"씹선비."
"뭐, 뭐?"
"뭐가?"
"방금 내가 이상한 걸 들은 것 같은데..."
"난 아무 말 한 적 없는데?"
최아란은 못 들은 척 넘어가기로 한 건지, 다시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 될 때, 참을성이 약해지는 것 같던데.'
나한테 키스를 해올 때도 산장 안에 단둘이 됐을 때였다.
'최아란의 집에만 가게 되면 공략될 것 같은... 그런데 본인이 철벽을 치는데 어쩐다. 아, 일단 조사부터.'
"누나, 가족이랑 같이 살아?"
"아니, 성인이 된 다음에는 독립했어. 그리고 곧바로 유학갔지."
'좋아. 혼자 살고 있구만.'
"청소는?"
"응?"
"설거지는?"
"아, 집안일? 내가 스스로 하지."
"해주고 싶다..."
"뭐?"
"아니야. 아무 말도 안했어."
"준아... 이번엔 확실하게 들었거든? '정식'으로 사귈 때, 그때 놀러와줘. 집안일도 그때 부탁할게."
''정식'으로 사귀면 집으로 초대하겠다, 라.'
'임시' 딱지를 붙인 건 최아란한테 따먹힌 이후 쉽게 떨어뜨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최아란과 섹스 프렌드가 되기 위한 수순을 위한 발판.
'지름길로 가겠다고, 위험을 감수하긴 좀.'
시간은 나의 편이었다. 우회하며 안전한 길로 가기로 했다.
"텐트로 돌아갈까."
"혹시 화났어?"
"내가 왜? 화 안 났는데."
내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최아란이 얼른 뒤따라왔다.
최아란이 만들고 있던 눈덩이가 쓸쓸하게 돌다리에 남았다.
텐트에 돌아올 때까지 최아란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삐진 척하면 놀러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네.'
* * *
눈이 내려서인지 어제 아침보단 덜 추웠다. 그래도 영하 기온이 춥긴 했다.
거실 텐트에서 떡만두국을 끓였다. 끓는 뿌연 국물에 떡과 만두, 달걀지단, 채썬 파가 들어가있었다.
그릇에 떠다가 여자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와. 잘 먹을게, 준아."
"여자친구부터 챙겨주는 거냐?"
최아란부터 주니까 신재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최아란은 신재연의 말을 장난으로 여겼기에, 장난으로 말했다.
"야. 너도 빨리 남친 만들어, 인마."
"나는 남친 필요없어."
"흐흫... 너도 가져봐. 이렇게 좋은데."
최아란이 본의 아니게 신재연에게 염장을 지르고 있었다.
"하아..."
"자."
"땡큐."
한숨을 내쉬는 신재연에게 떡만두국을 건네고, 이어서 신재희에게도 떠다가 건넸다.
"고마워, 오빠."
신재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딴데를 쳐다봤다.
'재희는 나 따먹고 나서 날 잘 못 보네...'
조루인 게 쪽팔린 걸까? 아니면 날 따먹은 죄책감에?
"둘이 싸웠냐?"
신재희의 반응이 영 이상했는지 신재연이 물었다. 그 물음에 나와 신재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 재희가 저런 이상한 반응 보이면 위험한데.'
신재연이 나와 신재희 사이의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의심을 시작할지 몰랐다.
만약 신재희와 나의 사이를 신재연이 알게 되면? 신재연이 자책할지도 몰랐다.
신재연이 신재희를 크게 혼내서 둘 사이가 험악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지켜지고 있던 '가족'의 모습이 붕괴될 여지가 있었다.
"사실 재희랑 좀 싸웠어."
"왜?"
내 말에 신재연이 물었고, 신재희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퍼뜩 들었다.
난 여유롭게 내 몫의 국을 뜨며 대답했다.
"3월 모의고사 잘 보면 선물 달라는데. 너무 큰 걸 요구하길래. 아, 김가루 뿌려서 먹어."
조미김을 부숴둔 그릇을 테이블 가운데 두었다.
신재희가 '내가 언제 그랬어?!'하는 억울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재연과 최아란이 보기엔 '그걸 왜 말해?!'로 여겨질 법한 얼굴이었다.
"뭘 요구했는데?"
신재연의 물음. 난 잠깐 고민하며 적절한 것을 떠올려보았다.
"아이패드."
신재희가 아이패드를 정수린한테 빌려와서 집에서 썼던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 그걸로 리듬게임에 열중했다. 그 모습을 나도 보고, 신재연도 봤다.
비싼 값을 하기도 하는 전자기기인데다가, 개연성도 충분했던 터라 잘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재희야. 언니가 사줄게. 공부 열심히 해. 반에서 5등 내로 들면."
신재연은 잘 속아넘어간 듯했다.
"어? 정말?"
신재희는 눈치 없게 자기는 그런 적 없다는 둥 부정을 하지 않았다. '상품' 더 생겼다는 것에 기뻐하는 눈치였다.
"재희, 좋겠네."
"어... 좋네."
나는 부순 김가루를 각자 국에 뿌려주었다.
펠렛 난로는 우리가 아침을 먹고 있는 와중에 연료가 떨어져 불이 꺼졌다.
"어제랑은 느낌이 확 다르네."
"흐흫... 그러게. 오늘 눈와서 다행이야. 이렇게 구경하는 맛이 있고, 내일은 안 온다니까 집 돌아갈 때 다행이고."
신재연과 최아란은 거실 텐트에서 의자를 펼쳐 앉아, 눈 내리는 강을 구경했다.
나와 신재희는 침실 텐트에서 수납상자로 만든 책상을 가운데 두고 앉았다.
신재희는 지금도 내 얼굴을 보기 뭐한지 내가 펼쳐낸 중1짜리 과학 교재만 내려다봤다.
"재희야. 산책부터 할까?"
"뭐, 뭐?"
"아니, 너 지금 집중 못하는 것 같아서. 나가자."
아침식사 때는 변명을 해서 신재연에게 괜한 의심을 사지 않는데 성공한 듯싶었다. 하지만 식사 이후에도 신재희가 이러면 신재연이 의심할 가능성이 커질 거였다.
서둘러 조치할 필요가 있었다.
"재희가 영 공부에 집중 못하네. 산책 좀 하고 올게."
"흐흫... 준이는 여동생이랑 사이가 좋네."
"야. 그거 아냐? 재준이랑 재희, 사실 동갑이야."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최아란과 신재연을 두고 텐트를 나왔다.
새벽부터 함박눈이 내려와 지금은 제법 쌓인 눈이었다. 신발이 푹푹 들어가는 눈밭을 지나 산책로로 향했다.
신재희는 조용히 내 뒤를 따라왔다.
텐트 안에서 겨울 캠핑을 즐기는 다른 팀을 지나서 산책로에 진입했다.
춥기에 산책로를 이용하지 않는 것인지, 산책로의 눈길은 아직 아무도 밟지 않아 깨끗했다.
새벽에 나와 최아란이 오갔던 발자국은 눈으로 덮여 보이지 않게 됐다.
그런 눈길을 내 발자국으로 더럽히며 나아갔다.
"재준아, 어디까지 가려고."
"돌다리까지만."
"산장은?"
"왜? 꽁씹 하고 싶어?"
"야... 남자가 '꽁씹'이 뭐냐, 꽁씹이..."
"내 얼굴 왜 못 쳐다보냐? 누나가 알아차리겠다."
"미안..."
"뭐가 미안한데?"
"그냥..."
"그냥 뭐?"
"아, 알잖아, 너도."
"왜 너답지 않게 소심해? 똑바로 말해봐."
신재희는 입을 앙 다물었다.
'꽤나... 날 따먹은 죄책감이 심한가 본데.'
신재희가 아직 어리긴 한 모양이었다. 신재연처럼 철면피를 갖지 못했다.
"'상품'... 미리줄까?"
"뭐, 뭐?"
"백점짜리 상품 미리 줄게. 산장으로 가자."
"저, 정말?"
"그래, 정말."
'미리 주면 안 되는데. 버릇 잘못 들일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당장 고쳐야 문제니 빨리 해결해야지.'
신재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젯밤에는 소녀가 날 잡아끌었는데, 오늘은 반대가 되어 내가 신재희를 잡아당겼다.
돌다리를 지날 때, 최아란이 굴리다가만 눈덩이가 있었다.
"마을 사람이 만든 건가?"
나와 최아란이 새벽에 이곳까지 산책한 곳을 모르는 신재희였다.
최아란을 언급하면 신재희가 기분 상해할까봐, 눈덩이를 굴린 사람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았다.
돌다리를 지나며, 캠핑장 쪽을 쳐다봤다. 다행히 최아란과 신재연 모두 텐트 바깥에 나와있지 않은 상태였다.
"뛰어가자. 누나들이 보기 전에."
"아, 알았어."
우린 돌다리를 서둘러 건넜고, 나무로 가려진 산장으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자 안도하고 걸음속도를 늦췄다.
"즐겨, 그냥."
"뭐...?"
"어차피 잘못된 관계된 거, 후회하고 자책하고 하면서 괴로워하지 말라고. 난 즐기고 있어."
"미안해..."
"더 이상 미안해 하지마."
"응..."
산장에 도착했다.
문을 닫아 바람을 막았다.
나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재희의 두 볼을 잡고서 입술을 겹쳤다. 깜짝 놀란 신재희가 뒤로 물러나다가 벽에 닿고 말았다.
입술로 소녀의 입술을 연신 베어물고, 혀로 신재희의 입 안을 샅샅이 핥았다. 내 쪽에서 먼저 키스를 주도하는 건 이 세계에 와서 처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금방 주도하지 못하게 됐다.
신재희가 내 두 엉덩이를 우악스럽게 쥐면서, 밖으로 내민 내 혀를 이빨로 야금야금 씹었다.
아프진 않았지만 혀가 잘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하아...! 하아...!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입술을 뗀 소녀가 날 노려봤다.
사나워진 눈이었다.
여태껏 내 눈치를 보느라 축 처졌던 얼굴 보단 저게 나았다.
"엉덩이 까봐."
"뭐, 뭐?"
하지만 이건 좀 아닌데...
"어서."
"재, 재희야?"
"서로 즐기자며. 네 바람대로 해줄 테니까 하자고."
"아니, 그냥 보통의 섹스만..."
"엉덩이 대. 빨리."
"하아..."
'재희의 죄책감을 덜어준 건 좋았는데. 이상한 스위치까지 켜버린 느낌인데...'
나는 바지와 팬티를 내렸다. 소녀와 키스하느라 발기해버린 자지가 찬 공기를 맞아 다소 움츠려들었다.
"벽에 대."
벽에 두 손을 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