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누나 친구한테 따먹힘 * (95/201)



〈 95화 〉누나 친구한테 따먹힘 

'대충 신재희의 소원을 알 것 같네...'


신재희는 나에게 맞는 성벽이 있으면서도, 날 때리는 것에서 역시 흥분을 느끼는 듯했다.

'그간 신재희 행동을 돌이켜보면 내가 유방 때리는 건 너무 아파서  견디는 것 같고,  회초리로 아프게 하긴 싫은  같던데.'


그러면 아마 올백 맞고 보너스 점수까지 쳐서 얻은 '소원'으로  엉덩이를 스팽킹하지 않을까 싶었다.


'얘는 또 이상한 성벽을 가져가지고...'


엉덩이 스팽킹 정도라면 맞아줄 만하다고 생각했다.


최아란에게 시켜 텐트 바깥에 야외 테이블을 설치했다.

나는 아이스쿨러에서 고기와 김치를 비롯한 밑반찬을 꺼냈다. 밑반찬은 모두 코스트코에서 산 제품들로 봉지를 뜯어 그릇에 담았다.

최아란이 티타늄 수저 세트를 꺼내 테이블에 세팅했다.


밀크박스에 모듬쌈과 마늘, 고추 따위를 담아 들고 개수대로 이동, 물로 헹군  돌아왔다.


그 사이 최아란과 신재연은 화로에 숯을 집어넣고, 석쇠를 올려둔 상태였다.

나는 도마를 올려 마늘과 고추를 썰고 작은 그릇에 담았다.


숯이 잘 타기 시작하자 집게를 잡아서 삼겹살을 하나둘 올렸다. 치이익. 고기 익는 소리가 터졌다.

"고기  때 말이야. 내가 아줌마한테 미리 썰어달라고 했거든? 그럼 굽기 편할 줄 알고. 그런데 준이가 바로 반대했어."
"응? 아... 왜 그랬는지 알겠다. 사실은 그게 굽기 불편해서 아니냐?"
"흐흫... 맞아. 바보 같은 짓 할 뻔."

삼겹살이 이어져 있어야 처음에 석쇠 위에 깔 때도 편했고, 한꺼번에 뒤집기 편했다.


그런데 미리 잘라둔다면 석쇠에 뿌린 뒤 하나하나 떨어뜨려둬야 했고, 뒤집을 때도 하나하나 다 뒤집어야 하니 번거로움이 생겼다.


기름이 불 위로 떨어질 때마다 화염이 낼름 거렸다. 숯불이 올라오니 고기가 금방금방 익었다. 익은 고기를 가위로 자른 뒤, 타지 않게 하기 위해 구석에 두었다.  사람 각자 앞으로.

최아란이 쌈을 들며 내게 물었다.


"준아. 마늘이랑 고추 넣어줄까?"
"난 알아서 먹을 테니가 누나, 먹어."
"그래도."
"그럼 넣어서 줘."

최아란이 싸준 쌈을 입안 가득 넣었다. 쌈 속에 숨겨져있던 육즙이 터져나와 미뢰를 기쁘게 했다. 알싸하고 목을 찌르는 듯 생마늘향이 매웠다. 고추는 오이고추라서 그냥 아삭아삭했다. 달달하고 매콤하면서 고소한 쌈장이 입안에서 어울려졌다.


"재희는 공부 잘 되니?"

최아란이 신재희에게 말을 걸었다.

신재희는 마시고 있던 콜라를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잘 돼요. 엄청."
"재희야. 오빠가 뭐 상이라도 준대? 엄청 열심히 하네."

이번엔 신재연이 물었다.

신재연의 말은 짐작은 정답이었다.


나는 신재희가 어떻게 대답하려나 지켜봤다.


"그냥. 언니랑 오빠 보고 나도 공부해야겠다 생각했어."
"너흰 진짜 사이가 좋네. 부럽다."
"언니도 자매 있어요?"
"응, 위로 쌍둥이 언니. 근데 나랑은 사이가 별로야. 맨날 나 괴롭히기만 하고."


나는 신재연과 신재희를 흘겨봤다.  둘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시선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두 사람은 내 눈을 피했다.

술을 들어가서 인지, 목소리가 좀 높아진 최아란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단다. 다른 친척들은 대충 놀다가 대충 대학갔는데, 자신은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 미국 명문대에 입학하고 졸업했단다.

"어? 그러면 언니는 아직 군대 안 갔어요?"

신재희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신재연은 군전역을 하고, 전문대에 복학해 졸업했다. 그리고 24살 나이에 입사했다.


신재연과 동갑이자 입사동기인 최아란도 24살에 입사한 것일 텐데...

방금 최아란이 썰을 풀 때, 20살에 미국 명문대 갔고 4년을 채워서 졸업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군대를 다녀오기엔 빠듯했다.

최아란은 창피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지병이 있어서 면제야."
"아, 그러시구나."

'재벌이라서  써가지고 면제 받은 건가? 아니면 진짜 지병?'

우리  아무도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프라이버시니까.


최아란의 '썰'은 금방 끝났다. 명문대 졸업 후, CY 입사 시험을 치른 뒤 입사했고, 동갑인 신재연을 만나 절친이 됐으며,  신재연 덕분에  만났다고 했다.



배를 채웠다. 석쇠 구석에 고기  점이 타들어가고 있었고, 신재희와 최아란은 각자 소주와 맥주를 넘겼다.

나는 대충 야외 테이블 위와 집게, 식기 따위를 모두 설거지해 치웠다.


그런 뒤, 신재희의 시험을 감독했다.


"개 쉽네."


소녀는 히죽 웃더니 내가 만든 시험 문제를 풀어나갔다.

국어와 영어는 다른 연도의 모의고사 시험지의 '지문'을 오려서 붙여 쉬운 문제를 만들어냈다.


수학, 과학, 사회, 국사 문제는 내가 문제를 오늘 공부한 것을 토대로 쉽게 만들었다.


 과목당 문제 숫자는 10개로 적었고, 난이도도 쉬웠던 만큼 신재희는 모든 과목의 시험을 30분 내로 다 풀었다. 올백을 위해서 몇 번 검토를 거치더니, 내가 정해두었던 50분을  채워서 시험 문제를  풀었다고 선언했다.

"채점해 봐."

신재희는 건방지게 오빠 앞에서 팔을 괴고 누웠다. 빨간 색연필을 꺼내든 나는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 여유만만하게 누워있던 신재희였지만, 긴장감이 올라왔는지 몸을 일으켰다.


내가 채점하는 것을 긴장한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채점한 과학 시험지에 마지막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올백?"
"잘 했어."
"좋았으!"


신재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기 친오빠를 따먹는  그렇게 좋은 걸까.

"이젠 가자."

신재희가 날 재촉했다.

난 텐트 바깥이 어두운 것을 보고 말했다.


"내일 낮에 가자. 지금 가면 의심 사."
"설마. 우리 둘이 친남매인데 의심하겠냐?"

지금 신재희의 눈을 보니 발정 스위치가 켜져있었다.


"야. 너 설마 지금 빼는 거냐?"

내가 안 대주려고 수작부리는 거라고 의심하는 듯했다.

"아니야. 조심하자는 거지."
"나 오늘은  참아."
"하아... 그럼 가자."


난 물티슈를 챙겨 외투주머니에 넣었다.


거실텐트로 넘어가기 위해 몸을 낮추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여동생에게 엉덩이를 또 추행 당했다.

우리가 텐트에서 빠져나오자 불멍하던 신재연과 최아란이 돌아봤다.


"우리 주변  구경하고 올게."
"그래. 그런데 강에는 가지 마. 위험하니까."
"조심할게."


신재연의 걱정을 듣고 낮에 최아란과 걸었던 길을 걸었다.


최아란의 텐트 근처는 걸려있는 랜턴에 밝았지만, 그곳에서 벗어나자 캄캄해졌다. 가로등은 멀리 떨어진 관리사무소와 개수대 건물에나 설치돼있었다.

주인이 자리를 비우고 있어, 자물쇠로 잠겨있는 텐트들이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오석준'일 때부터 나는 어둠을 두려워했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텐트 따위의 은폐물 뒤에 숨어있던 살인마나 귀신 따위가 갑자기 날 덮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런 어둠에 대한 두려움은 '신재준'도 동일하게 갖고 있었다.

이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여서 고칠 수 없었다. 나는 신재희의 외투 옷깃을 꾹 잡았다.

신재희는 겁도 없이 캄캄한 캠핑장을 가로 질렀다.

부스럭부스럭.

그런데 어느 한 텐트의 천이 흔들렸다.


뭔가 징그러운 것이 튀어나올 같은 느낌과 그 무서운 게 튀어나올 경우 도주하기 어려울 것이란 두려움이 증폭됐다. 신재희의 옷깃을 더 강하게 쥐었다.

정말 뭔가 튀어나왔다.

"꺅!"
"헉!"


신재희도 놀라서 비명을 질렀고, 덩달아 나도 소리 지르며 눈을 감았다.

"아, 뭐야. 다람쥐잖아."

신재희가 대수롭지 않다는  중얼거렸다.


튀어나온 것의 정체는 청설모였나 보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신재희가 잘못 봤을 것을 정정했다.

"다람쥐는 아닐 걸. 다람쥐는 겨울잠 자니까. 청설모가 겨울잠 안 잔대."
"킥킥, 근데 너 뭐냐? 아직도 겁 많이 타네."
"'어둠 공포증'이라서 나이 먹는다고 고쳐지는 게 아니라고..."

'어둠 공포증'은 고소공포증이나 광장공포증, 폐소공포증 등과 같이 '공포증'의 일종이었다.


보통 모두가 어린 시절에 겪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공포증이라는데, 나와 '신재준'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겪고 있었다.

"그 공포증 때문에 나가지 말자고  거였어?"
"응..."


사실 '어둠 공포증'을 고려하지 못했다. 최아란과 신재연의 심려를 생각하느라, 내가 갖고 있던 공포증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산책로에 진입하니 더 무서워졌다.

낮에 왔을 때는 예뻤던 소나무가 지금은 언제라도 앙상한 가지를 뻗어  잡아먹을 수 있는 식인 나무로 보였다.

"야. 무서우면 여기서 할까?"
"미쳤냐?"


하지만 공포증에 말미암아 튀어나온 가상의 괴물보다, 실존하는 최아란과 신재연에게 우리 관계를 들키게 될 위험이 더 두려웠다.

"옷 말고, 내  잡던지."
"..."
"자존심 챙기는 거냐? 무서워서 벌벌 떠는 주제에 뭔 자존심을 챙겨?"


그러게 말이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남자인 내가 여자한테 매달린다고,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었다.


난 신재희의 팔 하나를 꽉 끌어안았다.


사람의 신체부위를 끌어안은 것 뿐인데 '어둠 공포증'이 상당히 가셨다.


"킥킥, 내가 누나해야겠네."
"지랄."
"재준아, 너 올해로 5살인가? 누나는 17살인데 자꾸 반말하고 나쁜 말 쓸래?"

어린 시절 '엄마'가 했던 장난을 신재희도 기억하고 있었다.

올해 '신재준' 생에 5번째 2월 29일이 찾아왔다.


"재준아."
"너 오빠한테  이름 함부로 부르냐?"
"야. 너랑 나 원래 동갑이잖아."
"..."

'신재준'은 2월생이고 빠른 연생으로 학교를 빨리 들어갔다. '신재준'은 실제나이보다 자신의 나이를 1살 더해 생각해왔다.

그런 '신재준'의 나이 계산법을 기억과 통째로 전해받은 나도 자연스럽게 '신재준'이 18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올해 17살이었다.


'신재희'는 같은  12월 31일에 태어났고, 신재희 역시 올해 17살이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만 해도, 나는 너한테 오빠라고 부르는 일 없었어. 기억나냐?"
"어..."
"내가 네 이름 부르는 걸로 태클걸지 마라?"
"응..."
"재준아."
"왜."
"남매끼리 섹스하거나 그러면 안 되는  아는데... 미안해."
"미안하면 하지 마."
"할 거야.  거라서 사과하는 거야. 안 할 거면 사과도 안 했지."

그거 참... 말이 되는 소리였다.


신재희의 걷는 속도가 빨라졌다.

우리 둘의 다리길이는 비슷했지만 체력은 달랐다. 나는 금세 지쳐버렸다.

"재희야, 천천히 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떠나있어서 언니들이 괜한 오해할까봐, 우리 관계 들킬까봐 걱정하는 거지?"
"그래..."
"그러면 좀만 빨리 걷자. 아님 그냥 여기서 해도 되지 않냐? 어차피 캠핑장에 사람도 별로 없던데. 이 밤에 우리 말고 이 산책로에 누가  오겠어?"
"넌 네 '첫 경험'을 야외에서 하고 싶냐?"
"상관없어."
"아, 근데 넌 '첫 경험'이 맞긴 해? 일진이었잖아."
"나한테 자지 세우려는 놈들 많긴 했는데, 너 때문에 눈 높아져서  따먹었어."
"인기 많았나 보네."
"얼굴이 되니까. 여기서 하자."
"여기선 안 돼. 만에 하나 누나들이 따라올지 모르니까. 소화를 위한 산책이랍시고 우릴 따라올 수도 있고."
"그렇게 따지면 네가 가고 싶어하는 '산장'도 위험한 거 아니냐?"
"확률적인 거지. 보통 산책한다고 하면 저 먼 산장까지는 안 갈 테니까."
"산장에는 가야하고, 근데 너무 늦으면  되고. 그럼 서둘러 가는 수밖에 안 남았네. 빨리 가자."
"하아... 밤 중에 운동하게 생겼네..."
"나한테 매달리듯 뛰어. 그럼 나을 걸."

신재희의 손을 잡았다. 뒤로 뻗은 신재희의 팔이 굳세게 날 잡아당겼다.


소녀의 말대로 그녀에게 이끌림을 받으니 달리는  체력적으로 편했다.


산책로의 끝이 찾아왔다. 얼어붙은 논이 보였고, 논길이 보였으며 돌다리가 보였다.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캄캄했다. 달빛에 의존해서 봐야했다.

"오우. 방심했다간 봊되겠는데."

신재희가 돌다리를 보고 말했다.

소녀의 말에 내심 동의했다.


캄캄한 강물이나 어두운 돌다리나, 자칫했다간 둘 모두 새카만 어둠으로 보였다.

방심했다간 겨울 강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들었다.


우린 그 돌다리 앞에 섰다.

"꽤 너비가 넓네."

막상 돌다리 앞에 서니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너비에 아슬아슬함은 상당히 사라졌다.

"핸드폰 손전등 킬까?"
"누나들한테 우리  다리 건넌다고 들키고 싶냐?"
"아, 맞다."


이 어둠은 우릴 두렵게 함과 동시에, 우릴 보호해주기도 했다.

 치 앞이 겨우 보이는 어두운 다리를 우린 조심히 걸어갔다.


실질적인 실족의 위협까지 더해지니 '어둠 공포증'이 더욱 심화되었다.

"재희야. 뭐라고 말 좀 해봐."
"무서워서 그래?"


'어둠 공포증' 때문이니 무서운 게 맞았다.


"응."
"아씨... 너 왜 자꾸 귀엽게 구냐?"
"아놔... 그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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