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누나 친구한테 따먹힘
최아란의 립스틱 맛이 느껴졌다. 화학적인 과일향이 불쾌했다. 그러나 최아란의 설육이 휘감아오니 불쾌함을 곧 잊게 됐다.
또한 전자담배의 포도향이 느껴졌다. 불쾌한 니코틴향은 없어서 맛있었다.
최아란의 혀가 집요하게 내 혀를 노려 찌르고, 휘감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혀에 도망치는 듯 움직이는 것으로, 나름의 호응을 했다.
최아란은 내 혀가 도망치는 게 감질났는지 내 뒷덜미를 꽉 잡아서 자신의 입술에 밀착시켰다.
그리고 여러차례 내 입술을, 제 입술로 베어물었다.
'스위치가 들어가면 잡아먹는 스타일인가?'
최아란과의 첫 키스는 그녀에게 잡아먹히는 듯한 키스였다.
"하아... 하아..."
최아란이 하도 빨아대서 입술이 부은 듯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훑었다. 빨간 립스틱이 묻어났다. 그녀의 립스틱이 내 입술에도 옮겨 묻은 것이었다.
"주, 준아. 미안..."
"뭐가?"
"내가 너무 흥분했어... 놀랐지...?"
"과격하긴 했지..."
"미안..."
최아란은 스위치가 내려갔는지 소심해지며, 내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누나, 입술 고쳐야겠다."
"아."
부분부분 립스틱이 지워져있었다.
최아란은 외투 안주머니에서 화장거울과 립스틱을 꺼내 입술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입술에 묻은 립스틱 지워지라고 손가락으로 문질렀는데, 최아란이 외투 안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꺼냈다.
"누나 뭐, 도X에몽이야? 필요한 게 다 주머니에서 나오네."
"흐흫... 준아, 잠깐 기다려. 누나 립스틱만 바르고 거울 빌려줄게."
"응."
서둘러 립스틱을 다 바른 그녀였다.
내게 거울을 건넸다. 나는 거울을 보며 물티슈로 입술을 닦아냈다.
최아란은 키스의 여파 때문인지 발정한 눈으로 내 입술을 빤히 쳐다봤다.
입술에 묻은 립스틱을 다 지웠다. 물티슈를 어디 버릴 데 없나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최아란이 말했다.
"쓰레기는 여기 버려뒀다가, 나중에 또 찾아올 때 봉투 가져와서 치우자."
"와... 지금 내가 사용한 물티슈를 '쓰레기'라고 경멸한 거야?"
"그, 그런 뜻이 아니고..."
"흐흫... 알아."
어차피 버려진 산장이 더러운 바닥이었다. 물티슈를 바닥에 버렸다.
"준아... 네가 그렇게 놀릴 때마다 누나 심장 떨어져..."
"아, 미안해..."
내가 미안한 듯 고개를 수구리자, 그녀가 얼른 말했다.
"아니, 아니야! 장난쳐. 계속 장난쳐줘. 너의 그런 점 때문에 너한테 반한 거기도 하고..."
난 미안한 척을 집어던지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란이 누나는 한참 연하한테 장난당하는걸 좋아하는 변태구나?"
"윽... 부정할 수가 없는데..."
그래도 나한테 지배당하길 좋아하는 변태나, 나에게 의존받길 원하는 변태나, 나한테 맞길 바라는 변태보단 훨씬 나았다.
'그런데 신재연은 무슨 변태지?'
남동생을 강간하는 변태? 신재희도 오빠한테 섹스해달라고 변태니까 다소 겹쳤다. 그거 말고 없을까.
'내 자지 사진을 폰으로 찍던데...'
그런데 그건 아마 두고두고 볼 생각으로 찍은 것 같았다. 변태라고 하긴 뭐했다. 내 자지 사진을 찍어갔던 정수린하고 겹치기도 하고.
"준아? 무슨 생각해?"
"아, 누나 생각."
"흐흫... 나 앞에 있는데?"
"아란이 누나 말고. 우리 누나. 재희랑 잘 있으려나 해서."
"아..."
김칫국 마셨던 최아란이 민망해 하는 웃음을 흘렸다.
"준아, 슬슬 돌아갈까? 두 사람이 이상한 생각하겠다."
"무슨 이상한 생각?"
그 이상한 생각이야 뻔했다. 연인 사이에 할 수 있는 '그것'이었다.
"준아..."
"응?"
갑자기 최아란이 진지해졌다.
"자꾸 어른 놀리면 못 써."
"알았어."
장난 받아주는 사람이 정색빠니까 재미없었다.
'키스까지 진도도 나갔고 했으니 다시 무관심 모드로 돌아가볼까.'
우리는 환기 시켜둘 겸, 산장의 앞뒷문을 모두 열어두고 나왔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 둘이 걸어온 발자국을 거꾸로 밟으며 걸었다.
은근슬쩍 최아란이 손을 잡으려고 하자, 난 손을 빼내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몇 걸음 앞서나갔다.
그녀는 달리거나 빠르게 걸어 날 따라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쭈. 여유스러워보이네?'
항상 내 눈치를 보며, 뭐 마려운 것 같이 굴던 그녀가 지금은 유유자적했다.
마치 재롱부리는 동생을 쳐다보는 그윽한 눈빛을 보내왔다.
'고작 키스 따냈다고, 나를 다 잡은 물고기 같이 느끼는 건가?'
뭔가 자존심이 상해버렸다.
'아란아. 섹스까지 노려봐야지. 키스에 만족하고 벌써부터 긴장 풀게? 게다가 사귀는 것에 '임시'가 풀린 것도 아닌데... 설마 키스 허락해줬다고 '임시'가 풀렸노라 긴장 뺀 건가?'
"준아, 기다려. 같이 가자."
"누나가 빨리와."
이제야 그녀는 발걸음을 높였다. 그때마다 난 달려서 달아났다.
"술래잡기 하잔 거지?"
최아란이 전력으로 달려왔다. 난 달아나려고 했지만 곧장 잡히고 말았다.
"잡았다!"
최아란은 날 잡아낸 것에 멈추지 않고, 체중으로 눌러서 날 넘어뜨렸다.
순간 최아란이 날 끌어안아 몸을 회전 시켰다. 내가 자신을 쿠션삼아 넘어지게 만들었다.
눈 위로 넘어진 그녀가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날 쳐다봤다.
그녀의 위에 올라타게 된 나는 의도치 않게 그녀의 젖가슴을 누르게 됐다. 두터운 외투 너머로 누르는 거라 별로 재미는 없었다.
난 몸을 옆으로 굴려서 그녀 옆 눈 위에 누웠다. 눈바닥에 닿은 부위가 서늘해졌지만 두터운 외투와 바지 덕분에 당장은 누울만했다.
양쪽으로 솔잎 사이로 눈꽃을 피운 소나무가 이어져있고, 오늘날의 겨울하늘은 청명했다.
"날씨 좋네."
"누워서 보니까... 준이, 잘 생겼다."
고개를 돌리니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반쯤 가려진 최아란이 내 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난 손을 뻗어 예쁜 얼굴을 가렸던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치웠다.
최아란은 그런 내 손을 쥐더니, 내 손등에 입맞춤을 했다.
"아."
손등을 돌려서 확인하니 그녀의 입술 모양이 찍혀있었다.
마침 바닥이 눈투성이고 하니, 눈으로 손등을 문질렀다. 물에 닿자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대신 손이 엄청 시려워졌다.
"준아, 텐트로 돌아가서 눈싸움이나 할까?"
"참 재밌겠네."
"눈싸움이 별로면 눈사람 만들까? 텐트 주변에는 눈 치워져있으니 여기서."
"맞다. 재희 공부시켜야 돼. 빨리 돌아가자."
"아, 준아. 여동생 공부는 집에 가서 하고, 여기선 나랑 놀아주라. 응?"
최아란이 깜찍하게도 앙탈을 부렸다. 미녀의 앙탈에는 강한 매력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안 돼."
"그럼 뽀뽀해줘."
키스 한 번 해줬다가 시도 때도 없이 요구되는 허벌이 되어버렸다.
"누나 립스틱 묻잖아. 싫어."
"아... 지워야겠다."
"한 게 예뻐."
"으음... 그럼 지우면 안 되겠는데."
"정식으로 사귀면 언제든지 해줄게."
"반드시 '임시' 딱지 떼야 겠네."
목표와 동기가 생기자 진지해지는 최아란의 얼굴이었다.
* * *
텐트로 돌아왔다.
신재희는 해먹 위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롤 영상을 보고 있었고, 신재연은 캠핑 의자의 기울기를 눕혀, 거의 누운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와 최아란이 텐트 지퍼를 열고 들어오자, 둘 모두 이쪽을 쳐다봤다.
'지퍼 소리가 상당히 크네. 자고 있는 여자들 몰래 나가는 건 무리려나.'
거실 텐트를 가로지를 때, 파쇄석이 밟혀서 나는 소리도 문제였다.
'그리고 여자 셋이서 같이 잘 건데, 그중 하나가 나오려면 엄청 부스럭거리겠지.'
그냥 밤에 몰래 '으슥한 곳'에 가려고 굴지 말고. 그냥 안전하게, 남아있을 두 사람에게 산책 다녀오겠다고 말해두고 다녀오는 게 낫겠다.
"재희, 내려와."
신재희가 내 부름에 해먹에서 내려왔다.
최아란이 바깥에 내다뒀던 캔맥주를 신재연에게 건넸다.
최아란이 잔뜩 히죽거리고 있는 걸 보고 신재연이 물었다.
"둘이 뽀뽀라도 했냐? 엄청 쪼개네."
"어? 아, 아니야. 흐흫..."
나는 신재연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누나, 그런 거 아란이 누나한테 캐묻지 마."
"그래, 알았어..."
"흐흫... 아! 준아, 추웠지? 커피메이커 있는데 커피 내려줄까?"
"아, 그런 거 있어? 사용법 좀 알려줘. 나중에 타줄게."
"앗, 일 시키려는 거 아니었는데."
"됐어. 나 커피 좋아해서 나도 혼자 타먹기도 하려고. 금방 배우지?"
"어, 금방해."
전기가 들어와있는 만큼, 그녀는 전기를 사용하는 커피메이커를 사용했다.
물탱크를 채워두고, 그 물의 비율만큼 분쇄한 원두 커피를 거름망에 부은 뒤, 커피서버를 아래에 두기만 하면 커피가 알아서 내려졌다.
가열된 물이 커피를 적시고, 거름망을 통과한 커피물이 커피서버로 떨어졌다. 그렇게 커피서버에 찬 커피를 컵에 따라마시면 됐다.
사용법을 한 번 보여준 그녀가 티타늄 컵에 커피를 따르고 내게 내밀었다.
"잘 마실게, 아란이 누나."
"응, 맛있게 먹어."
신재희는 침실 텐트에 먼저 들어가있었다.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의욕이 만땅으로 보였다.
내가 마주 앉자 신재희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저 언니랑 키스했냐?"
최아란이 부정해둔 것에 맞추고자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그렇게 늦었냐?"
"저 산장에 갔다왔어."
"저기?"
신재희가 텐트 비닐창 밖으로 보이는 보이는 강 너머 산장을 가리켰다.
난 끄덕이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상품'은 저기서 줄게."
신재희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더니, 홱 소리가 날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 * *
겨울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그동안 신재희는 공부에 엄청난 집중을 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상품'이 걸려있는 만큼 열정적이었다.
'이런... 어쩌지.'
슬슬 삼겹살을 구워먹어야할 듯했다.
신재연과 최아란은 불멍을 하겠다며 텐트 앞에 랜턴을 걸어두고, 화로를 조립하고 장작에 불을 붙였다. 둘은 화로 주위에 캠핑 의자를 놓고 앉아있었다. 최아란은 캔맥주를, 신재연은 소주를 병나발로 마시고 있었다.
'삼겹살 굽고, 설거지 하고, '시험'까지 하면... 완전 밤일 텐데.'
신재희와 '으슥한 곳'까지 간 다음, '상품'을 제공하고 온다면 빨라도 45분은 걸릴 것이었다. 가는데 15분, 오는데 15분, '상품' 제공에 15분으로 계산한다면 말이다.
'밤에 1시간 가까이 신재연하고 놀다와도... 아란이는 나랑 재희의 관계를 의심 안 하려나? 갔다와도 되나? 상품 주는 걸 내일로 미루자고 하면 재희가 지랄할 것 같은데.'
"야. 시험 문제 만들다 말고, 무슨 생각해?"
"아... 아무것도 아니야."
"너 내 수준에 맞춘다고 했다? 말도 안 되게 어렵게 내지 마라."
"알았어, 인마."
시험 문제는 오늘 내가 알려준 공부 내용을 잘 따라왔다면 100점을 맞출 수 있도록 내고자 했다.
변형이나 응용, 함정 문제가 없는 기초 문제들로만 구성했다.
처음부터 어려운 걸 내면 신재희가 공부에 싫증낼까봐.
처음에는 쉽게 높은 점수를 얻어내게 만들고, 좋은 '상품'을 받고 공부에 재미 붙이게 만들 생각이었다.
마치 '게임'처럼.
보통의 게임들이 그랬다. 처음에는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빠른 레벨업과 빠른 캐릭터 성장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유저가 재미를 붙이게 만들었다.
그런 이후에 고난이도 던전 뺑뺑이를 강요하는 등으로, 게임을 불편하게 만드는 진입장벽을 세웠다. 이미 재미를 붙여서 게임을 떠나지는 못하는데 편함을 추구하는 유저들은 캐쉬질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게임사는 그렇게 돈을 벌었다.
신재희의 경우도 쉽게 날 따먹게 할 수 있게 해 공부에 진입장벽을 낮출 생각이었다.
그녀가 더 이상 날 따먹지 않으면 못 살게 된다면... 그때야 어려운 문제를 풀게끔 진입장벽을 높일 생각이었다.
'그때 가서는 '보너스 점수' 준다면서 봉사 활동 같은 선행 같은 거 하고 오라고 해야지. 교내 동아리 활동 같은 걸로 상 받아오라거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학업우수상 타오라고 하거나. 그럼 봉사 점수나 생기부에 적힐 좋은 말 많아져서 좋은 대학에 가기 수월해지고 그러겠지.'
바로 오늘 '이왕 몸 대주기 시작한 거 신재희를 갱생시키자'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재희야. 시험 문제는 다 만들었어."
"그럼 내놔."
"밥은 먹고 하자. 누나들 배 고프겠다."
"그럼 나 빼고 밥 먼저 먹어. 난 문제 다 풀고 나갈게. 나 지금 머릿속이 공부한 것들로 꽉 차있거든? 밥 먹다가 까먹으면 어쩔 건데?"
"아, 그래도 재희야. 다 같이 캠핑왔는데 너 혼자 안 먹는 건 좀... 대신 보너스 점수 10점 줄게. 밥 먹고 하자."
"20점."
"하아... 15점 줄게."
"17.5점."
"하아, 알았다. 17.5점."
어차피 다 맞추라고 낸 시험 문제들이라 100점도 쉬울 거였다.
보너스점수를 주든 말든, 몸을 대주게 될 것이었다.
'근데 자꾸 걱정되네. 밤에 재희랑 자리 비워도 되려나. 괜찮겠지? 어차피 친오빠랑 여동생 사이인데.'
슬슬 저녁식사 만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신재희가 덥썩 내 손을 붙잡았다.
"야. 만약 올백 맞으면 어쩔래? 특별한 보상 같은 거 더 없냐?"
"아니, 재희야... 올백 맞는 상품이 네 취향에 맞춰서 해주는 거잖아."
내가 때리는 거.
"근데 이번에 보너스 점수 붙었잖아. 올백 맞으면 117.5점이 되는데? 특별 보상 없냐?"
"아..."
신재희가 잔머리 만큼은 뛰어났다. 그 사실에 놀랐다.
맨날 이상한 궤변으로 자신을 때리도록 구타를 유발하는 통에, 신재희를 좀 무시했는데.
'아. 그 멍청한 언행이 다 자기 성벽을 누리려고 했던 잔머리였구나... 그래. 이왕 대줄 몸...'
"뭘 원하는데?"
"별 거 아니야. 소원 하나만 들어줘."
"별 거 아니긴. 소원인데 어떻게 별 거 아니냐?"
"아, 잠깐이면 끝날 일 시킬 거야."
"변태짓이지, 그거."
"크흠..."
"변태짓 맞네. 이 변태년아."
"어허. 착해진 여동생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야. 알았어. 올백 맞으면 소원 들어줄 테니까, 고기 굽는 거 세팅하는 거나 도와줘."
"알았으."
내가 침실텐트 밖으로 기어나가려고 엎드리자, 신재희가 내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난 깜짝 놀라서 텐트 밖을 봤다. 두 여자가 불멍하고 있었다.
뒤를 노려봤다.
"야... 누나들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나도 언니들이 불멍하는 거 확인하고 때린 거거든? 그리고 누가 엉덩이 들이대래. 때리고 싶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