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누나 친구한테 따먹힘 * (93/201)



〈 93화 〉누나 친구한테 따먹힘 

"누나랑 여동생한테 예쁨 받고 있구나?"
"그런가?"

예쁨을 받고 있긴 했다. 그런데 그 예쁨이 너무 무거워서 탈이었다.

텐트에서 나온 우리 둘은 캠핑장에 깔린 파쇄석을 밟으며 걸었다. 다양한 모양과 색을 가진 텐트를 지났다.


파쇄석의 영역이 끝나고, 산책로 표지판 옆으로 숲길이 나있었다.


"누나, 산책로가 저 다리까지 이어져있을까?"


최아란이 내 물음에 멀리 보이는 돌다리를 쳐다봤다.


"글쎄.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우리 한  끝까지 가볼까?"
"응."

산책로는 강변에서 떨어진 곳에서 시작됐다.

산책로 초입에는 텃밭이 보였다. 겨울이라서 아무것도 자라있지 못하고 눈으로 덮여있었다. 아마 캠핑장 주인이 춥지 않은 계절에 취미삼아 관리하는 텃밭 같았다.


숲길에는 사람들이 오고 간 발자국이 있었다.

소나무 숲이었다. 솔잎에 눈이 끼어있었다.

"준아."
"응?"
"손 잡아도 돼?"
"안 돼."
"어, 그, 그래..."
"잡고 싶어?"
"어..."


손을 내밀자 최아란이 깨질까봐 조심스럽게  손을 쥐었다. 우리 둘 다 겨울 온도에 차가워진 손이었다.


"춥지?"

최아란은 그렇게 물으며 내 손을 자신의 주머니 속에 가져가 넣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부스럭거리는 기척에 올려다봤다 청설모가 보였다. 나뭇가지 위에 있던 청설모는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쏜살같이 내려와 어딘가로 달아났다.

"쟤는 겨울잠  자나?"
"그러게."
"귀여웠지, 우리 준이처럼."
"하핳..."

좀... 그녀의 멘트가 오글거렸다.

산책로는 점차 강변에 가까워졌다. 돌다리 하고도 가까워졌다.


산책로의 앞길이 나무로 가려지지 않게 되자, 이 산책로가 돌다리까지 이어져있음을  수 있게 됐다.


"준아."
"응?"
"혹시 내가 마음에 안 들어?"


요즘 카톡에서 물음에도 대충 자음만 사용해서 대답하고, 코스트코에서 장볼 때도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 캠핑장에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종일 잠만 잤다.

최아란이 바보가 아니라서 내가 자신에게 거리를 두고 있음을 느낀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그렇게 느껴져서. 아니면 다행이고..."

지금 '막상 사귀어보니 별로네요'하고 터뜨릴 필요 없었다. 강간 유발을  타이밍도 아니었으니.

"아니야. 나 누나 좋아해."
"'임시' 딱지 뗄 정도로?"


우리는 아직 '임시'로 사귀는 것이었다.

"..."


내가 말을 아끼자 최아란이 조용히 말했다.

"미안. 내가 조급했네.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참아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
"며칠 안에 대답해줄게."
"그래...?"


산책로는 돌다리 근처에서 끊겼다.


여기까지 캠핑장 구역이니 되돌아가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서있었다. 그리고 허리 높이 만한 녹슨 펜스가 세워져있었다.


그런데 이 펜스는 '보여주기'용이지 바깥으로 나가는 걸 막는 역할은 하지 못했다.

몇 걸음은 옆으로 걸어가면 펜스를 우회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준아, 돌아갈까?"
"아란이 누나. 저 다리 한 번 건너가보자."
"그럴까?"

펜스 너머로는 겨울이라 쉬고 있는 논이 있었고, 돌다리로 들어가는 논길은 트랙터가 지나다닌 자국이 남아있었다. 돌다리 위도 마찬가지로  줄의 자국이 오랜기간에 걸쳐 찍혀있었다.


 오래된 돌다리를 여전히 농부들이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돌다리는 자동차 한 대만 지나갈 너비였다. 그런데 난간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걸어서 지나가는 게 위험해보였다.

우리는 그 위를 건너갔다.


"준아, 물고기."
"어디?"


최아란의 가리킨 강물에 작은 물고기 떼가 보였다.


겨울이지만 흐르는 강물이라 살만한 모양이었다.


돌다리를  건너 반대편에 도착했다.

길이 양갈래로 나뉘어져있었다.

산장 쪽으로 가는 길은 강변에서 약간 거리 있어, 강변과 길 사이에 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나무가 벽처럼 가려져 강과 강 너머를  수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강 건너편 캠핑장에서는 이 길을 걷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거리가 좀 있긴 한데. '으슥한 곳'으로 제격인데?'

이젠 그 산장만 확인하면 됐다.

"아란이 누나, 캠핑장 건너편에 산장있던 거 알지?"
"어. 거기 가보자고?"
"귀찮아?"
"아니! 나도 가보고 싶어. 준이랑 더 오래 있을  있으니까 귀찮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운데? 나는 준이가 춥고 다리 아플까봐 걱정돼서 그랬지."
"산장 안이 어떨까 궁금했어. 가보자."
"흐흫... 그래."


최아란은 내가 뭐만 하면 웃음을 흘렸다.

우리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겨울인 지금에는  길을 오고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흰 눈이 도화지처럼 덮여 깨끗했다. 뒤를 돌아보면 소나무 사이로 우리가 찍어둔 발자국만 있었다.


"준아. 너는 나에 대해 궁금하진 않니?"


관심이야 있었다. 알몸은 어떤 자태일지, 유방은 어떤 형태이고 생으로 만지면 감촉은 어떨지. 유두는 어떤 색이고, 유륜은 얼마나 넓을지. 보지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고, 그 안에 박으면 어떤 맛이 날지.


물론, 최아란이 말한 건 그녀의 신상 정보와 성장 배경에 대한 것일 거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자들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네.'

김하늘과 신재연, 신재희는 '신재준'의 기억을 토대로 그녀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냈다.


그런데 내가 공략하고자 한 '정수린'과 '최아란'에 대해선 딱히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정 드니까."
"뭐?"
"금방 헤어질 지도 모르는데 정들면 마음 아프잖아."

'정수린'과 '최아란'과는 몸을 섞고 다음날 아침, 쿨하게 헤어지는 원나잇 파트너 같았으면 했다.

나는 한 여자에게 한 번 따먹히면, 이젠 그 여자 말고 다른 여자한테 따먹히고 싶었다.


그런데 나 한 번 따먹었다고 해당 여자가 계속 질척거리면, 다른 여자한테 따먹히는데 방해를 받을 확률이 높으니 싫었다.


"나는 위로 언니가  있어. 일란성 쌍둥이인데 어렸을 때부터 날 따돌리는 못된 언니들이었지."

최아란 제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에게 정을 붙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저러는 것 같았다.

나는 잠자코 들어주기로 했다.

'최아란은 섹스파트너처럼 꾸준히 만날 계획이었으니까 알아도 나쁘지 않겠네. 그런데... 최아란의 친언니들이면 역시 미녀겠지?'

기회가 된다면 그녀들에게도 따먹히고 싶었다.

"내 언니들은 나보다 더 똑똑해. 말도 잘 하고. 그리고 사악하지.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내 탓으로 돌려. 난 그런 언니들 밑에서 자라 가지고 너랑 재연이, 재희가 친하게 지내는 걸 보니까 부럽더라."
"그래도 누나의 누나들. 사실 누나 좋아하지 않을까?"
"그렇기는... 한 것 같아. 꼬박꼬박 내 생일 챙겨주는 거 보면. 맨날 케이크에 내 얼굴 박아버리고 하는 거 보면, 날 괴롭히는  주목적인 것 같지만."
"누나, 생일이 언젠데?"
"1월 4일."
"얼마 전에 지났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흐흫... 고마워. 준이는 생일이 언제야?"
"2월 29일."
"어? 윤일이네?"

'신재준'과 '오석준'의 생일은 같았다.


최아란은 내 손을 잡고 있지 않던 손으로, 핸드폰은 조작해 날짜를 확인했다.

"올해는 2월 29일이 있구나."
"없으면 없는대로 28일을 생일로 쳐."
"그래도 4년마다 돌아오는 생일이라 느낌이 다르겠다."
"어린 시절엔 그걸로 엄마가 놀렸어."
"뭐라고?"

나도 덩달아 '내 이야기'를 꺼내서 그런지, 최아란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스며들어있었다.


"재희가 나보다 누나라고. 내가 6살 때였나 그랬을 거야."

10년을 훌쩍 넘은 기억은 '신재준'에게 오래된 기억이었다. 그런 오래된 기억들은 불완전하게 인상적인 부분부분만 내게 전달되어있었다.

"난 4년마다 생일이니까 2살인데. 재희는 5살이래."
"흐흫... 그거 듣고 어떻게 했어?"
"내가 어리니까  아나? '어 이상하네? 재희가 내 동생인데?' 그런데 엄마가 하는 말이 틀릴 리 없다고 생각해서 한동안 재희한테 누나라고 불렀어."
"흐흫... 귀여워. 너희 어머님 계산에 따르면, 지금 준이는 몇 살이야?"
"올해 5살이겠네."
"준이는 다섯쨜?"
"누나? 오글거리니까 혀 짧은 소리는 좀..."
"미, 미안."
"그래도 귀여웠어."
"윽... 안 할게."
"왜? 귀엽다는 말 싫어?"
"나 여자니까, 귀엽다는 소리 듣는 건 좀..."
"다시 한 번 해봐."
"뭐를?  짧은 소리?"
"응."
"너 오글거린다며..."
"아, 해봐."
"다섯쨜."
"흐흫..."
"흐흫... 아, 내가 해놓고 오글거리넹..."

산장에 도착했다. 바닥에 시멘트를 굳히고, 그 위에 나무로 벽과 천장을 지은 산장이었다. 외관은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은 것처럼 더러웠다.


우리가 나무 계단을 오르니 삐끄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정문을 밀고 들어가니 쉽게 열렸다.

"콜록. 흐... 먼지로 가득하네."


최아란이 기침을 했다.

나도 우리가 걸을 때마다 솟아오르는 먼지 때문에 코가 간질간질거려 기침을 했다.

산장 바닥에는 망가진 낚시대와 회를 떠서 먹고 버리고 간 듯한 초장 플라스틱통 따위가 굴러다녔다. 테이블은 없고, 넓은 장의자가 벽을 따라 놓여있었다.

''으슥한 곳'으로 괜찮네.'


바람을 막아주고 있어서 바깥보다는 따듯했다. 먼지가 많은  문제였지만 그건 좀 고생해서 청소하면 되었다.

무엇보다 안  벽은   없이 나무 내장재로 마감되어, 여기서 불을 켜도 빛이 바깥에 새어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장의자는 먼지를 털고, 외투를 깔아두면 섹스할 때 침대로 쓸 법했다.


반대쪽에도 문이 나있었는데 그곳으로 나가니 나루터가 보였다.

강이 보였고, 강 너머로 다양한 텐트가 지어진 캠핑장의 모습이 보였다.


산장 벽에 심하게 녹슨 캠핑용 의자가 기댄채 서있었다. 몇 년, 혹은    이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루터로 다가가니 군데군데 나무바닥이 부서진 게 보였다. 그 구멍으로 강물에 빠질  있어 위험해보였다.

지금은 멀쩡해보이는 나무바닥도 사실 썩어있어, 올라섰다가는 사람 몸무게를  견뎌 무너질지 몰랐다.


"이 산장 꾸미면 캠핑장 아이템 될  같은데."


최아란이 중얼거렸다.


나도  마디 보탰다.

"이 나루터도 보수한 다음에, 캠핑장에도 나루터 만들어서 배로 오갈  있게 하면 괜찮겠다. 보트도 즐길 수 있는 캠핑장? 이러면 사람들  몰리지 않을까?"
"오, 굿아이디어. 그런데 우리 아이디어로 남 잘 되면 배 아프니까. 캠핑장 사장한테는 말해주지 말자, 준아."
"흐흫... 나도 그 생각함."
"흐흫..."

우리는 다시 산장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열어두었다. 환기기 시키기 위해서였다.


겨울 바람이 솔솔 들어와 산장 내부가 금세 추워졌지만, 먼지를 계속 먹는 것보단 나았다.


"준아, 오래 걸었으니까 쉬었다 가자."
"응."


최아란은 내 손을 놓고, 손수건을 펼쳐다가 장의자에 깔았다.

원래 세계에서는 내가 여자에게 해줬어야할 매너를, 역으로 내가 당하니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땡큐."
"별 말씀을."


 세계의 남자처럼 그녀의 매너를 받아들였다. 내가 손수건 위에 앉으니, 그녀는 먼지 가득한 내 옆에 그냥 앉았다.

그녀는 내 손을 다시 가지고 가더니 두 손으로 꼼지락거렸다.

"준이는 손도 귀엽네."
"누나, 변태야?"
"아, 미, 미안."


그녀는 가지고 놀던  손을 얼른 돌려주었다.

최아란은 어색함을 느꼈는지 뭔가를 말하려는데, 그만 '지뢰'를 밟았다.


"준이는 어머님이 보고 싶어?"

아까 내가 '엄마' 이야기를 해서, 이 주제를 끌어올린 듯했는데 사실 불편했다.


'엄마'하면 어머니한테 버림 받은 '신재준'의 기억이 떠오르고, 그 기억에 첨부된 슬픔이 내 감정을 적셨다. 괜히 울적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과거라서 '엄마' 얘기 들어도 타격은 그리 없지만,  의지와는 상관없이 울적해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 얘기는 좀..."
"아, 미안..."

'으슥한 곳'도 확보했고, 그녀와 단둘이 됐으니 진도나 뽑아볼까 싶었다.


난 최아란을 바라봤다.

내가 바라보자 최아란은 외꺼풀의 눈을 호선으로 그렸고, 빨간 색정적인 색이 칠해진 입술도 호물선을 그렸다.


"왜 그렇게 봐? 누나 얼굴에  묻었니?"
"예뻐서."
"..."


내 말에 최아란의 눈이 진지해지고, 미소도 옅어졌다.

화가  게 아니라 발정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화난 얼굴과 발정난 얼굴은 구분이 어렵긴 했다. 또한 화난 여자나 발정난 여자나 날 따먹으려고 구는 게 똑같았다.


최아란이 내 뺨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엄지기  아랫입술을 살짝 눌렀다가, 내 턱으로 떨어졌다.

"준아, 키스해도 될까?"

김하늘에게도 잘 먹힌 그 대사를 사용했다.


"누나가 하지 말랬는데..."
"비밀로 하면 돼..."


내가 눈을 감아주자 최아란의 입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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