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누나 친구한테 따먹힘 * (81/201)



〈 81화 〉누나 친구한테 따먹힘 *

나도 내심 놀랐는데, 나예성이 '떠보는 것'이라고 생각해 부정할 생각이었다.


"나예성, 뭔 헛소리야. 도대체 뭘 근거로 그러냐."
"김하늘, 쟤가 볼라 여유만만이라서."
"뭐?"
"쟤는 맨날 뭐 마려운 개마냥 네 눈치 보기 바빴거든. 재준이, 넌 모를 수도 있는데. 네가 보는 쳐다보는 와중엔 짐짓 여유로운  해댔으니까. 근데 네가 딴데 보잖아? 그럼 네 눈치 봐. 그런데 오늘은 그런 거 없더라? 엄청 여유롭고, 세상  가진 것처럼 당당하고. 그런 느낌?"


나예성이 '신재준'과 김하늘의 절친이었기에  수 있던  같았다

"최소 둘이 사귀게 됐거나 아님 갑자기  맞아서 섹스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 근데 너희 둘이 사귄다면 김하늘이 볼라, 자랑하고 싶어서 나한테 톡이라도 보냈을 거거든? 근데 안 보낸 거 보면. 너희 둘이 섹스한 거라고 생각했어. 틀렸냐? 틀렸으면 미안하고."

정확했다.


나와 김하늘은 서로 마주 보았다.

"그런  없었어."


내 눈빛을 부정하라는 지시로 읽었는지 김하늘은 부정했다.

'나예성은 믿음직한 녀석이고 의리도 있지. 게다가 내가 놈의 약점을 쥐고 있기도 하고.'

20살 많은 여자랑 사귄다는 사실이 그의 약점이었다.


나예성에게 내 성벽을 밝힌 다음 도와달라고 할까도 생각해봤다. 망보기라든지, 알리바이 조작이라든지.


'하지만 굳이 밝히지 않아도 나예성이 도와줄 것 같고, 지금이 딱히 급한 상황도 아닌데 벌써 내 역린을 공개할 필요는 없겠지.'


나중에 손이 하나라도 절실한 위기가 닥쳐올지 몰랐다. 그러면 그때 가서 나예성에게  성벽을 공개해도 늦지 않을 거였다.

'김하늘하고 떡치는 사이가 된 것도 밝혀서 좋을 것도 없어.'


뭣보다 내가 지금 최아란과 사귄다는 사실을 알릴 생각이었다. 김하늘도 아는 것을 동성 베프인 그녀에게 감추기 이상하니까.

첫 여친이 생긴 와중에 김하늘하고 섹스를 했다니... 역시 이상했다.


"예성아. 장난이 심하다."
"장난 아니고 진지하게 생각해서 말한 건데... 어쨌든 내가 이상한 생각을 했네. 미안."


나예성이 명령조로 말했다.


"김하늘, 네가 뿜은 음료수 묻은  네가  먹어."
"넹."

나예성의 추리력에 음료수를 뿜었던 김하늘이었다. 그 음료수가 튄 과자를 그녀가 자신 앞에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얘기했다.

"너흰 뭔 일 없었냐?"

나예성의 여행 이야기가 바닥났고, 그는 나와 김하늘에게 바통을 넘겼다.


김하늘이 입을 열었는데, 자기 얘기가 아닌 내 얘기를 했다.

"재준이 과외 시작했잖아. 들었어?"
"고딩인데 과외를 한다고? 학생은 초등학생?"

내가 대답했다.

"아니, 예비 고1."
"오... 과연 전교 2등. 한 살 어린 애를 과외하네."
"하늘이 덕분이었지."
"올. 벌써부터 자기 남친 챙겨주네, 김하늘쉑."
"킥킥, 나 아니면 누가 재준이 챙겨주겠냐."
"과외 알바는 할만 하디?"
"몸 안 쓰는 일이다 보니까 쉽긴 하더라."
"올. 역시 사람은 머리가 좋아야 몸 고생을  하는구만. 학생은 성연중 출신 애인가?"
"어. 정수린이라는 애인데. 아냐?"
"모르겠네."


화제를 바꿔볼까.


"재희, 일진회 그만둔대."
"오, 잘 됐네. 너 재희 맨날 욕하면서도, 재희가 일진 그만뒀으면 하고 바랬었잖아."


김하늘이 아는 척했다.

"재준이가 재희한테 자기 때리라고 했대."
"큭큭, 그게 뭐야? 설마 그걸로 재희가 정신 차린 거?"
"그렇다는데."
"레전드네. 근데 재준아, 어떻게 맞은 건데?"
"회초리로 내 손바닥 때리라고 했어."
"몇 대?"
"26대."
"많이도 맞았네. 그런데 숫자가 왤케 애매하냐?"
"원래 50대 맞기로 했는데. 재희가  이상 때리기 싫어하더라고."
"올... 고생했다."


김하늘이 끼어들었다.

"재희, 지금 CGV에서 알바하잖아."
"걔가? 와, 확실히 얘가 고쳐지긴 했나보네."


나도 신재희가 좋게 변했다고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입에서 씁쓸한 맛이 났다.


"어? 재준아,  표정이 왜 그러냐?"

나예성이 물었다. 씁쓸한 티가 표정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화장실 때문에."

표정이 변한 핑계거리를 화장실로 들며 일어났다. 김하늘이 장난스럽게 진지한 말투로 덧붙였다.

"급했나보군."


음료수를 먹은 것으로 방광이 차긴 했기에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았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나예성 [내 여친이 너도 같이 저녁 먹자는데]
나예성 [와라]

화장실 문 너머 거실에 있는 나예성이 김하늘 몰래 톡을 보냈다.


'신재준'은 나예성의 애인과 함께 식사한  없었다.

가끔 나예성을 마중하러  타고 나온, 그녀와 인사하고 가볍게 대화 정도 몇 번 했을 뿐이었다.

(나) [둘이 데이트하는데 내가 왜 가]


마침 나는 캠핑 멤버 단톡방에서 '친구네서 저녁을 먹을 듯'이라고 말했었다.


나예성 커플과 함께 먹으면 그 핑계가 거짓이 아닌 진짜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김하늘과 먹으면 되지, 굳이 잉꼬커플 앞에서 눈치보며 먹을 필요는 없었다.


나예성 [정식으로 소개시켜주고 싶은데]
나예성 [안 되나]


나예성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말하는  처음이었다.


'신재준'은 나예성의 여친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20살이나 많은 여자가 남중생을 건드리다니, 이러면서.


나예성도 그런 '신재준'의 심중을 알았기에 자신의 여친에 대한 이야기를 피했다. 그래서 '신재준'은 나예성의 애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랬던 나예성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말하는 건, 아마 뭔가 중요한 변화가 생겨서 그런 듯했다.

 커플은 유럽 여행을 17박 18일이나 다녀왔다. 여러 사건도 있었을 것이고, 섹스도 졸라게 쳤을 것도 분명했다.

'설마 그때 신호위반이라도 저질렀나?'

(나) [ㅇㅋ 알았다]
나예성 [굿]
나예성 [김하늘은 내가 알아서 보내버리겠음]

'하늘이가 내가 최아란하고 사귀게 된 걸 알게 돼서, 빡침의 섹스를 당할  알았는데.'


나예성 때문에 다음에 당할 듯 싶었다.

'그럼 오늘은 섹스를 신재연하고만 하려나.'

신재연과의 섹스할 걸 생각하니까 겁이 났다.

'아, 신재연 보지는 왜 그렇게 기분 좋은 거야. 오늘도 빨리 싸진 않겠지?'


조루처럼 빨리 싸게 되니까 남자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자 김하늘과 나예성이 뭔가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지랄.  말고 다른 사람이랑 사귄다고?"
"아니, 내가  들킬 거짓말을 해. 당사자한테 물어보던가."


'아, 내가 최아란하고 사귀기 시작했다는 얘기했나 보네.'


나예성이 물었다.

"재준아,  여친 생겼냐?"
"응."
"진작 좀 얘기 좀 하지."
"어제 사귀었는데, 오늘 얘기하면 빠른 거 아니냐?"
"그래서. 여친 생기니까 좋냐?"


나예성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반대로 김하늘의 표정은 굳어갔다.

난 잠깐 어떻게 말할까 하다가 나중에 '김하늘의 분노의 강간' 당하기 보다는, 김하늘의 마음을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김하늘한테 미안하니까.


"별로더라고."


나예성과 김하늘의 표정이 서로 반대가 되었다.


나예성은 기대와 반대되는 내 말에 굳었고, 김하늘은 내 연애가 단 하루만에 잘 안 풀리는 것 같자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나예성은 슬쩍 김하늘을 노려봤다. 김하늘은 얼른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왜? 막상 사귀니까 이상한 사람이야?"
"아니, 전혀 그런 건 아닌데. 내가 그분이랑 사귄 게..."

이유를 뭐라고 들까. 그냥 몸매가 꼴리는 미녀라서 좋았다고 할 수는 없고.


"우리 누나 같아서 그런 거였거든."


키도 신재연과 비슷했고, 가슴이 큰 것도 그렇고. 나이도 그렇고.

최아란과 신재연은 유사한 요소가 많았다.

신재희에게도 최아란과 사귄 이유를 신재연과 비슷해서 라고 했으니, 딱 적절한 핑계였다.

"시스콤 새끼. 쯧쯧. 재연 누나 같아서 사귀어봤더니, 재연 누나가 같지가 않았냐?"
"아니, 그분 되게 착해. 싫어진 것도 아닌데... 그냥 또 다른 친누나가 생겨서 기분 좋았던 것 같아. 막상 사귀니까 재연 누나랑 사귀는 것 같아서 이상한 느낌? 이게 아닌데, 싶은 느낌?"
"섣불리 사귄 거네."
"그러게. 그런데 사귄지 하루 만에 헤어지자고 하는 것도 웃기고."

김하늘이 짐짓 걱정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 마음으로 그분하고 사귀는 건, 서로 안 좋을 것 같은데."


나예성이 김하늘에게 쏘아 말했다.

"넌 그냥 재준이 커플이 깨지면 해서 좋아서 하는 말이잖아."
"아, 아니... 진짜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난 둘에게 말했다.

"일주일 정도 사귀어보고 생각해보려고."

물론, 이미 결정은 나있었다.

'오석준' 때, 날 차버렸던 여자를 모방해서 '사귀어보니까 아닌 것 같네요. 좋은 누나동생으로 지내요'를 시전할 생각이었다.


일주일보다 짧을 수도 있었다. 곧 출발할 캠핑 때 시전할지도 몰랐다.


두 사람의 표정이 이번 만큼은 일치했다. 걱정하는 낯.


그래도 속마음은 다를 거였다.


김하늘은 그 며칠 동안 내가 최아란에게 진짜 빠지게  것을 걱정할 것이고, 나예성은 그냥 베프의 연애가 걱정되는 것일 터였다.

TV VOD로 영화 한 편 보았다.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때, 김하늘이 운을 뗐다.

"아, 배고파. 우리 저녁 뭐 먹냐."
"김하늘 넌 집 가라. 나랑 재준이랑 둘이 먹게."
"헐. 나 여자라고 왕따 시키는 거? 재준이 너는 오늘은 그분한테 저녁 안 만들어주냐?"

영화를 보다가 내가 이번주 월화수, 연달아 최아란을 위해 저녁식사를 차려줬던 얘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예성은 무슨 말이냐고 묻지 않았다.


"오지 말라고 했어. 예성이도 귀국했고 하니까."
"사귀어 보니 마음이  안 맞는 것도 있고?"
"김하늘, 가라. 남자끼리  얘기 있으니까."
"아, 알았어. 저녁 맛있게 먹어라. 난 쓸쓸하게 집가면서 싸이버거나 사먹어야지."

김하늘이 떠나자 나예성이 말했다.

"난  씻는다."
"그래."

슬슬 여자친구를 만나야하니 꾸밀 생각인 모양이었다. 샤워는 후딱 하고, 머리 세팅은 공을 들였다. 남성용 비비크림을 바른 뒤, 남성용 향수를 뿌리는 녀석이었다.

말끔한 옷을 차려입은 녀석이 말했다.


"고맙다. 가기 싫었을 건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까지 만나자는 거냐?"
"우리 결혼하려고."
"허..."


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나예성이  반응을 살피듯, 내 얼굴을 빤히 보길래 얼른 대답했다.

"축하한다."
"땡큐."
"그런데 혼인신고하려면 만18세는 되어야하지 않냐?"
"그전까지는 동거하려고."
"부모님 허락은?"
"내 아이 생겼다고 하면 어쩔  없이 받아주지 않을까."

설마 했더니 진짜 신호위반이었다.


"그분, 임신했냐? 결혼 전제로 동거하겠다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
"응, 여행 첫 날을 런던에서 보냈거든? 그런데 분위기에 취해서 생으로 해버렸다. 그 다음부턴 조심했는데, 귀국하기 전에 로마에서 테스트기로 검사해보니까 임신했다더라고."
"어... 축하한다."
"고맙다."

남고생 예비 아빠라니.

원래 세계로 치면 여고생이 임신한 꼴이라고 봐야하는 걸까.


그런데 남 얘기 같지가 않았다.


나도 '남고생 예비 아빠'될 위기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난 피임 조심해야지...'

"여보세요? 누나, 데리러와. 준비  됐어."


그에게 나예성의 애인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들었다. '신재준'의 기억에도 없었던 정보들이었다.


이름은 허현주. 나이는 듣던대로 20살 많은 38살.

직업은 건물주. 성연 시내의 상가 건물 몇 개가 그녀의 것이라고 했다.

'갓물주라고? 이 놈, 인생 폈네.'

아내가 나이가 많고 뚱뚱한 게 아쉽지만, 나예성은 늙어죽을 때까지 부족함이 지낼 수 있을  같았다.


"슬슬 나가자."

허현주가 우릴 데리러 왔는데, 우리는 나예성의 집에서 5분 정도 걸어간 다음에야 타야했다.

혹시 이웃한테 나예성이 허현주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들켜, 이웃 사이에서 구설수가 오르내리는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얘도 참. 성벽 때문에 고생하네. 아닌가? 어쩌면 허현주가 가진  때문에 사귀는 것일 수도 있나?'

'신재준'의 기억을 보자면, 사실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수 없었다.

'신재준'이 눈치 없는 놈은 아니어서 '너  아줌마랑 사귀는 거 돈 때문이야?'하고 물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베스트프렌드니까, 좋게 좋게 전자일 것이라고만 여길 뿐이었다.

허현주는 건물주답게 고급외제차를 끌고 왔다. 나예성과 나는 나란히 뒷좌석에 올랐다.

"재준아, 안녕."
"네, 안녕하세요."

허현주는 '신재준'의 기억으로든, 저번에 나예성이 톡으로 보내준 사진으로  모습으로든. 인심 좋아보이는 푸근한 아줌마상이었다.


"누나. 오늘도 태연시 갈 거야?"
"응. 괜찮지?"
"어."

 사람은 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옆 도시인 태연시에서 데이트를 해온 모양이었다.

"아. 누나, 재준이한테 다 말했어."

주어는 생략됐지만 임신과 동거, 결혼 얘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그래? 미, 민망하네... 하하..."

그녀는 차를 출발시켰다.

"재준아.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뭐든  먹어요."
"그럼 한식 레스토랑 어때?"
"괜찮아요."
"누나, 그때 갔던 스카이라운지 가게?"
"그러려고. 혹시 별로야?"
"거기 좋더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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