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겨울방학 *
"너 지금 끼부리는 거잖아."
신재연의 말은 정답이었다. 최아란이 놀리는 맛이 있는 여자라서 좀 성적으로 놀렸다. 그런 내 행동을 '끼 부린다'고 표현한다면 적합할 거였다.
그렇지만 나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는 나 잘 때 성추행하는 주제에..."
누가 누구를 나무라는 건지.
친동생을 정신적으로도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신재연은 친동생의 신체를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신재연은 내 몸을 독점하고 싶어하는데, 최아란이 취해질 것 같자 질투심을 느끼는 듯했다.
"지금 누나 말은, 내가 '남창'처럼 굴고 있다, 이 말인 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말한 게 아니야."
"그럼 뭔데?"
"넌 아직 어려. 그러니 더 많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러다가 진짜 어울릴 만한 여자를 만나겠지. 내 생각엔... 최아란과 네 사이는 끝에서 절대 좋지는 못할 것 같아."
"에휴... 모태솔로 아니랄까 봐."
"뭐?"
"누나... 사귀는 게 꼭 결혼하는 거야? 요즘엔 초딩도 그렇게 생각 안 하겠다. 사귀다가 헤어질 수도 있는 게 당연한 걸,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재준아... 내가 걱정한 건. 네가 아란이를 대놓고 유혹하니까..."
"가슴 만지는 거 때문에?"
"어."
난 여기선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그게 유혹하는 거야?"
"그럼 뭐겠어."
"그럼 나는. 최근 며칠 동안 누나랑 재희를 유혹했던 거야?"
마침 탓할 만한 상대도 있었다.
신재연의 입이 커졌다.
나도 묻고 나서 아차했다. 진짜 신재연은 내 가슴 마사지에 '유혹'을 당한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뒤따르는 걱정도 있었다.
'설마 신재연 뿐만 아니라 재희도 내 몸에 발정난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신재희는 내 말에 따라 일진도 그만둔다고 했고, 알바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재희... 자기가 알바해주는 그 대가로 가슴 마사지해달라고 했었지... 설마 재희도 나를? 시발, 그건 진짜 아니겠지. 어떻게 위아래 남매가 쌍으로... 아, 재희는 나중에 생각해야겠다.'
당장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집중할 때였다.
"나랑 재희가 잘못한 것 같네. 재준아, 호감이 생긴 여자라고 막 가슴 만지면 안 돼. 나랑 재희는 남매니까 가슴 마사지 해줘도 이상한 오해 안 하는데, 최아란은 그렇지 않으니까."
신재연은 내가 최아란 가슴을 만졌던 걸 '유혹'하려고 그런 게 아니란 걸 깨달은 듯했다.
그대신에 '가슴 마사지'를 대수롭지 않게 남매에게 하게 된 것에 비롯된 잘못된 성지식 때문에, 내가 최아란의 가슴을 함부로 터치했던 거라고 여기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누나, 엿들었다며? 아란이 누나도 그 말과 같은 취지의 말을 했었고, 난 아란이 누나한테 '유혹'하는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어."
"하아... 재준아. 여자는 그런 말을 들어도, 결국엔 '오해'하고 말아. 흥분해서 널 억지로 어떻게 할 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누나 말은 이거야? '가슴 만지지 말라'? 안 만질게. 됐지?"
신재연 몰래 만지면 그만이었다.
"그럼 계속 사귄다?"
이젠 신재연이 '재벌과 결혼할 목적으로 사귀는 짓은 하지 마라'라고 할 명분이 사라졌다.
신재연은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신경질적으로 다 핀 담배잎스틱을 휴지통에 버렸다.
'신재준'에 기억에 따르면, 신재연이 생리도 아닌데 지금처럼 신경질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 사귀고 싶으면 사귀어야지."
신재연은 할 말 다 끝났다는 듯, 컴퓨터로 인터넷 기사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할 말 있는데.'
신재연과 얼굴을 한 번 붉힌 이 상황. 그녀가 저지른 성추행을 들춰내기가 애매해졌다.
'하지만 안 말하면, 오늘 밤에 진짜 막장될 지도 몰라.'
오늘 밤에 수면 강간당할 지도 몰랐다.
친남매 사이에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신재연이 제대로 된 보통의 가족으로 남기를 원했다.
"누나. 나도 중요하게 할 말 있어."
"말해."
"앉아 봐. 앉아서 얘기하자."
나는 먼저 앉으면서 다리 위에 베개를 두었다.
신재연이 내 앞에 마주 앉아 양반다리를 했다.
베개로 다리를 가려두길 잘 했다.
신재연의 반라에 익숙해져, 평소에는 서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설 수밖에 없었다.
폭유의 무게 때문에 신재연은 자꾸만 등을 구부정하게 하게 됐다. 그러자 살이 접힌 뱃살은 군살이 없었고, 그 아래로는 도끼자국이 보이는 삼각팬티 밖에 없었다.
저 천쪼가리 한 장 너머에 있던 보지 속을 내 손가락이 드나들었음이 떠오르자 흥분되었다. 코의 미세혈관에 코가 쏠려 찡하게 아파왔다.
김하늘도 운동으로 가꾼 몸매라서 상당히 괜찮았지만, 신재연에 비교할바 못 되었다. 김하늘은 신재연에 비하면 아직 아기였다. 김하늘이 더 성장해 매력이 더 물오른다고 해도, 가슴 만큼은 신재연과 절대 상대가 안 될 거였다.
최아란은 처음 꽐라가 되어 찾아왔던 때, 착 달라붙고 노출 많았던 미니원피스를 입고 있어 몸매를 확인할 수 있었다. 키도 신재연과 비슷하게 크고, 가슴도 거유였다. '과하게 크지 않아 부담되지 않는 타입'으론 가장 빼어난 몸매일 듯했다.
정수린은... 신재연과 비교하면, 신재연에게 미안할 정도였고.
신재희의 팬티바람 차림을 본 적 있었다. 신재희가 삐쳐서 보일러를 펑펑 틀어 집에 더워졌던 날에 말이다. 신재희가 살만 더 찌고, 신재연처럼 운동으로 몸매 관리를 한다면 신재연 정도로 매력적이게 될 잠재력이 있었다. 신재연보다 가슴 크기가 더 크고 키는 확연히 작으니까, 신재연과는 다른 느낌의 미녀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내 이상형은 키가 크고, 과하게 큰 가슴을 지닌 여성이었다. 내가 평생 보아온 여자들 중에 신재연이 가장 나를 꼴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친누나였다.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
신재연은 내가 다리 위에 올려둔 베개 밑이 궁금한지, 그 부분을 빤히 쳐다봤다. 나는 괜히 베개를 쥔 손에 힘을 넣었다.
"누나. 나 잘 때 그만 만져."
신재연의 눈과 입을 크게 벌렸다.
"우린 친남매잖아. 그럼 안 돼."
신재연은 고개를 숙였다. 좌절한 듯 바닥을 보며 한참 동안 있었다.
그녀와 같은 미녀가 내 말에 깊게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미지의 쾌락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 쾌락을 무시했다. 신재연한테 그런 것을 느끼면 안 됐다.
신재연은 몇 분이 지나도록 고장난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말을 보채니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린 사이로, 깊은 구덩이 같은 시커먼 눈동자가 날 노려봤다.
"깨어 있었어?"
"어... 중간에... 이젠 그런 짓 하지 마. 누나가 하는 건 범죄라고."
"알았다. 미안하다..."
신재연은 싱겁게 사과했다.
그러나 나는 안도를 느끼지 못했다.
'사과하는 사람의 얼굴이 전혀 아니잖아...'
"그런데 재준아."
"왜."
"그 베개 좀 치워봐."
"싫어."
"어서."
신재연이 내 베개를 빼앗으려고 쥐었다.
아. 지금 신재연, 확실히 맛 갔다.
'설마 일이 이렇게 흘러갈까 싶었긴 했는데, 진짜로 이렇게 흘러가기냐...'
신재연이 내가 자던 중에 성추행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 신재희한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단 둘이 있을 때, 말할 수밖에 없었는데... 상황이 안 좋아졌다.
'도망칠까...'
"누나, 나 화장실 좀..."
신재연에게 베개를 빼앗김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달리고 싶은 다리를, 일부러 걷게 만들었다.
"누, 누나?"
하지만 신재연에게 손목을 잡혔다.
"나 화장실 간다니까."
"가."
말로는 가라면서. 신재연은 내 어깨를 돌려 자신의 정면에 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다리 사이를 내려다봤다.
발기해버린 자지가 옷 밖으로 다 티가 났다.
그녀가 날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누나, 미쳤어?"
"뭐가?"
"왜 화장실을 같이 가?"
"네가... 도망갈까 봐."
내 속이 다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속을 드러내었다.
신재연은 화장실까지 들어올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화장실 문 앞에서 감시하려는지 팔짱을 끼고 섰다.
"누나. 방으로 가있어."
"싫어."
"지금 누나 이상한 거 알지? 뭐하자는 거야."
"도망갈까봐. 지켜보려는 거야."
"내가 왜 도망을 가... 그리고 갈 때도 없어."
"예성이네 있잖아."
'걔는 내일에나 한국에 돌아온다고.'
"아니면 하늘이네도 있고."
'내가 밤에 잘도 찾아가겠다. 하늘이네 부모님 걱정하게.'
"그도 아니면... 최아란의 집도 있고. 네가 재워달라고 하면. 새벽 중에라도 달려오겠지."
"누나? 헛소리 좀 작작하자?"
"화장실 급한 거 아니야? 볼 일 보고 나와."
"하아..."
난 들으라고 한숨을 내뱉고 화장실에 들어왔다.
'도망갈 수 있을까?'
화장실에 나있는 쪽창문.
작더라도, 내 머리가 충분히 빠져나갈 크기였다.
'하지만 도망가서 뭐해?'
신재연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이나, 신재연에게 강간당하는 것이나. 둘 모두 내가 바라던 '가족'이 파괴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었다.
'도망치지 말고 어떻게든 타일러야...'
그때 화장실문이 열렸다.
"아무것도 안 하고 뭐하냐?"
"야... 미쳤냐? 남동생이 화장실에 있는데 문을 왜 열어."
이 화장실문 만큼은 제대로 안에서 잠글 수 있었다. 다른 방문들과 다르게.
난 잠글 수 있음에도, 그 잠금 버튼의 소리에 신재연이 자극받을까 잠그지 않았었다.
"재준아. 누나한테 '야'라고 하면 안 되지."
"누나, 미안해... 그러니까 문 좀 닫자?"
나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순순히 화장실 문을 닫았다.
'돌겠네... 하늘이나 아란이를 불러서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재희도 마찬가지고.'
나 혼자서 성욕이 폭주한 신재연을 잘 타일러야만 했다.
그런데 내가 거는 브레이크에 걸려줄지 모르겠다...
나한테 몰래 했던 성추행을 들키자 아예 맛이 간 모양이었다. 이왕 들킨 김에 아예 강간까지 해버릴 작정 같아 보였다.
'개좆 같다, 진짜...'
겨우 진짜 가족을 얻었는데.
여태껏 '신재준'을 대신해서 신재연을 집에서 내조했고, 신재희도 바로 잡았는데.
발정난 신재연 때문에 모든 게 어그러지게 생겼다.
'그 방법 써볼까.'
내가 정수린한테 할 때도 통했고, 김하늘이 나한테 걸 때도 통했던 수단.
'자살 협박...'
발기했던 것만 가라앉힌채, 손만 씻고 화장실을 나섰다.
빌어먹을 자지가 신재연의 반라를 보고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볼 일 다 봤어?"
"어."
"이리 와."
"누나, 손 좀 놓지?"
신재연이 내 손목을 잡고 큰방으로 데려왔다. 그녀는 날 세워놓고 전기장판 위로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전자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연기가 큰방 안에서 너울거렸고, 신재연의 어두웠던 눈에는 약간 생기가 돌아왔다. 담배를 빤 순간 제정신을 차렸으면 했지만...
"재준아, 나 좋아해?"
역시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친누나로서 좋아해."
"기분 나빴어? 내가 너 잘 때 몰래 키스하고, 성추행하고... 그래서?"
"괴로웠지. 가족끼리 이러면 안 되잖아."
"서로 좋아하면... 안 될 건 없지."
"시발, 좀...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아니, 그래. 너 말대로 서로 좋아하면 친남매끼리 떡도 칠 수 있지. 근데 그건 서로가 서로를 이성으로 볼 때 얘기잖아. 난 널 이성으로 안 본다고."
"재준아, 미안해. 지금 누나가 힘들어... 여태껏 너 나 잘 도와줬잖아? 이번에도... 도와주면 안 될까...?"
"야. 신재연. 정신차리자. 어? 나 잘 때, 네가 했던 거 봐준다고 했잖아.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가자고. 그러면 되는데, 왜 자꾸 일을 안 좋게 만들려고 해?"
"그게 문제야."
"뭐?"
신재연은 빨더니 연기를 바닥을 향해 내뱉었다.
"왜 봐줬어, 재준아... 봐주니까, 더 나쁜 짓해도 봐줄 것 같이 느껴지잖아."
"미친..."
봐줬다고 지랄이었다.
안 봐줬으면 가족 관계가 파탄났을 거다. 그래서 봐주니까 강간을 당해서 가족 관계가 파탄날 위기에 처했다.
가불기가 따로 없었다.
"재준아. 아직 여자랑 자본 적 없지?"
"하아... 시발... 그딴 걸 왜 네 남동생한테 물어보세요."
"하늘이랑 잤어?"
"그딴 질문하지 말라고, 시발년아. 진짜."
신재연을 타이르려면 욕해선 안 되는데.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아니, 어차피 말로는 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거였다.
"나 건들면, 나 자살할 거야."
신재연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사색이 되어갔다.
역시 자살 협박은 효과적인 모양이었다.
"나 건들지 마. 알겠어?"
"..."
"알겠냐고, 시발년아. 대답하라고."
"그래, 같이 죽자..."
"하아씨, 염병할 년... 진짜 개 같은 년."
역으로 자살 협박 당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