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겨울방학 *
"그건 두고 봐야겠는데?"
"으... 재준아, 누나 좀 살려줘... 나랑 사귀어주겠단 거야, 싫다는 거야?"
"음... 어쩔까. 나도 누나가 좋은데."
"진짜?!"
"그런데 아직 잘 모르겠어. 왜냐면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일요일이잖아. 오늘 수요일이고. 고작 4일 밖에 안 만났어. 그리고 누나는 나이도 많고, 어른이지. 내가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동의해?"
"그, 그렇긴... 하네..."
"그럼 임시로 사귀어볼까?"
"진짜?!"
"흐흫... 되게 좋아하네, 이 누나."
"흐, 흐흫..."
"예쁜 얼굴 망가진다. 바보처럼 웃지 마."
"아, 응."
'재준이도 역시 나한테 호감 있었어. 나이 차이랑 만난지 얼마 안 됐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감이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임시로 사귀는 게 어디야.'
자꾸 입가가 귀에 닿으려고 했다. '임시 애인'에게 조금이라도 점수 깎이고 싶지 않아서 그 웃음을 애써 참았다.
신재준이 큰방으로 나갔다.
최아란은 어미새를 따르는 새끼처럼 졸졸 따랐다.
"찬 바람 새어나오니까 문 닫고."
"아, 응."
신재준이 시키는대로 공부방 문을 닫았다. 소년이 전기장판 위에 앉자, 최아란은 마주해서 앉았다.
"우리 누나는, 우리가 이렇게 둘 만의 시간 가지라고 자리 피해준 건가?"
"아,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톡 해야겠다. 밖에 추울 텐데."
"누나는 몸이 뜨거워서 별로 안 추울 걸."
"아, 걔 진짜 추위 안 타는 것 같더라. 어릴 때, 뭐 한약 잘못 먹었다며?"
"응, 우리 누나랑 많이 친한가봐?"
"흐흫... 재연이나 나나. 친구 없던 듀오라서. 친구되자 마자 살아왔던 얘기 막 주고 받고 했거든."
"나도 그런 친구 하나 있는데."
"정말?"
"걔도 나이 많은 여자랑 사겨."
"오... 얼마나 많은데?"
"20살 더 많대."
"헉... 7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네."
"아, 맞다. 이거 우리 누나도 모르는 정보니까. 절대 말하지 마?"
"알았어. 절대로 안 말할게."
최아란은 입을 지퍼로 닫는 시늉을 했다.
"누나, 가슴 만져도 돼?"
신재준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허공을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어? 마, 만져. 얼마든지."
'앗! 어른답게 안 된다고 했어야 했는데!'
보통 남자가 여자의 유방을 터치하는 건, 프렌치키스 이후의 일이었다.
키스를 길게 이어하다보면 흥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손은 무의식 중에 여성의 젖가슴을 주무르고 있기 마련이었다.
보통의 연인끼리의 유방 터치는 그렇게 트기 마련이었다.
남자는 아기였을 때의 본능으로 여자의 유방을 주무르고 싶고, 젖꼭지를 빨고 싶어했다. 서로 예의차리느라 숨겨두었던 그 본능을, 한 번 트게 되면 거침없이 보여주게 되는 거였다.
남자가 여자의 유방을 만진 다음엔? 섹스로 넘어갔다.
남자한테 음란한 성감대를 만져진 여자는 발정할 게 뻔했고, 남자는 여자를 발정시킨 대가로 자지를 세워주어야만 했다.
최아란이 인터넷 글로 연애를 배운 바에 따르면 그랬다...
'으, 재준아... 진도가 너무 빠르잖아... 아무리 이성관계를 모른다고 해도, 이건 좀...'
즉, 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키스' 단계도 건너뛰고, '섹스' 단계 직전 단계로 넘어온 셈이었다.
'재준이가 어제 맥주 때문에 술취해서 내 가슴을 만졌던 게 아니었어... 그냥 재준이는 육식적인 아이였던 거야. 이럼 곤란한데... 재준이가 성인될 때까지 섹스하면 안 되는데... 나 자꾸 시련에 들게 하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신재준이 너무 야했다.
여자 젖가슴에 빠져서 음욕이 차오른 얼굴. 멈출 기세가 없어보이는 손놀림.
브래지어 밑에서 연인의 손아귀에 우겨지는 지방이 느껴졌다.
이깟 지방덩어리에 남자가 흥분했다.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그 사실의 그 남자의 씨앗을 받고 싶어서 아랫배가 간지간질해졌다.
어제 가슴 애무를 당할 때도 그랬지만, 오늘은 '임시 연인' 상태가 된 뒤에 가슴 애무라서 그런지... 팬티가 금세 젖어버렸다.
"후우... 재준아... 누나 가슴이 그렇게 좋아?"
"응... 혹시 만져서 싫어?"
"아니, 난 좋은데..."
최아란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소년의 옷 속에 숨겨진 흉기를 발견하고 바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얘 지금... 발기했어. 아, 나도 발정하지 말라고!'
흉악적인 사이즈의 대물 자지. 저 대물이 질에 삽입되면 분명 아플 텐데도, 아랫배 밑에 자궁은 그 자지의 두드림을 원하고 있었다.
'지금 재준이는 나랑 섹스하고 싶어서 선 거 아니야. 얘는 나한테 확실한 사랑이 아직 없는 애잖아. 지금 선 건, 내 젖가슴을 만지고 있으니까... 생리적으로, 어쩔 수 없이 선 거지... 그러니까 발정하면 안 돼. 재준이를 덮치면 안 돼... 나는 재준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플라토닉 러브를 해야...'
"누나."
"응?"
"생으로 만져봐도 돼?"
어, 돼.
최아란은 또 다시 섣부른 허락을 뻔했다.
'아, 안 돼. 직접 맨살로 접촉해버리면... 그땐 내가 폭주해리고 거야...'
최아란은 지금도 초인적으로 참고 있었다.
<어? 지금이면 신재준을 따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야스각인데?>라고 자꾸만 음침한 자아가 유혹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여기서 속살을 신재준이 더듬는다?
<어? 신재준이 유혹하는 거 맞네, 병신이냐? 왜 안 먹음? 이해를 못하겠네?>라고 음침한 자아가 유혹할 게 뻔했다.
최아란은 알고 있었다. 그때는 그 유혹에 넘어가고 말 것이란 걸...
"안 돼. 그리고 재준아..."
최아란은 너무나도 아쉽지만 신재준의 손목을 잡아 유방에서 떼었다.
신재준은 지금 뭐하냐는 듯 쳐다봤다.
"여자 가슴은 함부로 만지면 안 돼."
"왜? 괜히 오해할 수 있어서? '얘가 날 좋아해서 신체 터치를 해오는구나'하고?"
"어, 어..."
어제 가슴 애무를 말리면서 신재준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신재준이 그걸 똑같이 말했다.
"왜? 완전히는 아니지만... 나 누나 좋아하는 거 맞잖아. 그럼 가슴 만져도 되는 거 아니야?"
"아! 그때랑 지금이랑은 사정이 좀 달라."
"뭐가 다른데?"
'재준이는 손목도 부드럽... 아, 아니지.'
최아란은 붙잡고 있던 신재준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사귀기 전에 스킨십하면 오해할 수 있고... 사귀는 후에 스킨십하면... 그, 서, 성행위하자는 뜻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넌 나랑 성행위하고 싶지 않을 거잖아. 그, 그렇지...?"
"흐음... 맞아. 성행위는 별로고, 가슴은 만지고 싶어."
"여, 역시 그렇지?"
"성행위는 별로고, 가슴은 만지고 싶어."
"왜 같은 말을 또..."
"오해할까봐 만지지 말라며. 내가 이렇게 말해뒀으니 이젠 오해는 안 할 거 아니야. 그럼 이제 만져도 돼?"
"으아... 재준아, 누나 좀 살려줘... 너 왜 그렇게 가슴을 좋아하니?"
"만지면 기분 좋아서."
"그, 그렇구나... 하지만 안 돼."
"아, 왜 또."
"그, 그게..."
여기가 바로 행복한 지옥일까. 최아란은 웃으면서도 찡그린 얼굴이 되었다.
그런 행복한 지옥은 곧 끝나게 되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신재연이 돌아온 것이었다.
고백을 하고, 그 고백에 대한 답변을 받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고 판단한 걸까. 그래서 돌아온 듯했다.
'하아... 재연이가 와서 다행이다... 재준이, 장난아니네... 성인이 될 때까지 섹스 안 하고 참을 수 있을까...'
플라토닉 러브? 세상에 그딴 게 있을리가 없었다.
/ / /
신재연이 돌아왔다. 최아란과 나는 좀 더 떨어져 앉았다.
최아란이 내 가랑이 사이를 보더니, 외꺼풀의 눈을 화등잔 만하게 크게 떠서 속삭였다.
"가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최아란의 거유를 만지느라 발기한 자지였다. 방바닥에 있던 베개로 가렸다.
'우리 아란이, 귀엽네... 가슴도 만지는 재미가 출중하고...'
최아란은 울 듯, 웃는 듯, 얼굴이 새빨개진 게 확실히 발정난 얼굴로 내 가슴애무를 받았다.
'최아란은 진짜 조심해서 따먹혀야 돼... 안 그럼 좆 돼.'
정수린과 김하늘도 어느 회사 사장의 딸이었지만, 최아란과는 그 급이 달랐다.
그녀는 재벌가 핏줄이었다. 신재연이 다니는 회사, 대한민국 제1대기업의 오너 일가.
조심하려고 그녀와 사귀어주겠다고 했을 때, '임시' 딱지를 붙인 거였다.
'그런데... 나 괜히 그런 말을 했나. 기분 싸하네.'
<"'진심'으로 날 이렇게 표본으로 만들어고 싶은 거야?">
<"와, 무섭다. 영원히 속박 당하는 연애.">
최아란을 골려주기 위해서, 그녀가 준 선물을 그런 식으로 놀렸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조심, 또 조심하자...'
나중에 날 따먹은 최아란이 쿨하게 떠나주길 바랐다. 가끔씩 친구의 남동생의 안부가 궁금하면 찾아오는 그런 여자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수린의 경우를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적으니... 내가 그러도록 만들어야겠지...'
신재연이 큰방 문을 열었다. 그녀가 든 편의점 비닐봉투 안에는 내가 시킨 카카오72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정색한 얼굴로 나와 최아란을 번갈아봤다.
최아란이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왔냐."
최아란은 나랑 '임시'로 사귀게 되자 너무나도 기뻐서 눈까지 흐려진 모양이었다. 신재연이 기분 얹짢아하는 게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떻게 됐냐?"
"사귀기로 했어. 흐흫..."
"그래... 밤이 늦었다. 그만 가라. 집에서 쉬어야지."
"아... 폐가 안 되면 좀 더 있다가 가고 싶은데."
"나랑 재준이가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으음, 그러냐?"
"아란이 누나, 어차피 내일 또 올 거지?"
"그럼. 우리 재준이 보러와야지. 흐흫..."
"아, 맞다. 어제 말해놓고 깜빡했는데 단톡방 초대할게. 캠핑 중에 먹고 싶은 거 올려."
"알았당."
나는 최아란을 현관문까지 마중나갔다.
"흐흫... 아, 나 좀 이상하지? 왜 자꾸 웃음이 나오지? 흐흫..."
"누나, 기분 좋아보이네."
"어... 기분 너무 좋아. 이게 다 네 덕분이야."
최아란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녀한테 웃어보이며 생각했다.
'아란이한테는 쉽게 따먹힐 것 같은데... 2박 3일이나 붙어다니는 캠핑도 있고... 그럼 이젠 신재연...'
최아란이 떠나면 신재연과 중대한 이야기를 해야했다.
"왜? 뭔가 걱정이라도 있어?"
"아, 아니. 누나, 잘 가."
그만 가보라니까, 최아란은 얼굴을 가까이 하고 속삭였다.
"혹시 재연이 때문이야?"
나도 어째서 최아란이 그걸 아는가 싶어 놀랐다. 그녀에게 속삭였다.
"왜 그렇게 생각해?"
"식사하는 내내 분위기가 이상해서. 오늘 재연이도 좀 정신이 딴데 가있었고."
그녀의 말에 여러가지로 안심했다. 최아란이 특별히 뭔가 아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신재연, 본인도 자기가 했던 짓 때문에 심란한 것 같은 같았다.
'그러면 이젠 자기 남동생이 잘 때, 성추행하지 않으려나? 그냥 얘기하는 건 넘어갈까...'
"재준아?"
"아. 누나, 잘 가."
"응. 흐흫... 잘 있어. 내일 또 봐."
최아란은 다시 한 번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등을 돌렸다. 집 앞에 주차된 차에 올라타, 앞좌석 전등을 켜 자신의 얼굴을 잘 보이게 했다.
외꺼풀의 눈이 아주 좋아라, 호선을 그렸고 손을 흔들었다.
난 손을 마주 흔드는 대신, 어서 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녀는 약간 눈을 팔자를 눕히며 불쌍해보이는 표정이 되었다. 앞좌석 전등을 끄고, 최아란이 떠났다.
'그러고 보니 '신재준'의 첫 여자친구구나.'
'임시'지만.
난 현관문을 닫고, 부엌 옆 방에서 전기장판과 이불을 세팅했다.
큰방 이불장에서 이불을 꺼내올 때, 신재연의 꼴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팬티바람이 되어 컴퓨터 앞에 앉아, 심각하게 전자담배를 빨고 있었다.
'음... 저 분위기는 '자책'하는 분위기가 아닌데?'
더 큰 범죄를 저지를까 말까, 그런 번뇌를 하는 듯한 느낌?
'그러면 강간인데.'
"하아..."
난 그냥 애초에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
"누나."
"응?"
"얘기 좀 할까. 아란이 누나한테 그랬잖아. 나한테 할 중요한 얘기있다고."
"..."
신재연은 내 말에 마우스 커서를 의미없이 움직였다.
"누나?"
"재준아."
"어."
"역시 생각해봤는데. 너랑 아란이랑 사귀는 거, 아닌 것 같다."
"뭐? 갑자기 뭔 소리야.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하려면, 일이 이렇게 되기 전에 말하든가. 뭐하자는 건데?"
신재연은 전자담배를 깊게 마시고, 오랫동안 연기를 뿜었다.
그녀는 스틱에 꽂힌 담배잎을 내려보며 말했다.
"어차피 '임시'로 사귀는 거라며."
난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니, 이 여자가...'
"엿들었어?"
"..."
"언제부터?"
갑자기 혼자 편의점 간다길래 최아란이 나한테 고백할 자리를 마련해준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카오72를 사온 걸 보면 편의점에 다녀온 게 맞았다.
그런데 편의점은 가까웠고, 왕복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을 거다. 그 시간만을 제외하면 다 엿들을 수도 있었다.
'이놈의 방음 안 되는 집...'
"네가 최아란의 고백, '임시'로 받아준 거 듣고, 편의점에 갔어. 그리고 돌아왔을 때. 최아란이 널 설득하고 있더라."
'최아란이 날 설득? 아...'
여자의 가슴 만지지 말라는 설득이었다.
최아란은 계속 날 설득했지만, 내가 그 설득에 맞서자 최아란은 쩔쩔 맸다.
"하아... 엿들은 건 날 걱정해서 그런 거라고 치고. 그래서? 갑자기 왜 헤어지라는 건데."
신재연은 고개를 들어 날 노려봤다. 잔뜩 화가 나있는 얼굴이었다.
"너... 우리집이 가난하다고. 최아란한테 장가가려는 거지?"
"그게 뭔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