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겨울방학 * (63/201)



〈 63화 〉겨울방학 *

'누구지? 누가 떡치는 거지?'


 사실을 이번 기회에 알아차리지 못하면 계속 신경 쓰일 것 같았다. 그러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고 공무원 시험에 떨어질 확률이 높아질 거였다.

'겨우 몇  분 공부 안 했다고, 합격 여부가 뒤바뀌진 않을 테니까...'

이번에  십 분을 포기하고 궁금증을 해결해, 앞으로 몇  간의 공부를 수월하게 하는 게 합격률을 높일 수 있는 길일 거였다.

결국 공부를 포기하고 폰으로 유튜브 어플을 켰다. '신기한 영상 시리즈'를 보며, 창문을 흘낏거렸다.


영상을 몇 편 다 보고서야, 헐떡이는 소리가 사라졌다.


'떡치는 건 끝났나... 아. 화장실 가고 싶은데.'

방광이 가득차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장실로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집안 속 인물이 빠져나갈지도 몰랐다.

그렇게 허벅지를 비비며 참는 와중에, '흉물'로 걸어와 들어가는 인물을 발견했다.

 남매 중에 막내였다.

'쟤는 중삐리 주제에 젖탱이가 뭐 저리 커...'


예비 고1이지만, 아직 중학교 졸업식을 안 치뤘으니 중딩으로 봐야 맞았다.

 그래도 큰 자기 언니보다도 커다란 유방을 지닌 녀석, 신재희.

'그럼 지금 집에 있는 건 '신재준'이겠네.'

저 흉물에서 성행위가 벌어지는 동안 '신재연'은 회사에 있었을 것이며, '신재희'는 외출한 상태였다가 집으로 들어갔으니까. 소거법에 의하면 답은 정해졌다.

'남자애가 발랑 까졌네.'


일진인 신재희가 남자를 데려와 섹스를 해댔다면 모를까,  순진한 줄만 알았던 신재준이 그렇다니 충격이었다.


'신재연, 얘는 가장이면서 뭐하는 거야.'

한지유는 자신이 신재연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생각했다. 피와 살이 될 중요한 조언들 말이다.


그래서 신재연이 나쁜 길에  빠지고 대기업인 CY전자에 입사했던 것에, 자신의 지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남동생에 관한 조언은 해주지 못했다. 신재연이 남동생 얘기만 꺼내면 화를 내면서 하지 말라고 막았기 때문이었다.


'저봐. 가난한 남자애들은 몸을 쉽게 대준다니까. 그걸 신경쓰라고 조언해주려고 했던 건데. 신경 안 쓰니까 저렇게 되잖아. 쯧쯧.'

그리 생각하면서 호기심이 해결됐으니 화장실로 향했다.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공부에 집중했다.

'질서위반행위규제법...'

한참 어거지로 머리 속에 정보를 집어넣고 있다가,  닫히는 문소리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창문 너머를 바라보니 낯선 여자애가 그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키가 작아서 중딩 같은데, 허리까지 닿았을 머리를 멋들어지게 웨이브를 만들고 있었다. 얼굴에는 해리포터 안경을 착용 중이었다.


'저게 재준이 여친? 입고 있는  보니 돈 많은 애 같네.'



* * *


화요일.

한지유는 집 안에서 담배를 피지 못했다. 아버지가 싫어했기에 어머니도 집에서 담배를 못 피었다. 어머니도 못 피는데 딸인 자신이 필 수 있을 리 없었다.


평소에는 주택 옥상에 올라가서 폈다.


한지유는 부모님과 함께 1층에서 살았는데, 2층에는 신혼부부가 세들어 살고 있었다.


그녀는 2층을 지나면서 생각했다.


'시발. 군대는 다녀와야 여자지.'

미필 상태로 아이를 2명 이상 출산하면 군복무를 면제 받게 되는데, 2층에 사는 부부는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란다. 건강히 쌍둥이를 낳는다면 군면제를 받을 것이었다.


'근데 사실 군대는 안 가는  낫긴 해.'


1명만 낳으면? 얄짤없이 18개월 간의 군복무를 수행해야했다. 대신, 원하면 상근예비역으로 군복무가 가능했다.

'상근예비역하니까 신재연, 그 녀석 떠오르네. 불쌍한 년.'


소녀가장이라는 가정 형편 사유로 상근예비역 신청을 냈지만, 병무청이 일을 개봊같이 해서 현역병으로 가게 됐었다.


신재연은 중고등학생 시절에 한지유한테 약한 모습이나, 고민을 털어놓거나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군대의 봊 같은 것 만큼은 누구에게 토로라도 하고 싶었는지, 당시 병장이었던 한지유에게 SNS를 통해 같이 휴가 맞춰서 나오자고 하고, 함께 술 마시자고 했었다.

그 술자리에서 신재연은 군대  같다고 징징거렸었다. 그렇게 약한 신재연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다.


한지유는 습관적으로 담배 피려고 옥상에 올랐다가, 어쩌면 집에서 나오는 신재준과 만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흉물' 앞에 앉아있기로 했다.

'만나서 조언해야지. 성욕에 휘둘려 실수하지 말라고.'

신재준이 아예 모르는 타인이었다면 절대 이런 생각하지 않았을 거였다.


하지만 자신은 신재연과 친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이웃사촌이었으니 그런 오지랖을 부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재준이... 신재연한테 여친하고 섹스하고 있다고 못 말했겠지? 가족한테 연애 얘기 밝히기 꺼려할 예민한 나이잖아, 고딩이면. 그럼 신재연한테 조언 같은 것도 못 받을 거란 말이지.'

요즘 세상이 어떤 때인가. 초등학생부터 아다를 떼는 시절이었다.


꼰대 같이 성인이  때까지 섹스하지 말란 말을 할 생각 없었다.

'피임 만은 확실히 하라고 나라도 말해줘야지.'


나무의자에 앉아 뻐끔뻐끔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힐끔힐끔 신재준의  현관문을 보기도 했다. 만약 신재준과 우연히 만나지 못하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공부할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담배 땡기면 다시 이 나무의자에서 담배피고. 그러다보면 언젠간 만나지 않을까 싶었다.

'오.'


반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일진인 신재희가 설거지를 할만해 보이진 않고, 일나갔을 신재연이 설거지를 하는 건 아닐 터였다. 신재준일 거였다.


'어쩌면 금방 만날지도...'

"흐으, 춥다."


깔깔이에 잠옷 바지 차림으로는 바깥에 있기 추웠다. 하지만 담배가 아까우니 다 피기로 했다.

담배 하나를 거의 다 피었을 즈음, 정말로 현관문이 열렸다. 신재준의  손에는 음식쓰레기가 들려있었다.


신재연이 군대에서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 깔깔이를 입고 있었다.


'귀엽네.'

가끔 인터넷에 짤로 돌아다니는 더블백을 멘 남고생, ROK ARMY 생활복 입은 남고생 등을 보면 귀여웠다.

깔깔이 입은 남고생인 신재준도 그런 느낌으로 귀여웠다.

"안녕하세요, 누나."
"오, 재준이구나. 안녕."
"..."
"겨울방학이지?"
"네."
"아침부터 집안일 해?"
"예..."
"기특하네."
"하하..."

'조언을 해줘야 하는데... 음...'


입술이 본드로 붙은 것처럼 다물렸다.

'재준이는 어려서부터 나한테 낯을 가렸단 말이지. 그래서 신재연과 다르게 친해질 수 없었고. 내가 할 조언...'

<섹스는 해도 좋은데 피임은 꼭 해.>

'...을 성희롱 발언으로 오해하고 기분 더러워할 수도 있겠어. 그냥 신재연한테 말해서 조언하라고 말해야겠다.'

한지유는 그런 자신이 배려심을 자찬했다.


그리고 나름 위트있는 말이라고 언급했다.

"나랑 커플룩이네?"
"아... 그러게요."

신재준은 계속 얼굴 맞대고 있기 어색하다는 얼굴이었다.

'역시 내가 무서운가?  착한데...'


한지유는 담배 꽁초를 버리고 운동화로 비볐다.

"재준아, 공부 열심히 하고."
"아, 네. 누나도 열심히 하세요."


'아, 귀여워.'

한지유는 옆집 남동생이자 자위할 때 가끔 떠올리곤 하는 신재준을 쓰다듬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공부에 집중이 잘 안 돼 담배가 땡길 때마다 흉물 앞 나무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폈다.

그때마다 추웠지만, 옥상이나 집 앞이나 똑같이 추웠다. 오히려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가 필요한 옥상보다는, 집  나무의자가  접근성이 있고 편했다.

군대에서 담배를 배워와, 전역 이후에도 담배를 끊지 못했다. 요 몇 년 간, 왜 담배를 옥상에서 피기로 고집했는지 후회될 정도로 편했다.


'내가 사는 집도 아닌데. 남들이 내가 저 집에 산다고 여길까봐, 그게 부끄럽다고 생각해 옥상 갔던 거였지.'

생각해보면이 이 나이 먹고, 그딴 남의 눈치를  게 바보 같았다.


어차피 길을 지나치는 행인들이야, 신경 쓸 필요 전혀 없는 사람들인데.


그때 멀리서 두 명의 인영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은 뭐라고 대화를 나눴는데 멀어서 잘 안 들렸다.

캄캄한 밤. 가로등 불빛과 멀리있을 때는 어둡게만 보이다가, 가로등 아래로 오니 얼굴이 보였다.

'재준이네.  옆은... 또 다른 여자친구?'

오늘은 단발 머리 여자와 동행하고 있었다.

어제는 키 작은 웨이브 머리의 여자랑 집에서 섹스를 하더니.


"안녕하세요, 누나."
"오. 재준아, 안녕. 오늘 또 보네? 옆은 여자친구?"
"그냥 소꿉친구예요."
"그래?"

'여친은 아니란 건가... 그럼 어제 집에서 섹스한 애가 여친인 거겠지? 설마 재준이가 여친도 아닌 여자랑 섹스하는 문란한 애... 는 아닐  아니야.'

신재준의 소꿉친구가 인사해왔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둘은 한지유를 지나쳐 집에 들어갔다.

몇 년이 지나도록 보일러실 열쇠를 두는 모양이었다.

현관문을 닫은지 얼마  가, 신재준의 소꿉친구 말이 들려왔다.

"매너가 없네. 집 앞에서 담배를 피냐."

'우리 집앞인데  필 수도 있지, 새꺄.'

방음이 잘  되는 집이었다. 섹스하는 소리도  들리고, 뒷담하는 소리도  들렸다.


"우리 누나도 집앞에서 피는데."
"아, 피, 필 수도 있지. 응, 자기 집 앞인데."

신재준이 핀잔을 받고, 여자애가 얼른 말 바꾸는  들으니 고소해졌다.


'여자애 쪽이 재준이한테 붙잡혀 사나보네.'


피식 웃고 담배를 이어 폈다.

다 피고 담뱃불을 비벼 껐다. 추우니 집으로 돌아가보려는데, 그 집의 화장실에서 샤워하는지 물소리가 났다.

'뭐지? 소꿉친구 데려와서 재준이가 샤워하든, 그 여자애가 샤워하든  이상하잖아...?'


한지유는 담배갑에서  담배를 물었다.

상황이 뭔가 흥미진진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상황의 진상이 뭔지 단서를 더 얻어내고 싶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단서는 얻을 수 있을 거였다.


"재준아~ 나 수건 없다~"

'씻던 것은 여자애쪽...'

"땡큐."


'재준이가 수건 준 모양이고.'


"킥킥. 정액 자꾸만 나오네. 야, 진짜 오늘 몇 번 더 질싸해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맙소사... 재준아...'

"안 돼. 우리 집, 방음 안 돼서 섹스하는 소리 바깥까지 다 들릴 거야."
"조용히 하면 되겠네. 섹스하자, 재준아. 응?"
"안 된다니까."
"우리 재준이도 발기했네?"

신재준과 그 소꿉친구는 뭐라고 더 떠들었다.

여자 팬티를 버리면 누나나 여동생한테 들킬지 모르니 잘 처리해야한다느니, 그런 대화였다.

'심란하다, 심란해... 재준이가 아무 여자한테나 자지 세우는 음란한 애였다니...'


가난한 집안에서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학교에서 전교 2등까지 하는 미소년.


한지유는 직접적으로 도와준 적 없었다. 그래도 불행한 이들을 보면 저절로 드는 측은지심 때문에 세 남매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신재희는 일진이 됐고.

신재준은  여자애, 저 여자애와 섹스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후우, 씨... 이걸 신재연한테 말해야 돼, 말아야 돼?'

말했다가는 신재연이 신재준을 혼내고, 그렇게 혼을 받은 신재준이 가출해서 나쁜 가출청소년들과 어울리지 않을까...? 그런 미래가 저절로 떠올랐다.


말하지 않으면 신재준이 언젠가 누군갈 임신시켜서, 덜컥 미성년 부부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그런 상황이 그려졌다.

'아빠한테 물어볼까.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오. 모르겠네.'


한지유는 심란해져서 줄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혹시 성매매는 아니겠지?'


이 나무의자에서  엿듣다보면 '성매매'인지 아닌지 단서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남녀끼리 친해지고, 쉽게 몸을 허락해주는 것이라면, 피임만 조심하면 되니까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벌써부터  받고 몸을 함부로 놀리고 있는 거라면, 나중에 인생이 막장이 될 것이었다. 성매매가 확실하다면 신재연한테 반드시 말할 작정이었다.

"하늘아, 너 팬티 사와. 누나 올 지도 몰라."
"헐. 그래?"


집안 어른인 신재연의 출현을 두려워하는 소년소녀가 당돌한 것 같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랬다.


"야. 너 향수 냄새."
"아, 씻어야겠다."


신재준의 소꿉친구가 짧은 스웨터 원피스 밑에 검은 반바지를 입은채 집에서 나왔다.


한지유는 관심없는 척 담배를 피기만 했고, 그 애는 슬쩍 한지유를 봤다가 말없이 지나쳤다.

화장실에서 신재준이 샤워하는지 물소리가 났다. 서둘러 샤워한 건지 금방 물소리가 그쳤다.

신재준의 소꿉친구가 작은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팬티 사왔나보네.'


신재준은 소꿉친구에게 저녁밥을 해주려는 건지 도마 위로 뭔가 썰기 시작했다.

'와... 소꿉친구랑 아무 짓도 안  척 하려는 거지? 재준이... 이렇게 당돌한 아이였구나.'


SUV 차량 한대가 헤드라이트를 빛내며 다가왔다. 처음 보는 차량이라 무시할까 했는데, 가로등 불빛이 조수석을 비추었다. 그 차에 신재연이 타고 있음을 알게 됐다.

'마침 신재연 왔네. 재준이가 팬티 숨겨야한다느니 한 거 보면, 신재연은 모르는 게 분명한데. 말해? 말아?'

차가 멈췄고, 신재연과 낯선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재연아, 안녕."
"안녕하세요."
"옆에는 친구야?"
"직장동료예요."
"그래?"


신재연의 친구면 같은 학교 후배라는 생각일 거라는 생각에 반말했다.


하지만 직장동료라는 소리에 한지유는 자신이 말실수한  깨달았다.

그러나 사과하기는 것도 이상하고, 입을 다물었다.


신재연의 직장동료는 인사도 안 하고, 가자는 듯 턱짓했다.


한지유는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신재연의 직장동료가 기분 나빴지만, 자신이 먼저 실수하기도 했고 어차피 자신의 인생과 무관한 사람이니 무시하기로 했다.

"싸가지가 없네. 나이도 우리보다 몇 살 안 많을 것 같은데."
"한 살 많아."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쯧."


'허... 싸가지 없는 년들.'


한지유는 자신이 실수한 건 맞는데, 들으라고 뒷말하는 건 더 실례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신재연 직장동료는 뭔데, 집에 데려온 거지? 설마 또 재준이랑 관계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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