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겨울방학 * (62/201)



〈 62화 〉겨울방학 *

"널 어장관리하는 게 아니라, 네가 갑자기 집에 찾아가면 김하늘이 오해할까봐 이러는 것일 걸? 너한테는 아무런 감정 없고, 역시 김하늘을 좋아하는 거야, 재준이는."
"아닌데. 나한테 관심있는 거 맞는  같던데."
"그건 네 희망사항이고 새끼야."
"아씨... 아닌데... 너희 집 가자."
"술 취했구만, 이 새끼."
"야.   남동생이 걱정도  되냐?  밤에, 여자애랑 집에 단둘이 있는데?"
"너랑 재준이, 단둘이 있었으면 걱정할 텐데. 하늘이랑 재준이, 단둘이 있으면 별로 걱정 안 된다."
"아씨..."
"뭐가 걱정되는 건데? 김하늘이 재준이를 덮치기라도 할까봐?"
"성욕 들끓는 여고생이잖아..."
"나참. 넌 성욕 없냐?저번에 아다 떼자고  헌포 가자던 년이. 그리고 만약 그런  있다고 해도 걱정마라. 재준이는 싫다면 딱 거절할 애고, 김하늘도 소꿉친구인데다가 싹수가 좋은 애라서 재준이가 싫어하면 순순히 물러날 애야."


김하늘이면 정식으로 사귀자고 하겠지, 그전에 신재준을 덮치려고 굴어서 점수를 왕창 깎아먹지는 않으리라.

'음? 잠깐. 그런데 하늘이의 고백을 재준이가 거절했잖아.'


신재준에게 직접 들은 얘기였다.

'김하늘하고 사귀지, 왜 최아란한테 호감을 가졌냐'하고 물어보니까, 이미 김하늘한테 고백도 받았는데 자기가 거절했다고 했었다.

그렇게 고백 거절을 당하고도, 꿋꿋이 신재준을 놀이공원에도 불러서 놀러다니는 김하늘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었다.

'잠깐... 하늘이,  새끼. 고백 거절당한 거에 나쁜  먹고, 단둘이 되자 덮치려거나... 그럴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평소라면 생각해놓고 스스로 어이없어할 의심이었지만, 술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있었다.


신재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가자."
"엥? 어딜? 너희 집?"
"어. 운전 되지?"
"음주운전하라고?"
"내가 할까? 장롱면허이긴 한데."
"미친... 됐다. 내가 할게. 너도 재준이 걱정되는 거지? 여자애랑 둘이만 있어서."
"어."
"가자."

최아란이 술계산을 했다. 최아란이 운전하고 어제 갔던 신재연의 집으로 가는 동안, 신재연은 토스 어플로 술값 절반을 계좌 이체했다.

금세 도착했다.


"사람이 있네."

깔깔이에 잠옷바지 차림. 집주인 딸이 집  나무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아, 저 시발년."
"응?"
"아니야.  몰라도 돼."


집주인 딸은 신재연보다 1살 더 많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1학년 선배랍시고, 신재연에게 '공무원이 답이라느니', '알바보단 스펙보다 쌓으라느니' 온갖 오지랖을 떨어댔다. 그녀가 집주인 딸이니 에둘러 무시하며 자리를 피했다.


또한  여자는 신재준에게도 관심이 있어서, 가끔 신재준한테 여친 없는지 묻기도 했다. 자기보다 8살이나 어린 애인데. 그때에도 집주인 딸이니 최대한 점잖게, 신재준한테 관심 끄라고 경고했었다.


최아란은 집의 담벼락과 나무의자 사이에 차 한  주차할 공간이 있어 그곳에 차를 댔다.

집주인 딸은 줄담배를 피고 있었는지 의자 아래에 담배 꽁초가 여럿 버려져있었다.

"재연아, 안녕."
"안녕하세요."
"옆에는 친구야?"

'싸가지 없는 년.'


신재연이나 최아란은 성인이었다. 학생 시절이라면 모를까. 처음 본 최아란에 대해 물을 때는 '친구분이셔?' 등으로 존댓말해야 예의에 맞았다. 최아란이 듣고 있는 상태니까.

더군다나 최아란이 더 나이 많을수도 있는 거 아닌가.

"직장동료예요."
"그래?"

최아란도 떨떠름했는지 그냥 집에 들어가자는 듯 턱짓했다.


두 여자가 집에 들어갈 때, 집주인 딸은 괜히 붙잡지 않았다.

"싸가지가 없네. 나이도 우리보다 몇 살  많을 것 같은데."
"한 살 많아."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쯧."

최아란의 목소리는 다 들으라는 것처럼 컸지만, 신재연은 말리지 않았다.


현관문 앞에서부터 신재연은 괜한 걱정을 했음을 알았다.

현관문의 유리 너머로  사람의 실루엣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도마 위에서 김치를 채썰던 신재준이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오지 말랬는데 결국 왔어요?"
"재, 재준아. 난 안 간다고 했는데, 재연이가 갑자기 나보고 집까지 차 태워달랬어."
"야. 너도 얼른 집에 가보자며. 하늘이랑 단둘이 있을  걱정된다고."


신재연은 최아란이 자신을 팔아먹자, 자신도 최아란을 팔아먹었다.

"둘이 아주 친자매야. 둘이 똑같아, 아주. 일단 방에 들어가요. 추우니까  닫고."

두 사람은 들어와 현관문을 닫았다. 세 사람이 서있으니 비좁은 부엌이었다. 술냄새를 맡았는지 신재준이 말했다.

"술 먹고 운전했어요?"
"재, 재연이가 시켰어."
"누나?"
"음..."

신재연은 이번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에휴. 두 사람한테 김치비빔밥 없어요. 두 사람, 어차피 저녁 먹고 왔죠?"
"응..."
"어..."

신재준은 돌솥 속에 참기름을 바르고, 밥을 펼쳐놓은 뒤 김치비빔밥 세팅을 시작했다.

썰린 김치와 콩나물 무침, 썰린 상추와 부셔진 조미김, 일반 고추장.

계란후라이를 얹었다. 참기름과 참깨를 고소하게 뿌렸다. 돌솥 2개에 그렇게 했다. 센 불을 틀었다.


신재연은 남동생이 해주는 돌솥 김치비빔밥을 먹고 싶었다. 고기와 술안주를 먹고 오긴 했지만 아직 위장은 여유로웠다.


"아, 방에 들어가 있으라니까요."


하지만 죄가 있어서, 감히 해달라고는 못했다. 부엌에서 쫓겨나 큰방에 들어섰다.

김하늘은 헤드셋을 낀채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고딩 주제에 화장까지 하고, 스웨터 원피스도 치마가 짧은  입고 있었다. 향수의 향기도 풍기고 있었다.

'재준이가 어땠을지는 몰라도, 김하늘은 오늘 데이트를 즐긴 거였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신재연에게 인사했다.


최아란도 발견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최아란도 말을 높여 인사해주었다.

"저 고등학생이에요. 재연 언니 친구분 같으신데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래? 반갑다."
"재연 언니,  드셨어요?"
"어. 야, 너 재준이 힘들게. 밥 만들게 시키냐?"
"킥킥. 죄송요."
"재준이한테 무슨 주문한 건데?"


이미 부엌에서 보고 왔지만, 괜히 한  물어봤다.

"돌솥 김치비빔밥이요."


김하늘의 말에 최아란이 칭얼거렸다.


"나도 먹고 싶다. 내가 오늘 재준이한테 주문한 건데..."

'얘는 애처럼 뭐하는 거야.'

"야. 우린 나가서 입가심이나 하자. 얘네 데이트하는 거 방해 말고."
"하하... 데이트 아니에요."
"야, 신재연. 얘네 데이트 아니래잖아. 왜 자꾸 데이트래."
"지랄 말고, 가자."

방에서 딱히 이상한 냄새가 나지도 않았고, 김하늘의 얼굴도 새하얀 게 집에 와서 둘이 거사를 치른 건 아닌 모양이었다.


'괜한 걱정했네.'

 사람이 바로 집을 나가려고 하자, 신재준이 물었다.

"벌써 가시려고요? 안 준다는  뻥이었고,  해주려고 했는데."
"흐흫... 재연아. 먹고 가자. 먹고 가자."
"하아... 그럼 난 술이라도 사온다."
"누나, 나도 마셔볼래."
"야.  미성년자야. 뭘 마시려고 해."
"치사하네."
"야, 야. 재연아. 재준이도 마시게 해주자."
"아놔, 이 새끼가. 너도 바람 쐬야겠다. 따라와."
"누나, 편의점 갈 거지?"
"응."
"콜라도. 아, 어묵탕 데우면 되는 거 팔면 그것도 사오고. 김치비빔밥하고 같이 먹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알았다."





/ / /





신재연과 최아란이 나가고 현관문이 닫혔다.


'내가 신재연한테 보낸 톡 보고, 최아란이 우리집에 가자고 할  같은데... 역시 왔네.'

나는 김하늘에게 신재연이 올  있음을 알리고 팬티 사오라고 시켰다.


<야.  향수 냄새.>

편의점으로 출발하기 전, 김하늘이 내 몸에서 묻은 향수냄새를 지적했다. 그래서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덕분에 신재연에게 이상한 오해를 사는 걸 막았다.

신재연과 최아란이 밖으로 나간 소리를 들었는지, 김하늘이 부엌으로 건너왔다.


팔짱을 낀 채, 문틀에 기대었다.

손을 뻗어  볼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방금 재연 언니랑 같이 오신 분이 그분이야? 네가 호감 생겼다는 분."
"어."


지글지글.

돌솥 밑바닥으로부터 누룽지가 만들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사귀지 마."
"몇 번 만나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사귈 거야. 하늘아, 나한테 너무 명령하거나 그러진 마. 나 그런 거 싫으니까."


혹시나 김하늘이 정수린처럼 굴까봐 선을 그어났다.

"알았어..."


 볼을 만지던 손을 내려서 슬그머니 내 엉덩이에 올렸다. 그리고 주물렀다.


간지러웠다.


"손 떼. 이거 옮길 거야. 엄청 뜨거워, 위험해."


 말에 손을 뗐다. 정수린과 다르게 말을 잘 들었다.


"그런데 이불은 갰어?"

신재희가 낮에 개지 않았던 이불. 밥 먹기 위해 개어두라고 김하늘에게 시켜뒀었다.

"네, 파팡."
"아, 파팡하지 말라고."
"킥킥."

부엌  방에서 상을 차렸다. 돌솥들 때문에 무거워서 김하늘보고 옮기라고 시키니, 명령에 잘 따랐다.


'한 번도  썼던 돌솥, 세척해야겠네.'

신재연과 최아란을 위해 2인분을  만들어야했다.


어제 신재연이 사온 돌솥 4개를 다 동원해야했다.


"재준아~  먹냐~?"
"너 먼저 먹어. 누나들 꺼도 준비해야 돼. 아. 내꺼 안 타게,  꺼도 좀 비벼주고."
"알았당."

큰방에서 들려온 김하늘의 물음에 대답해주고, 2인분을 추가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 /






한지유는 어렸을 때부터 집앞에 있는 흉물을 싫어했다.


 흉물은 가난했던 할머니가 세웠던 집으로, 지금은  차례 개조를 거친 상태였다.


원래 외부에 있었던 화장실과 주방도 없앤 뒤, 집을 넓혀 증축하면서 집 안에 마련해두었다.


그런 개조를 거친 게 한지유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 일로, 한지유가 그 사실은 아는  어머니한테 전해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업이 성공한 어머니는 마음씨 고운 아버지를 만났고 자신을 낳았다. 저 흉물 속에서.

한지유는 기억하는 것중에 가장 오래된 기억은, 저 흉물  큰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마주보며 누워있고, 자신은 어머니 등을 보고 누워있던 기억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저 집이 소중한지 허물지 않았다.

한지유가 어렸을 때, 저 집의 벽을 보기 좋게 하려고 연한 녹색 페인트로 칠하기도 했다. 그래봤자 흉한 사람이 분칠한 꼴이라 더 흉하게 보였다.


그런데  페인트를 칠했던 때를 좋았다. 왜냐면 어머니의 사업이 크게 성공한 때였고, 그 흉물 바로 옆에 신축주택을 지어올려 그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었다.

거지 같은 집에서 탈출해낸 것이었다.


흉물에 페이트를 칠했던 건 입주자를 구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었다.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살기도 했고, 가난한 신혼부부가 세들어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세 남매가 거의 공짜로 세들어 살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서 그 연한 녹색이 빛을 바래지니, 오히려 그꼴이 흉한 모습과 어울렸다. 그래서 처음보다  흉해졌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세 남매가 가장 오랫동안 세들어사는 중이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핀다고 했던가.

저 흉물에서 귀여운 남자아이가 튀어나올 때마다 참 신기했다.


세월이 흘렀다.

초등학생이었던 소년은 벌써 고등학생 2학년이 되어, 어떤 여자라도 따먹고 싶어질 만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 연꽃을 따고 싶은 충동이 연도가 넘어갈 때마다 강해졌다.


월요일.

'아, 시발. 누가 대낮부터 떡치고 있는 거야.'


한지유는 '행정법'을 공부하다가 형광펜을 내던졌다.


창문을 닫고 있어도 들려오는 여자가 헐떡이는 소리가 공부에 집중하는 걸 방해했다.

'잠깐. 들려오는 방향이...'


창문을 열었다.


햇볕이 잘 들어오는 남향으로  창문,  앞에는 '흉물'이 있었다.

여자가 헐떡이는 소리는 바로 그 흉물에서 들려왔다.

"허?"


세 남매가 세들어사는 집. 자신이 버리려고 했던 컴퓨터를 아버지가 갖다주기도 했었다.


'막내인가? 아니면 장녀?'


아빠한테 지나가듯 듣기를, 장녀는 작년에 CY전자에 입사했단다. 지금 즈음 일하고 있을 테니, 지금 신음소리의 주인일 확률이 적었다.


 아빠한테 듣기를, 저 집 막내가 일진이 되어 걱정된다고 했다. 일진이라 발랑 까져서, 대낮부터 남자친구를 불러 떡을 쳐댈 가능성이 충분했다.

'누가됐든 볼라 부럽네.'


한지유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처녀를  것이라며, 업소 같은데도  갔다.


업소로 가고 싶은 욕망이 최고로 높아졌던 입대 직전에도 참았다.

'잠깐. 그 두 녀석이 아닐 수도 있잖아?'


세 남매에서 둘째이자 유일한 남자인 신재준.


아빠는 늘 신재준이 집안일도  하고, 학교에서는 매번 전교 2등을 놓치지 않는다며 침이 마르게 칭찬했었다.

요즘 남자애들과 다르게 함부로 여자를 사귀지 않는다고 해서 아빠가 고평가하기도 했었다.

설마  아이가 여자친구를 데려와, 자지를 대주고 있는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지금 방아찧는 년 볼라 부럽네.'

섹스를 다 끝나면, 데이트를 하려는 둥 이유로  밖으로 나올지도 몰랐다.

그럼  남매 중에 누가 떡쳤는지 알  있을 거였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꾸만 창문으로 시선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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