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겨울방학 * (61/201)



〈 61화 〉겨울방학 *


"재준이가 뭐래?"


신재연은 최아란에게 물었다. 최아란은 핸드폰을 보며 쪼개다가, 미소를 잃었다가, 다시 쪼개는 꼴을 보여주었다.


"지금 친구랑 영화볼 거라고 내일 오라네. 내일은 김치비빔밥 해준다고 하고."
"그럼 나 혼자 간다."
"나  가는 길에 너 드랍하는 건데, 그냥 내 차 타고 가, 인마."
"혹시 재준이가 시켰냐?"
"어? 어...니?"
"어니는 뭔데. 재준이가 시킨 거 맞나보네."
"야. 내가 왜 네 동생이 시킨 대로 따르겠냐. 그냥 친구 편하게 퇴근시켜주려는 거지."
"됐어.  그럼 길 멀리 돌아가야 되잖아. 그냥 가라."
"새끼... 남자도 아니고 왜 튕기지? 그럼 너희  근처에서 술이나 먹자."
"왜? 새벽에 또 꽐라 돼서 재준이한테 시중 받을려고?"
"아, 아니."
"속 보인다."
"야. 그런 추태를 두 번이나 보이고 싶겠냐. 술먹고 잠깐 너희집 들릴 생각은 있지만..."
"에휴."

신재연과 최아란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작은 실랑이를 벌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우선 둘 다 1층으로 가야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른 퇴근하려는 직원들이 가득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회사 건물 밖으로 나와서야 주변에 듣는 이가 없어졌다. 신재연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재준이 미성년자다."
"응..."
"만약 사귄다면, 성인이  때까지 건들지 마라. 그전에 건들면 죽인다."


신재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양심에 찔렸다.


자신이 범한 죄가 있었다. 작은 죄도 아니고,  죄였다.

남동생의 자지를 만졌고, 남동생의 손으로 자위했으며, 아마 남동생에게 처음이었을 키스도 가져갔다. 자고 있을 때, 몰래.

"당연하지, 재준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참을 거야. 2년만 참으면 되겠네."

'네가 과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최아란의 호언장담을 믿지 않았다. 신재준은  생겼다. 미치도록 귀여웠다. 그리고 여자에 대해 무방비했다.

최아란이 진심으로 신재준이 성년이 될 때까지 몸을 안 건들이려고 철벽 친다해도, 신재준과 사귀다보면  철벽은 땡볕 아래 얼음덩어리처럼 녹아내릴 게 분명했다.

'부럽다... 나도 재준이랑...'

떳떳하게 사귀고,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근친이라는 벽이 막아서고 있었다.

신재연의 발걸음은 회사 버스가 서있는 회사 단지내 정류장이 아닌, 최아란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

최아란이 기쁜  쪼갰다. 벌써부터 신재준을 만날 거 확정이라 여기는 듯했다.


'좋냐? 씹...'

마음 같아선 둘이 이어지는 걸 방해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최아란을 보조하는 이유는 전부 다 신재준을 위해서였다. 신재준이 원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죄책감 때문이기도 했다. 친누나로서 남동생을 건드린 벌. 그 벌로, 마음이 아파도 둘을 방해하기는커녕 돕기로 했다. 스스로 정한 벌이었다.

찢어지는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국산 SUV 차량. 어제도 얻어  최아란의 것이었다.

조수석에 앉았다. 2열 의자가 없었다. 그래서 넓어진 공간이 캠핑 장비들로 잔뜩 쌓여있었다.

어제 최아란이 신재준보고 '캠핑이 취미다'라고 했을 때, 미리 이 차량의 상태를 보지 않았다면 '개수작부린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최아란은 정말 캠핑해보려고 이것저것 사고 있었다.

최아란은 운전해 주차공간에서 벗어나며 말했다.

"남동생이 걱정돼냐?"

표정관리한다고 했거늘, 불편한 내심이 다 티가 난 모양이었다.


"고딩이잖아."
"설마 내가 재벌이라서, 내가 네 남동생하고 잘 되어보려는 거, 눈 감아주는 거냐? 내가 평범한 입사 동기였다면 막았을 거고?"
"너 말고 김 과장이 원했어도, 재준이가 김 과장을 좋아했다면 막지 않았을 거야."
"예제가 좀 끔찍한데... 그래도 너, 좋은 누나네."


아니, 좋은 누나는 못 되었다. 겨울에 추워서 덜덜 떨게 만들었고, 여름에는 더워서 괴롭게 만들었다.


학용품도 자신이 쓰던 것을 물려주었고, 특히 신재희에겐 중학교, 고등학교 교복을 물려주었다.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최근엔 남동생의 몸에 손까지 대고 말았다.


신재연은 무서웠다.


건드렸을 때, 사실 신재준이 깨어있었을까봐.

다시 건드리고,  건드렸다가 결국 신재준에게 들키고 말아 절연 당할까봐.


'다신 건드리지 말자... 건드려선 안 돼.'

신재연은 전자담배를 찾았다. 까먹고 풀지 않은 회사 명찰이 손에 닿았다.

회사 명찰을 풀어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너희 남매가 부럽다. 주말에도 말했지만, 내 언니들은 시발, 진짜. 개 망나니년들이거든. 죽이고 싶을 정도로."

주말에 술집에서 얘기했을 때, 최아란이 어떻게 자랐고 자매와 사이가 얼마나 나쁜 지도 들었었다.


"아란아, 담배펴도 되냐?"
"엉."

어제도 최아란의 차에서 폈었지만, 예의상 허락을 맡고 전담을 피기 시작했다.

신호에 걸려 정차했을 때, 최아란도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나도 전담으로 갈아탈까?"
"그냥 담배보단 낫겠지."
"좋은 전담 추천 좀."





* * *



"차는 구청 주차장에 세워라."
"유료?"
"어, 유료."

구청 주차장에 주차한 뒤, 음식점이 즐비한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재연아, 술 먹기 전에 배나 채우자. 배고프네."
"고기 먹을까?"
"콜."


고기집에서 삼겹살과 소주와 맥주를  병씩 시켰다.

주문한 것들이 나오자 불판 위에 삼겹살을 올렸다. 치익, 고기가 익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아란은 맥주를 따르고, 신재연은 소주를 따랐다.

건배를 하고 입에 털어넣었다.


신재연은 소주맛이 달게 느껴졌다. 오늘은  잘 받는 날이었다.


최아란이 중얼거렸다.


"재준이 부르고 싶다."

'나도.'

"신재연, 적당히 마셔라. 2차 가야 되니까."
"허. 알쓰 새끼한테 들으니까 어이없는데?"

고기가 한쪽 면이 구워진 것 같자 신재연이 집게를 잡고 뒤집었다.


"아, 재준이 보고 싶다..."

했던 말 또 하는 최아란이었다.

"미친년아. 맥주 반 잔 먹고 취했냐?"
"아니,  멀쩡한데. 아. 재준이, 왜 그렇게 귀엽지?"
"누가 보면 네가 재준이 누나인줄 알겠네."
"흐흫... 아, 재준이가 지금 즈음 친구랑 영화 보고 있을 텐데... 하늘인가 뭔가. 걔랑 보고 있으려나."
"왜? 질투라도 나냐?"
"질투는 무슨... 걔가 혹시 재준이한테 이상한 짓 할지 모르니까..."
"걱정마라. 김하늘은 그럴 애 아니니까.'

'김하늘... 불쌍하네. 재준이는 그냥 김하늘하고 사귀지, 왜 최아란한테 호감을 가졌을까.'


김하늘이 더 남동생의 애인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김하늘의 순애보야 10년 넘는 압도적인 시간으로 입증됐고, 또한 김하늘의 부모한테도 그 사랑은 환영받을 것이었다.


'그래. 사람 마음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지. 재준이도 그걸 느꼈을 거고.'

   만난 최아란한테 강한 호감을 갖게 될 것이라곤, 신재준도 예상하지  했으리라.

'나도... 재준이한테 이딴 더러운 마음 갖게  줄은 몰랐지...'

신재연은 비게 된 자신의 잔을 스스로 채웠다.


"어? 내가 따라줄게."
"됐어."

술잔을 입에 털어 비우고 내려놓자, 최아란이 따라줬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배를 채우고, 2차로 호프집에 찾아갔다.

"술이 들어간다 쭉! 쭉쭉쭉!"

 20살이 된 듯한 앳된 애들이 왁자지껄 술게임하며 놀고 있었다.

"쟤들 귀엽넹."
"미국 애들은 어떠냐?"
"미국 스무살들 파티 같은 거?"
"응."


둘은 적당히 구석 진 자리에 앉았다.

"그냥 술마시고 돌아다니면서, 몰랐던 애들하고 얼굴 트고, 더 친해짐녀 SNS계정 교환하고... 그러다가 눈 맞은 애들은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사람 사는데가  똑같지, 뭐."
"넌 그러다가  맞은 남자는 없었고?"
"내가 좀 얼굴이랑 몸매가 되잖냐. 가슴은... 네 년, 따라갈 순 없지만. 어쨌든 그때  따먹고 싶어하는 놈들 많았는데. 내가 그 당시에는 남자를 돌처럼 봐서 죄다 컷했지."
"후회하겠네?"
"후회한다고 말하면 재준이한테 일를 거지?"
"아니. 과거 일이니까. 그래도 지금부터 너 클럽 갔다거나 소개팅 보러 간  알게 되면, 무조건 재준이한테 일르지."
"흐흫... 재준이 같이 귀여운 애가 남친이면, 그러겠냐?"

'그렇긴 해.'


생맥과 소주를 시켰다. 안주는 콘치즈 하나만 시켰다,


"너 오늘 소주 많이 먹는다?"
"소주가 땡기네."

술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얘기거리가 떨어진 걸까. 취해서일까.

최아란은 주말에 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언니들이랑 친해지고 싶었다고. 그런데 그 쌍둥이년들은 날 맨날 병신으로 만들어. 지들 중 하나가 사고를 치면, 나한테 뒤집어씌우고. 그럼 엄마랑 아빠는 나만 혼내고. 그런 게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런다니까?"
"그래, 시발년들이다, 진짜."
"아... 음... 시발년들까진 아니고."


자신의 언니들을 잔뜩 욕하다가, 막상 쌍욕을 해주면 최아란은 자신의 언니들을 슬쩍 두둔했다.


'그래. 가족은 가족이란 거지?'

전화가 왔다. 발신자를 보니 신재준이었다.

"어, 재준아."


그때 뒤에서 술게임하는 애들의 떠들썩한 외침 터졌다.

[술집이야?]
"응. 아란이랑 먹으러 나왔어."


맞은편에 앉아있던 최아란이 고개를 쑥 내밀어,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재준아, 누나들이랑  먹으러 올래?"
"지랄. 미성년자인데 어떻게 오냐."

신재연은 갑자기 얼굴이 가까워진 최아란을 피해 몸을 옆으로 뺐다.


[누나. 나...]


최아란이 통화를 엿들으려고 핸드폰에 귀를 대었다.

가까이 접근한 최아란이 징그러워서 밀어냈다.

"재준아?"
[아. 나 걱정 말고, 술 맛있게 드시라고.]
"그래, 알았다."
[아란이 누나는 술 적당히 마시게 해. 저번처럼 집에 데려오지 마.]


갑자기 고소해져서 최아란을 놀렸다.


"킥킥. 야. 재준이가  집에 데려오지말래."

그러자 최아란이 핸드폰을 빼앗아갔다. 버티려면 버틸 수도 있었지만 그냥, 가져가게 손을 놓았다.

"재준아! 왜! ...그, 그때는  주량 몰랐던 거야. 오늘은 적당히 마실 건데? ...흐흫... 00시 지난 새벽도 내일인데? ...뭐? ....아, 알았어. 안 갈게. 새벽에 어딜 나가려고 해. ...아, 아니, 나는 그냥... 재준이가 걱정돼서... ...응. ...알았당. 근데 설거지해? 물소리가 나네? ...알았어. 굿밤. ...흐흫... 좋은 밤 되라고."


신재연은 신재준과 통화한다고 좋아 죽으려는 친구 꼴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감이 들기도 하고 그랬다.

신재연은 무표정으로 지켜보다가 통화가 끊어진 핸도폰을 전해받았다.

"굿밤은 지랄."
"흐흫..."
"좋냐?"
"그냥 목소리만 들어도 좋네."
"중증이구만."

왠지 배알이 꼴렸다.

괜히 심통이 났다.


반쯤 빈 소주잔을 비우고, 다시 소주를 따른 뒤 연달아 마셨다.


쓴 맛은커녕 달기만했다.

"왤케 달리냐?"
"오늘 따라 맛있네."
"내일 출근해야 된다. 알지? 적당히 마셔."
"어."


알딸딸하고 손끝에 감각이 무뎌졌다. 슬슬 그만 먹어야할 것 같은데 계속 소주가 땡겼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신재준 [누나]


최아란이 맞은편에서 톡을 훔쳐봤다.

"재준이네?"


신재연은 남동생이 대수롭지 않은 말을 이어하겠거니 싶어, 훔쳐보게 내버려뒀다.

신재준 [나 오늘 하늘이랑 놀았는데]
신재준 [저녁밥 해달라고 해서 집에 데려옴]
신재준 [하늘이랑 아란 누나 만나게 하기  그러니까]
신재준 [아란 누나 데려오지 마요]

최아란은 거꾸로 보고 있기에 가독성이 떨어졌을 거였다. 아직 읽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술기운 탓일까.

신재연은 최아란이 이 톡을 보고서, 최아란이 정을 뗐으면 하는 바람이 들고 말았다. 자신 스스로에게 내렸던 '벌'을 잊어버리고.

그래서 이마를 찌푸리며 거꾸로 문장을 읽는 최아란을 내버려뒀다.

"어... 뭐지?  어장관리 당하는 건가?"
"야 뒈질래? 너 지금 내 남동생 욕하는 거냐?"
"아, 내가 실수했다... 미안."

'재준이는 너한테 지금처럼 괜한 오해 살까봐, 하늘이하고 마주치지 못하게 하는 거라고.'


최아란의 의심에 신재연은 통쾌하면서도, 죄책감을 느꼈다.

'재연아... 유치하다...'


그것을 인지하면서도 세 치 혀를 놀렸다.


"어제 재준이가 저녁밥해줄 때, 그랬잖아. 너한테 밥 챙겨주는 거, 다  친구라서 신경써주는 거라고."
"아니, 그래도 나 집에 가려니까 막 나 붙잡아서 얘기하고 싶다고 그러기도 하고... 캠핑도 가자고 했으면...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그냥 내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나 보지. 캠핑은 가족여행을 한 번도 안 갔다가 기회가 되니까 너한테 부탁한 거고."
"그럼 나 안 좋아한다는 거야?"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라는 거냐. 재준이한테 물어봐라."

신재연은 스스로의 유치함에 이를 갈면서 답톡을 보냈다.


(나) [ㅇㅇ] 1
(나) [그런데 최아란이 내 핸드폰 훔쳐봤다] 1

핸드폰을 안 보고, 다른 일을 하는지 '1'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이러면 안 돼. 재준이는 아란이한테 관심있어. 재준이를 방해해선 안 돼.'

하지만 술에 취해서 그런 건지, 지금의 신재연은 인내심이 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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