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겨울방학 *
"킥킥킥. 그 오빠 얼굴 봤냐? 완전 새빨간 거."
룸카페 남자 알바생 얘기하는 것이었다.
"우리 블랙리스트 올랐겠다."
"에이. 그렇고 그런 커플이 우리 말고도 많을 텐데, 블랙 때리겠어? 킥킥."
김하늘은 찢겨진 스타킹을 버렸다.
스웨터 원피스의 짧은 치마 밑은 맨다리였다. 겨울 밤 날씨에 춥다고 제자리에서 탭댄스를 추었다. 그러다 허리를 두드렸다.
김하늘은 화장실에 잠깐 들려 망가진 화장을 고친 상태였다.
"어우. 내일 분명 근육통 생길 듯."
"그러냐."
"넌 안 그래?"
나는 며칠 전, 정수린한테 기승위를 해준 뒤에 근육통을 겪은 뒤였다. 이번엔 올 것 같진 않았다.
"나도 그럴 것 같네."
그래도 적당히 거짓말했다.
"와... 그거 한 번 겪었을 뿐인데, 세상이 달라보이는데?"
주위에 사람이 있어 뭘 겪었는지 주어는 뺐다.
"그러냐."
"장 볼 거야?"
"아니, 집에 있는 걸로 할 거야."
"그래?"
김하늘이 내 손을 잡아당겼다.
"약국에 좀 들리자."
"왜? 어디 아파?"
"'그거' 사야지."
"그거? 아."
사후피임약.
약국에 함께 들어온 김하늘은 내 손을 놓아주고 카운터 앞에 섰다. 젊은 남자 약사가 김하늘을 맞이했다.
"어떤 약을 찾으세요?"
"사후피임약 있나요?"
"아."
약사는 힐끔 뒤에 서있던 날 쳐다봤다.
그 다음에는 나한테 신경 끄고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성관계는 언제 하셨어요?"
"방금요.
"아... 한 달 이내에 사후피임약 섭취한 적 없죠?"
"네."
"그러면... 잠시만요."
카운터 안쪽, 손님이 닿을 수 없는 진열대에서 약 하나를 집어왔다.
"부작용으로 토하실 수도 있는데, 그러면 약효 기대할 수 없어지니까 3시간은 참으세요. 그래도 토하게 된다면, 다시 약 구매하셔서 드셔야 하고요."
"네, 알겠습니다."
"피임율은 95% 정도 기대하실 수 있고요. 2주일 뒤에 임신테스트기로 테스트해보세요. 사후피임약은 한 달 이내에 또 드시면 안 되니까, 앞으로 성관계하실 때 주의하시고요."
"네."
"16,000원 입니다."
결제를 마친 김하늘이 약상자를 흔들어보이며 다가왔다.
함께 약국을 벗어났다.
"재준아. 신기하지 않냐? 룸카페도 16,000원. 약값도 16,000원."
"그러게."
손바닥 크기 정도의 약상자였다. 까보니 손바닥만한 크기의 포장재 정가운데에, 작은 알약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포장을 쓸데없이 크게 만드네."
김하늘은 알약을 빼내 내 앞에서 꿀꺽 삼켰다.
나는 김하늘 앞에서 그녀가 임신할 것을 걱정했었다. 지금 김하늘이 보인 퍼포먼스는 날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한 것인 듯했다.
'착하네.'
"너희 집에 그 여자 있으려나?"
"그 여자? 아. 아란 누나?"
"어. 네 여친될 사람."
"글쎄. 우리 누나 집에 태워다주고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직 여친되는 거 확정아닌데?"
"제발 사귀지 마라, 사귀지 마라."
"아주 저주를 하는구만?"
"이 정도면 애교 수준 아니냐?"
잡담을 떨며 걷다 보니 멀리서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 앞 나무의자에는 노란 깔깔이를 입은 여자가 담배를 피고 있었다.
"누구지? 재연 언니인가?"
"가슴 봐라."
"아, 딴 사람이네."
신재연과 신재희의 폭유였다면 멀리서도 그 볼륨을 느낄 수 있을 거였다.
"우리 집 주인 아저씨의 딸이네."
"아하. 그래?"
그녀 뒤에 있는 집은 불이 꺼져있었다.
'신재연이 아직 안 왔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김하늘이 내 팔을 팔꿈치로 찔렀다.
"휴식은 충분한가?"
집에서 또 섹스하자는 신호였다.
"야. 너 방금 약 먹었잖아."
"사후피임약의 원리가 뭔지 알아?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 못하게 막는 거래. 오늘 몇 번 더 한다고, 피임 95%에 영향줄 것 같지는 않은데?"
"절대 안 돼. 아니면 콘돔 쓰거나."
"아씨... 너한테 맞는 거 편의점에 안 팔잖아. 약 괜히 빨리 먹었어."
"쉿."
성인끼리 나눠도 듣기 좋은 대화는 아니었다. 하물며 고딩끼리 이런 대화라니. 오래해서 좋지 않았다.
집주인 딸은 아직 멀리 있었고, 그래도 혹여나 들을까봐 속삭여 대화하긴 했다.
"안녕하세요, 누나."
"오. 재준아, 안녕. 오늘 또 보네? 옆은 여자친구?"
"그냥 소꿉친구예요."
"그래?"
"안녕하세요."
"응, 안녕."
그녀와 평소 안 만나다가 오늘 아침에 보고, 저녁에도 보게 됐다.
'뭔 날인가?'
그녀와 인사 말고 딱히 주고 받을 얘기가 없었다.
나는 담배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숨을 참고, 그녀를 지나쳤다.
현관문은 잠겨있었다. 나는 보일러실에서 열쇠를 찾아 문을 열었다.
부엌 불을 켜는데 옆에서 김하늘이 말했다.
"매너가 없네. 집 앞에서 담배를 피냐."
'이런. 방음 안 돼서 밖에까지 다 들렸을 텐데.'
집주인 딸이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김하늘에게 핀잔을 줬다.
"우리 누나도 집앞에서 피는데."
"아, 피, 필 수도 있지. 응, 자기 집 앞인데."
부엌 옆 방의 불도 켜고, 큰방의 불도 차례로 켰다.
보일러 온도조절기를 높이자 보일러 쿠웅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큰방 전기장판 위로 이불이 깔려있었다.
'재희야, 네가 갠다며...'
신재희가 나보다 늦게 집을 나섰다. 나는 집을 나서면서 신재희한테 이불 개라고 시켰다. 신재희도 그러겠다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역시나 철 없는 여동생은 이불 개는 게 귀찮다고 냅두고 나갔다.
난 이불 위에 무릎을 대고 앉아 전기장판 전원을 켰다.
"추우니까 이불 속에 들어가서 기다려."
"아, 재준아. 나 화장실 좀 씻는데 써도 될까?"
'내가 배려심이 부족했군.'
"당연히 되지."
보일러 컨트롤러에서 온수 버튼을 눌렀다.
"뜨거운 쪽으로 수도꼭지 확 돌려놓으면 절대 안 돼. 화상 입을 정도로 뜨거워. 수도꼭지를 아주 미세하게 가운데에서 좌우로 조절해야지 따뜻한 물 나와. 거기서 조금만 옮겨도 엄청 뜨겁거나 엄청 차가워. 조심해."
"응. 외투는 여기 걸면 되나?"
"어."
큰방에도 못 박은 옷걸이가 있었다. 김하늘은 재킷을 벗어 걸었다. 스웨터 원피스에 맨발인 꼴이 되었다.
이불에 앉은채로 바라보니 보기 좋은 각선미를 구경할 수 있었다.
짧은 스커트여서 순백의 팬티까지 보였다.
보지 부분이 내 정액 자국대로 하얗게 굳어있었다...
내 자지도 굳어져갔다.
김하늘이 곧 화장실로 향했기에 잠깐 동안만 구경할 수 있었다.
'와씨.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벌써 회복됐네?'
정력 이야기였다. 지금 하늘이랑 하면 안 되는데, 큰일이었다.
'하늘이 나오면 나도 씻어야겠다.'
정사 후의 자지를 휴지로만 닦았더니 찝찝했다.
'찬물로.'
뜨거워진 자지에 찬물 끼얹으어 진정 좀 시켜볼까 했다. 경험상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지만.
'신재연이 갑자기 돌아왔는데 하늘이랑 단둘이 있으면 이상하려나. 미리 연락이나 해두자.'
신재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재준아.]
주위가 시끌벅쩍했다. 술게임을 하는 이들의 웃음 띈 외침이 배경음처럼 들려왔다.
"술집이야?"
[응. 아란이랑 먹으러 나왔어.]
신재연의 옆에서 최아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준아, 누나들이랑 술 먹으러 올래?]
[지랄. 미성년자인데 어떻게 오냐.]
"누나. 나..."
나도 술 먹어보고 싶으니까 사와서 집에서 같이 먹자고 할 뻔했다.
'그럼 최아란하고 김하늘이 만나게 되겠지...'
그럼 김하늘한테 미안했다.
'여자한테 따먹히려고 하늘이를 이용하진 말자.'
김하늘의 마음을 듣기 전에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서로 자극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하늘한테 미안해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재준아?]
"아. 나 걱정 말고, 술 맛있게 드시라고."
[그래, 알았다.]
"아란이 누나는 술 적당히 마시게 해. 저번처럼 집에 데려오지 마."
[킥킥. 야. 재준이가 너 집에 데려오지말래.]
최아란이 신재연의 핸드폰을 빼앗았나 보다.
[재준아! 왜!]
최아란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토쟁이'돼서 저희 집에 오실 거잖아요."
[그, 그때는 내 주량 몰랐던 거야. 오늘은 적당히 마실 건데?]
"그리고 내일 오시기로 했죠? 내일 와요."
[흐흫... 00시 지난 새벽도 내일인데?]
"누나가 새벽에 오시면, 저 집 나갈 거예요."
[뭐?]
"친구네서 자려고요."
[아, 알았어. 안 갈게. 새벽에 어딜 나가려고 해.]
"뭐래요. 우리 누나도 통금시간 안 정해뒀는데. 아란 누나는 저한테 통금시간 걸려고 하는 거예요, 지금?"
[아, 아니, 나는 그냥... 재준이가 걱정돼서...]
"흐흫... 농담이고요. 걱정해줘서 고맙고요. 과음하지 마시고... 아, 차 끌고 오셨죠?"
[응.]
"음주운전하지 마시고, 꼭 대리 불러요."
[알았당. 근데 설거지해? 물소리가 나네?]
흠칫.
이 방음이 안 되는 집은 화장실에서 쏟아지는 샤워기 소리가 큰방까지 들려왔다.
"네. 그럼 전 설거지해야 돼서 끊을게요. 술 적당히 마셔요. 우리 누나한테도 전달해주시고요."
[알았어. 굿밤.]
"흐흫... 굿밤은 또 뭐예요?"
[흐흫... 좋은 밤 되라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더 오래 끌고 싶었는데, 설거지 소리가 아니라 샤워 소리였음을 들키면 안 됐다.
'음, 최아란이 옆에서 전화 엿듣길래 신재연한테 못 말했는데...'
괜히 말 없이 김하늘과 단둘이 집에 있는 걸 보면, 신재연이 이상한 오해할지 몰랐다. 톡을 보냈다.
(나) [누나]
신재연이 핸드폰 진동을 못 느꼈는지, 1분 여가 지나서야 답톡이 왔다.
신재연 [?]
(나) [나 오늘 하늘이랑 놀았는데]
(나) [저녁밥 해달라고 해서 집에 데려옴]
(나) [하늘이랑 아란 누나 만나게 하기 좀 그러니까]
(나) [아란 누나 데려오지 마요]
신재연이 톡을 보고 있기에 '1'이라는 숫자가 없었다. 그런데 답톡이 좀 늦었다.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재준아~ 나 수건 없다~"
'오... 저 말을 최아란이 들었다면...'
엄청난 오해를 샀을 거였다.
내가 집에서 김하늘과 떡쳤을 거라는 오해를 말이다.
사실 룸카페에서 떡친 건데.
서랍장에서 새 수건을 꺼내 부엌으로 향했다.
김하늘은 팬티를 벗고, 스커트를 말아 올린 하반신 나신 상태였다.
보지와 다리가 물기로 번들거렸다. 수줍게 자란 음모는 젖어서 가운데에서 일직선을 뭉치려는 특성을 보여주었다.
'아, 또 꼴리네...'
"땡큐."
김하늘은 내가 건넨 수건으로 자신의 가랑이 사이와 젖은 다리를 닦았다.
그녀는 발바닥을 닦다 말고, 기마자세처럼 하반신을 낮춘 뒤, 보지를 벌려보여주었다.
깔끔하게 씻은 보지가 질구에서 새어나온 백탁색 정액으로 다시 더러워졌다.
"킥킥. 정액 자꾸만 나오네. 야, 진짜 오늘 몇 번 더 질싸해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안 돼. 우리 집, 방음 안 돼서 섹스하는 소리 바깥까지 다 들릴 거야."
"조용히 하면 되겠네. 섹스하자, 재준아. 응?"
"안 된다니까."
"우리 재준이도 발기했네?"
대물 자지의 발기는 쉽게 티가 나버렸다. 김하늘은 입술을 핥으며 내 하반신을 노려봤다.
"밥이나 먹고 가. 싫으면 그냥 집 가든가."
"윽... 그럼 밥 먹고 갈게..."
"그래, 잘 생각했어. 근데 팬티는?"
"아, 찝찝해서 버렸어."
"집에 갈 때 노팬티로 돌아가려고? 그리고 어디다가 버렸냐?"
"도중에 편의점 가서 사려고. 그냥 화장실 통에."
"아니, 이 여자야. 집에 다른 여자 팬티 보이면 누나랑 재희가 뭐라고 생각하겠냐."
"아, 밖에다가 버리고 올까?"
"됐어."
쌀통과 신발장 사이에 쓰다만 비닐봉투를 잔뜩 꽁쳐두고 있었다. 거기서 작은 사이즈의 검은 비닐봉지를 하나 빼, 화장실 휴지통 위에 올려진 팬티를 집어넣어 묶었다. 그리고 일반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하늘아. 팬티, 내가 사다줄까?"
"에이, 밤이잖아. 남자애한테 시킬 순 없지."
"아직 8시밖에 안 됐는데?"
"캄캄하면 위험하지."
"나 새벽에도 예성이랑 잘 돌아다녀."
"그건 조심성 너희가 없는 거고."
"기다려 사올게."
"아, 아니. 진짜 됐어. 그 몇 분만이라도 더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그럼 내 반바지라도 입을래? 너 스커트 짧아서 계속 보지 보일 같은데."
"아. 그러네. 쏘리. 그럼 빌릴게."
큰방 이불장 위에 싼 맛에 구입한 종이서랍이 있었다. 거기서 여름철 내 옷이 든 서랍을 내렸다. 여름옷 속에서 무난한 검은색 반바지를 건넸다.
"네 바지에 정액 묻을건데 괜찮아?"
"괜찮아. 빨면 돼."
'신재준'의 몸이 여자애처럼 가늘었기에, 내 옷이 여자인 김하늘한테도 잘 맞았다.
베이지색 스웨터 원피스 밑, 검은색 반바지. 이상한 조합이었다.
그래도 얼굴이 깡패라고, 김하늘이 입으니까 하나의 패션 같았다.
"김치비빔밥 해줄게."
"돌솥! 돌솥!"
"어, 그래. 돌솥. 크게 기대는 하지 말고."
"킥킥, 네가 해줬던 거. 다 맛있었어. 잔뜩 기대해야징."
"컴퓨터하고 싶으면 컴퓨터 해."
"응."
김하늘은 의자에 앉으며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그러고 보니 저 의자... 어제 정수린하고 떡쳤던 의자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은 참 잘 맞았다.
큰방에서 나오면서 핸드폰 비밀번호를 풀고, 신재연과의 톡방에 들어갔다.
김하늘과 얘기하면서 2번 정도 진동했었는데, 김하늘이 또 엿볼까봐 확인하지 못했다.
신재연 [ㅇㅇ]
신재연 [그런데 최아란이 내 핸드폰 훔쳐봤다]
난 눈을 찌푸리고, 내가 이전에 보냈던 톡들을 재확인했다.
(나) [나 오늘 하늘이랑 놀았는데]
(나) [저녁밥 해달라고 해서 집에 데려옴]
(나) [하늘이랑 아란 누나 만나게 하기 좀 그러니까]
(나) [아란 누나 데려오지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