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소꿉친구한테 따먹힘
다리를 맞았지만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니킥에 시선이 가있을 때, 얼굴 쪽으로 펀치가 날아왔다.
몇 년 전, 킥복싱 대련 경험 때 익혀둔 근육 기억이 스스로 움직였다.
무의식적으로 가드를 올렸고, 기미정의 주먹이 가드를 때렸다.
'큭! 주먹이 무슨 쇠덩이야!?'
기미정은 두 손으로 김하늘의 양팔을 각각 붙잡았다. 잡아당겨 가드를 활짝 열게 만들었다.
킥복싱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김하늘의 킥복싱 훈련 경험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
밑에서 날아온 기미정의 니킥이 김하늘의 명치에 적중했다.
"컥!"
숨이 끊겼다. 고통에 호흡이 되질 않았다.
그렇지만 명치 가격은 킥복싱 대련 때 겪어본 일이라, 그 고통에 놀라지 않고 곧 뒤이어올 공격에 대비했다.
히죽 웃고 있는 기미정. 팔을 채찍처럼 등 뒤에서부터 앞으로 휘둘러왔다.
김하늘은 몸을 낮췄다. 김하늘의 단발은 뒤늦게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기미정의 주먹은 아직 다 내려가지 못한 김하늘의 머리카락을 때렸다.
'이런.'
쇠덩이 같은 주먹을 피해 고개를 숙이자니, 이번엔 기미정의 무릎이 얼굴로 쇄도해왔다.
김하늘은 고개를 옆으로 꺾고, 두 손바닥을 맞대어 얼굴을 최대한 보호했다.
기미정의 무릎을 맞은 김하늘은 뒤로 나자빠져 텃밭 위를 굴렀다.
김하늘은 얼른 일어났다. 기미정이 쓰러진 자신 위를 깔고 앉으면 봊 될 것이 분명했기에.
"오. 잘 막네?"
기미정은 달려들 생각 없이 그 자리에 여유롭게 서있었다.
김하늘은 턱이 얼얼했다. 두 손으로 보호했는데도, 기미정의 니킥이 큰 충격을 준 것이었다.
김하늘은 다시 킥복싱 기본자세를 취했다.
"시발. 너 같은 년은 진짜 맘에 들어. 너처럼 발버둥치는 년이 나중에 살려달라고 질질 짤 때가 기분 좋거든."
'한 대라도 때린다.'
김하늘은 기미정한테 싸움으로 이길 방도가 떠오르질 않았다.
계속 두드려 맞을지라도, 유효타 한 방은 먹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미정아! 손님 오셨다! 엄마 정비 중이니까, 네가 좀 상대해드려!"
"아, 염병..."
기미정은 테이블 위에 걸쳐두었던 자신의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꺼져. 나중에 또 깝치면 그땐 진짜 뒈진다."
김하늘이 뭐라 하기 전에 기미정은 담배불을 비벼 꺼뜨리고 떠났다.
"하아..."
기미정한테 안 맞아도 되게 됐다고 순간 안도해버리고 말았다.
"아, 씹."
그리고 곧장 그런 자신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 * *
신재준 [하늘아, 미안해]
신재준 [나 그 노래, 아무 생각없이 부른 거였어]
신재준 [전화 좀 받아]
신재준 [응?]
김하늘은 집에 와서 신재준이 보내온 톡을 보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신재준이 걸어온 전화를 무시한 것도 후회 중이었다.
일단 당장 신재준한테 답톡을 주고 싶었다.
고작 노래 선곡 때문에 삐치다니, 그런 건 사내아이나 할 법한 유치한 짓이었기에 얼른 신재준과의 냉전을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뭐라고 말해야할지, 답톡을 줘야 할지 고민됐다.
그리고 신재희와 관련된, 일진회가 신재희한테 린치를 가할 거란 사실을 어떻게 할까도 고민이었다.
'아, 골치야... 재희 위험하다고, 재준이한테 말해? 그런데 재준이가 알면 뭐하냐고... 걔가 싸움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닌데.'
"재연 언니한테 말해놔?"
아무래도 그게 최선일 것 같았다.
백 버튼을 눌러 톡방 리스트에 가서, 신재연과의 톡방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근데 백버튼을 누르기 직전, 핸드폰이 진동하며 새로운 톡 메시지가 올라왔다.
신재준 [이대로 얼굴 안 보고 살 거야?]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백버튼을 결국 눌렀다.
'아... 그런데 방금 꺼 '1' 사라졌을 거잖아.'
신재준이 생각하기를, 자신이 하루 온종일 톡방만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여길 가능성이 컸다.
"아씨... 그게 사실이긴 한데..."
노래방에 노래 선곡 하나 때문에 삐쳐서 뛰쳐나온 주제에, 신재준과의 톡방만 쳐다보고 있었다니. 그걸 들킨 게 쪽 팔렸다.
신재준 [보고 있나 보네]
톡방에 들어가지 않아도, 팝업창을 통해 신재준이 보내온 최신 톡 내용이 보였다.
신재준 [대답 좀 ㅡㅡ]
'나도 대답을 하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 몰라."
'내일 재준이 직접 만나서 얘기하자.'
그리고 사실, 지금처럼 자신의 관심을 갈구하는 신재준의 모습이 야릇하게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오늘 하룻밤은... 재준이 무시하자. 그럼 재준이도 알겠지. 나한테 무시당하는 경험이 얼마나 마음 아픈지.'
그래야 다신 무시 당하고 싶지 않아서, 더욱 의존해올 것이다. 어쩌면 최고의 시나리오로, 본인의 진정한 마음을 깨달을지도 몰랐다.
'너도 사실 날 좋아하는 있는 거라고. 이 답답한 녀석아.'
롤 랭크전을 돌리는데 신재준의 톡이 연달아 날아왔다.
신재준 [나 무시하지 마]
신재준 [하늘아]
신재준 [대답 좀 해줘]
무시 당하자 신재준이 마음 아파하는 것 같았다. 톡 메시지에서 그게 느껴졌다.
'이건 충격요법인 거야...'
김하늘은 얼른 신재준에게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연락해, 노래방에서 했던 짓은 자신이 그냥 장난친 거였다고,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좀 아파야할 필요가 있어. 미안해, 재준아.'
"어? 거기서 다이빙 왜 하지? 애비 없나?"
김하늘은 새벽 늦게까지 롤을 했다.
/ / /
"재준아. 오늘은 안 해줄 거야?"
"어... 해줘? 어깨 안마?"
"응. 뿌지근하네."
꾸준한 어깨 안마로 뭉쳤던 근육이 풀린 신재연이었다. 최근엔 어깨 안마를 즐겼다. 가슴 마사지도 물론이었다.
하지만 새벽에 있었던 일도 있었고 하니, 그녀의 몸에 손대기가 떨떠름했다.
"오늘은 손가락이 좀 아프네. 쉴게."
"아픈데 손 많이 가는 돌솥비빔밥을 만든 거야? 아, 최아란, 이 새끼."
신재연은 최아란을 탓했다.
'사실 내 손가락 멀쩡하고, 안마 안 하는 건 너 때문인데.'
"그럼 재준아."
"응?"
"누나가 어깨 안마해줄게."
"아, 아니. 괜찮아."
"집안일 힘들었을 거 아니야. 해줄게, 이리 와."
"됐어. 누나도 피곤할 텐데 빨리 자."
신재연이 내 몸에 손 대는 것도 경계하게 됐다.
내 어깨를 만지다가 갑자기 급발진해서 내 자지를 만지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가족 붕괴라고.'
지금 시각은 밤 10시 30분.
슬슬 잘 이불을 깔 시간이었다.
부엌 옆 방에 돌돌 말려있던 전기장판을 펴고, 이불장에서 이불 하나를 꺼내 들고갔다.
"재준아, 뭐해?"
"아. 오늘부터는 옆 방에서 자려고."
"왜?"
신재연은 팬티바람차림이었다. 최아란이 떠나자 바로 탈의를 한 것이었다.
맨젖가슴 사이에 껴있던 전자담배를 들더니 담배잎스틱을 꽂았다.
전원 버튼을 꾹 눌러 가열을 시작했다.
"재희랑 나랑 같은 이불 쓰잖아. 나랑 같이 자게 돼서 잠자리가 좁아져서 그런지 많이 뒤척이더라고. 그냥 따로 자려고."
"그래?"
신재연은 평소처럼 무표정이었다.
이불을 펴고, 이불장에서 미처 가지고 오지 못한 베개를 가지러 큰 방에 들어갔다.
"후우..."
신재연은 니코틴을 즐기는 나른한 여성의 표정이 되어 벽에 뒤통수를 대었다.
그리고 눈동자만 베개를 쥐고 방을 나서는 내 몸을 빤히 쳐다봤다.
'아씨... 뭔데 이렇게 긴장되지?'
가족 붕괴 위기 경보. 그것이 내 뇌에서 울리는 듯했다.
'재희야... 빨리 와. 네 오빠, 네 언니한테 따먹히겠다...'
"누나, 잘 자."
"응, 너도. 아, 재준아."
"응?"
"최아란, 어땠어?"
신재연은 내가 최아란이랑 사귀는 걸 탐탁지 않아했다. 나는 아직 최아란한테 완전히 반한 건 아니고, 최아란과 몇 번 만나보다가 마음을 확실히 하겠다고 신재연한테 말했었다.
"괜찮던데."
"그러냐? 네가 연애하고 싶어하는 거, 내가 왈가왈부 할 게 못 되는 거 알지만, 걔가 내 친구니까. 아란이랑 사귀게 되면 나한테 알려줘."
"응, 누나. 그렇게 할게."
방문을 닫았다. 내가 자게 된 부엌 옆 방의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재준아."
"응?"
큰 방에서 말하는 목소리가, 닫힌 방문을 뚫고 옆에서 말하듯 또렷하게 들려왔다.
"재희, 왜 안 오는지 알아?"
저번주 같았으면 슬슬 재희가 올 시간이었다.
"어... 맞다. 재희, 오늘 마감조 근무라서 새벽 2시에나 끝난대."
"후우... 그래?"
'설마 재희 오기 전에, 날 성추행하러 오진 않겠지?'
그런 걱정을 하며 베개를 똑바로 벴다.
'에휴... 이게 무슨 고난이냐.'
'신재준'의 몸은 눕자마자 잠에 빠지는 체질이었다. '오석준'일 때는 불면증에 시달려서 괴로웠다가 신재준의 몸에 빙의한 다음엔 꿀잠을 잘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잘 자는 체질이 독이 되었다. 쏟아지는 수마를 애써 거부하며 버텨야했다.
'내가 잘 때, 신재연이 또 덮치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다가 깜빡하고 잠이 들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와, 그 냉장고에서 새어나오는 냉기에 잠이 깼다.
평소 같았다면 이 정도에 깨어나지 않았을 텐데, 잔뜩 긴장하고 있어서인지 깨어났다.
실눈을 떠보니 팬티차림의 여인이 냉장고 불빛에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신재연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서 신재연이 그냥 방으로 돌아가길 빌었다.
탁.
냉장고가 닫혔다.
신재연이 떠났다면 발자국 소리가 나야할 텐데 그러지 않았다.
스륵.
신재연이 내 옆에 이불 위에 눕는 기척이 났다.
'이런... 그냥 냉장고 소리에 깬 척할 걸.'
이제와 눈을 뜨면 자고 있던 내 옆에 누워있는 신재연도 난감할 거고. 나 역시 난감할 거였다.
'제발 그냥 가라.'
내가 속으로 빌었는데도 신재연은 들어주질 않았다.
내 입술을 조용히 덮쳐왔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쩐내가 맡아지는 입이었다.
혀를 집어넣어 내 닫힌 치아를 핥았다.
내가 굳게 치아를 다물고 있자, 신재연은 내 코를 집어서 숨을 못 쉬게 만들었다.
할 수 없이 입을 벌리자 신재연의 혀가 내 입 안으로 들어왔고, 내 혀를 문댔다.
신재연은 막았던 내 코를 놓았주었다.
그녀는 내 혓바닥과 혀 옆, 혀 아래쪽 뿌리까지 핥고 나서야 입을 떼었다.
'아씨. 오늘은 그래도 빨리 가네...'
오늘은 키스 만으로 만족할 생각인지, 아니면 키스 때문에 내가 깰 것이라고 여겼는지 큰 방으로 들어갔다.
찔꺽. 찔꺽.
"웃흥... 하으..."
얼마지나지 않아 보지를 건드릴 때 날법한 소리와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위하는 모양이었다.
'자는 남동생한테 몰래 키스한 뒤에 자위한다고? 골 때린다...'
그래도 어제 새벽보단 낫다고 해야 되나. 어제 새벽엔 남동생의 손을 이용해서 삽입 자위를 해댔으니까.
'에혀... 이젠 자도 되겠지?'
한 번 성추행하고 갔으니 마음 놓고 자도 될 것 같았다.
"쯉... 후움..."
신재연이 뭔가 빠는 소리가 났다. 아마 셀프로 자기 유두를 빠는 듯했다...
막상 잠을 자려니까 신재연의 자위하는 소리에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앗! 흐아아아...!"
십여 분 뒤. 신재연은 결국 가버렸는지, 떨리는 신음을 냈다.
휴지를 뜯는 소리와 그걸로 몸 어딘가를 닦아내는 소리. 쓰레기통에 휴지를 버리는 소리가 났다.
낮에 정수린이 섹스하고 큰방 쓰레기통에 버렸던 콘돔은 이미 집밖 쓰레기버리는 곳으로 봉투째 버려졌다.
'어? 그러고 보니 빨리 치워놓길 잘 했다. 만약에 지금 신재연이 그 콘돔들을 봤다간...'
분노해서 잘 자던 남동생을 깨어내곤 왜 몸을 함부로 쓰냐며 꾸짖었을 테고, 그러다가 자신도 흥분해서 '분노의 성교육'을 실천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의 보지를 사용해서 말이다.
'내가 따먹히는 걸 좋아해도, 근친은 아니지.'
신재연도 이제는 진짜 자는지 조용해졌다.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자. 나도 슬슬 잠이 왔ㄷ다.
그런데 이번엔 현관문 열리가 내 잠을 방해했다.
신재희가 퇴근한 모양이었다. 부엌 옆 방의 불 스위치를 켜졌다. 눈꺼풀을 투시하고 들어오는 빛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엥?"
신재희는 내가 이 방에서 자는 걸 봤는지 얼른 불을 껐다.
그동안 두 누이와 큰방에서 같이 자던 내가, 다시 이 방에서 자고 있는 줄은 몰랐을 거였다.
신재희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이 방의 옷걸이에 대충 던져두고 큰 방으로 들어갔다.
"재희야... 왔어?"
신재연의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신재희가 집에 들어온 소리에 깨어난 모양이었다.
"응. 언니. 오빠는 왜 저기서 자?"
"너랑 같이 잘 때, 네가 불편해하는 것 같대."
"아씨. 나 하나도 안 불편한데."
"재준이한테 낮에 말해."
"그럴게."
'아, 뭐야.'
나는 신재연한테 다시 각방을 쓰겠다는 이유로 신재희를 팔아먹었다. 신재희가 괜찮다고 나오면 다시 동침을 해야 될 처지가 였던 것이다.
'에이씨. 그럼 그냥 정석적인 핑계 대야지. 남매여도 다 큰 남녀가 같이 자는 게 부담된다고.'
* * *
'아... 입술 부르튼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입술이 정수린한테 쪽쪽 빨렸던 이후처럼 좀 얼얼했다.
'새벽에 출근할 때, 또 나 잘 때 키스하고 간 거 아니야, 이 변태 누나가.'
난 입술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큰방 문을 열어보니 신재희 혼자 자고 있었다.
지금 시각은 아침 10시.
새벽에 퇴근한 신재희는 많이 피곤한 듯했다.
'재희한테 아점 먹이고... 정수린이 오늘 데이트하쟀지.'
귀여운 여자애니까 환영이긴 했다.
정수린이 톡을 보낸 게 없나 싶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직 정수린에게 온 것은 없었고, 대신에 김하늘이 톡 보내온 게 3개가 있었다.
'며칠 동안 쌩 깔 줄 알았더니. 하루 밖에 못 갔네.'
김하늘 [ㅎㅎ 누나가 그렇게 보고 싶었냐?]
김하늘 [생각해보니까 내가 유치했던 것 같다. 미안]
심지어 김하늘이 먼저 사과해왔다.
김하늘 [화해 기념으로 데이트 ㄱㄱ]
'음... 오늘은 정수린하고 데이트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