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과외 학생한테 따먹힘
"봐봐, 큭큭."
"하던 얘기나 해라."
"어렸을 때인데. 신재희가 막 우리집에서 살고 싶다고. 막 울었었는데. 재준이, 너는 막 재희 끌고 가려고 하고. 우리 부모님은 그냥 너랑 재희보고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고."
세 남매가 둘체도 아파트에서 쫓겨난지 얼마 안 됐을 때 있었던 일이었다.
신재희가 아직 김하늘을 잘 따르고, 거지 같은 지금 사는 집보다 김하늘의 집에서 지내는 걸 더 좋아했을 때.
"유쾌한 추억은 아닌데."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어우... 그때 얘기해서 삐졌어? 미안해. 삐지지 마."
"누가 삐졌다는 겨."
김하늘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에 섰다. 그러더니 꾹꾹 어깨 안마를 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가 내가 방에서 근육 뭉친 곳을 눌렀던 것에 대한 복수일까. 갑자기 손에 힘을 주어 어깨 근육을 눌렀다.
"시원하네."
신재연한테 어깨 안마를 받아 근육 뭉친 게 제법 풀린 상태였다. 김하늘이 해주는 건 기분 좋았다.
"에이씨. 아프라고 한 건데."
"더 주물러 보거라."
"예, 주인님."
알코올을 받아서 그런지 제법 체온이 올라간 김하늘의 손이었다.
어색하게 내 어깨를 지압하는 김하늘.
내게 스킨십을 하는 김하늘의 꼴이 싫었는지, 맞은편 정수린이 맥주를 마시며 날 노려보았다.
"이래도 안 아프냐? 어?"
"으음... 계속 해봐."
사실 조금 아파서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정수린은 더 이상 보기 싫었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거실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김하늘이 내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속삭였다.
"화장실 갔나? 수린이가 급했나 보네."
귀 바로 옆에서.
"야. 귀 간지러워."
입김에 귀가 간지러웠다.
"재준아."
"왜."
"재희도 우리 집에 데려오고 그래. 옛날처럼 자고 가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그날 결국 재희 못 데려가고, 너희 집에서 잤었지."
방금 김하늘이 했던 어린 시절의 연장선 얘기였다.
"응. 기억하나보네?"
"그리고 그 날, 자고 간 이후로 내가 너희집에 놀러가는 일이 없었고."
"왜 안 놀러왔어? 나도, 우리 엄마, 아빠도. 네가 오는 거 좋아하는데."
'신재준'이 왜 그랬던 걸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답이 나왔다.
신재희와 목욕하고 나온 김하늘의 배려없는 말.
그때 김하늘은 초등학생이어서 상대방을 배려를 할 줄 몰랐다.
신재준은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 김하늘의 집에 놀러가지 않게 됐다.
"자존심 때문에."
김하늘은 안마를 멈추고,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쓸기 시작했다.
어깨에 얹혀진 손끝이 가슴에 닿을락말락 내려오기도 하고, 검지 손가락이 내 목젖에 닿을락말락 다가오기도 했다.
선을 넘을듯 말듯 하는 아슬아슬한 스킨십.
"넌 어렸을 때부터 자존심이 강했구나."
"왜? 우습냐? 너한테 얻어먹은 볼라게 많은 주제에 그런 주제에 자존심이 세서?"
"아니, 왜 그렇게 생각을 해. 난 늘 좋았어. 네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해서."
"날 도와주는 게 왜 좋은데? 네가 맨날 하는 말처럼, 내가 귀엽게 생겨서?"
김하늘을 도발하듯 말하고, 잠깐 딴 생각을 했다.
김하늘 말고 또 다른 공략대상에 대한 생각이었다.
'정수린은 뭐하려나. 화장실 간 척 다 엿듣고 있으려나.'
나보고 김하늘과 키스도 하지 말고, 섹스도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던 정수린.
이미 공략 완료이긴 한데, 김하늘을 자극할 겸 정수린도 동시에 자극해도 나쁘진 않을 거였다.
'화난 만큼 더 격렬하게 날 따먹어주겠지...'
"부정 안 해. 네가 귀엽게 생겨서 처음에 반했던 거니까."
김하늘이 고백을 해왔다.
고개를 돌려 뒤에서 있던 그녀를 올려다봤다.
얼굴이 새빨개져있었다.
취기 올라 그런 것은 아닐 거였다. 방금까지도 얼굴이 하얬던 김하늘이었으니까.
"좋아하는 남자애를 도와주고, 고마움을 받으면 당연히 좋을 거잖아. 안 그래?"
술의 힘을 빌려서 고백이라. 역시 이 고백을 위해서 술자리를 만든 것이겠지?
하지만 김하늘에겐 미안하게도 난 이 고백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다만, 김하늘에게도 따먹히기 위해 여지를 둘 생각이었다.
눈을 감았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김하늘?'
키스해 봐.
자고 있을 몰래 키스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김하늘의 뜨거운 손이 내 턱을 잡았다.
탁하고, 누군가가 벽을 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와 김하늘, 둘 다 그 인기척을 무시했다. 입술이 덮쳐왔다. 낼름, 김하늘의 혀가 내 입술 속으로 파고 들었고 난 입을 벌렸다.
난 혀를 움직여 찾아온 손님을 맞아주었다. 김하늘의 혀에선 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 간장치킨, 맥주의 맛이 났다.
정수린이 일부러 의자를 끌면서 착석했다. 애도 참 골 때렸다.
키스가 다 끝난 다음에서야 찾아오지, 대놓고 분위기를 깨려고 했다.
김하늘이 정수린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하고, 내 뒤통수를 감싸며, 키스를 이어나가려고 했다.
난 그런 김하늘의 젖가슴을 짚고 밀어냈다. 오늘 하루 종일 만져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돼 건드렸다. 브래지어 밑에서 지방덩어리가 물컹 모양을 바뀌는 게 느껴졌다.
김하늘은 몽롱한 눈으로 내 입술을 내려다보다가, 미간을 좁히며 정수린이 있을 쪽을 노려봤다.
난 그런 김하늘의 팔을 붙잡아, 다시 날 내려보게 했다.
"하늘아. 미안한데. 키스해보니까 별로 안 두근거린다."
"뭐, 뭐?"
"미안."
난 김하늘의 키스를 챙겨먹고 고백을 거절했다.
김하늘의 고백을 거절한 이유는 정수린과 같았다.
김하늘한테 따먹히려고 '사귀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고, 자는 날 덮치는 걸 보면, 자는 척하는 것만으로도 따먹히기엔 충분했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정수린의 걸음이 멀어지는 기척이 등 뒤로 느껴졌다.
'만족했냐? 내가 김하늘의 고백을 거절해서?'
지금 자리를 피한 정수린은 히죽히죽 웃으며, 김하늘을 비웃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화가 나겠지. 자신의 으름장을 무시하고, 김하늘하고 키스했으니까.
오늘 과외 시간 때, 정수린이 정액 빤 입으로 키스해오려던 걸 거부했던 나였다. 엄청 빡쳤으리라.
빡친 정수린이 얼마나 과격하게 날 따먹을까.
상상만으로도 오싹오싹해졌다.
김하늘도 지금 크게 화가 난 표정이었다.
내가 키스를 허락할 때, 날 얻은 줄 알고 기뻤을 텐데. 미안하게 됐다.
"그, 그러니까 나랑 안 사귀겠다는 거지...?"
"응..."
"키스는 왜 허락했냐."
"미안... 혹시 나도 너 좋아하는가 확인해보려고..."
"하. 시발..."
잠깐. 이러면 족욕과 발 마사지 이벤트는 나가리이려나.
김하늘하고 정수린의 발. 둘 다 귀엽게 작아가지고 한 번씩 만져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다음 기회에 즐기기는 기대해야겠다.
난 죄책감을 느끼는 척 고개를 숙인채 말했다.
"나 집 갈까?"
"아니, 시발. 새벽인데 어딜 나가. 술도 먹었으면서. 남자애가. 아..."
김하늘은 정신사납게 내 뒤에서 왔다갔다했다.
그러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앉더니 내 두 손을 꼭 쥐었다.
간절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잘 해줄게. 예전보다 훨씬 더. 지금은 네가 나 안 좋아하더래도, 사귀다 보면..."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귀는 건, 남창 같잖아. 내가 싫어."
일부러 '남창'이란 단어까지 사용해 거부감을 표시했다.
뭐라고 입술을 열려던 김하늘.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5분 정도 그 자세로 있었을까.
김하늘은 내 손을 꽉 잡았다.
"윽... 아파."
"미, 미안... 이, 있잖아. 재준아, 나 말고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
"아니, 없어."
"가장 호감을 가진 여자는 누군데...?"
"너..."
"아, 시발. 그럼 그냥 사귀자고."
"아, 싫다니까."
"흐흫..."
갑자기 김하늘이 울음소리인지 웃음소리인지 헷갈릴 소리를 내었다.
얼굴을 확인해보니 미소가 띄어져있었다.
"그, 그래도 내가 가장 좋은 거지?"
"그럼. 그동안 도움받은 게 얼마나 많은데..."
'신재준'의 기억만 살펴봐도 신재준이 신뢰하는 여자는 김하늘 뿐이었다. 친누나인 신재연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재, 재준아."
"왜?"
"키, 키스 또 해도 돼?"
"당연히 안 되지, 병신아."
아까 그 적극적으로 받아준 키스는 서비스였다. 이제부터는 강제로 덮쳐와라.
'네가 잘하는 거 있잖아. 내가 잘 때 허락없이 덮치는 거.'
지금은 토요일 새벽이었다. 이번 밤을 보내고 나서도, 내일이 일요일이니 하룻밤 더 자고 갈 수 있었다.
'한 번 더 자줄까.'
정수린한테 이번 밤에 따먹히고, 김하늘한테는 다음 밤에 따먹힐 수 있으려나.
김하늘은 이를 악물고 내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씨. 그만 좀 봐."
내가 입을 손으로 가리자, 김하늘은 바닥에 무릎을 붙인채 몸을 세웠다.
입을 가린 내 손을 떼려고 하면서, 빌었다.
"키스 한 번만 더. 응? 제발, 안 돼?"
"아놔."
"재준아. 마지막으로 키스해주면, 이러지 않을 테니까. 어?"
이 세계의 시선으로 보자면, 지금 김하늘은 진짜 추잡하게 남자한테 매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시선으로 볼 때는 애교였다.
단발의 미녀인 김하늘의 애교가 내 심장과 자지를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다.
강제로 하는 키스도 아닌데, 한 번쯤 허락해줄까 혹할 정도였다.
내가 강한 부정을 하지 않자, 몸이 달아올랐는지 김하늘이 무릎을 떼고 일어나서 내 입 앞에 손을 치우려고 굴었다.
강제로 덮칠 생각은 없는지, 김하늘은 완력을 완전히 사용하지 않았다.
'흐음, 조금만 김하늘을 자극하면 덮쳐올 것 같긴 한데...'
순간 '오석준'으로서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떠올랐다.
그 여자친구한테 너무 키스를 해주고 싶어 참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여자친구가 했던 말이 너무 귀여워서 그랬다.
'걔가 뭐라고 했었더라. 아...'
그때 여자친구의 말을 내 상황에 맞게 내뱉어보려니까, 너무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하지만 내 섹스판타지를 위해서라면... 한다.
"누, 누나가 하지 말랬는데..."
그때 여자친구의 말은 '엄마가 하지 말랬는데.'였다.
'아, 시발...'
내가 내뱉고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시발..."
김하늘한테도 충분히 자극이 됐나 보다.
"윽..."
"미안."
김하늘은 내가 입을 가린 손의 손목을 세게 잡아 벌리게 했다.
내가 또 김하늘의 젖가슴을 밀면서 다가오지 못하게 하자 그 손의 손목 역시 잡아채 벌리게 했다.
내 입술을 덮쳤다. 내 입술 사이로 파고 드는 혀. 난 치아를 앙다문채, 먼젓번 키스와는 달리 침입을 거부했다.
'아, 씨.'
그러자 김하늘은 내 손목을 더 강하게 쥐어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아프기 싫으면 입을 열라는 협박에 굴복해 입을 벌렸다. 김하늘의 혀가 침입해들어와 내 혀를 건드렸다.
내가 혓놀림을 해주지 않자, 혀 밑이며, 입천장이며 치아 위를 자기 혼자 싸돌아다녔다.
난 어느 정도 김하늘에게 당해주다가 치아를 닫았다.
혀를 깨물릴 위기감을 느꼈는지 김하늘이 혀를 회수하고 입술을 뗐다.
우리 둘 입술 사이로 타액의 실이 이어지다가 뚝 끊겼다.
"미, 미안해... 진짜."
김하늘은 또 무릎 꿇고 사과했다.
'음... 뭐라고 화를 내야할 것 같은데.'
'신재준'이 김하늘한테 진심으로 화났을 때, 냈던 욕이 있었다.
그것은 아주 흔한 욕이었다.
중학생 이후에는 소꿉친구한테 좀처럼 하지 않은 단어였다.
"시발년."
아직 철이 덜 든 초등학생 시절의 김하늘은 용돈 자랑이나 어디 해외 여행 다녀왔다는 자랑을 '신재준의 가난을 놀리듯이' 해댈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신재준'은 '시발년'이라는 욕을 하며 분노했었다.
'신재준'은 중학생 때 깨닫기를, 김하늘이 그랬던 것이 사실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관심끌려고'했던 장난임을 알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진짜, 진짜 잘못했다... 내, 내가 취해서 그랬나봐."
"시발,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응... 다신 안 그럴게..."
"..."
"..."
갑자기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는데, 정수린이 다 듣고 있었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 하늘이 언니네서 자고 갈 거죠?"
"어..."
"걱정마요. 제가 하늘이 언니 잘 감시할게요. 푹 주무세요."
"야 정수린."
정색한 김하늘이 정수린에게 뭐라고 하려고 할 때, 내가 정수린의 말에 긍정했다.
"그래..."
나한테 죄가 있던 김하늘은 입을 다물었다.
정수린이 마치 이 무리의 장이라도 된 듯, 박수를 짝짝 쳤다.
"슬슬 치우고, 씻고 자죠."
"그래... 수린이는 좌측 손님방 쓰고, 재준이는 우측 손님방 쓰면 될 거야. 내가 치울 테니까 다들 씻어."
"같이 치우지?"
내 말에 김하늘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씻고 주무세요."
김하늘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런 상태로 봉투에다가 맥주 캔을 담기 시작했다.
평생 좋아하던 남자애한테 차이고, 그 남자애한테 상처를 줬다는 것에 자책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안타까워 보였다.
'아, 깜짝이야.'
내 옆에 선 정수린이 내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손님방에도 샤워실 딸려 있거든요. 가서 씻죠, 오빠."
"응..."
김하늘을 주방에 남겨두고, 우린 넓은 집을 가로질러 좌측과 우측으로 나뉘어진 손님방 방문 앞에 섰다.
"윽..."
정수린이 내 고환과 자지를 쥐었다. 약간의 고통과 약점을 붙잡힌 것에 때문에 표정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시발. 키스하지 말랬잖아."
"미, 미안... 악...!"
불알 깨뜨릴 작정인가. 아프잖아, 시발. 내가 비명을 지르자 정수린도 놀란 얼굴로 얼른 손에 힘을 뺐다.
"시, 시발. 존댓말하랬지."
"죄, 죄송... 합니다..."
정수린은 슬쩍 주방쪽 눈치를 한 번 보더니, 까치발을 세우며 내 입술을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