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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과외 학생한테 따먹힘 (26/201)



〈 26화 〉과외 학생한테 따먹힘

* * *



신재희는 일이 끝나자 사복으로 갈아입고 휴게실에 들렸다. 짐을 챙겨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패드를 발견했다.

'아, 아직 풀콤 못 했는데... 하루만 더 빌리자.'

신재희는 당연히 돌려줄 생각으로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정수린이 충분히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나름 친해졌잖아.

'오빠 앞에서 아이패드하면... 정수린한테 빼앗았다고 생각하려나?'


오빠한테 괜히 잔소리 듣기 귀찮았다.


심지어 자신은 정말 빌린 건데, 정수린한테 빼앗았다고 생각해서 어깨 안마와 가슴마사지, 동침을 오빠가 안 해주겠다고 할지도 몰랐다.


'아, 그럼 개 싫은데.'

신재희는 잔머리를 굴렸다.


엄지혜한테 전화를 걸었다.

[왜?]
"네 아이패드 나한테 빌려준 걸로 치자."
[뭐? 갑자기 뭔 개소리야.]
"내가 정수린한테 아이패드 좀 빌렸거든. 근데 오빠가 뭐라고 할지 모르니까..."

엄지혜가 신재희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냥 내가 빌려줬다고 말만 맞춰달라고? 혹시 물어보면?]
"어."
[참내. 그러게 평소의 행실을 잘 했어야지.]
"아씨. 어쨌든 알았지? 끊는다."



/ / /


나는 엊그제 정수린에게 고백받았다. 거절했다.


정수린이 귀엽게 생기긴 했는데 사귈 마음이 드는가, 하면 글쎄? 였다.

정수린한테 따먹히기 위해서 '사귀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고.


정수린이 먼저 시도해오는 스킨십이나, 내 몸을 엿보는 행동들을 보면 지금처럼 천천히 요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따먹히기'에는 충분해보였다.

'수린이한테는 미안하네.'

(나) [수린아. 오늘도 집에서 과외할까?]
정수린 [넵]

'오늘도 집인가. 기대되네.'

정수린의 집에  때마다 오싹오싹하니 손발 끝에서 전류가 흘렀다. 오늘에야말로 정수린, 그 귀여운 아이가 날 강제로 눕히고, 내 허리 위에서 허리를 놀리는 것이다. 그걸 상상하니 쿠퍼액이 나왔다.

혹시 오늘이 날일지도 모르니, 정수린이 빨아줄 것을 대비해 샤워도 꼼꼼하게 마쳤다.

오늘은 긴팔 셔츠를 입었다, 바지랑 외투는 평소에 입었던 걸로 입고 가기로 했다.


신재희는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영화관으로 출근해서 없었다.

아무도 없게 된 집.

문단속을 하고 보일러실 안 아이스박스 위에 열쇠를 올려뒀다.


어제 내려댄 눈을 뿌드득 밟으며 둘체도 아파트로 향했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김하늘 [오늘 밥 사주셈 ㅋㅋ]


과외 학생 소개시켜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김하늘한테 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김하늘은 며칠 동안 사달라는 말이 없더니 이제야 요구해왔다.


(나) [과외 있는데. 저녁 칰 ㄱ?]
김하늘 [굿]
김하늘 [울집에서 먹을래? 수린이도 데려오셈]
김하늘 [집에 잇는 맥주랑 같이 해서 치맥 ㄱ]
김하늘 [울엄빠 강화도 여행 감]
김하늘 [2박 3일]

"오."


오늘은 김하늘의 날이었다.

좋아하는 소꿉친구가 과외 때문에 자신의  근처에 왔지.


그런데 부모님도 없지.


그 소꿉친구가 이성이라 단 둘이 있게 되는 것을 꺼려할까봐 부를 만한 동생도 있지.

어떻게 어떻게 그 동생을 집에서 내보내면, 좋아하는 소꿉친구와 단 둘이 있을  있었다.


그 상태로 소꿉친구한테 술 먹여서 이런저런 짓  수 있는 날이었다.

(나) [ㅇㅋㅇㅋ]


어쩌면 과외하던 도중에 정수린한테  번 따먹히고, 이어서 김하늘의 집에서 술을 마신 뒤 뻗은 척하면 김하늘한테도 따먹힐  있을지 모르겠다.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졌다.


물론, 내 희망사항일 따름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기 힘들 것이었다.


정수린이나 김하늘이나 둘  인내심이 높았다.

'그래도 정수린은 지금 화가 났을 거라, 날 따먹을 가능성은 있지.'


내게 실연당하자, 그 아이는 체념보다는 분노를 느낀 듯했다.


저번 과외에서 실연 당한 이후, 통 집중을 하지 못했고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녀의 집에서 떠날 때에도 눈도  마주치고 떠나보냈다. 맨날 마중나왔으면서 말이다.






"왔니?"
"안녕하세요, 아저씨."


신발장까지 마중 나와주는 사람은 정수린네 아저씨였다.

거실까지 함께 들어온 아저씨가 롱패딩을 가져가려고 하자 나는 감사히 맡겼다.


그는 롱패딩을 벗기전에 어깨에서 벗어둔  가방을 보고 말했다.

"수린이가 선물준 거지?"
"네."
"흐음. 좀 비싼 걸 주지, 저게 뭐야."
"하하...  마음에 들었습니다."


궁금해서 저 가방이 얼만지 찾아보니까 30만 원은 되었다.

 아저씨한테는 30짜리가  물건인 모양이었다.

그는 정수린의 방을 슬쩍 돌아봤다.

"수린이가 웬일이지. 오늘은 방에 틀어박혔네."

정수린은 집에서 과외할 때면 거실 소파에서 기다려줬는데 오늘은 안 그랬다.


고백 거부한 것에 삐졌나 보다.

"오늘도 수업  해줘."
"네, 아저씨."
"놀지 말고."
"하하... 안 놀아요."

그는 내 집안 사정에 대해 묻고 쓸데없이 내 미래에 대해 조언을 해주거나, 가끔씩 과외 진행에 대해서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해진 과외비 보다 큰 돈을 용돈으로 주기도 했다.

돈을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다.

돈을 준다면 꼰대짓이나 궤변도 기분 좋게 들어줄 수 있었다.


"안녕, 수린아."
"네."

정수린은 책상 앞에 앉아서 날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줬던 머리띠는 어디다가 뒀는지, 앞머리카락이 눈을 찌를듯 쏟아진 상태였다.


오늘 과외받는 동안 자신이 삐졌다는 걸 표현할 작정을 한 듯했다.


'이 세계로 치면, 남자애 같다고 해야 하겠네.'

지금의 정수린 모습은 여자답지 못했다.


한  차였어도 다시 고백한다든지, 아니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대하든지. 그런 모습이  세계의 여자다운 모습일 텐데.


"숙제  거 볼까."
"아,  머리가 아파서 못했어요."

반항기인가.

어쩌면 생리가 온 것 일지도 모르겠다.

신재희도 어제 생리가 터져서 생리대를 차고 다녔다. 요새 각별히 친해진 남매 사이라 그런지, 나한테 굉장히 많이 징징거렸다.

주로 알바하러 가기 싫다는 징징거림이었다.

출근 전에 가슴 마사지 해달라고 했다. 오늘 아침에도 신재희의 멍울  유방 부위를 잔뜩 주물러줘야 했다.


나야 폭유를 만지는 재미가 있어서 좋기는한데, 요새 신재희가 야한 신음을 대놓고 내서 민망했다.

설마 근친애적 마음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닐 터였다.


난 신재희를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버려야했다.


'신재희는 생리 때문에 애처럼 손이 가게 되어버렸는데... 정수린은 생리 때문인지, 고백 거절한 것 때문인지 애처럼 삐져서 귀찮게 되어버렸네.'


"지금도 머리 아파?"
"예, 좀... 아! 그래도 과외 못 받을 정돈 아니고요."

여전히 나랑 같이 있고 싶기는 한 모양이었다. 숙제는 안 했지만, 과외 자체는 받고 싶은 걸 보면.

"그럼 오늘은 여태껏 배웠던 내용들을 가볍게 복습해볼까?"
"예."


나는 정수린이 선물해준 가방에서 내용물을 꺼내며 말했다.

"수린이가 준 가방 너무 좋다."
"...저도 좋아해주시면 안 돼요?"


나에 대한 미련을 못 접었나.

"미안."

과외하는 동안 정수린을 일부러 몸을 붙여오지 않았다. 머리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내밀지도 않았다. 일부러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다.

과외 시작 45분 뒤, 쉬는 시간이 되었을  물었다.


"오늘 저녁에, 하늘이네 가서 치맥 먹을래?"
"치맥요?"

정수린은 처음으로 날 똑바로 쳐다보며 눈을 크게 떴다.

"술 먹어봤어?"
"네... 어머니 서재에 와인셀러 있거든요. 뚜껑 따인 와인 몰래..."
"그거 말고는?"
"안 먹어봤어요."

정수린은 모범적인 중학생이었다. 담배 피는 기색도 없었고, 어린 마음에 호기심으로 먹을 볼만한 맥주와 소주도 입댄 적없었다니.

집에 떡하니 있는 와인은 어쩔 수 없었겠지.

"어떻게 할래? 하늘이네 부모님 없대. 치킨은 내가 쏠 거야. 맥주는 하늘이네 있는 거 먹을 건데, 하늘이가 너도 불렀어. 같이 갈래?"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정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갈래요."

'날 좋아해서, 내가 다른 여자 단둘이랑 술먹는 상황이 싫은 거겠지?'

정수린의 작은 머리통에서 떠돌 생각이 짐작되었다.

'날 좋아하면 얼른 따먹어보라고. 강간 당하는 분위기 내려고 어쩔  없이 싫은 척을 하겠지만, 내심 기분 좋게 따먹혀줄게.'


나는 정수린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습관이 되어버린 탓이었다.


정수린도 습관이 되었는지, 내 쓰다듬기에 히죽히죽 웃었다.


좀 지나서야 자신이 '삐진 척'을 하고 있는 중이던 걸 상기했는지 표정관리를 했다.


"아! 맞다. 오늘까지 근무인데..."

정수린이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정수린은 과외가 끝나면 영화관 알바를 하러 가야했다.

"응? 그럼 같이 치맥 못 먹는 거 아니야? 저녁에 먹기로 했는데."
"새벽에 드시면  돼요? 내일 토요일이라 저 쉬고, 과외도 쉬잖아요."
"그럴까?"


나는 '신재준'의 기억을 뒤적거렸다. 신재연이 따로 통금시간이나 외박 금지를 정해두진 않았다.

신재준 스스로가 통금시간을 지켜서, 누나가 걱정을 안 하겠끔 잘 조절을 해왔다.

절친 나예성의 집에서 외박을 한 적이 흔하진 않지만 몇 번 있었다.


신재연이나 신재희 모두에게 나예성이 유럽 17박 18일 여행 간 것에 대해 '신재준'은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신재연한테 '나도 유럽여행 가고 싶은데'라는 말로 들릴까봐, 누나한테 부담  주려고  말했다.

신재희한테는 '우린 왜 유럽여행 못 가냐고, 봊 같네'라는 말을 듣게 될까봐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신재준'과 신재희의 사이는 좋지 않았기에, 나예성의 이야기를 해줄 만한 사이도 아니기도 했다.


"그럼 아예 하늘이네서 자는 게 낫겠네."
"저, 저도 하늘이 언니네서 자려고요."
"너 일끝나면 몇 시에 돌아와?"
"새벽 2시에 끝나니까 2시 20분? 그쯤이요."
"하늘이한테 톡 보내봐야겠다.


(나) [하늘]
김하늘 [와이]
(나) [새벽 2시 30분. 치맥 ㄱ?]
김하늘 [????]
김하늘 [그렇게 늦게?]
김하늘 [치킨집 닫지 않나]
김하늘 [안 닫아도, 늦었다고 배달 안 해줄 것 같은데]

 팔에 붙어서는 내 핸드폰을 엿보는 정수린이었다.

"오빠, 영화관 근처에 치킨집 있는데 거기 맨날 새벽에도 열려있거든요? 제가 거기서 사올게요."
"응? 내가 사야 하는데..."
"그럼 나중에 저 따로 뭐 사주세요."
"그래? 그러지 뭐."


나한테 식사 약속을 따내는 걸 보면, 그래도 여자애다운 면이 있네 싶었다.


(나) [수린이가 퇴근하면서 사오겠대]
김하늘 [아 ㅋㅋㅋ 정수린 알바했지]
김하늘 [수린이 마감조였나]
김하늘 [그래서 새벽에 먹자는 거?]
(나) [ㅇㅇ]
김하늘 [근데 너무 늦지 않나?]
김하늘 [너 울집에서 자고 갈 거?]
(나) [ㅇㅇ]
(나) [울누나랑 재희한테는 예성이네서 자고 올 거라고 말할 거임]
(나) [너희 집에서 잤다는  혹시라도 말하지 마]
김하늘 [ㅋㅋㅋㅋㅋ 우리 사이면 걍, 울집에서 잤다고 해도 되지 않냐]
(나) [되겠냐]
김하늘 [울엄빠도 집에 있었고, 울엄빠가 너 보고 싶었다고 해서 울집에서 잔 걸로 하면 되지 않나?]
(나) [오]
김하늘 [그치?]
(나) [그래도 좀 그럼]
(나) [그냥 예성이 집에 가서 잔 거로]
김하늘 [아 ㅇㅋㅇㅋ]
김하늘 [ㅋㅋ 근데 니가 사주기로 한건데]
김하늘 [수린이가 사게 되네?]
(나) [아 나중에 진짜 쏠게]
김하늘 [음]
김하늘 [아 ㅋㅋㅋ 꼭 쏘란 얘기 아니었는데 ㅋㅋ]
김하늘 [암튼 ㅇㅋ]


"하늘이 언니랑은 진짜 사귀는 거 아닌가 보네요."
"뭐?"
"그런데. 저 말고 좋아한다는 사람이 하늘이 언니인가요?"


또 연애 얘기인가.

나는 어쩔까 하다가, 정수린을 자극할 만한 대답을 꺼냈다.


"응. 맞아."
"역시 그렇구나..."

까득.


정수린은 이를 갈았다.

그리고 내 얼굴과 가슴, 가랑이 사이를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아... 애 지금 맛갔다.'


위기 경보가 들려오는 듯했다.

여자가 날 따먹으려고 군다는 것에 대한 경고 신호.

이 세상 절대 다수의 남성들에겐 일생일대의 위기의 직감일테지만.

나에게는 오아시스를 찾아내 기쁘게 질러대는 환호성의 연속 같이 느껴졌다.

 수줍은 척, 꺼림칙한 척  손으로 가랑이 사이를 가렸다.

내 그곳을 노려보던 정수린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겁 먹은 척하는 얼굴을 분노에 찬 눈으로 지켜보다가 비릿하게 웃었다.

"기대되네요. 치맥. 맛있겠죠?"

아직은...

아닌가.


따먹히는 건,


좀 나중일 것 같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과외를 시작했다.

정수린은 쉬는 시간 이전 때처럼, 나와 접촉하는 일도 없었고 나에게 쓰다듬기를 갈구한 적도 없었다.

쉬는 시간 전에는 '삐진 척'을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조용히, 덮칠 때를 기다리며 은신한 상태 같았다.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긴장이 깨졌다.

"과일 먹고 해."
"아, 감사합니다, 아저씨."

아저씨가 과일이  접시를 두고 떠났다.

다시 날 따먹을 생각인 여자애와 단둘이 밀폐되었다.

천천히 긴장감이 차올랐다.

"그럼 다음 문제를 풀어볼까. 이건 x에다가..."
"오빠."
"어?"

정수린이 포크로 딸기를 찍었다. 이 겨울날, 어느 비닐하우스에서 키워졌을 통통한 딸기였다.

소녀는 그것을  입으로 내밀었다.

"드세요."
"어, 고마..."
"아, 꼭지가 안 떼어졌구나."

정수린은 딸기를 포크에서 빼내더니, 초록색 꼭지를 떼어뜨렸다. 그러더니 손을 뻗었다.


내가 입을 벌리자 정수린이 딸기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정수린은 마치  먹었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완동물 취급 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냐는 듯 쳐다보자 정수린이 말했다.

"오빠, 혹시 제 아이패드 못 봤어요?"

질문 의도를 잘 모르겠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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