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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과외 학생한테 따먹힘 (20/201)



〈 20화 〉과외 학생한테 따먹힘

과외를 시작한지 45분 지나 쉬는 시간이 되었다.

'오빠가 머리띠를 선물로 줬으니까 나도 뭔가 선물을 해줘야... 아, 그전에 데이트에선 여자가 사야지.'

"오빠, 디저트 드실래요? 제가 사드릴게요."
"미안한데... 내가 오빠잖아."
"에이. 원래 이런  여자가 사주는 거잖아요. 갔다올게요."

정수린은 뭘 고를까 하다가, 아빠가 평소하는 말을 따라했다.

"가장 잘 팔리는 디저트가 뭐예요?"


점원은 블루베리 조각 케이크와 쇼콜라 쿠키, 과자가 잔뜩 꽂힌 생크림 아이스크림를 골라주었다.


"그거 다 주세요."


이것 역시 아빠가 평소에 하는 말이었다.


"전부요? 네,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음. 좀 많은데...'


쟁반에 담긴 것을 보니 '디저트'라고 하기엔 양이 많아 보였다.


"수린아. 점심 안 먹었어?"

오빠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오빠도 남자니까 다이어트 같은 거 하겠지?'

"너무 많아요? 남으면 버리죠, 뭐."
"아니, 너랑 먹으면  먹을 수 있겠지. 잘 먹을게요, 제자님."
"예... 히히... 선생님..."


오빠가 존대를 해줄 때마다 아랫배가 간질간질했다.


'역시 사주길 잘했어.'


"이거 맛있다. 먹어볼래?"


오빠가 쿠키를 들었다.

"아~"


애인끼리 서로 먹여주는 걸 떠올렸다. 오빠와는 이미 애인에 준하는 사이 아니던가. 그래서 입을 벌렸다.


기다렸더니 역시 오빠가 쿠키를 입에 넣어주었다.


맛있게 먹고 있자니, 오빠도 지금  순간이 행복한 듯 표정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 행복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구나...'


정수린은 연애 따위 다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고, 돈도 낭비하며, 서로 싸워서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행위. 무의미를 넘어서 오히려 멍청한 짓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애인이 있는 것들은 '성욕' 때문에 비효율적인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효율적으로 자위를 통해 '성욕'을 뽑는 자신이 현명한 자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젠 나도 사귀는 사람이 생길 거라고? 그것도 학교에서 제일 귀여운 남자... 흐흫...'

"맛있어?"
"넵."


생각해보니 이 쿠키, 오빠의 손길이 닿았던 거다. 그래서 그런지 향긋한 맛이 느껴지는  같았다.

디저트를 처치하느라 쉬는 시간이 길어졌다.


'진짜 데이트하는 기분이네... 다음에도 음식 같은 거 잔뜩 시켜서 쉬는 시간 늘려야겠다.'

 걱정은 들지 않았다. 용돈을 많이 받기에.


뭔가 중요한 한 말이 있는지 오빠가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혹시 재희 알아? 내 동생인데."
"아... 모르진 않죠."

개 시발년.


어떻게 신재준의 친동생이 그렇게 쓰레기일 수가 있을까 싶은 존재였다.

"혹시 재희한테 괴롭힘 당한  있어?"
"없... 어요. 히히..."


신재희와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다. 있지만 자존심 상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오빠가 되묻기를 바래서, 일부러 확신감 없이 말을 늘어뜨렸다.

오빠는 되묻지 않았다.


신재희에 대한 믿음이  모양인지 고개부터 숙이고 보았다.


"미안. 혹시 재희한테 안 좋은 경험 있으면 내가 대신 사과할게."

'아...'

그렇게 고개를 숙인 오빠를 보자 아랫배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느낌...

오빠가 가끔씩 존대말을 해줄 때 느끼는 쾌락과 같은 종류였다.

그런데 그 세기는 더욱 강렬했다.


자신에게 오빠가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복종하고 있었다. 굴복하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 오빠의 작은 머리통 위로 손을 올렸다.

오빠가 늘 해줬던 것처럼 머리씀다듬기를 해줬다. 오빠의 머리카락은 부드러웠다.


"오빠, 재희한테는 아무 감정없어요. 오빠가 고개 숙일 필요없다고요."
"응..."


모태솔로였던 정수린도 성욕이 있었다. 사춘기 여자애 답게 아침마다 '아침이슬'을 흘린 채 깨어난 적이 많았다.


학교나 길거리에서 만난 멋지게 생긴 남자애의 머리카락을 보면 쓰다듬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멀리서 바라봤던 신재준의 머리카락 역시 마찬가지.

 머리카락을 지금 정복했다... 정복감에 짜릿함이 느껴졌다.


'남자의 머리카락... 진짜 느낌 좋다... 그리고 나한테 고개 숙인 오빠의 모습도... 개 꼴려.'


계속 오빠를 고개 숙이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재희가 제 농구화를 '빌려'가긴 했어요."
"뭐?"

역시 오빠는 죄책감 때문인지 고개를 쉽게 들지 못했다.

'귓바퀴도 귀여워.'

슬쩍 오빠의 귀에도 손을 대었다.


정수린은 오빠의 신체부위를 하나둘 정복해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마른 입술을 핥았다.

"신재희한테 제 농구화 돌려달라고 그랬었거든요? 그러자 뭐라는  알아요? 자기껀데 왜 달라고 하냐며, 욕을 하더니 제 뒤통수를 때리고 가더라고요."
"미안해. 내가 재희 혼내고, 농구화도 돌려줄게."
"으음, 아뇨. 어차피 일진이라 험하게 신고 돌아다녔을 거잖아요. 돌려받아서 뭐해요."
"돈으로 줄까?  거 사줄게."


 농구화가 550만 원이었나?


오빠는 '기생수'로 유명했다. 550만 원은 너무나  금액일 것이었다.

"흐음..."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 금액을 부를까 말까?

"엄청 비싼 건데..."

정수린은 생계가 힘든데도 굳세게 살아가는 오빠를 좋아했다.  생긴 얼굴이라 연예계 쪽으로 빠지는 수단도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게 만족스러웠다.


550만 원은 오빠한테 큰 압박일 거였다.  압박에 오빠가 충격을 받아 다른 모습으로 변할지도 몰랐다. 정수린은 현재의 모습 그대로 오빠를 갖고 싶은 거지, 오빠를 망가뜨릴 위험을 감수하기 싫었다.

"괜찮아요, 오빠."


그래서 오빠를 '봐줬다'.

"오빠 얼굴 봐서 없었던 일로 할 거예요."
"그래도..."
"그냥 고맙다고 하고 넘어가요, 네?"
"고마워, 수린아..."

'고개 들어도 되는데... 못 들겠으면 내가 들어줘지, 뭐.'

오빠의 양볼을 붙잡았다.

'아... 물렁물렁한 게 좋다... 남자  살은 이렇게 부드럽구나...'

그리고 들어올렸다.


오빠는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빠의 이런 표정도 매력적이었다. 귀여웠다.

참지 못하고 볼살을 살짝 꼬집으며 손을 떼었다. 손바닥에 남겨진 오빠의 피부, 더 느껴보고 싶지만 그 이상 하면 오빠가 부담스러워할 것이었다.

'사귀면 질리도록 만질  있겠지? 히힣...'



* * *


90분의 과외 시간은 끝났다.


"수린아. 수고했어."
"네, 오빠도요."

신재준은 테이블에 펼쳐놓은 자신의 물건을 가방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가방은 사용한지 꽤나 세월이 흐른 것처럼 보였다.


'아... 오빠, 가방 하나 사줄까. 헤진 게 마음 아픈데. 나도 머리띠 선물 받았으니까, 오빠한테 가방 선물해주면 되겠다.'

"그럼 난 가볼게."
"오빠, 벌써 가게요? 좀만 더 놀다가요."


오빠의 팔을 끌어안았다. 오빠가 놀랐는지 표정이 굳어버렸다.

얼른 팔을 풀어주었다.


'왜 내가 스킨십한 것 싫어하지? 아... 지금 오빠 입장에선 내가 자신의 죄책감을 이용하는 거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어.'


오늘 하루 종일 과외하면서 팔을 서로 맞대고 있었다. 그래서 팔 끌어안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빠는 아니었나 보다.


'남자의 마음은 어렵네. 진짜.'


"그럴까... 근데 뭐하고 놀게?"
"아니다, 됐어요. 생각해보니 저도 할 일이 있네요."

오빠의 좋지 않은 표정에 더는 달라붙지 않기로 했다.

'집안 일로 바쁠 텐데 붙잡으면 안 되지... 내가 자기 배려해준다는 거 생각해서 감동 받았겠지? 흫...'

"응, 그럼 가볼게. 재희 일은 진짜 미안해."
"다 잊고 있으니까요. 미안해하지 말아요, 오빠."
"응, 고마워. 월요일에 보자."
"넵. 선생님."
"제자님, 잘 가요."
"흐흫... 네."

카페 앞에서 신재준과 헤어졌다.

'아, 씨. 주말 때문에 오빠를 보려고 3일이나 있어야 되네.'

조금 더 오빠를 붙잡아두고, '호감도'를 올릴 걸 후회가 되었다.

일진으로 보이는 무리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녀들은 대화 없이 걷고 있었지만, 태생적으로 찐따였던 정수린은 껄렁해보이는 얼굴과 치켜뜬 눈썹만 봐도 저들이 일진임을 확신했다.

이대로 가다간 보도블럭 위에서 부딪칠 게 틀림없었다.

정수린은 일찍이 인도 아래로 내려갔다. 일진이 무서워서 인도 아래로 내려간 게 아니라, 그냥 인도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서 내려간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일진으로 보이는 무리는 지나치면서 정수린에게 괜한 시비를 걸지 않았다.

'휴우... 어? 그러고 보니 오빠랑 사귀게 되면...'

신재준과 사귀면 그 여동생과도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신재희는 중학교 일진 짱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1학년이 돼 일진 서열이 낮아지긴 하겠지만, 유력한 일진 임에는 변함이 없을 거였다.


신재준과 신재희가 학교에서 견원지간처럼, 얼굴을 봐도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 건 유명했다. 그래도 두 사람이 친남매라는 진실은 변함없었다.

'쎈 년인 신재희의 친오빠랑 사귀면. 일진들이 감히 못 괴롭히겠네?'

정수린은 그런 찌질한 계산을 해냈다.

'와... 오빠랑 사귀면 좋은 게 많구나.'

의외로 정수린은 삥을 뜯긴 적이 적었다.


일진들은 둘체도 아파트에 사는 정수린 같은 애들이 용돈을 많이 갖고 있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아파트에 사는 애들은 사회적인 빽이 큰  염려해서 삥을 잘 안 뜯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정수린은 뒤통수를 맞거나 유방빵을 맞는 등, 그런 '장난'은 여럿 당했다.

신재준과 사귀면 그런 일진의 괴롭힘이 사라질 것이란 희망회로에, 고등학교 생활이  편해지겠다고 기뻐했다.




/ /


'신재희, 아주 대형 지뢰를 심어놨었어.'

나는 빠르게 집에 향했다. 신재희가 정수린한테 빼앗은 농구화 모델명을 알아보고,  값을 알아볼 참이었다.

'졸라게 비싼 거면 그냥 넘어가고, 적당한 거면 알바해서 정수린한테 갚으라고 해야지...'


신재희가 이미 저지른 죄.

쉽게 해결할  있는 거면 신재희한테 용서를 비는 것을 훈련시킬 생각이고, 어려우면... 어쩔  없이 눈 감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애였다. 현실의  앞에서 마음이 또 토라져 나쁜 방향으로 가게  수는 없었다.

'분명 졸라게 비쌀 삘인데. 몇 백만 원짜리도 그냥 선물로 주는 집안에 딸이란 말이지.'


집에 도착해보니 현관문이 잠겨있었다. 아침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신재희한테 농구화 사진 찍어서 보내라고 할까? 아니다. 그냥 나중에 집에 왔을 때, 몰래 확인하자.'

신재희 앞에서, 신재희의 잘못을 눈감아지는 짓을 했다간  양아치 같은 여동생은 신나서 또 나쁜 짓할지도 모르니 그런 거였다.

핸드폰을 확인해봤다.

'하늘이한테 톡이 왔었네.'


과외하는 내내 무음 상태로 만들둔 터라 톡이 온  몰랐다.

김하늘 [괜찮은 알바 자리 하나 생각남]
김하늘 [정수린네 회사가 영화장비 수입 업체임]
김하늘 [영화관  개도 간판 빌려서 위탁 운영 중임]
김하늘 [성연CGV도 위탁 운영 중이고]


성연CGV는 집 근처 시내로 나가면 금방 이용할 수 있는 영화관이었다.

김하늘 [정수린도 방학마다 성연CGV에서 알바하더라]
김하늘 [재희 알바 자리, 수린이나 수린이네 아빠한테 부탁하는 건 어떰?]

"이러면... 갑과 을이 역전되겠네?"


학교에서는 일진 신재희가 '갑', 찐따 정수린이 '을'이었다.

알바장에서는 사장 딸 정수린이 '갑', 시급 알바생 신재희가 '을'이  것이었다. 이 경우는 물론, 신재희 뿐만 아니라 정수린까지 동시에 알바할 경우지만 말이다.

'마침 재희도 알바해보겠다고 했지... 정수린도 방학마다 한다니까 이번 겨울방학에  것 같고.'


신재희는 정수린에게 잘못한 게 있었다. 갑을역전을 당해보는 것도 나름 체벌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 [ㄱㅅㄱㅅ  번 재희한테 물어볼게]

김하늘은 내 톡을 기다렸다는 듯 곧 답톡을 보내왔다.

김하늘 [ㅋ큐ㅠ]
(나) [??]
김하늘 [소개팅 맨날 해도]
김하늘 [안 생기는 건 왜냐고ㅠㅠ]
(나) [거울 봐]
김하늘 [칙쇼]





* * *


신재희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돌아왔다.  랭크전이 잡힌 걸 보고 현관문으로 왔다.


현관문 안쪽에 놓인 비싼 농구화... 생긴 것을 토대로 검색해봐도  모르겠어서, 사진을 찍은 뒤 지식IN에 무슨 제품이고, 새 제품이 얼마일지 물어봤다.

"돌겠네."

한정판이란다. 부르는 게 값인데 시세가 600~700이란다.

'신재희, 이 개 년... 마음을 바로 잡겠다는 다짐을 하면 다야? 그리고. 마음  잡았다는 년이, 하는 게 친구랑 놀러다니기랑 집에서 컴퓨터 게임하기고?'

큰방으로 들어온 나는 신재희를 불렀다.

"재희야."
"아, 거기서 다이빙하면 어떻게!  븅신새끼!"

신재희한테 다가가 헤드폰을 벗겼다.

"아, 나중에 말해! 지금 랭크전이란 말이야."
"랭크전이고 나발이고. 알바하겠다며. 어떻게 됐어?"
"구하고 있어. 내가 알아서 구하고 알바할 거야."

굉장히 귀찮은 목소리.


느낌이 왔다. 이 년, 겨울방학 끝날 때까지 스스로 알바 자리 안 구할 것이었다.


"오빠가 알바 자리 구해줄게. 해."
"아, 내가 구한다니까요."
"누전차단기 내리고 온다?"
"아, 왜!"
"내가 구해오면 일 해봐."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빨리 사플해야 된단 말이야!"
"너 알았다고 했다?"


신재희에게 다시 헤드셋을 씌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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