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과외 학생한테 따먹힘 (12/201)



〈 12화 〉과외 학생한테 따먹힘

"딸. 친구 만나러 가?"
"하늘이 언니가 보자고 해서."
"잘 다녀 와. 하늘이는 좋은데, 이상한 애들하고는 친해지지 말고."
"어..."

정수린의 대인관계가 빈약해진 것은 아빠 때문이었다. 비슷한 급의 또래하고만 우정을 나누라고, 어렸을 때부터 대놓고 강요하는 아빠였다. 그렇게 친구를 가리고 가리다 보니 친구가 적었다.


몇 있는 친구도, 정수린을 아싸 라고 생각해 학교 밖에서까지 같이 어울려주지 않았다.

'하늘이 언니가 나랑 동갑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간간히 이렇게 자신을 불러주는 존재가, 하필이면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만날 때마다 꼬박꼬박 저자세를 취해야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하늘은 어린이용 놀이터에서 일어선 채로 그네를 타는 중이었다.

"왓섭!"


정수린을 발견한 김하늘은 타고 있던 그네에서 점프해 멀리 착지했다.


"수린아, 요즘 뭐하냐?"
"그... 롤하면서요. 지내요."
"오. 롤. 등급 뭐야? 아이디는?"
"등급은 골드인데요... 아이디는 복잡해서 톡으로 보내드릴게요."
"허접이고만."

정수린은 순간 울컥했다.


'자기는 등급이 뭐길래, 골드인 나를 무시하는 거지?'


하지만 소심한 정수린은 입을 다물었다.

김하늘은 정수린이 뭐라고 말을 맞받아칠 때까지 기다렸다.

"..."
"..."

하지만 정수린이 입을 다물고 있자, 그냥 본론에 들어갔다.

"수린아. 과외 받아볼래?"
"예?"
"혹시 기억나? 신재준 말이야. 우리 어렸을 때, 공원에서 한 번 같이 논 적 있었는데."
"아, 신재희네 오빠요?"
"어."

'신재희, 시발년.'


정수린과 신재희는 절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정수린은 학교에서 존재감이 적은 아이였고, 신재희는 중학교 일진 짱이었다.


'내 농구화 뺏어간 년.'


용돈을 모아서 샀던 비싼 거였는데. 한 번 신어보자고 빌려가더니 그대로 튀어버렸다.

비싼 것이기에 돌려받으려고 한  있었다. 그러자 자기가 산 건데 왜 달라고 하냐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면서 뒤통수를 때리고 떠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개 같은 년이었어.'


신재희와 신재준을 처음 만난 것은 이 아파트에 이사온지 얼마  됐을 때였다.


그때도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귀엽게 생긴 남자애한테 홀딱 반해서 바보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신재희가 따라오지 말라고 자꾸만 때렸었다. 맞고 울었지만 신재준하고 같이 놀고 싶다는 생각에, 하얀 원피스를 더럽히며 계속 따라다녔다.

그날, 값비싼 원피스를 흙칠을 했다는 것 때문에 아빠한테 혼나고 공원에서 노는 걸 금지당했다.

반항하는 법을 몰랐기에 그대로 따랐고, 신재준과 다시 놀게 될 일이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모두 같은 신재희와 신재준 남매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 이번에 입학하게 될 고등학교 때도 그렇게 될 것이었다.


소심했기에 학교에서 접근하지 못했다.

신재준은  학년 높았기에 허물없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신재준과 친한 김하늘에게 부대끼면 접근할 수 있을 터였지만, 정수린은 그걸 요구할 만큼 행동력이 없었다.

신재준은 나이를 먹을수록 귀여움을 더해갔다. 그에 따라 그의 인기는 높아져만 갔다.


학교 축제 때 다른 학교 여학생들이 놀러오는 까닭이 있다면, 신재준의 외모를  번 즈음 구경해볼 생각으로 오는 것이라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어느 순간부터 신재준은 절벽  꽃처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가졌던 첫 사랑을 말이다.

오른손을 애인으로 삼고 있기를 십 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오른손과 헤어질 기회가 온 것 같았다.

"재준이 오빠가 과외생 구하고 있대요?"
"어."
"언니는 저를 과외생으로 소개해주려는 거고요?"
"맞아. 과외 받을 생각 있어?"
"예... 아, 아빠도 마침 과외해보겠냐고 그래서... 잘 됐네요."

정수린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과외를 받는 도중 자신한테 반한 신재준이 고백을 해오고. 자신은 받아준다.

그렇게 고1 때부터 성연고에서 가장 귀여운 남자와 사귀게 되면서 지내고.

고3 때는, 엄청난 미남인 남대생 남친을 가진 상태로 보내게 되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CC로서, 군대에서는 면회자로서 신재준이 애인인 것 때문에 부러움과 시기를 받는 거다.


군대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면 회사일을 배우는 동시에 그와 결혼을 하는 거다.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내조를 하고 있는 신재준과 사랑을 나눈다.


배가 아플 테니 자식은 딱 하나만 낳아서 키우고, 늙은 어머니가 사장직에서 물러나면 자신이 사장이 되는 거다.

노년에는 장성한 자식한테 회사를 물려주고, 신재준과 어디 조용한 시골에 가서 지내다가 죽는다...

"네가 좋아해서 다행인데. 너의 부모님은 어떨 것 같냐?"

행복한 상상을 하는데 김하늘의 목소리가 그걸 깼다.

"제가 스스로 과외한다고 하면 기뻐하실  같은데요."
"음... 이게 재준이가 돈 받으면서 과외하려는 거거든. 고2로 올라가는 애가 고1 과외한다고 하면, 학부모 입장에선 불신감이 들 수도 있잖아. 그래서 잘 설명할 필요가 있는데."
"에이. 괜찮을 거예요."
"후우... 그래? 그래도 재준이가 1학년 내내 학년 2등했다는 거, 그것도 너희 부모님한테 말씀드려봐."
"아, 예."


'네가 나보다 우리 부모님을  알겠냐?'


정수린은 속으로 코웃음쳤다.




* * *



"아, 아빠. 왜 안 되는데.  공부 제대로 해볼 거라니까?"
"한다면 제대로 해야지. 과외생 구한다는 명문대학생들이 널렸는데,  이제 고2 되는 애를 과외 선생으로 삼으려고 해?"

정수린과 예상과 달리 아빠의 반대는 심했다.

"고1 때 맨날 전교에서 2등했대."
"음? 그래?"


김하늘이 덧붙이라는 말을 붙여서야 소녀의 아빠는  번 보자는 말을 꺼냈다.


* * *






[하늘이 언니. 저희 아빠가, 재준이 오빠  오늘 만날 수 있냐고 하는데요.]
"오, 진짜?"
[재준이 오빠한테 물어봐주세요. 오늘 오후 4시 즈음에 올 수 있냐고요.]
"그래, 알았다. 물어보고 연락줄게."

전화를 끊은 김하늘은 피식 웃었다.

'신재준이 과외 선생해준다는데 거부할 여학생이 어디있겠어.'


그런데 문제는 학부모였다.


신원이 불확실한 예비 고2한테 돈까지 쥐어주며, 과외 알바를 시킬 만한 학부모는 적을 것이었다.


'나한테 신뢰를 갖고 있고, 돈도 많은 학부모... 정수린네 아저씨 밖에 없었어.'

오래 전부터 정수린의 아버지와 김하늘의 아버지는 아파트 부남회에서 만나 친해진 사이였다.

'집에까지 불러서 얼굴 마주하는 거면, 재준이가 과외하게 된  거의 확정이겠지?'

신재준한테 점수 좀 따게 될 듯했다. 그가 더욱 자신하게 의존하게 될 것이었다. 기뻤다.


'흐음... 그런데 설마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생기겠지?'


과외는 단 둘이 밀폐된 방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신재준과 정수린. 1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남녀 둘이서 오래 시간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춘기여서 한창 이성에 관심이 있을 때인데 말이다.

'정수린도 여자애라서 신재준한테 관심이 갈 테지만... 소심해서 어쩌지 못하겠지. 재준이도 여자한테 관심없을 테니 아무 일 없을 거고.'

없을 거였다.

분명.



* * *


"드, 들어와요, 오빠."
"응. 흐음, 여자 방은 이렇구나?"

'재준이 오빠가  방에 들어왔어...'


신재준은 여자의 방이 신기한 건지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자리에 앉은 오빠가 자신의 가방에서 필기구와 공책, 시험지를 꺼냈다.


"오, 오빠."
"응?"
"하늘이 언니랑 사귀는  정말이에요?"

신재준과 김하늘은 자신의 아빠 앞에서 사귀는 사이라고 고백했다.

오늘  사랑과 재회를 하는 것이라 무척이나 기대했었는데... 그 고백에 실연당한  가슴이 아려왔다.

"아...  사겨. 너희 아버님이 과외 못하게 할까봐, 하늘이가 갑자기 그런 거야. 난 그거에 맞춰준 거고."

'아직 실연당한 게 아니야!'


정수린은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하아... 다행이다."
"응? 뭐가 다행이야?"
"아, 아니에요..."
"그럼 문제 한 번 풀어볼래? 혹시 전년도 3월 모의고사 미리 풀어본 적은 없지?"
"네, 없어요."
"보통은 시간을 재야 하는데, 실력을 알아보려는 거니까 모르는 문제는 빠르게 통과해. 모르겠으면 찍지 말고 지나가, 알았지?"
"넵."

'뭔가 전문적인  같아. 후우... 오빠가 옆에 앉아있으니까 체취 같은 게 난다...'

"수린아?"
"예, 예. 푸, 풀게요."


'개쉽네.'


1번 문제, 단순한 제곱된 숫자끼리 나누는 문제.

2번 문제, 최대공약수를 찾아내는 문제.


3번 문제, 일차방정식의 해를 찾는 문제가 이어졌다.

'어? x절편과 y절편...? 이게 뭐더라?'


정수린은 일차함수의 그래프에서 x절편과 y절편을 찾아야 하는 문제에서 막혔다.


수학을 아예 포기한 까닭에 벌어진 사태였다.

"괜찮아. 네가 모르는 거 있으면 내가 알려줄 거니까, 창피해하지 말고. 모르면 통과해."
"네, 넵..."

'아, 오빠... 엄청 자상해... 5번 문제는 쉽다.'


특정 함수의 그래프가 두 점을 지나는데, 출제자가 감춰둔 미지수를 계산해내는 문제였다.

'6번 부피 구하는 문제도 쉽고...'

가능하면 높은 점수를 받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고, 이제는 절벽 위 꽃인 줄만 알았던 오빠 앞에서 처음으로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니까.


이대로 쉽게 풀다보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발... 루트를 어떻게 벗겨내더라.'

하지만 루트가 씌어진 이차방정식끼리 뺄셈을 해야 하는 7번 문제에서 또 막혔다.

수학 개념원리를 공부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것이었다.

정수린은 습관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숫자인 '4'번에다가 체크를 할 뻔했다.

죽음의 숫자 4.


남들이 싫어하기에 정수린은 좋아했다.


'아, 오빠가 찍지 말랬지...'

뒤이어 나온 문제들에서 개념원리의 공부가 부족해서 풀지 못할 것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일단 어거지로 아는 것을 동원해 숫자를 적었다.


 풀이들은 만취자의 횡설수설과도 같은 엉터리였다.

거의 10년 만에 마주하게 된 첫사랑 앞에서 한심한 꼴을 보이게  것 같자,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워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과일 먹으면서 해."

그때 아빠가 과일이 담긴 쟁반을 내려놓고 갔다.


다시 문제를 푸는데, 오빠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하늘이 언니랑  하나?'

질투심이 들면서 자신과의 과외 시간이니 자신한테만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수린은 소심해서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할만한 말을 꺼내기로 했다.


집에  오빠를 처음 본 순간부터 해주고 싶었던 말.


학교에서 멀리서 그를 발견할 때마다 전해주고 싶었던 말.

"저, 오빠..."
"응? 모르는 거라도 있어? 그래도 일단  도움 없이 할  있는데까지 풀어 봐."
"아니, 그게... 그... 마, 많이 귀여워지셨다고요..."

엄청 용기를 내서 말했다.


'기, 기분 나빠하진 않겠지? 남자들은 외모 칭찬 좋아한다는데, 좋아하겠지?'

"그래? 고마워."

그러자 오빠가 팔에 볼을 괴고 누워서,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정수린은 눈동자만 굴려서 그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얼른 시험지를 바라봤다.

'나, 나를 좋아하나? 엄청 쳐다보네...'

생각해보면 공교로웠다. 김하늘은 왜 하필 자신에게 다가와 과외를 해볼 생각없냐고 물어봤던 것일까?

'혹시 재준이 오빠가 하늘이 언니한테 부탁한 건가? 날 좋아하고 있었는데, 내가 자신한테 다가오지 않아서... 지금처럼 접촉할 생각으로?'

그럴싸 했다. 아니, 그게 맞을 거였다.

'그게 아니라면 오빠가 날 빤히 바라볼 이유도 없을 거 아니야.'

소녀는 그것을 근거로 자신의 짐작이 확실하다고 여겼다.

정수린은 너무나 기쁜 상황에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웃음소리는 막았지만, 입가가 호선을 그리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오늘 하얀 원피스를 입길 잘 했어. 오빠가 찾아온다고 해서, 오빠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입었던 것처럼 하얀 원피스를 입었으니... 내가 오빠와 처음 만났던 때부터 계속 잊지 않고  생각해왔다는 걸, 오빠도 알았겠지.'

정수린의 망상이 폭주했다.


'오빠가 나한테 고백하겠지? 이런 식으로 과감하게 접근해온 걸 보면. 내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지쳐서 먼저 고백해올 거야. 원래 여자인 내가 고백하는 게 맞겠지만... 남자한테 고백  번 받아보고 싶으니까 참아봐야지.'

정수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하늘이 언니... 분명 재준이 오빠 좋아했겠지?'


무려 10년 넘게 소꿉친구 상태인 두 사람이었다. 신재준의 외모를 보면서, 연심을 품지 않을 수 없으리라.

'소꿉친구 뺏어가서 미안해, 언니.'


/ / /




정수린은 문제를 풀면서... 아니, 계속 엉터리 풀이를 적으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었다.


"다 했어요, 오빠."
"수고했어."


나는 정수린이 푼 시험지를 받았다. 빨간 색연필을 필통에서 꺼내지 않았다.

눈으로만 채점했다.


초반 문제들은 몇 개만 맞췄고, 투명한 소나기가 내려졌다.


정수린의 공부 의욕이 바닥낼까봐 색연필을 쓰지 않은 것인데, 잘한 선택했다.

'심각하구만. 중1 과정부터 가르쳐야겠는데...'


/ / /


정수린은 시험지를 확인하는 신재준의 얼굴을 구경했다. 입술을 다물고 시험지를 진지하게 훑는 표정이 섹시했다.

당장 입술을 덮치고 싶었다.

'하, 시발... 그냥 내가 고백해서 얼른 사귀어버릴까? 그럼 키스도 막... 섹스도... 헐. 유두 튀어나왔었네... 개 빨고 싶다...'

신재준이 입은 브이넥 셔츠는 얇은 재질이었다.

보통 남자들은 유두가 튀어나올만  셔츠를 입을 때는, 안에 나시를 껴입는 편이었다.

하물며 지금은 날씨가 추운 겨울이었다. 그런데 신재준은 일부러 유투가 튀어나올 얇은 재질의 옷을 입고 왔다.

'설마 나한테 '유툭튀' 보여주고 싶어서? 이 오빠... 나한테 따먹히고 싶어서 작정한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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