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겨울방학 (9/201)



〈 9화 〉겨울방학

'못 봤겠지.'


재수가 지지리도 없지. 겨울방학에 일진 선배를 보게 될 줄이야.

 본 척하고 계속 가던 길을 갔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설마 아니겠지 싶은 마음으로 수신자를 확인했다.


[기미정 언니]

"시발."


신재희는 욕설을 뱉으며, 뒤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여자를 생각해 태연한 척 걸어나갔다.

전화를 받았다.


"네, 언니."
[재희야. 멈추고 뒤돌아.]
"네?"
[많이 컸네, 우리 재희. 한 번에  알아 처 듣고.]
"죄, 죄송합니다, 언니."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바바리 코트에 니트 투피스, 워커를 신은 여자가 핸드폰에 귀를 댄 채, 손을 크게 흔들었다.

신재희는 핸드폰의 마이크 부분을 손으로 막고, 고개를 90도로 접으며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그 여자가 흔들던 손을 내리고, 자신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신재희가 핸드폰을 귀에 대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뇽.]


신재희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지, 지금 달려가겠습니다."
[엉. 빨리 와. 울 재희 보고 싶다.]


인도 블럭 위는 눈이 치워져있었지만, 얼려있는 부분도 있었다.

신재희는 몇 번이고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2차선 도로의 좌우를 살피다가 지나다니는 차가 없어지자 무단횡단했다.

버스정류장에 홀로 있던 여자와 마주하게 됐다.

기미정. 나이는 열여덟 살. 올해 고2가 되는 일진.

신재희는 기미정에 귀에 달린, 지름이 커다란 귀고리를 볼 때마다 확 잡아당겨 귓볼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재희야. 솔직히  봤지?"
"모, 못 봤... 윽!"

기미정이 신재희의 코를 아프게 눌렀다.


"봤잖아, 시발."
"죄, 죄송합니다. 봤, 봤습니다."

기미정은 손을 떼고 자신의 코트에 문질렀다.


"아, 시발. 코 기름. 뭐? 진짜 봤었어? 봤는데 나 무시하고 지나쳤던 거야? 와, 중학교 짱 먹더니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았냐?"


'떠본 거였냐, 시발...'

"죄,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그런  없도록 하겠습니다."
"재희야. 이제 3월 되면 예전처럼 같은 학교 다니겠네? 기대해. 나한테 볼라  맞고 다니는 학교 생활."
"죄송합니다. 그런  없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너 오늘  좋은 줄 알아. 소개팅 나가는 날이라  기분이 좋거든? 한 번만 봐준다. 담배 좀 사다줄래?"
"옙. 던힐 발란스... 맞으시죠?"
"올. 역시 에이스. 갖다 와. 10초 준다."


'시발. 내가 네 년 셔틀이냐.'

신재희는 버스정류장 바로 뒷편에 위치해있던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잘 생긴 남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던힐 발란스... 던힐 3미리 주세요."

남자 알바생이  알아먹을까봐 제대로 제품명을 말했다. 늦으면 기미정이 지랄할라.


"미성년자한테  팔아요."
"히힣...  성인인데요."

신재희는 주머니에서 신재연의 신분증을 꺼냈다. 오래 전에 신재연의 지갑에서 훔친 것이었다.

 자매는 쏙 닮은 외모라 편의점 알바생은 속았다.

"엄청 동안이시네요."
"감사합니다."


신재희가 주머니에서 색색의 지폐 뭉텅이를 꺼내자, 남자 알바생의 눈초리가 다시 의심쩍어졌다.


그러나 캐묻기 귀찮았는지 5천 원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었다.


담배를 사들고 나오니 기미정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썩어들고 있었다.


'아, 썅.  됐다...'

신재희는 조심스럽게 기미정에게 다가섰고, 담배를 내밀었다.


"아, 시발. 내가 일진인 걸 말하면 어떻게 하냐. 개 봊 같네."


일진인 걸 숨기고 소개팅 나가려던 모양인데, 남자쪽에서 기미정이 일진인 걸 알자 파토를  모양이었다.


'시발놈. 그냥 소개팅 나오지. 하아... 일진 개 꼬이겠네.'

기미정은 신재희의 손에서 담배를 채갔다. 그러다가 담배가 비닐포장에 쌓여있자 미간을 찌푸렸다.


'아, 시발... 맞을 삘인데.'

그녀는 신재희한테 담배 내밀었다. 신재희가 그걸 두 손으로 건네받자, 기미정은 비게 된 손으로 신재희의 뒤통수를 때렸다.


퍽!


신재희는 골이 울리고, 눈앞에서 별이 번뜩이는 걸 보았다.


'시발. 오빠가 아닌 사람한테 맞는 건, 역시 개 봊 같다.'

신재희는 표정관리를 하며, 담배 포장을 뜯고 담배  개비를 내밀었다.

기미정이 담배를 물자, 신재희는 바람을 손으로 가리며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 다음에? 다음에 언제 시발. 음... 쌔끈한 놈으로 준비해주겠다고? 하아... 알았다."


'다음 소개팅 약속을 받은 건가? 기분 좋아져라, 제발. 그리고 나 그냥 보내주라...'


"술? 뭔 대낮부터 술판이야, 미친년들. 아, 맞다. 우연히 재희 만났거든? 얘도 데려갈까?"

'데려오라고 하지 마. 데려가지 마. 제발.'


"뭐? 아씨, 신재준 그놈이 부른다고 오겠냐? 범생이잖아, 그 새끼."


'개같은 년들...'


일진년들 사이에 신재준은 유명했다. 학교에서 유명한 미남이었으니까. '귀여운 타입'으로만 따지면 신재준이 학교에서 가장 귀여웠다.

신재희와 신재준이 친남매라는 것도 일진년들이  알고 있었다.

일진년들은 신재희를 통해서 신재준을 술자리에 꼬셔내고, 그 술자리에서 신재준한테 술을 먹여 어떻게든 따먹고 싶어하는  같았다.

신재희는 표정관리도 잊은채 분노로 가득 채워졌다.


기미정은 그런 후배의 얼굴을 보고 비릿하게 웃었다.


"나는 그냥 신재희랑 놀란다. 걍 네들끼리  먹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기미정은 담배를 깊게 들이 마시더니, 연기를 신재희의 얼굴에 뿜었다.

"야. 표정관리 안 하냐?"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우리 재희랑 놀아볼까. 따라 와."
"예."


기미정은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어딘가 인적 드문 곳을 찾아내어, 그곳에서 신재희를  생각인 게 분명했다.


신재희는 하극상을 벌일까도 싶었지만, 작년에 기미정이 조폭 3명을 혼자서 두들겨팼던 장면이 떠올라 하극상 계획을 포기했다.


"여기 괜찮네."

폐빌딩의 지하주차장. 비좁고 케케묵은 냄새로 가득  지하주차장이었다.

버려진 승용자 한 대 위는 먼지가 짙게 쌓여있었다. 그 차창과 보닛에는 누군가 낙서한 게 적혀있었다.


'sex', 'SEX', '씹걸레 김요한', '010-4444-4444', '1발마다 4만 원' 이따위 짓궂은 낙서였다.

노숙자가 자다가 버린 듯한 박스 더미도 보였고, 버려진 막걸리 술병 위에는 종이컵이 뒤집어 씌어져 있었다.


"외투 벗어."


신재희는 빠릿하게 외투를 벗고, 더러운 바닥에 넓게 펼쳤다.


기미정은 숄더백을 내밀었다. 신재희는  손으로 받았다.

기미정은 자신의 바바리 코트를 벗어 잘 갠 뒤, 신재희의 외투 위에 두었다.


"내 가방, 저 위에 놔."


신재희는 바바리코트 위에 숄더백을 올려뒀다. 그리고 똑바로 서서 뒷짐을 섰다. 온몸을 긴장시켰다.

"시발. 표정관리   해?"
"컥!"


명치에 꽂힌 주먹에 신재희는 순간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꺽꺽거리다가 간신히 호흡을 되찾았다.

기미정은 연속해서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그때마다 신재희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았다.

"시이발. 옛날 생각나고 좋지?"
"..."
"이젠  말도 씹는 거야?"
"아닙니다."
"아니긴. 방금 씹었잖아, 시발년아."
"욱!"


배를 정통으로 맞았다. 엄지혜의 집에서 끓여먹었던 라면이 넘어오려고 했다.

"토하지 마라? 다 삼키게 할 거다?"


신재희는 구토를 억지로 참아냈다.


그런 신재희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왔다.

신재희는 돌아갔던 얼굴을 도로 똑바로 했다. 입술이 터졌고, 턱이 욱씬욱씬거렸다.


"내가 네 오빠 이름 언급해서 기분 봊 같았어?"
"아닙니다."
"나한테 짜증난 건 아니고, 나랑 전화하던 시발년이 개 봊 같던 거지? 그년이 신재준 데려오라 마라 해서."
"...아닙니다."
"대답 늦는 것 봐, 시발. 그래도 잘 했어. 내 친구 뒷담 깠으면 반 죽이려고 했는데."


빈말이 아님을 알았다. 기미정은 한다면 하는 미친년이었다.

신재희는 대답을 실수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기미정의 눈치를 잘 살폈다고, 순간 기뻐해버린 스스로가 병신 같았다.



* * *





'기미정,  시발년. 유방까지 때리냐.'

다른 맞은 부위들도 마찬가지로 욱씬거렸지만, 유방의 욱씬거림이 유독 심했다.

스타킹 올이 나갔다. 정강이가 워커화 코로 까인 것이었다.

기미정이 지하주차장에서 떠난지  지났다. 바닥에 깔려있던 외투를 집어들었다. 묻은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먼지 터는 손놀림에는 감정이 실려있었다.

'시발! 시발! 날 때릴  있는 건 오빠 뿐인데!'

외투를 걸쳐입고 성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오빠가 꼬질꼬질한 옷을 입은채, 전기장판  이불 속에 들어가있을 그 가난한 집으로.


'기미정, 시발년한테 맞았던 곳 위를 오빠의 손찌검으로 뒤덮고 싶어.'

특히나 유방을 오빠한테 맞고 싶었다. 그 부위가 가장 아팠고, 기미정의 손길이 가장 깊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 * *




기미정은 이를 갈았다.


'아, 시발... 볼라 개 싫다...'

그녀는 스스로를 혐오했다.


어째서 자신은 이런 성소수자가 되어버린 걸까?

'이게  신재희 때문이야. 여자 주제에 볼라 귀엽게 생겨가지고...'


쌔끈한 남자들을 봐도 다른 여자들처럼 애액이 흘러나와 팬티가 젖는다거나 그런 적이 없었다.

2차 성징기가 찾아오고, 사춘기가 왔어도 발정나는 일이 없었다. 야동을 봐도 흥미롭지도, 꼴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무성애자'라는 성소수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겉으론 다른 동성친구들처럼 남자를 따먹고 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남들한테 '무성애자' 임을 들키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레즈, 즉 '동성애자'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겼다. 레즈는 역겨운 존재였다. 어떻게 보지끼리 맞붙이고 비벼댈 수가 있는 거지? 상상만으로도 역겹고, 토할  같았다.

그것이 이 세계의 일반적인 여자들 생각이었고, 기미정은 자신이  일반적인 사고관에 공감을 하고 있다는 것에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자신이 중학교 2학년일 때, 일진회에 들어온 중1짜리 신재희를 보자마자...


'재희, 시발년아. 사랑해...'

사랑에 빠졌다.

신재희를 품에 껴안고, 그 동그란 볼 위에 뽀뽀를 하고, 귀여운 입술에 입을 맞추고, 분홍빛 참새 혀 같은  조그마한 것을 탐하고, 자그마한 몸집에 어거지로 붙인 것만 같은 그 폭유 속에 고개를 파묻고,  소녀의 가랑이 사이에 있을 조갯살에 자신의 조갯살을 맞붙여 질척한 교미를 나누고 싶었다.


'재희야...'

"하아... 하아..."


기미정은 허벅지를 모은 이상한 걸음으로 상가 건물 화장실에 들어갔다.

서둘러 팬티를 끌어내리고 치마를 들춰 올리곤, 참고 있었던 조수를 변기에 쏟아부었다.

"흐으읏... 후우..."

조수를 쏟아버리자 일단 안도감이 들었다. 칠칠 맞게 대로변에서 실례를  뻔했다.

"흐읏... 재희... 우리 재희..."


조수에 흠뻑 젖어버린 보지. 애액을 뿜어대며 벌렁거리는 보지를 손바닥으로 문질러댔다.


질척한 물소리가 변기 칸을 너머 화장실에서도 울렸다.

'내가 부르자 두려워서 눈치 보는 재희... 귀여워...'

군기반장으로서 체벌 좀 줬더니 그녀 앞에서 저자세를 취하는 신재희였다.


'나한테 맞아서 아파하는 재희도 귀여워...'


신재희가 울면서 용서를 빌었으면 좋겠다.


다리에 달라붙어서... 죄송하다고, 언니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흐느끼며 올려봤으면 좋겠다.


'그래도 분노를 참는 재희도 귀여워...'


지하주차장에서 신재희의 유방을 때렸을 때가 생각났다. 무슨 탱탱볼을 때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박스티 속은 노브라였다.


주먹에 맞아서 파동을 일으킨 폭유.

맞지 않은 다른 쪽 폭유도 충격을 간접적으로 크게 출렁거렸다.

격통에 일그러진 신재희의 표정.


그것은 마치 오르가즘에 도달해 일그러진 듯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떠올림과 함께 기미정은 몸을 격렬히 떨며 오르가즘에 도달했다.

"힛?! 히이익...!"


좌변기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클리토리스 자위로 인한 오르가즘은 제법 빨리 진정됐다.

숄더백 속에 핸드폰이 진동했다. 오르가즘 이후 나른함 속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시발.  언제 오냐? 소개팅 너 빼고 한다?]
"어, 나 빼고 해. 나 안 나가."
[뭐?  개소리야!]
"더 쩌는 새끼랑 놀고 있거든."




<아, 시발. 내가 일진인  말하면 어떻게 하냐. 개 봊 같네.>


신재희가 편의점에서 나오자 핸드폰을 귀에 대고 혼잣말했다.


<후우... 다음에? 다음에 언제 시발. 음... 쌔끈한 놈으로 준비해주겠다고? 하아... 알았다.>

어떤 남자가 와도 신재희보다 꼴리지 않을 것이었다.

<술? 뭔 대낮부터 술판이야, 미친년들. 아, 맞다. 우연히 재희 만났거든? 얘도 데려갈까?>

미끼를 던질 준비를 했다.

<뭐? 아씨, 신재준 그놈이 부른다고 오겠냐? 범생이잖아, 그 새끼.>

미끼를 던졌다. 불쌍한 신재희는 미끼를 물었다. 정색한 얼굴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냥 신재희랑 놀란다.  네들끼리  먹어.>

낚인 벌로 신재희는 기미정과 놀아야했다.







[아놔. 미친 새끼. 이젠 나한테 소개팅 부탁하지 마라.]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긴 핸드폰. 기미정은 비릿하게 웃었다.


"나도 나가기 싫었어, 븅신아."




/ / /



"뭐야?  그꼴로 가게?"

김하늘은 내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 반팔 티와, 파자마 차림을 지적했다.

"미쳤냐. 당연히 갈아입고 가지."

아직 여유시간이 많았기에, 우리는 이불 속에 앉아서 각자 핸드폰을 갖고 놀았다.

"오늘은 적당히 따뜻하네."


전기장판을 어제처럼 고온으로 틀지는 않았다.

"보일러 돌리고 있으니까."


적절한 온도의 전기장판에 보일러 운전이 더해지니, 외투를 벗을 만큼의 더위가 만들어졌다.


김하늘도 후드 점퍼를 벗었다. 오늘은 하얀 목티를 입고 있었다.

목티 밀어내는 융기한 알가슴... 주물러보고 싶었다. 내 손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나는 일부러 고개를 숙인채 핸드폰에 집중하는 척했다. 이따금 늘어난 면티 안쪽으로 훔쳐보는 김하늘의 시선을 느껴졌다.

나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었다.

"정수린은 어떤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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