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겨울방학 (1/201)



〈 1화 〉겨울방학

미녀한테 강제로 따먹힌다.

누구라도 한 번 쯤 상상해봤을 법한 발칙한 상상이었다. 나는 한 번이 아니라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상상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바로 내 섹스 판타지가 되어버린 탓이었다.


애인한테 사정사정해서 역할극을 부탁해본 적도 있었지만, 내 갈망은 가시지 않았다.


나는 실제상황으로 여자한테 강간을 당해야만 이 갈증이 해소될 것이란 걸 깨달았다.

바다 위에 조난된 기분이었다. 생수는 없다. 주위가 온통 물투성이인데... 바닷물로는 갈증을 채우지 못한다. 지금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그런 기분이었다.


러시아 여군에 의한 강간 사례가 있었다. 독일군 남성이 러시아 여군에게 권총으로 위협을 받아 끌려갔고, 팔을 뒤로 묶인채 러시아 여군들에게 차례로 강간당했다고 한다.

  남성이 부러웠다.

그 당시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당시였다는데... 저렇게 러시아 여군에게 남성들이 강간당한 사례가 많았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매일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면 그 당시의 독일 남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 * *



깨어났을 때, 납치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곳은 내가 자고 깨던 원룸이 아니었다.

옆으로 길다란 모양의 방. 천장에서 새어 내려오는 습기에 의해 곰팡이 내려앉은 벽지. 옛날 노란색 장판이 깔려있었다.

연식이 오래된 TV, 컴퓨터, 거울장, 장농 등... 이곳은 어느 가난한 가정집의 거실로 보였다.


 전기장판 위에 깔린 이불 속에서 깨어났다. 바닥은 온기를 내고 있지만, 조금 더 위로 올라가보면 찬 공기가 맴돌았다.


뱃속에 있던 뜨거운 입김을 불어보면 하얀 김이 되어 눈에 보여졌다. 분명 문이나 창문이 모두 닫힌 집 안이었는데도 말이다. 방한 능력이 형편없는 집이었다.


잊고 있었던 꿈의 기억이 갑자기 생생하게 되살아나듯, 나는  집에서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집을 청소하고, 이 집에서 공부하고, 빨래를 널거나 개고, 설거지를 하고, 생활했던 기억.

이 집에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서며, 문단속을 하던 기억.

먹고 자고 싸던 기억.


이  화장실의 거울로  남자의 얼굴이 비춘 기억.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의하면, 그 얼굴의 주인의 이름은 '신재준'이었다.


[재준아.]
[야.]

이어서 키가 10cm 정도 차이 나는 두 여자가 떠올랐다. 두 사람은 친자매인 것처럼 외모가 닮아있었고, 공통적으로 가슴이 무척이나 컸다.


 곧 그녀들의 이름이 '신재연'과 '신재희' 임을 알게 됐다.


이어서 '신재준'까지 포함해 세 남매인 것도 알게 됐다.


배지에서 영토를 넓혀가는 곰팡이처럼, 낯선 기억이 점차 내 정신을 차지했다.

'신재준'을 1인칭으로 삼고, '신재준'의 인생을 따라가는 기억이었다.


나는 두뇌가 송곳으로 들쑤심을 받는 듯했다. 머리가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졌다.  사람 분의 기억이 단숨에 투입해 들어오자 지식열이 발생한 것이었다.

난 열병에 걸린 것처럼 한참을 끙끙거렸다.

겨우 기억을 수습하였다.

거울장 앞에까지 기어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 본래 외모는 평범했다. 그리고 나이는 25살이었다. 군대도 전역하고, 대학도 졸업했던 사회초년생 코딩노예였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동성인 내가 봐도 귀엽다고 느껴지는 외모였다. 나이는 열여덟살이고 이름은 '신재준'이었다. 지금 내 머리에 투하된 기억에 따르면 말이다.

'잤다 깨어나보니 남의 몸에 빙의라니. 게다가 그 놈의 기억까지 받게 됐고...'


타인의 인생 기억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지만,  인격이 다른 사람처럼 변하진 않았다.


꿈속에서 무자비한 해적이 되어 수많은 운반선을 약탈하고  배의 선원들을 죽여댔어도, 현실의 내가 사이코패스 해적처럼 성격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18년 분의 장대한 꿈을 꾸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과 함께 미지의 두려움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몸이 바뀐 거지.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지.'


신재준의 기억을 읽고서, 신재준의 인생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어렸을 때는 화목한 가정에서, 부유하게 지냈어. 하지만 부모님 사이가 파탄나면서, 세 남매는 부모한테 버려지고 이런 집 같지도 않은 집에 세들어 살게 됐지.'

'신재연'은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먹여살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그러면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5살의 나이로 대기업에 취직하는데 성공했다.

이불에서 나오자마자 추위를 느꼈다. 내가 외투로 입고 있는 것은 군대 보급품인 깔깔이였다.


안쪽 방을 열어보자 3평 남짓한 방이 보였다. 책장에는 중고등학생의 교재와 대학 전공서가 뒤섞여 꽂혀있었다. 성경이나 탈무드, 동화책까지 꽂혀있어 통일감이 없었다.


책상에는 고등학교 2학년 교재가 펼쳐져있었다.

어렸을 때, 이 방에서 '신재연'은 새벽 늦게까지 공부했다. 그리고 새벽 일찍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갔다.

새벽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학교에 출석한 뒤, 방과후에는  저녁 아르바이트를 갔다.

밤에 쪽잠을 잔 뒤에, 이 방에서 새벽 공부... '신재준'은 그런 누나의 모습을 보며 일찍 철이 들었다.

'신재준'은 사춘기가 온 시기인데, 철이 들어 집안일을 책임지고 도맡았다. 또한 누나를 본받아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내내 학년 2등을 놓치지 않으며,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았다.

나는 책상 위 고등학교 2학년 교재를 어루만졌다.

'지금은 1학년 겨울방학...'


'신재준'은 최근까지 이 방에서 2학년 학습 내용을 예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작된 두통과 고열에 타이레놀을 먹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신재준'의 몸속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뭐야. 그럼 '신재준'의 영혼과 인격은 어떻게 된 거지?'


무수히 많은 가정이 떠올랐다 영혼이나 인격이 본래  몸으로 전송되었을 가정. 혹은 영혼이나 인격 따위는 사실 없을 거라는 가정 등.


답을 내릴 수 없는 고민이었기에 금방 관두기로 했다.

그리고 환호성을 내지르고 싶은 심경에 이를 악물었다.

'신재준'의 기억에 따르면,  세계는 남녀역전이 이루어진 세계였다. 여자가 성욕이 강하고, 사회적 지위도 여자가 높은 편인 세계.

여자가 남자한테 들이대고, 성범죄도 여성이 남성에게 강하는 세계였다.

난 단순히 남의 몸으로 빙의한 게 아니라, 평행세계에 있던 남의 몸으로 빙의한 것이었다.


''신재준'은 귀엽게 생긴 미남이라 어렸을 때부터 주위 여자들한테 예쁨을 많이 받았어. 질 나쁜 여자 어른들한테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었고.'

돌연 아찔한 기대감이 솟구쳤다.


'내 섹스 판타지를 쉽게 해낼 수 있는 세계잖아? 최고인데?'


잤다 깨어나 보니 여자한테 강간당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들이 갖춰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남성으로 깨어난 것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꼬르륵.


배가 고파왔다. 지금 나는 작은 두통을 느끼고 있었는데, 지식열 때문 뿐만 아니라 배고픔으로 인한 두통 같기도 했다.

배를 채워야 두통이 가실 것만 같았다.


'기억이 맞다면... 부엌 찬장에 죽이 있을 거야.'


3평 남짓한 공부방에서 나와, 내가 자고 있던 옆으로 긴 큰 방을 지나쳤다.

또 3평 남짓한 작은 방이 나왔다. 옷걸이에 잔뜩 옷이 걸려있고, 겉면이 누래진 냉장고가 모터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그 방을 지나치니 부엌이었다. 집밖으로 나가는 현관문이 있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도 있었다. 싱크대 뒤로 압력밥솥이 놓인 쌀통과 그 쌀통 위에 전자렌지가 놓여있었다.

싱크대 찬장을 열어보자 쇠고기죽이 있었다. 입맛이 없어서 이걸로 배를 채워야겠다. 전자렌지로 돌렸다.

 전자렌지 역시 오래된 것이었다.

'다 '누나'가 버려진 거 집어온 거지.'

처음 이 집으로 도착했을 때, 오래된 장농과 옷걸이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새로 도배된 벽지, 새로 깔린 장판, 집주인의 배려가 담긴 상태의 집이었으나 가구가 없어 휑한 상태였다.


신재연은 집밖에 나갔다 하면 TV, 거울장, 책장과 책상, 교재들, 냉장고나 전자렌지 등을 하나씩 가져왔다. 컴퓨터는 집주인 딸이 쓰던 것이었는데, 새 컴퓨터를 구입했다고 버리려던 것을 준 것이었다.


대견하면서도 짠한 누나였다.

나도 부모한테 버려져서 보육원에서 살다가, 만18세에 퇴소하면서 자취했다. 혼자 돈을 벌어서 생활했다.


그런  삶이 신재연의 삶보다 힘들진 않았으리라.  홀몸이었고, 신재연은 자신 뿐만 아니라 두 동생까지 책임져야했다.

띵! 전자렌지의 운전시간이 끝났다.

'여동생 '신재희'는 철이 없네.'


신재준과 다르게 막내 신재희는 철이 없었다. 신재준과 1살 어릴 뿐인데.

사춘기가 와서 가난한 집에서 사는 것을 창피해 했고, 평소에 용돈을 과하게 요구했다. 최근에는 브랜드의 패딩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50만 원이 넘는 패딩을 말이다. 또래 애들은 입고 다니는데 자신은 동네시장에서 산 외투를 입으니 쪽 팔려 하는 것이었다. 등골브레이커인 셈이었다.


 뚜껑에 동봉되었던 김과 기름장을  섞었다.  갈린 쇠고기, 당근, 파, 양파 따위가 섞인 죽이었다.


"맛있네."

추운 야외에서 뜨끈뜨끈한 음식으로 몸을 데우는 느낌이었다. 나 지금 분명 집 안에 있는데 불구하고 말이다.

쇠고기죽을 먹으며 신재준의 핸드폰을 뒤져보았다. 3년 약정으로 구매한 공짜폰으로 보급형 스마트폰이었다. 톡 어플에 실행했다.

[뭐해?]
[자냐?]
[스키장 갈 건데. 가쉴?]
[준아, 영화보러 안 갈래?]
[전에 톡디 줬던 대학생인데요 ㅎㅎ]


무수히 많은 여자들의 톡이 쌓여있었다. 이 세계는 여자가 남자보다 성욕이 강했다. 이들이 보지를 비벼오는 까닭은 전부 '신재준'의 자지를 맛보고 싶어서 임을 난 알았다.

'다 나를 따먹어줄 후보자들인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만.'

'신재준'을 힘들게 키워준 신재연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그녀 몰래 남동생의 몸을 함부로 굴릴 생각이었다.

신재연의 입장에선 남동생이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길 바랐을 거였다.


하지만 난 참을 수 없었다. 그토록이나 갈망하던 섹스 판타지를 해소할 수 있는 판이 깔렸다.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 * *



신재준에게는 소꿉친구가 하나 있었다. 남녀 사이 주제에 10년 넘게 우정을 지키고 있었다. 사귈 듯 말 듯, 미묘한 선을 지키고 있었다.


'걔를 꼬셔서 따먹히면 되겠는데...'


자연스럽게 만나기도 쉬웠고, 장난스럽게 유혹하며 강간을 유도할 만한 대상이었다.

김하늘 [뭐하냐?]
(나) [공부하고. 집안일 하고]
김하늘 [고생이 많군 ㅅㄱ]

'나랑 놀고 싶나보지?'

내가 할 일 없이 쉬고 있다고 한다면, 김하늘은 시내로 나가서 놀자고 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부나 집안일로 바쁘다고 하면, 내 집안 사정을 생각해 날 방해하려고 굴지 않았다. 배려를 하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분명 날 따먹고 싶겠지.'


사춘기 남녀였다. 여자인 소꿉친구는 성욕이 왕성할 터였다. '신재준'의 기억을 보면, 소꿉친구가 이따금 얼굴이나 입술, 가슴이나 가랑이 사이를 힐끔거렸던 걸 깨달아도 모른 척해준 경우가 많았다.


'김하늘을 만나는 건, 일단 가족인 신재연과 신재희를 본 다음에, 김하늘과 만나도 늦지 않아.'

겨울방학이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 방학은 아직 한 달 정도 남았다. 여유가 많았다.



* * *




밤. 추위는 깊어져서 이제 그냥 숨을 내쉬어도 하얀 김이 보였다. 나는 컴퓨터로 로맨스 드라마를 보며,  세계의 연애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신재준이 모태솔로인데다가, 드라마와 영화도 멀리 하던 터라 이 세계의 연애에 대해서 지식이 없었다.

로맨스 드라마를 보니까 공부가 되었다. 그냥 내가 알던 연애를 남녀역전 시키면 되었다. 여자가 데이트 비용을 대주는 편이었고, 남자가 나서서 더치페이를 하자고 하면 개념남 소리를 듣는 세계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난 보고 있던 드라마를 끄고, 마중을 나갔다.


신재연을 보고는 입을 벌렸다. 살면서 이런 미녀를 생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의 외양이 기억 속에서 남아있었고, 톡 어플 프로필 사진을 통해서도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굉장한 미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니 순간 숨이 막힐 지경의 미녀였다.

신재연은 170정도의 키였다. 160에 불과한 신재준보다 큰 키였다.


남녀역전세계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큰 건 동일했다. 신재준이 남자치고 작은 것이었다.


신재연은 작은 머리통에 귀염상의 얼굴이 지녔다. 피곤에 쩔어 다크서클이 길게 늘어져있고, 평생 잘 웃지 못해 표정은 사람보다는 인형 같았다.

몸매는 동양인을 초월했다. 폭유와 풍만한 엉덩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통보다 큰 유방이  개를 무겁게 매달려있었다. 자켓은 잠기지 않고 벌려져있었는데, 터질  부풀어오른 블라우스를 보면 자켓을 안 잠근 게 아니라, 못 잠근 듯싶었다.


전자담배가 목걸이 홀더 속에 있었는데, 폭유가 그 전자담배의 받침대 같아보였다.


정장 치마가 치골 부분이 드러날 정도 바짝 붙어있었다. 난 아랫도리가 뻐근해져 슬쩍 허리를 뒤로 빼야했다.

신재연은 다리를 뒤로 뻗어 구두를 벗겨내고, 커피색 스타킹으로 감싸인 발을 장판 위에 올렸다. 그녀 같은 미녀가 이런 가난한 집에 들어오는  굉장히 언밸런스하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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