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죄악의 천칭 -->
“........”
두 사람이 말 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쓸쓸히 담배를 태우고 있는 그의 두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도 처량해 보였다.
창백하게 굳어져가는 피부와 말라비틀어진 몸. 시체인 상태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생기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쓸쓸함이 시체상태로 되살아난 부작용이라고 믿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런 식으로 최후를 맞이하기엔 너무나도 가엾지 않은가?
그러한 생각이 소연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던 건가요?”
“설마.”
그가 코웃음을 터트리며 담배연기를 토해냈다.
“죽을 생각은 없었어. 그냥...안 되면 말자는 식이었지.”
“당신이 살아남을 수도 있었어요.”
“그랬다면 너희 둘이 죽었겠지.”
“네가 언제부터 남의 목숨에 신경을 쓰는 이타적인 새끼였어?”
소연이 뭐라 말을 하려 하자 옆에 있던 요한이 소리쳤다.
“우리가 뒤져가면서 널 원망하는 게 그렇게 좆같았어? 말했잖아! 죽을 걸 각오하고 여기에 따라왔다고! 그런데 어째서........”
“딱히 원망 같은 걸 받는 게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니야.”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의 두 눈이 협소하게 변해갔다.
아내를 잃고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수많은 이들을 제 손으로 죽여왔다.
그들의 원망을 모두 받고, 모두 기억하고, 기억의 저편으로 날려버리는 것을 익숙하게 여기는 그가 어찌 죽어가는 자의 비난을 받는 걸 꺼려한단 말인가?
그럴 때가 찾아온다면야 그들의 원망 정도는 기꺼이 받아줄 의향이 있었다.
그가 두 사람을 살린 건 원망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너희 둘은...죽기 아까운 인재니까.”
“개소리 작작해 등신아.”
요한의 오열이 공간에 울려 퍼졌다.
“아 그래...어차피 네가 직접 그렇게 말했으니까. 우리들이 다른 놈들에 비해 존나 쩌는 재능과 전력을 가지고 있어서 살아남는 게 이득이다. 그렇게 따져보자. 그렇게 따져보자고! 그런데 능력 좀 되는 놈들보다 미래를 알고 있는 녀석이 훨씬 더 세계에 이롭다는 것 정도는 세 살배기들도 알 수 있는 사실 아니야?”
"........"
비난을 들었음에도 정작 얼굴에 그려진 건 자조였다.
확실히 그 누구나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미래를 알고 있는 녀석이 그저 능력이 뛰어난 둘을 대신해서 희생을 한다니.
하지만 그런 건 효율을 따져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세상이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란 언제나 올바른 일에 변수를 만들어내는 생물이다.
미래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도 처음엔 인간이었다. 던전이 처음 출몰했을 때에도 인간이었고, 세계가 멸망한 이후에도, 연인을 잃기 전에도.
그는 언제나 인간으로써 살아왔던 자였고, 인간이길 꿈꾸었던 자였다.
“아무것도 못 하는 겁쟁이인줄로만 알았던 놈이, 인간을 초월한 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
“...뭐?”
이어지는 그의 말에 요한이 의문을 내뱉었다.
강수는 그가 뭐라 말하기 전 곧장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지금까지 뭘 했나...그런 느낌이었어. 그냥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살고 싶었다...과거에도,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을 해왔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걸 느낀 거야.”
그건 마치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 아닌, 이성을 가진 괴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째서 자신들과 공존하려 드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존재.
“그래도 그 괴물은 인간이랑 어울리고 지내고 싶어 했는데...왜 이렇게 된 걸까.”
연인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을지언정, 그 계기가 일깨워지게 만든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그 계기가 뭔지는 그 누구보다도 그가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죽으려고 해봤는데 어떤 방법으로도 안 되더라고. 그런데도 기억은 지워지지도 않고, 미치는 것도 허락되지 않고...그래서 세상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했지.”
“........”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침묵 속에서 그가 과거를 추억하듯 쓸쓸한 목소리를 연이어 내뱉었다.
“처음만 해도 손에 피를 묻히는 게 벌벌 떨렸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별거 아니게 느껴지더라고. 반복했던 자해로 살을 써는 게 익숙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세상에 미련이 없어져서 그런 건지.”
그런 비정함으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을 죽이고, 그보다도 많은 이들의 터전을 망가트려 손을 더럽히지 않고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그 일을 저질렀다.
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변명하진 않는다. 미치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그에게 있어서, 그 일은 스스로의 의지가 섞여 있었던 것이었으니까.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죄에 무게를 더해가는 것을 느꼈음에도 개의치 않고 손을 더럽혔다.
그 무게에 의한 심판이 자신의 목숨을 갈취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끝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작 주어졌던 것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겪은 더럽혀진 과거를 바꿔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목숨을 유지하면서도 스스로가 다치는 것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 괴물이 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걸 거부하는 데엔 수많은 고민이 앞섰다.
미래와 같은 길을 감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이 기회를 가장 온전히 사용하는 방법일까?
정녕...목숨을 유지하고, 살아남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감당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가?
먼 미래에 그가 진정으로 바랬던 건 자신이 느끼고 있는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는데.
“그랬던 내가 기껏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야. 썩히는 게 아깝지.”
“거짓말!!”
소연이 이를 질끈 깨물며 소리쳤다.
“당신이,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다면...모든 걸 나몰라라 하고 처음 돌아온 그 순간에 목숨을 끊었을 거야. 불사의 몸도 아닌 평범한 육체를 가진 그 순간...던전에 들어온다는 선택지를 배제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몸을 내던지는 것도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그는 던전에 들어와 능력을 기르고 사람을 모아 던전을 부수기 위해 싸웠다.
단순히 죽기만을 갈망하는 자가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이들을 제 손으로 죽인 자가, 이제 와서 위기에 처한 세계를 두고볼 수 없어서?
그가 이곳에 들어선 건 분명 이유가 있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곳에 들어왔던 거였잖아!”
-콰강!
던전이 붕괴되는 속도에 박차가 가해졌다.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바윗덩어리들이 그들을 피하며 바닥에 추락하고, 먼지가 되듯 사라져갔다.
그 혼란 속에서 강수는 조용히 입에서 담배를 때어낸 채 한숨을 내뱉었다.
“네 말대로 처음엔 초희를 위해서 여기에 온 거였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다른 이가 어떻게 되든, 세계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든 상관없다.
그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윤초희라는 여인이 미래와 같은 고통스러운 최후와 과정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걸 위해 그는 던전을 부수고자 했다.
하나의 던전이지만, 이 곳만을 부수는 것으로 세계는 분명 변화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그렇다면,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걸 선택해야 할 텐데 어째서 이런 선택을......”
“내가 바라는 건 초희의 행복이지 내 행복이 아니니까.”
그 말에 소연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 경악에는 분명 의문이 서려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의 그녀가 자신이 한 여인에게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길 바라는 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너와 같은 미래를 경험하지 않는 이상 그 여자가 너를 포용해줄 리 없지. 결국 네 사랑은 영원이 지나도록 보답받지 못할 거야. 그 무엇보다도 비참하게도...열렬히 감정을 불태워도, 그 본심을 알아차리면 너를 향한 불신과 두려움을 느낄 테지.]
그런 그의 의문에 답을 내려준 자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 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녀가 한 말이 자신의 의견에 무언가 영향을 주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 시간대의 그녀가 과거로 돌아온 자신과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과거엔...그냥 의문 뿐이었어, 이후에는 죄책감이었지. 하지만 과거로 돌아왔을 때, 초희를 마주했을 때엔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어.”
그녀의 일방적인 헌신에서 느껴졌던 온기가, 그 화사했던 미소가 현재에도 재현되었을 때 기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그 때 느꼈던 건 분명...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인 ‘사랑’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하지만 그 반대는 어떻지? 그녀가 정말로, 진심으로 지금의 나를 받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수 많은 이들을 죽이고, 그들의 죽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세계를 멸망시켰던 녀석을?
뒷말을 집어삼킨 그를 향해 소연이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끝애 입은 다물어지고 말았다.
요한 역시도 그를 향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자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그 누구보다도 두 사람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양 손에, 피를 묻힌 나를 초희가 보게 되었을 때, 그런 나를 혐오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려고 든다면, 그녀를 사랑하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눌하고 한심하고, 잘 하는 것 하나 없는 한심한 남자라도, 그 자가 바로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그녀가 사랑하는 과거를 뒤집어쓴 존재일 뿐. 지금의 자신은 한강수라는 거죽으로 추악한 알멩이를 감추고 있는 악인일 뿐이다.
...그런 그라도 사랑해준다고 말을 하며, 그녀가 더럽혀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재앙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에 관계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계속 유지해야만 한다.
거기에 재앙을 경험한 자신이 엮여선 절대로 안된다는 걸 그는 그 누구보다도 절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그녀는........”
미련을 토해내는 소연의 앞을 요한의 손이 가로막았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강수를 향해 다가가지 못했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 것조차도 입술을 이빨로 깨물으며 억누르고 있다.
그의 태도를 보며, 소연은 끝내 입을 다문 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슬퍼할 거예요, 분명.”
“괜히 미련이 생기는 것보다는 나아.”
세계가 멸망한 후에도 자신을 찾아다녔던 여자다. 그런 집념을 발휘한 여자는 최대한 빨리 내쳐야만 미련을 잘라낼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시간대에선...나보다 훨씬 더 나은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콰가가앙!
굉음과 함께 땅울림이 거세졌다.
몸에서 붕 떠오르는 감각이 심해져가는 것을 느낀 강수가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앞으로 있을 일들은 여기에서 있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걸로 가득 차있을 거야. 하지만 너희 둘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희는 내가 이 시간대에서 찾아낸 최고의 인재들이니까.”
그는 그렇게 말을 하며 조용히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초희를 잘 부탁해. 두 사람.”
진심을 다한 신뢰를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눈이 무너져 내리는 파편 속에 침식되어갔다.
‘이제야 끝이야.’
최후의 그 순간, 그의 입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