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나락의 끝에서 -->
-파즈즈즉, 쾅!!!
집약된 전겪이 보스몬스터에게로 쏘아졌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번개보다도 더 강력한 공격은 보스몬스터의 표면을 이루고 있는 머리들을 부수는 데엔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지가 불태워지는 감각에 몸서리를 치는 보스몬스터가 붉은 진흙이 흐르는 두 눈을 요한에게로 향했다. 소연의 보호를 받아 공격을 실행시킨 요한은 새로운 공격을 가할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네 좋을 대로 하게 둘 성 싶으냐!?
메마른 손이 요한에게로 휘둘러진다. 가느다랗지만 인간을 짓뭉개고 죽이기엔 부족함이 없는 그 공격에 노출된 요한은 별 다른 방어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그래, 누가 더 강한 지 한 번 해보자고!!‘
-파즈즈즉! 퍼엉! 쾅!
특성을 통해 재충전이 된 전격들이 보다 증폭된 위력으로 연달아 쏘아졌다. 보스몬스터의 손은 그 공격에 거덜이 나 살이 벗겨지고 타들어가 이내 바닥에 추락하고 말았다.
손을 재생시키려 했지만, 머지않아 요한의 손에서 빠르게 전격이 생성되어 재생되는 부분을 지져갔다.
직접 공격이 아닌 주술을 이용한 공격을 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에서 가시를 쏘아붙이건, 땅에서 금속을 솟아오르게 만들건, 그는 자신의 동작을 보고 바로 눈치를 채며 그 모든 공격을 피하거나 전기장을 생성시켜 막아내고 있었다.
아주 잠시의 공백을 허락했을 뿐임에도, 그는 페이스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생명력을 빠르게 깍아가고 있었다.
-...강하군, 정말로!
그의 전격에 머리가 떨어져나가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보스몬스터가 웃음을 터트렸다.
평범한 능력자들과는 달리 말 그대로 ‘재해’에 해당하는 레벨의 능력을 다루는 남자. 순수한 공격력만을 치면 그 어떤 능력자들보다도 뛰어난데다, 전격이란 능력 자체가 시체로 이루어진 자신에겐 막을 방도가 없는 부류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감탄이 나오는 것은 그의 정신력이었다.
자신의 기괴한 몸이나 사방이 시체로 덮여있는 환경 속에서도 개의치 않고 자신을 상대하려드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 페이스를 잡은 이후로 자신에게 여유 따윈 전혀 주지 않고 몰아세우고 있다.
이대로 있으면 버텨내며 반격을 가할 지언정, 거기까지엔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방이 된다면 나야 좋지만, 아쉽게도 이 공간의 억제력은 차마 나를 가만히 내버려둘지 않는군.
뼈와 살이 터져나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억제력은 그로 하여금 눈앞에 있는 대상을 찢어 죽일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들이 닥쳐 봐야 불공평한 데미지 교환만이 이어질 뿐. 그마저도 그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효과적으로 그를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에 뭐가 있을지를 궁리를 했다.
공격도 방어도 모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방심 따윈 없다. 자신의 목숨이 송두리째 뽑혀나가는 그 순간까지 그는 지금의 자세를 고수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전투만을 보고도 그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단 한 순간을 제외하면 그는 이제까지의 전투에서 자신을 몰아넣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사람이었다.
단 한 순간...어느 한 시체가 자신에게로 달려들었을 때를 제외하면.
-그렇군, 그게 네 약점인가?
-꾸드득, 드드득.
불태워지는 몸 중 일부가 분리되어 외부로 연달아 배출되었다.
그것은 보스몬스터가 자체적으로 소환하는 언데드. 이제까지 소환된 녀석들과는 달리, 보스몬스터가 직접 형태와 능력을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였다.
바닥에 떨어져내린 덩어리들이 머지않아 형태가 굳어져 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여성의 형상을 한 그것들을 본 순간 요한의 두 눈이 크게 우그러졌다.
그 반응을 눈치 챈 보스몬스터가 쾌활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한때 너희와 연을 맺었던 저 자의 살을 먹어치워 배를 채워라!!
-키야아아아아악!
비탄을 내지르며 시체들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공격에 비하면 아주 보잘 것 없는 시체들의 향연이었지만, 그들을 마주하고 있는 요한의 행동엔 미약한 망설임이 깃들어있었다.
-퍼엉!
그들을 전격으로 폭사시킨 요한이 파편 너머로 보이는 보스몬스터의 몸을 째려보았다.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있는 보스몬스터였지만, 시선에 서려있는 살의는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왜 그러지? 이제까지 다른 시체들도 가차없이 쓰러트렸던 네가 아니었던가?
“입 다물어.”
-친구, 가족...혹은 사랑하는 연인일 지도 모르지. 안 그런가!?
-콰앙!
에너지로 이루어진 구체가 보스몬스터의 안면과 충돌을 일으켰다. 얼굴의 가죽과 미약한 살을 날려버린 그것은 두 눈을 포개고 있는 보스몬스터의 백골에도 상당한 균열을 일으켰다.
“밀리니까 이제와서 개수작을 부리려는 거 같은데, 상대를 잘못 골랐어. 너랑 만나기 이전에 그걸 써먹은 녀석을 이미 만난 상태거든.”
정신을 뜯어내어 한 주술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정신에 피해를 준답시고 수작을 부렸던 그는 결국 시간이 끌려 다른 이에게 역습을 당했다.
하물며 최면이나 정신부담도 아닌 실체화시킨 시체들을 상대로 자신의 시선을 끌려고 한다니, 오히려 힘을 낭비시키고 자신에게 여유를 만들어주는 ‘불리해지는 짓’을 서슴없이 해주는 꼴이다.
“실력에 자신 없으면 그냥 뒤지던가 아니면.......”
“요한아.”
다시 그를 향해 전격을 쏟아부으려던 직후, 그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순간 요한의 호흡이 굳어지고, 보스몬스터를 올려다보고 있던 시선이 거두어져 밑으로 향해졌다.
자신이 불태워죽인 시체들의 파편이 모인 한가운데에 누군가의 모습이 서서히 구축되고 있다.
썩어문드러진 살과는 전혀 다르다. 살아있는...인간의 생살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나체의 여인이 긴 머리를 흩날리며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
감고 있는 눈과 희미하게 짓고 있는 부드러운 웃음. 그리고 자신을 향하고 있는 목소리까지.
“...수아?”
아주 잠깐, 기억 속의 대상에게 그것이 투영되어 보였다는 것을 직시한 요한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이 던전에서 죽어간 모든 이들은 내 수족이나 다름 없지.
이어지는 보스몬스터의 외침에 요한의 몸이 들썩였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시체는 던전에서 죽어간 자들의 모습을 배껴 만든 것에 불과하다.
이미 죽어버린 그들에겐 이성 따윈 없다. 그저 썩어버린 몸만이 좀비나 다름 없게 변해 살아있는 자들을 물어뜯는 것에 불과할 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은 다름 아닌 눈앞에 존재하는 보스몬스터.
-죽은 자를 되살리는...그런 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불가능해.”
이어지는 그 말에 요한이 이를 질끈 깨물며 손을 보스몬스터에게로 겨누었다.
주저함이 엿보였지만 방향은 자신에게로 고스란히 향해져 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가능했으면 그 새끼가 날 여기에 데리고 올 리 없었으니까.”
-믿음이 상당하군.
“마음대로 떠들어라.”
-퍼엉!
또 다시 전격이 보스몬스터가 있는 곳을 향해 쏘아졌다.
이내 충격을 버텨내지 못한 육체 중 대부분이 바닥에 추락하며 백골과 붉은 두 눈만이 남게 되었지만, 그 눈마저도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는 상태다.
그것이 보스몬스터의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가르쳐주는 것임을 요한은 보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크후후, 그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 태도...마음에 드는군.
“유언은 그게 끝이냐?”
-유언? 크하하! 자네의 귀엔 이게 유언으로 들리나?
-퍼엉!
또 다시 전격이 퍼부어지고, 머리가 송두리째 뽑혀나갔을 무렵 보스몬스터의 목소리가 새로이 공간 내에 울려 퍼졌다.
-각오는 충만하나 미숙한 면이 보이는군.
“!?”
보스몬스터의 육중한 몸이 무너져내리는 가운데 요한의 벌어진 시선이 다급히 밑으로 향해졌다.
그곳에선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여인이 빠르게 달려와 날카롭게 변한 손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서걱!
손에 의해 팔이 잘려나가고, 그에 피가 치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격통에 몸서리를 치고 있자, 여인의 반대쪽 손이 요한의 가슴팍을 향해 겨누어졌다.
-완전히 모른 채 할 거였다면 처음부터 바로 쓸어버렸어야지. 안 그런가?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자의 모습을 빌려 만든 육체로 잔학한 미소를 짓는 그가 끝내 자신이 손을 요한의 몸에 박아 넣었다.
-퍼억!
살이 꿰이는 소리와 함께 피가 치솟아 오른다. 그 소리가 들려왔을 무렵 승기를 다잡고 있던 보스몬스터의 표정이 급격히 우그러졌다.
날카롭게 변환시킨 팔에 처박혀있는 여러 개의 화살. 그것이 팔의 날카로움을 죽이고 움직임을 억제시키고 있었다.
이제까지 관심을 밖에 두고 있던 여인이 준비 끝에 가한 공격 중 첫 발이 자신에게 처박힌 것이다.
-이 요망한 계집이.......
-슈가가가각!
사방향에서 쏟아져내리는 화살들이 몬스터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거대했던 몸을 지니고 있었을 때와는 달리 잽싼 몸놀림으로 화살들의 세례를 피해낸 보스몬스터가 자신의 팔에 박힌 화살을 강제로 뽑아내며 소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소연은 주변에서 달려드는 시체들을 모조리 처치하며 요한에게 다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요한씨, 괜찮으세........”
“말, 걸지 마.”
소연의 다급함에 요한이 팔이 잘려나간 부분에 쇠사슬을 휘감고 곧장 힘을 실어넣었다.
-치이익!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와 함께 피가 증발하기 시작했다. 고통을 억누르는 요한의 두 눈이 충혈되고, 급격히 굳어진 호흡이 막힌 목구멍을 타고 비져나와 쉰 소리를 내었다.
“요한씨, 지금 대체........”
“앞이나 봐!!”
-쉬학!
뼈로 이루어진 창이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쏘아졌을 때 소연이 다급히 손에 쥐고 있는 활의 시위를 잡아 당겼다.
화살과 뼈가 충돌하며 굉음을 내는 가운데, 요한은 자신의 팔을 구워내며 출혈을 억제하는 행위를 지속했다. 그 공백을 노려 공격을 가하려는 보스몬스터가 여인의 얼굴로 표정을 구긴 채 혀를 차기 시작했다.
-그런 몰골이 되어서도 계속 싸우겠다는 건가?
“내 몰골이 뭐 어때서.......”
출혈이 완전히 멎었을 요한이 땀으로 젖은 얼굴을 들어올렸다.
고통스러움이 역력해 있었지만 팔이 잘리기 직전까지 존재하던 미숙함 따윈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잘려나간 부분을 통째로 익혀버리는 것으로 정신을 다잡은 것이다.
“안 보이고 안 들리는 놈들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게 이 세상이야. 내 눈에는 그깟 세상에서 살아가는 주제에 팔 한 쪽 없는 걸 보고 시시덕 대는 녀석들이...훨씬 더 꼴불견으로 보인다고....”
-...크흐흐.
요한을 주시하던 여인이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얼굴을 양 손으로 포개었다.
이전까지 온전했던 새살이 돋은 몸이 서서히 창백하게 변해가고, 길게 늘어져있던 머리카락은 더욱 길게 길러져 핏빛을 띄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변화해가는 육체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닌, 보스몬스터가 살아생전에 지니고 있던 육체.
-정말로 재미있구나! 내 이렇게나 빨리 나를 이렇게 몰아세울 자들이 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건만....
새파랗게 질린 중성적인 외모의 남성으로 완전히 탈바꿈된 보스몬스터가 가느다랗게 변한 두 눈으로 웃음을 지어갔다.
불리해져가는 상황에서도 눈앞에 있는 인간이 표현한 열의에 대한 경의와 아쉬움. 그것이 보스몬스터의 두 눈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부족하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조금만 더 경험이 있었다면 나를 완전히 죽일 수 있었을 것을.
죽음을 바라지만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는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를 마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오가 굳혀져있을 지언정 경험도, 강함도, 실력도 아주 ‘한 발자국’정도가 부족한 녀석들이다.
-이 정도 실력으로는 이곳에서 살아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죽건, 죽지 않건.......
“기다릴 필요가 뭐가 있어. 지금이 딱 적기인데.”
-푸욱!
목소리가 들려온 직후 직후 허리에 처박힌 거대한 흉기가 보스몬스터의 가녀린 몸을 밀쳐내어 바닥에 내동댕이 치게 만들었다.
고통스럽다. 아무리 의식을 지니고 있을 지언정 시체에 불과한 자신이 허리에 박혀있는 무기에 의해 고통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허리에 박혀있는 무기를 눈치 챈 보스몬스터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묘지기의 삽.’
그것을 들고 있는 건 이곳에 들어온 사람 중 단 한 명이었다.
-살아있었나?
“공교롭게도 널 죽일 때까진 뒤지면 안 되는 몸이거든.”
시체들의 사이를 비집고 뛰쳐나온 남자가 그와의 거리를 좁히며 새로운 무기를 보스몬스터에게 꽂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