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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브래이커-236화 (236/251)

<-- 53화. 나락의 끝에서 -->

내장이 터지고 피가 물밀 듯이 새어 나오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그는 생을 유지하고 있을뿐더러 그 상태에서도 움직이려 발악을 하고 있었다.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그를 멍하니 내려다보는 것도 잠시, 세린은 곧 그가 있는 곳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자각했다.

이제까지 마주했던 시체들과는 다르다. 마치 그들의 몸을 한데 엮은 것처럼 기괴하기 그지없게 생긴 거인. 던전 내에서도 시체가 뭉쳐 만들어진 골렘(거병)들은 많았지만, 눈앞에 있는 녀석은 그보다도 훨씬 더 싱싱한 시체로 만들어진 추악한 괴물이었다.

“쿠와아아아악!”

-퍼엉!

세린이 다급히 그 거인의 앞을 가로막은 후 주먹에 힘을 실어 넣었다. 충돌한 주먹에 살이 쥐어터지고 뼈가 꺾여가는 것을 느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머지않아 공기가 터지는 굉음과 함께 거인의 팔이 역으로 잘려나갔다. 바닥에 떨어트려놓은 무기 중 하나를 집어든 세린이 그것을 거인의 머리를 향해 집어 던졌다.

목이 잘려나간 거인의 몸이 끝내 바닥에 쓰러졌다. 제 아무리 시체라 할지라도 중추신경은 인간과 엇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는 듯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주변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존재하는 상태다. 혼자라면 모를까, 다 죽어가는 사람 하나를 지키며 싸우는 건 무리이다.

“치료제를.......”

-퍼엉!

약제사의 가방에서 약물을 꺼내려던 직후 세린의 몸이 자리에서 튕겨져 나갔다.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시체 중 하나가 폭발계열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여파에 밀려난 세린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엔 손에 쥐고 있던 가방이 떨어진 상태. 그것을 회수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다가오는 시체들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쿨럭.”

그들을 밀쳐내고 자리를 벗어나려던 직후 몸에서 힘이 주욱 빠지며 토혈이 뿜어져 나왔다.

이제껏 던전을 돌아다니며 수도 없이 겪었던 약물의 부작용이다.

내부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만큼 움직일수록 부담은 더욱 커지고, 그것은 고스란히 데미지가 되어 스스로의 몸을 망가트리는 효과로 이어진다. 무통증 특성을 달고 있기는 하나, 그것이 약물부작용 자체의 고통까지 제거해주진 않는다.

“...치료제,를.”

만약을 대비하여 소매 밑에 숨겨둔 치료제가 존재한다. 일시적으로 상처의 회복력을 크게 높여줄 뿐만 아니라 몸에 가해지는 부작용도 상당수 낫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지닌 약물.

그것을 사용한다면 지금 몸에 느껴지는 부담은 모조리 회복될 테지만, 그것을 당장 사용하기엔 쓰러진 그가 덜미를 잡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체들은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세린이 약물로 향하려던 손을 거둔 채 황급히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들었다.

“으극.....!!!”

이빨이 으스러질 듯 턱에 힘을 실어넣으며 그 부담을 버텨내었다.

“저리 비켜어어어!!!”

-콰앙! 투콱!!

손에 맞닿은 시체들이 무참히 박살난다. 피와 살로 더럽혀진 손을 휘저으며 나아가길 반복한 세린의 눈엔 오직 바닥에 쓰러진 그의 모습만이 보이고 있었다.

[나랑 같이 지옥에 갈 사람들을 구하고 있어.]

[지옥에서 겪게 될 일은 아마 그 쪽이 겪어온 그 어떤 것보다도 고통스럽고 절망으로 가득 차있을 거야.]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자를, 하물며 스스로의 목숨마저도 포기하려 했던 자신에게 옆을 맡겼던 사람이다.

그런 자를 따라온 건 다름 아닌 자신의 선택이다.

그가 사라진다면 이곳까지 따라온 것에 대한 보람도, 그리고 ‘앞으로’에 대한 목적도 모조리 사라져버린다.

-끼리릭.

소매에 숨겨둔 비상용 치료제를 대신해 그녀가 꺼내든 것은 방독면에서 미리 분리시켜두었던 가스흡입구여싿.

내부에는 이제까지 그녀가 방독면을 쓴 상태에서 섭취햇던 약물의 ‘액기스’들만이 잔뜩 고여 있었다.

잉여한 에너지와 중화성분은 모두 제거되고, 순수하게 사용자의 육체적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약물만이 존재하는 물질. 그것을 섭취할 경우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 반동은 단순히 약물을 섭취할 때보다도 터무니없이 높다.

아이템에 나와있는 설명상으론 ‘이제까지 얻은 약물의 부작용을 한 번에 받는다’고 할 정도. 그것을 받아낼 경우 자신의 목숨이 어떻게 될 지는 그 누구보다도 세린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사용하는 데엔 아무런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생에 대한 미련은 떨쳐낸 지 오래다. 그녀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보다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최후를 맞이하는 것 뿐.

그것을 위해 따라온 자가 이 자리에서 맥 없이 죽어버리는 것이야 말로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길 바란다고 했지? 그럼 날 따라와. 이제껏 네가 겪어본 적 없는 가장 절망적인 최후를 선사해줄 테니까.]

“당신은, 죽으면 안 돼...절대로.”

가스흡입구를 입에 가져간 순간 잠잠했던 심장이 맹렬히 뛰기 시작했다.

혈액의 순환은 폭발적인 힘을 자아내는 엔진처럼 피의 순환을 미친 듯이 증폭시키고, 그것은 고스란히 그녀의 활력으로 변모하여 신체의 구석구석에 자극을 전달했다.

수 천 마리의 벌레가 자신의 몸을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 뜯어먹고, 그 사이로 달궈버린 못을 무참히 꿰어박아버리는 것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럽고 끔찍하다.

그러한 괴로움 속에서도, 그녀는 아득해져가는 정신을 바로잡으며 입가에 진한 웃음을 그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지금이야 말로 자신이 바라는 그 순간.

그 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게 이어지길 바라며, 그녀는 자신을 지옥으로 데리고 와준 남자가 있는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

-쿠과가가가각! 쾅!

바닥에서 치솟아 오르는 검은 금속의 가시들이 파도처럼 뻗어나가 소연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표식이동 특성을 이용하여 빠르게 자리를 벗어난 소연이 활의 시위를 연이어 당기며 보스몬스터를 향해 견제를 가했다.

붉은 화살은 보스몬스터의 신체를 이루는 인간의 머리를 꿰뚫으며 썩은 뇌수를 터트렸지만, 보스몬스터의 몸체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상처였다.

하지만 보스몬스터 측에서 가하는 모든 공격은 하나하나가 폭발적인 위력. 휩쓸리는 순간 평범한 인간은 사지가 찢겨나가 죽어버리고 만다.

그 공격을 피해내며 견제사격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패턴을 읽어낼 수 있는 유일한 자는 현재 자신의 주변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 이곳은 자신과 요한, 두 사람이서 어떻게든 파헤쳐나가야만 한다.

“강수씨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쿠과아아아앙!

바닥이 뒤집어지고 솟아오른 거대한 손이 그녀의 몸을 짓누르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닿은 이를 순식간에 땅에 묻어버리는 매장의 손. 소연은 다급히 그것의 위치를 파악하고 도망을 치려 했지만, 머지않아 자신의 사각에서 접근해온 시체의 존재를 눈치 채고 발걸음을 주춤거렸다.

“계속 뛰어!!!”

-파즈즉, 퍼엉!

전격이 터지는 소음과 함께 소연의 옆에 나타난 시체의 몸이 불태워졌다. 아주 잠깐의 공백이었지만 위험이 사라졌다는 것을 자각한 소연이 그림자의 범위를 벗어났다.

손이 바닥과 충돌하고, 그대로 땅을 관통해 밑으로 파묻혀갔다. 그 범위에서 벗어난 소연은 가쁘게 호흡을 몰아쉬며 요한을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손을 쓰게 만들........”

“정신 제대로 차려. 지금 그 새끼도 여기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여차하면 나랑 네가 저 괴물 놈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지도 몰라.

“........”

요한의 말에 소연이 명목이 없다는 듯 이를 악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이곳에 강수는 없다. 그는 현재 보스몬스터의 공격을 받고 시체들의 사이에 고립된 상태였다.

부상은 분명 클 것이다. 아무리 재생력이라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들 거대한 쇳덩어리가 몸에 꿰인 상태에서 힘에 밀려나 튕겨져 나간 것이다.

그리고 그 공격을 맞게 된 건 다름 아닌 자신의 실수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내가 강수 씨를........’

요한이 다시 합류한 직후, 태세를 바로잡으려던 찰나 보스몬스터가 자신을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그 공격에 적중하기 직전 강수가 몸을 밀쳐내어 공격을 대신 받아내었다.

일단 죽진 않았다. 몸의 피로도 자잘한 부상도 빠르게 회복되어가는 것을 보면, 그의 능력이 아직 자신들에게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는 뜻이니까.

반대로 그것이 끊어진다면 그가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 된다.

‘당장 강수씨를 도우러 가는 건...무리야.’

시체들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건 세린의 역할. 그 사이에 자신들이 끼어들면 기껏 몰아세우고 있는 보스몬스터에게 다시 페이스가 넘어가게 된다.

몰아붙이려면 지금 뿐이다.

기동력이 부족한 요한을 지키는 것도, 자잘한 적들을 제거하는 것도, 보스몬스터의 패턴을 미리 파악하고 지시를 내리는 것도 모두.......

‘내가 강수씨를 대신해야 해...!’

-슈파팍!

당겨지는 시위에서 쏘아진 화살공격이 보스몬스터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그에 고통을 느끼며 소연이 있는 곳을 향해 가느다란 손을 뻗은 직후 바닥에 수 많은 붉은 원이 떠올랐다.

-슈가가가가가가가가각!

원의 사정권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간 소연이 재차 공격을 가하며 요한에게 시선을 옮겼다.

몸 곳곳에서 휘몰아치는 전류가 대기를 태우고 있다. 그것은 고스란히 요한의 양 팔에 응축되어 끝을 보스몬스터에게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순간 보스몬스터의 어그로가 다시 자신에게 끌리리란 걸 알고 있는 만큼, 한 번의 공격에 최대한의 피해를 내고자 준비를 취하는 것이었다.

-키에아아악!

세린이 있는 곳에서 뛰쳐나온 시체 중 일부가 요한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연은 자신의 주변을 두르고 있는 가시들의 사이에서 뛰쳐나와 시위를 잡아당길 준비를 취했다.

그 직후 그녀의 발치를 가득 메우는 새로운 그림자. 반사적으로 시선이 위쪽으로 향해졌을 때, 소연의 시선에 허공에 떠올라있는 수 십 개의 붉은 원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이 벌어지며 쏘아지는 것은 뼈로 이루어진 가시의 비. 이동을 하면 살 수 있지만, 그걸 위해선 시체들에게 새긴 표식을 바꿔낼 필요가 있다.

요한의 공격을 위해 자신이 피해를 볼 걸 감수하며 공격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리를 벗어나는가.

어느 쪽을 택할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피잉!

시위를 튕기는 소리와 함께 붉은 화살이 시체들의 몸을 꿰뚫었다.

요한의 몸은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소연은 이 이후에 가해질 후폭풍을 눈치 채고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취했다.

-퍼버버버버벅!!!

쇄도하는 가시들이 사지에 처박혔다. 뼈가 박힌 부분은 부패가 유발되어 점차 신경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만약 재생력에 ‘면역체’특성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바로 살이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마저도 팔이나 다리가 아닌 가슴이나 목 등의 급소등에 박히게 되면 죽음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

비처럼 쇄도하는 공격 속에 그렇게 될 것임을 각오했건만, 어째서인지 뼈가시가 박힌 부분은 어깨나 다리 쪽에 한정이 되어 있었다.

어째서...그러한 의문이 떠오른 때 소연의 시선이 자신의 몸쪽으로 향해졌다.

등을 포개고 있는 검고 유동적인 존재. 그것은 소연이 이제껏 데리고 다니고 있던 ‘살덩어리’였다.

살덩어리는 그녀의 몸을 일부 포개고, 자신의 몸을 경화시켜 뼈가시가 관통되지 못하도록 막아내고 있었다.

-...먀앙.

뼈가시를 털어내고 난 후 바닥에 녹아내리듯 떨어져내린 그것이 고양이의 형태로 변하며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몸 군데군데가 불안정하게 뭉개진 것을 본 소연의 두 눈에 측은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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