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235화 (235/251)

<-- 53화. 나락의 끝에서 -->

-후욱, 후욱.

호흡을 몰아쉬는 소리가 광기어린 소음을 집어 삼켰다. 피칠갑이 되어있는 대검을 들어올린 그녀는 방독면의 렌즈 너머로 보이는 적들의 모습을 살펴갔다.

진득한 액으로 덮여있어 시야가 거의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 널려있는 것들은 대부분이 적이다. 피아식별 구분 없이 날뛴다 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어버린다. 1대 다수의 상황이란 그런 것이다.

-키야아악! 쿠와아아아악!

괴악한 울음소리와 함께 시체들이 손을 뻗어왔다.

망설임 없는 그들의 손짓을 대검으로 쳐내자 힘에 밀려난 그들의 신체가 가차없이 찢겨나갔다.

그 파괴적인 일격을 비집고 후열에서 나타난 시체들이 그녀의 몸을 물어뜯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몸을 손으로 움켜쥐어 모조리 쥐어터트렸다.

-화르륵, 퍼엉!

공기가 달궈지고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에 밀려난 그녀의 몸이 바닥을 몇 번이고 뒹굴었다. 그것을 버텨내고 저항을 하기엔 이제까지 입은 피해가 너무나도 큰 상태였다.

“콜록, 콜록.”

토해진 각혈이 방독면 내부를 채우고 비릿한 냄새를 자아내기 시작햇다. 겨우 시야를 바로잡으며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시체들 중 일부의 몸에서 기이한 힘이 일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몸에선 불꽃이 흐르고, 누군가의 손은 철이나 가시로 뒤덮여 있다. 수준은 낮지만, 세린은 그들이 사용하는 것이 ‘던전에 들어온 자들의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곳에 있는 시체들 모두가 던전에 들어와 희생되어버린 자들이다. 수 천까지는 아니더라도 세 자릿수는 훌쩍 넘긴 그들이 ‘특성 하나 추가되지 않은 능력’을 다룰 수 있다고 한다면 매우 위협적인 군대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생명력을 담보로 폭발적인 힘을 내는 세린 역시도 그들을 모조리 꺾어내는 데엔 어려움이 있었다.

“...후우.”

비릿한 숨을 토해낸 세린이 잠시 얼굴에 쓰고 있는 방독면을 벗어던졌다. 고여있던 피가 주르륵 쏟아내렸지만, 일부는 내부에서 엉겨붙어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필터가 피로 막혀 쓰지를 못하다니, 최악의 상황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세린은 개의치 않고 방독면의 가스흡입구만을 떼어내어 자신의 손에 움켜쥐었다.

-휘리릭.

반대쪽 손에 쥐고 있는 가방에서 다수의 주사기를 꺼내들은 세린이 그것을 자신의 팔에 주사했다.

-쿠아아아악!

격노를 터트리며 달려드는 시체들을 마주한 세린이 전율이 돋아나는 몸을 이끌며 새로이 꺼내들은 쇠사슬에 힘을 실어 넣었다.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쇠사슬이 칼날처럼 그들의 몸을 맹렬히 찢어발겼다. 그 사슬을 손에서 곧장 놓아버린 세린이 새로이 꺼내들은 투척용 나이프를 자신의 손가과 입에 문 채로 대군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콰드득, 쿠곽! 칵!

그들의 살을 찢고, 베고, 갈라내며 전진한다. 설령 그들의 손이 자신의 살을 쥐어 뜯어도, 능력으로 몸을 불태우거나 억압을 가해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하길 반복한 끝에, 그녀는 대군의 포위를 벗어나 탁 트인 곳에 도착했다.

시체들의 포위를 벗어나자마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피를 쏟아내며 몸을 굽히고 있는 요한이었다.

그는 현재 시체 중 하나에게 목이 물어뜯긴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계속 물리면 치명적인 부분에 상처를 입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이다.

-쿠와아......

-콰앙!

배후를 습격하려는 시체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친 후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다급히 뛰어간 세린이 시체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발길질을 버티지 못한 시체가 반파된 채 바닥을 뒹굴며 바닥에 장기를 퍼트렸다.

끔찍한 꼴이 되어버린 시체에게서 고개를 돌린 세린이 요한에게 다급히 고개를 꺾었다. 요한은 자신의 상처부위를 손으로 움켜쥔 채 입에서 토혈을 내뱉고 있었다.

“요한씨, 괜찮으세.......”

-파즈즈즈즉!

손에서 뻗어나온 전격이 세린의 옆을 지나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대상지점에 있는 적을 포함해 다수의 적을 향해 뻗어져나가는 연쇄번개와, 퍼져나간 전류를 응추시켜 터트리는 번개탄 특성. 그 두 가지가 결합된 공격은 다수의 시체들을 폭사시키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순간에 시체들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데에 성공했지만, 무리한 상태에서 공격을 한 결과 요한의 몸엔 심한 부담이 가해진 상태였다.

“치료를 해드릴게요.”

세린이 곧장 자신의 가방에서 소모품을 꺼내들었다. 지혈제를 포함한 각종 약물을 그의 몸에 주사하자, 그의 목에서 흐르는 출혈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하지만 상처를 회복시켜줄 뿐 기력까지 회복시켜주진 않는다. 일시적으로 활력을 돋을 수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도핑. 부상을 입은 자에게 사용할 경우 부상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치료 끝났으면, 비켜.......”

요한이 세린의 몸을 밀쳐내며 힘겨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직도 욱신거리는 목의 상처를 움켜쥐고 있는 그가 고개를 돌린 곳은 이전에 세린이 걷어찬 시체가 있는 곳이었다.

-키, 에그....윽.......아........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몸을 일으켜 세우길 반복하는 시체. 하반신 중 일부가 분해된 상태이기에 기어 다니는 행위로 이어졌지만, 그것만으로도 보는 이가 기괴함을 느낄 정도의 연출을 보여주고 있었다.

요한은 그 시체를 애측은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널 이런 식으로 두 번씩이나 죽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자세를 잡고 손에 힘을 끌어모았다. 발을 움직인 순간 그가 늘 쓰고 다니던 선글라스가 발치에서 치여져 다른 곳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아니, 세 번이지.”

-콰강!

벼락이 치고, 비틀거리던 시체에 고압의 전류가 쏘아졌다. 살 뿐만 아니라 뼈까지 통째로 재가 되어버린 시체가 먼지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한 시체를 공격하기엔 너무나도 과한 공격.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세린이 요한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요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변을 메워가기 시작하는 시체들을 향해 공격을 할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세린의 말에 요한이 개의치 않고 대답하며 손에 힘을 끌어 모았다.

“두 사람은 어디에 있어요?”

세린이 너덜거리는 걸음으로 요한의 옆에 섰다. 요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기며 주변에 전격을 쏘아붙였다.

머지않아 시체들이 밀려나간 곳에 희미하게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주변에서 밀려들어오는 시체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그보다도 더 위험한 적은 그들의 앞에 존재하는 압도저긴 거구를 지닌 괴물이었다.

-콰앙! 투콰앙!!

앙상한 팔에서 우러나오는 파괴적인 공격이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자신이 부리는 수족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휩쓸어대는 그 공격은 오직 강수와 소연, 두 사람을 노리는 공격에 불과할 뿐.

그 풍경마저도 머지않아 시체들의 사이에 둘러싸여 사그라지고 말았다.

“끝도 없이 오네요.”

“그러다보니 난 저 놈들에게 밀려나 고립이 되었고.......”

씁쓸함이 서린 말에 세린의 시선이 이전에 불태워죽였던 시체에게로 향해졌다. 잿더미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시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곳에 몸을 고꾸라트린 채 남아있었다.

“...아는 사람이었나요?”

“이미 지나간 일이야.”

마치 미련을 떨쳐내려는 듯 하는 그의 말에 세린이 작게 숨을 고르며 새로운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힘을 아끼세요. 길은 제가 열테니까.”

“됐어, 아직 여유가........”

“저 보스몬스터에게 가장 피해를 주기 쉬운 건 요한씨예요. 하물며 두 사람에게서 떨어져나가 고립된 상태라면 더더욱 힘을 아낄 필요가 있죠.”

“........”

세린의 말에 요한이 침묵을 유지하며 손에 집약시켰던 힘을 거두어들였다. 곧 주변을 메우고 있는 시체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을 때, 세린의 양 손에 쥐어져 있는 두 개의 철퇴가 허공에 들려지기 시작했다.

“엎드려요!!!”

-쾅! 투쾅! 콰아앙!!

무차별적으로 휘둘러지는 철퇴가 주변을 휩쓸었다. 작은 인간의 몸에서 나오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파괴적인 폭풍은 시체들의 폭동을 몰아내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잠시에 불과하다. 지워진 부분을 다시 채우듯 어디선가 등장한 시체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달려들 준비를 취했다.

“바로 가요!”

세린은 그들 중 일부를 향해 철퇴를 집어던지고 요한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요한은 세린의 말에 이를 질끈 깨물며 세린이 길을 벌린 곳을 향해 다급히 전격을 쏘아보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친 전격이지만, 특성을 이용하면 그 지점으로 몸을 순간이동 시킬 수 있다.

순식간에 세린의 옆에서 벗어난 요한은 다급히 시체들이 자신이 지나온 길목을 막아세우는 것을 눈치 챘지만, 세린은 말 없이 그와 눈을 마주친 채 손을 흔들어보일 뿐이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어차피 이게 제 역할인걸요.”

세린이 이를 질끈 깨물며 새로운 주사를 자신의 몸에 겨눌 준비를 취했다.

[보스몬스터랑 전투를 시작하게 되면 주변에 하수인들이 넘쳐나게 될 거야. 그 녀석들의 어그로를 끌고 수를 줄이는 건 네가 해줘야 해.]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건 요한씨가 적격이지 않나요?]

[가장 공격력이 높은 게 이 녀석이니까. 이 아가씨랑 난 싸우는 중에 방해하는 잡몹들을 제거해야 하고. 그리고 잡몹이라 하더라도 상당한 전력이니까, 그걸 받아낼 수 있는 몸뚱이를 가진 건 너밖에 없어. 그리고 뭣보다도........]

[사람을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는 건 저 뿐이니까.]

[.......]

[...아까 말하셨잖아요. 모두가 시체지만 한때는 살아있는 인간이었다고. 당연히 두 사람에게 맡기기란 쉽지 않겠죠.]

-꾸드득, 쾅!

이곳에 오기 전 그와 했던 대화를 떠올린 세린이 그들의 몸을 손으로 쥐어 터트리며 전진하길 반복했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갈 생각은 없다. 처음부터 그녀의 역할은 시체들의 어그로를 최대한 자신에게로 끌어모아, 나머지 세 사람이 보스몬스터를 온전히 공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니까.

보스몬스터와 전면전을 펼치는 것보다 육체적으로 큰 부담을 얻게 되는 역할. 하지만 세린은 그 역할을 자처하는 데에 일절 망설임도 느끼지 않았다.

이유? 애초에 죽기 위해서 이곳에 따라온 것인데,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살이 찢어지고 뼈가 꺾이는 지금의 이 순간은 그녀에게 있어서 최고로 기쁜 순간이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고통스러운 최후’가 이후에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털썩.

“...어?”

시체를 몰아세우던 세린의 입에서 아주 작은 숨이 내뱉어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한 순간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머지않아 자신의 앞에 누더기나 다름 없는 꼴이 된 남자가 날아와 쓰러졌다는 것을 자각했다.

시체들의 사이에서 날아와 그녀의 앞에 떨어진 것은 보스몬스터와 직접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강수였다.

“쿨럭, 허억........”

당장이라도 꺼질 듯한 숨을 격하게 내쉬는 그의 배에는 큼지막한 상처에서 새어나오는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다.

세린은 그 부상이 치명적이라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죽는다.’

그 생각이 떠오른 직후 세린의 호흡이 급격히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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