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살아있는 송장의 기억 -->
부질없이 끝날 지도 모르는 만남은, 적극적인 그녀의 손에 의해 계속 이어졌다.
1주일에 한 번은 항상 얼굴을 들이밀었다. 간간이 2일 3일에 한 번 씩 얼굴을 들이밀 때도 있고, 2일 연속으로 올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텀은 점차 짧아져갔다.
“저 왔어요. 오늘도 자기소개서 작성중인가요? 아니면 자격증 공부?”
“.......”
대놓고 들어오는 그녀를 보며 저도 모르게 표정을 우그러트렸다. 하기야 만난 지 반년 가까이 취직도 못한 사람을 상대로 저런 말을 하는데 부아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꾸준히 나를 만나러 오는 것이 나를 비웃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어휴, 커피캔 쌓인 거 봐라. 1주일 동안 안 본 사이에...청소 좀 하고 살아요.”
“오기 전에 하려고 했는데.......”
“청소는 매일 해야 하는 거예요.”
언제나 그렇듯 내 생활에 대고 핀잔을 걸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올 때면 항상 페이스는 그녀에게로 돌아가 있었다.
언제나 그녀가 나의 모자란 점을 지목하고, 나는 그 점에 아무런 반박도 못한 채 ‘못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자, 맥주라도 같이 마셔요. 치킨도 사왔으니까.”
“........”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취직자리 하나 못 알아보는 백수에게는 너무 과분한 선물이라서?”
“그렇게 까진 말 안 했어.”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반항을 하며 이를 질끈 깨문 채 말했다.
결국 오늘도 준비는 공쳤군, 생각하며 맥주캔의 탭을 열고 있자 그녀가 코웃음을 터트렸다.
“안 되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법도 배워야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
“쉬운 일이 아니긴요. 누가 생리할 때 억지로 일을 하려 하겠어요? 무조건 쉬려고 들지.”
“...여자가 그런 말 대놓고 하는 거 아니야.”
“나 빼고는 다른 여자랑 말도 못 하는 아웃사이더가 할 말이라고 생각해요?”
“........”
여자답지 않은 당참은 언제나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과의 말싸움도 매번 지고 들어가지만, 유독 그녀와의 말싸움에선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래,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지.”
결국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조로 다툼을 끝냈지만, 그 날은 평소와 달리 맥주를 마셔 취기가 감도는 상태였다.
사람은 살면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지으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런 놈이랑 어울려 지내는 것 자체가 애초에 인생의 낭비 아니야?”
나는 그 날 그녀의 앞에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
그 날을 되새길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었다.
“너도 네 생활이 있는데, 이런 글러먹은 녀석이랑 어울리기 보단 학점이라도 신경을 쓰는 편이........”
“아, 저 대학교 자퇴했어요.”
“푸학!”
“어우, 괜찮으세요?”
목에 머금고 있던 맥주가 사례가 되어 터져 나왔다. 괴로움을 느끼고 있자 그녀가 걱정스럽게 나의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폐에 물이 차는 것보다도 그녀가 한 말이 더욱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마다했다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해서는 안 말을 한 것이 어느 쪽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콜록, 콜록...갑자기 왜 그만둔 거야?”
“선배랑 헤어진 이후로 주변에서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도 많아졌고, 그래서 때려쳤죠.”
고작 그런 이유로...라고 말을 하기엔, 첫만남의 기억이 머릿속에 너무나도 강렬히 남아있었다.
이제까지 봐왔을 때 그녀는 슬픔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여자답지 않은 당당함에 포부도 크고, 자신보다 강한 자마저도 기백으로 찍어누를 정도의 성깔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여자가 술에 절을 때까지 마시고 길거리에 나자빠져 울었던 것이다. 그 날 그녀가 입었던 마음의 상처가 얼마만큼 큰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러블이 일어났다 한들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 후회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최소한의 준비를 거쳐야만 한다. 그 준비가 없으면 그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니까.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던 사람이었고, 그녀 역시도 그걸 어느 정도 긍정하는 사람이었다.
단지 보는 관점이 달랐을 뿐이지.
"지금이 불행하면 앞으로도 불행한 법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미래는 현재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말 없이 쳐다보고 있자 그녀가 한 말이었다.
마치 내 마음을 파악한 것 같은 발언에 몸을 움츠리자 그녀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학벌과 인맥 주의의 사회에서 대학도 없고 인망도 실추되어버린 처지라니...집에서도 거의 쫓겨나다시피 한 신세인데, 이런 성질 더러운 여자를 누가 데려갈까 모르겠네~”
평소에도 늘 하는 말이었다. 언제나 멋대로 집에 들어오고, 한심한 처지에 나를 비웃는 듯하면서도 은근슬쩍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식으로 어필을 한다.
그게 장난이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하는 게 이상한 것이다.
처음 술을 마신 그녀가 나를 덮쳐 사고를 내긴 했지만, 그것이 어긋난 호감으로 이어지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그런 걸 기대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는 학창시절에도 줄곧 실감해온 일이 아닌가?
“오해할 말은 하지 말아줘. 부탁이니까.”
애써 맥주를 마시며 시선을 회피했지만.
“언제든 오지 말라고 말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런 내 고개를 내 쪽으로 강제로 돌리며 눈을 마주보았다.
약간의 취기가 감돌고 있는 시선엔 고혹이 느껴지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거부했다면 전 여기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도 절 내쫓은 적은 한 번도 없었죠. 그 때 왜 절 내치지 않았어요?”
“........”
그 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첫만남은 당혹스러워도, 그녀에게 호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
어쩌면 그녀가 나와 맺어지지 않을까...무의식적으로 그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나 자신이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라고 생각되지 않는 자괴감이었다.
최고가 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구실은 하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사람다운 녀석일까? 대학을 졸업한 주제에 경쟁에서 도태되어 취직자리도 못 알아보는 녀석은 그 누구라도 한심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언제나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고.
“집주인이랑 싸워서 사는 곳에서 쫓겨났어요.”
어느 날 배낭을 멘 채 집으로 찾아온 그녀가 충격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이제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말을 몇 번이고 들었다만, 그 날 만큼 통수를 쌔게 맞은 적은 없었다.
큼지막한 배낭을 등에 매고 양 손에는 소지품이 들어있으라 추측되는 종이봉투가 잔뜩 들려져 있었다. 그녀는 아무의 도움도 없이 그 모든 물건을 내가 사는 자취방까지 가지고 온 것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없는 걸 만지라니, 네 놈이 그 유명한 상강도로구나~”
농담도 정도껏 해.
그 말을 집어삼키고 있자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아니, 야. 설마 여기서 살 생각이야?”
“몇 번 자고 간 적도 있는데 괜찮지 않을까요?”
“괜찮을 리가 없잖아. 애초에........”
“저희가 남도 아니고.”
수줍게 얼굴을 붉히면서도 정면에서 마주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나오려던 말이 어느 샌가 집어 삼켜진 것을 자각했다.
“돈은 있으니까 월세 반은 제가 낼게요. 집안일도 제가 할게요. 요리든 청소든 빨래든 밤일이든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 게요. 그러니 길거리에 내쫓지만 말아주세요. 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나쁜 놈 된 거 같잖아.”
관능 소설에 나올 것 같은 문구를 내뱉는 주제에 입꼬리는 크게 올라가 있다. 그녀를 보며 아니꼬움이 느껴졌지만, 이내 익숙함을 느끼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그녀는 내가 사는 곳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워도 자연스러운 녹아내림이었다.
장난이라 여겼던 말들 모두가 솔직하게 호감을 표현한 말이었고, 그것을 거절하지 못한 나는 결국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만남이 동거로 바뀌었다. 외로웠던 자취방이 그녀의 존재로 인해 생기가 느껴졌다.
“1주일에 한 번은 대청소. 기억하셨죠? 어차피 쥐꼬리만한 방인데 청소 하는 것도 쉬우니까 귀찮아하지 말고 열심히 해요. 알았죠?”
그녀는 깔끔했다. 자신이 사는 곳이 더러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나에게 청결을 주장했고, 자기가 자리를 비운 잠시의 시간 동안 더럽혀진 집을 보면 불 같이 화를 내었다.
“아, 카레 만들 테니까 나가는 김에 여기 적혀있는 대로 장 봐주세요. 저번처럼 파랑 양파 헷갈리지 말고. 아, 근처보다 옆 마트가 200원 싸니까 급하지 않으면 그 쪽에서 사와주세요.”
그러면서도 상당히 계획적이었다. 대학교를 중퇴했으니 기껏 해봐야 20대 초반. 그 정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업주부를 넘어설 정도의 알뜰함과 생활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휴, 매번 집에 처박혀 있으니까 몸이 그렇게 굽지. 밖으로 나와요. 같이 운동이라도 하게.”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어김없이 나를 끌고 나왔다.
스펙을 올리기 위해 책만을 들여다보고, 인터넷에만 접속을 하는 나에게 있어선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놀이동산 티켓 구했는데 같이 갈래요? 쉴 때는 화끈하게 놀고 쉬어야죠!”
자연스럽게 ‘사귄다’는 느낌이 되었을 무렵 연인다운 데이트라는 것도 해보게 되었다.
그 날에 찍었던 사진은 한 편의 추억으로써 내 품에 보관되었다.
그 후로도 사진을 찍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없는 처지에 할 수 있는 것을 그녀와 모두 누려왔다.
그렇게 그녀와 만난 지 대략 2년이 되었을 무렵, 고된 준비기간 끝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기껏 해봐야 중소기업 취급을 받는 곳이었지만, 취업난으로 고생을 하는 시대엔 그마저도 감지덕지 할 만한 자리였다.
그리 좋은 급여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차차 늘어나게 될 것이다.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집을 사고, 살림을 꾸리고........
그러한 것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확보되리라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을 때.
“어서와 오빠.”
반갑게 나를 향해 인사를 하는 여인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일방적으로 찾아왔던 관계였고, 그 이후에는 함께 살며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였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어김없이 그녀가 나를 반겨주는 관계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혼약을 하진 않았지만, 거의 부부나 다름 없는 관계였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준비를 거치고 나면 바로 혼약을 울리겠다고 계획까지 잡아둔 상태였다.
기껏 해봐야 중소기업의 신입사원 자리를 꿰찬 나에게 있어선 너무나도 큰 행복이었다.
그것이 과분하다고 여겨지기까지 했다.
평범하고, 그걸 넘어서서 한심하다 여겨지기까지 하는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이마저도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 그녀가 나의 삶에 녹아들었기에 얻을 수 있는 행복인 것을.
‘왜 특별한 네가 나 같은 것과 어울리고 있는 거야?’
늘상 떠오르는 생각이었지만, 그것을 굳이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녀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그 관계가 희미해진 건 내가 던전에 휩쓸리고 난 이후의 이야기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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