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208화 (208/251)

<-- 48화. 발악 -->

세상에 던전이라는 것이 출몰하고 난 후 약 1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세계 곳곳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던전 내에서 나타나는 물질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그것을 현대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고, 그 중 대표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에너지원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던전 내에서 수급한 물질이 분해되며 나오는 가루가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만 모으더라도, 수 개의 공장을 1주일 간 돌릴 수 있는 에너지를 손에 넣는다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기기나 기술을 만드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고 예산도 많이 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가루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면 화석연료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가성비와 효율성을 가진다는 것을 이론을 통해 확보할 수 있었다.

던전 내에 존재하는 물품들을 수집해 밖으로 빼돌릴 경우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그러한 소식은 던전에 들어가본 적 없는 이들을 매료시키고, 그곳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물론 직접 들어가본 자들은 그곳에 대한 깊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지만, 몇몇 소수는 그와 달리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국가에서 보호하고 있던 생존자들의 격리조치가 풀리게 된다. 비록 통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국가 측에서 특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던전 내로 재입장하는 것을 완전히 허락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실제로 던전이 출몰한 타국 중 일부는 이미 국가에 소속되는 것을 조건으로 던전 내부로의 출입을 허락하고, 몇몇의 이들이 던전 내부로 들어간 상태다.

그들 중 일부는 소식이 없는 채로 잊혀져가는 실정이지만, 던전 내에서 생존자들이 나오면 나올수록 던전 내부에 대한 정보는 점차 모여 가는 법.

이제까지 기다려온 자들은 자신들이 황금에 눈이 멀어 낭떠러지를 보지 못해 추락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닌, 절벽을 건너는 다리가 서서히 생기길 기다리는 현명한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현재 이 세계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자. 그것은 이제 막 개인적인 일의 계약을 끝마친 초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네, 그럼...앞으로 1주일 뒤에 직접 만나 뵈도록 할게요.”

시내에 출몰한 던전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던 초희는 스마트폰의 통화를 끊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1달 전 공모전에 출품했던 작품이 최고상을 탔고, 이후 관련 출판자들과 계약을 맺어 우수작이라는 타이틀을 단 채 출판할 계획을 짜두었다.

정작 공모전 당선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이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출판사 측에서도 계약을 미룰 수밖에 없었지만,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가는 만큼 이제까지 미루고 미루었던 일을 한번에 처리하느라 최근에는 상당히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도 참 오랜만에 오는 거 같아.”

던전이 출몰한 후로 매일 같이 이곳에 들락거렸던 것이 불과 1주일 전이었다. 대략 3주일 가량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곳에 들렸다가 귀가하여 잠을 청하는 것이 일상.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그렇게 3주.

그 후로 1주일이 지나 1달이란 시간에 도달했음에도 정작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와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만큼은.

“오빠에 대한 소식은 감감 무소식.”

실종자들을 전문으로 확인하는 시설을 빠져나오며 내뱉은 중얼거림이었다.

“오빠에 대해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감감 무소식~”

던전 내에서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아둔 시설에 가도 마찬가지임을 깨달으며 내뱉은 중얼거림이었다.

“하늘은 푸르고 도로는 시끌벅적, 그리고 내 마음은 텅텅, 가슴도 텅텅.”

자신의 빈약한 몸을 매만지던 초희가 끝내 한숨을 내뱉고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목에 힘을 주었다.

“아아~!! 오빠 만나고 싶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외침에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초희에게로 향해졌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희는 몸을 축 늘어트리며 힘 없이 걸음을 옮겨갔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1달 이상 만나지 못했다.

언제나 그가 돌아올 장소를 지키고,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아왔지만, 정작 그에게서 받은 소식이라곤 보름 전에 던전 내에 있던 사람을 통해 전해진 쪽지 한 장 뿐이었다.

그 보름 새에 무슨 일이 터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온전히 살아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혹은 죽으러 가는 건지.

“.......”

평소라면 ‘오빠가 날 두고 자살할 리 없어!’라고 사방팔방 뛰며 발악을 했을 생각이지만, 보름 전에 그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고 난 이후로는 그렇게 역정을 부리며 마음에 위안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 편지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을 적어놓았으니까.

슬쩍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싸구려 핸드백에 보관해둔 종이를 꺼내들었다.

편지를 펼치진 않았다. 그저 편지의 밋밋한 뒷면을 보고, 편지의 내용을 떠올리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보일 뿐.

‘오빠답지 않아, 이런 건.’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 편지만을 보내고 ‘그런 말’을 적을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대놓고 편지에 적어 자신에게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자신을 걱정해서? 나는 이제 너의 곁으로 돌아갈 수가 없으니, 혹은 돌아갈 생각이 없으니 날 잊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그럴 리가 없다. 그는...자신이 알고 있는 그 남자는 아무리 남들에게 한심하다 여겨질 지언정, 자신을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믿고 싶은 거뿐이겠지.”

속으로 거듭 강조하는 초희가 끝내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 역시도 자신을 사랑한다.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내치고 자신을 따라온 여자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변한다. 때로는 굳건한 거목처럼 어떤 일에도 꺾이지 않지만, 갈대처럼 시시각각 변덕을 일으키는가 하면, 역풍을 얻어맞고 부러지거나, 별 거 아닌 바람에 휘날려온 쇳조각에 표면이 찢어지기도 한다.

일상이 이어지면, 그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기 전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저 던전이라는 가혹한 공간에 휘둘린 그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설령 유지한다 하들, 그것은 이제까지 고수해온 마음과는 다른 감정으로 변질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은 그를 사랑할 것이다. 설령 그가 자신을 내친다 하더라도 그를 부여잡을 것이고, 그가 진정으로 자신을 혐오하는 감정을 내비친다면 감정을 유지한 채 그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그 마음만큼은 분명히 진짜라고, 그렇게 자신하지만........

‘만약, 이 편지를 보낸 게 오빠가 아니라면?’

그 생각이 떠올랐을 무렵 편지를 쥐고 있는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 편지의 끝자락을 구겨갔다. 아주 심각한 손상은 아니었지만, 이제까지 애지중지 보관한 편지였던 만큼, 말끔한 표면에 생긴 흉은 너무나도 크게 티가 났다.

그것을 알아챘음에도 손가락에서 쉽사리 힘을 풀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떠올리고 있는 의심은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에 대한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기에, 그와 마주쳤던 잠깐의 시간에선 괴리감이 적잖아 느껴졌다.

아주 잠깐의 시간...그래, 던전이라는 공간이 출몰하기 전날 밤부터 아침 까지에 그와 보냈던 시간.

그 때 보였던 모습은 처음엔 의심하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때 보여주었던 모습들에서 ‘다른 사람이 얼굴의 가죽만을 뒤집어쓴 것’과 같은 괴리감이 심하게 느껴졌다.

눈앞에 떡하니 비현실적인 일의 산물이 존재한다. 어떤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면, 그 때 자신이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낸 그 남자는 정말로 자신의 남편이라 할 수 있을까?

그 자가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 편지는........

“그래, 생각해보면 오빠가 요리를 그렇게 잘 했을 리가 없었어! 분명 뭔가가 있는 거야, 악마와 계약을 했다거나...아팟!”

뒤에서 누군가의 손바닥이 뒤통수를 후려쳤을 때 초희의 입이 반사적으로 다물어졌다.

다급히 고개를 뒤쪽으로 옮기자, 탐탁치 않은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바바리 코트의 남성, 영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고성방가 하는 거 아니야 이 망할 깡패녀야.”

“...딱히 폭력을 휘두른 적 없는데. 폭력을 휘두른 건 안형사님이시잖아요.”

“그래서 나 일하는 곳에 꼰지르고 나 옷 벗게 만들게?”

“절 다른 사람의 옷을 홀딱 벗기며 깔깔 대는 변태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전 오빠 옷 빼고는 전혀 관심 없으니까.”

“...그건 그것대로 문제라 생각되는데.”

소연을 보며 혀를 차는 영찬이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그 때 떠난 이후로 2주일인가 지났지? 오랜만에 들렸는데, 이 근처 서성이는 걸 보면 아직도 여기에 계속 오는 거 같은데.......”

“저도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어서 1주일 정도 자릴 비웠어요.”

“그 출판일 때문에?”

“그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집에도 연락이 왔었고.”

“집이라면 너희 아버님이........”

“아무튼!”

초희가 곧 소리를 지르고 영찬과 거리를 좁혔다.

“제 얘기만 하지 말고 형사님 얘기도 좀 해보죠.”

“내 얘기라니, 뭘?”

“그 때 편지 받고 급하게 벗어나셨던데, 그 편지에 대체 뭐라고 적혀있었던 거예요? 저번에 대화하니까 뭔가 여자친구라거나...어라?”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추궁하며 그가 당황하는 걸 보고 비웃으려던 초희가 문득 그의 안색을 살피고 행동을 멈추었다.

이전까지 그녀를 향해 적잖은 반가움을 표하고 있던 영찬은 초희의 입에서 편지에 대해 거론된 이후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힌 듯 칙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사님,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그래, 뭐...썩 좋은 일은 아니었지. 본의 아니게 그 때 엮였던 일의 진실도 알게 되었고.”

그의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지만, 적어도 자신이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렸다는 것을 자각했다.

사과를 내뱉고 싶었지만, 그 전에 영찬이 자신의 속에 내재된 답답함을 푸는 쪽이 먼저였다.

“그냥, 나랑 같이 사건 조사 뛰던 애 중 한 명이 좀 사고를 당해서 정신적으로 큰 후유증을 입었거든. 그 때 있었던 일의 진위를 파악하고 왔어. 그 때 편지 보냈던 여자는 그 일에 관계되어있던 사람이었고.”

“.......”

“...굳이 이제와서 그런 편지를 보낸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 죄책감인지, 아니면 그냥 놀리려고 그런 건지.”

평소와는 다른 어두운 분위기에 속에서부터 안쓰러움이 기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형사님도 기다리시려는 거군요.”

“그래, 뭐...그렇게 됐지.”

우울한 분위기를 무마시키듯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이미 상관한테 허락 받고 왔어. 당분간은 이 부근에서 일어나는 사건 전문으로 담당할 테니까 이 부근에 계속 머무르게 될 거야.”

“여기에 있으면 앞으로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거겠네요.”

“너랑 내가 찾는 사람들이 나올 때까지는 그렇게 되겠지. 캠프로 가는 거지? 데려다 줄게. 중간까지 가는 길은 같으니까.”

“...전 이미 누군가의 진히로인이라서 형사님이랑 맺어질 일은 없을 거예요.”

“2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띠동갑 될 정도로 나이차이가 있는 애한테 손 댈 생각 없으니 안심해라.”

서로를 헐뜯으며 도로를 거니는 두 사람은 잠시나마 자신들이 품고 있던 근심을 잊게 되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며 도로를 걷고, 끝내 피해자들을 위해 개설된 캠프에 도착하게 되었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모여있던 그곳은 이젠 그녀를 제외한 몇몇 소수를 제외하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때 그녀와 함께 있었던 수아 역시도 불편한 신체부분을 보완해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집으로 귀가하여 일상으로 돌아간 상태다. 보낸 편지로 위안을 받기도 하고, 또 사망소식이 전해진‘ 자신의 언니’에 대한 장례식도 치르고 있을 테니까.

이 텅 빈 공간에 한때 찾아왔었던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사정에 따라 떠나갔을 테지. 아무리 절박하고,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다 해도 서로에겐 삶이라는 것이 존재하니까.

이곳에 남아있는 극히 소수에 불과한 사람들은, 아직 그 일상의 값어치보다도 미련이 훨씬 더 큰 사람들일 것이다.

안에 들어가있는 사람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소중히 여기기에, 하엾없이 그들을 기다릴 뿐인.......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 존재를 기다리는 사람 중 누군가가 격노를 토해내며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이들의 멱살을 격하게 끌어당겼다.

“뭐, 무슨 일이.......”

“넌 여기 있어.”

곧 초희를 대신해 영찬이 캠프 내에 배치된 좌석들을 가로지르며 다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있는 것은 순경복을 걸치고 있는 두 남자와, 그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중년의 남자.

“이, 일단 진정해주세요! 방금 전의 질문은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해........”

“내 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말을 듣고 진정하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 새끼들아!”

당장이라도 그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를 듯 멱살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격하게 떨려왔다.

========== 작품 후기 ==========

가시는 길에 다스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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