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206화 (206/251)

<-- 47화. 한때의 꿈과 깨지 않을 악몽. -->

“강수 씨는 제 미래를 알고 있는 거 맞죠?”

강압적인 질문에 정정을 요구하는 강수의 입이 다물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안색을 살펴보자, 불안으로 인해 격동하는 눈동자가 보이고 있었다.

원래라면 자신이 그녀와의 문답을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을 유추해내기 위해 이 문답을 생각했던 것이었지만, 정작 그걸 고려하고 있던 건 자신뿐만이 아닌 듯 했다.

조짐이야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그걸 대놓고 숨긴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문답에서 알아차리고 그걸 입밖으로 직접 내뱉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만큼 지금 상황에서 뭔가를 결정하고 싶다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 싶어서?

“...후우.”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슬쩍 때어놓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무거운 한숨소리 끝에 들려올 대답을 소연은 말 없이 기다리기만 할 뿐.

“노 코멘트.”

끝내 대답이 내뱉어졌을 때 소연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어째서.......”

“알아서 생각해. 어쨌든 난 대답했으니까. 룰 잊은 건 아니겠지?”

“........”

이어지는 강수의 발언에 소연이 끝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 게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대답’뿐이다. 그 대답을 한 이유 따위는 필요 없다.

서로가 진실을 말한다는 전제로 이어지는 문답인 만큼 어느 한 쪽으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면 침묵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마저도 상대에게 있어선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는 만큼, 묵비권을 행사한 것에 강수는 탐탁찮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직 그녀는 자신을 따라 던전에 갈 만한 인재라고 할 수 없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곤란해진다.

최악의 경우 자신이 인재라고 여긴 그녀를 제 손으로 죽이는 경우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의를 위하는 영웅으로 성장하는 만큼, 미래의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지르려 했는지를 안다면 자신에게 적의를 가질 가능성도 있을 테니까.

“그럼, 이번에 질문 두 개를 썼으니까...이번엔 내가 질문을 두 번 해도 되겠지? 룰을 어긴 건 아가씨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줬으면 해.”

“.......”

소연이 침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할 질문은 이제까지완느 다른 거야. 아가씨의 과거나 배경을 묻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 건네는 간단한 질문이니까.”

말을 이어가며 그녀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이전의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한 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가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있는 자신을 말 없이 내려다보기만 한다.

이후에 자신이 어떤 질문을 할 줄 알고 저리 태연히 있는 걸까.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도 느끼지 못하는 건가? 그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를 느껴서?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르는 남자를 ‘저런 눈’으로 쳐다볼 수 있는 걸까?

“네, 알았어요.”

“좋아, 그럼........”

끝내 말꼬리를 흐리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회피했다.

그래, 애초에 그녀에게 있어서 중요했던 건 자신의 ‘끔찍한 과거’를 알고 접근한 게 아닐까,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것이 이전의 침묵으로부터 해소되었다면 그녀는 원하는 것을 쟁취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를 서서히 되찾아가 바라보는 눈에 색이 채워져가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역시 당장은 기대하기 어렵겠군.’

그저 이번의 문답으로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지다니, 정말 어설픈 판단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과거가 끔찍하다는 뜻일 지도 모르지만, 그 과거에서부터 비롯된 현재에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할지, 그로 인해 미래에 어떤 인물로 성장할지, 그 미래를 본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지금의 그녀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안일하기 짝이없는 그 행동은 정말로 보이는 그대로의 것인지, 아니면 칼날을 숨기기 위한 교묘한 행동인지...과연 이번 질문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을까?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 천 명 중 600명의 집단과 400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존재한다고 쳤을 때, 그 중 한 쪽만 살리고 나머지 한 쪽이 다 죽어버리는 상황이 온다면 어느 쪽을 살릴 거야?”

“600명.”

즉답에 강수가 의외라는 듯 코웃음을 터트렸다.

“...대답이 빠르네. 아가씨 특성상 망설일 줄 알았는데.”

“.......”

소연은 강수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번 질문은 애초에 생각해볼 가치도 못 느끼는 듯 싶었다.

하기야 당연한 것이다. 특정한 구분 없이 오직 숫자로만 쳤을 때 다수를 살리는 것이 정론이니까.

하지만 ‘대의를 위한 영웅’으로 성장하리란 미래를 알고 있는 그로썬 마냥 쉽게 넘길 수 없는 발언이었다.

그것은 정녕 상식에서 우러나온 것일까? 아니면 미래의 근원이 된 사상에서 비롯된 것일까?

만약 후자라면, 앞으로 그녀를 자신의 밑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상당한 애로사항이 피게 된다.

“그럼 다음 질문이야.”

그 불안함을 염두에 두며 그녀를 향해 두 번째 질문을 건네었다.

“천 명 중 500명만 살릴 수 있는 기회와, 자기 목숨을 바쳐 50%의 확률로 전원을 구할 수 있는 기회. 그 쪽은 어느 쪽을 고를 거야?”

아주 잠깐. 미묘하게 그녀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이전처럼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은 질문에 답하기가 껄끄럽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물론 그의 입장에선 어느 쪽을 선택하건 상관없었다. 이번 질문은 미래의 그녀가 지니고 있는 성향이 과거와 일치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니까.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건넨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후자보다는 전자를 택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의 확정적인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신의 죽음은 확정되어 있는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런 짓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자들은 분명 ‘영웅’이라는 것에 걸맞은 인물이겠지만, 강수는 그녀가 영웅으로써의 싹을 지니고 있다면 확률적인 도박이 아닌, 확정적으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길을 택하리라 생각했다.

50%는 사람의, 그것도 1000명의 사람들의 목숨을 걸기엔 너무나도 큰 확률이니까. 차라리 확정적으로 500명의 사람을 구할 수 있는...그 길을 지향하는 것이 분명 대의를 위하는 영웅에게 있어선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미래라면 그쪽을 선택 했겠지만, 지금까지 생각한 모습을 고려하면 마냥 그 쪽이라 볼 수도 없지.’

이제껏 봐와온 소연은 누군가를 위해 몸을 던질 줄 알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할 줄 아는 ‘선인’이었다. 그런 여자가 죽고 싶지 않다고 1천이나 되는 사람의 목숨을 모두 포기할까?

500명을 고르는 것이 옳다 생각해도, 나머지 500명을 모두 버린다는 그 미련을 떨쳐내진 못할 것이다.

미래에 보인 그 비정한 모습이 떡잎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갖춰지기까지의 계기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이라면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도 분명 어느 정도 존재할 것이다.

과연 이 여자는 어느 쪽을 선택하고, 자신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게 만들까?

“...정말로.”

길고 긴 침묵 끝에 그녀의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둘 중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건가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자신을 향한 되물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수는 처음에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건 답이 정해진 문제가 아니라, 아가씨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기 위해서 하는 질문이야. 답은 정해져 있지 않아. 그냥 아가씨의 마음이 가는 곳을........”

“못해요.”

말을 끝마치기 전 소연의 입에서 부정이 내뱉어졌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강수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우그러지고 말았다.

“그게 대체 무슨........”

“500명을 살리는 게 아니라, 500명을 죽이는 거예요. 1000명을 살릴 수도 있는 게 아니라, 1000명을 죽일 수도 있는 거고.”

이어지는 발언에 강수는 소연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500명의 생존보다도 500명의 죽음. 1000명의 불확실한 생존보다도 1000명의 불확실한 죽음.

소연이 더욱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저울에 걸려있는 사람들의 삶이 아닌 죽음이었다.

마치 정의보다도, 자신이 그로 인해 가지게 될 책임을 더욱 부담스레 여기는 것처럼.

...도저히 대의를 위하는 영웅이 할 법한 발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평범한 인간이 할 만한 발언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건, 싫어요. 전...제 앞에서, 누군가가 죽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구한다면, 모두를 구하고 싶어요. 저는.......”

“그래서 그런 상황이 올 때 선택하는 걸 포기하겠다고?”

철부지 어린아이의 욕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 발언을 가르며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렇게 계속 망설이면, 정말로 이 질문과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후회하게 될 지도 몰라. 세상 만사가 모두 자기 뜻대로 돌아가는 게 아닌 만큼.”

“........”

그의 눈에 서려있는 기백을 읽어낸 소연의 바르르 떨리는 몸이 잦아들었다.

“죄송해요. 저는.......”

“그냥, 이번 질문은 묵비권으로 끝을 낼게.”

변명을 하려는 소연에게 관심을 거둔 강수가 입 밖으로 짙은 숨을 내뱉었다.

속에 서려있는 답답함을 표하듯 진한 연기가 허공으로 퍼져나가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이전에 했던 문답은 그 한 마디에 너무나도 부질없게 끝이 나고 말았다.

“사실 이제 아가씨에게 알아보고 싶은 것도 없고, 내가 처음으로 질문을 건넸으니 아가씨 쪽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당연한 거겠지?”

곧 입에 다시 담배를 문 그의 눈이 소연에게로 향해졌다.

제대로 된 대답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불안정하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녀는 불명확한 선택지에서 자신의 마음을 표할 수 있을 만한 과감함이나 확신이 희박한 사람이었다.

모두를 살리는 것을 고려한다면, 불확실하게 1000명이 모두 죽을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쪽을 염두에 두고 그 선택지에 강하게 끌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을 터임에도 그걸 선택하지 못한다는 건, 결과보다도 뒤따르게 될 책임을 신경 쓰기 때문이다.

그 책임을 감당할 만한 강함도 의지도 없기에 이렇게나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그 부분을 해결한다면...어쩌면 미래와는 다를지라도 확고하게 의지를 가지게 되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동료’로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묻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봐봐.”

속에서 그녀에 대한 평가가 서서히 굳혀져가는 것을 느끼며 재차 질문을 요구했다.

곧 긴장으로 굳어진 그녀의 목에 서서히 힘이 풀리고, 희미한 말소리가 내뱉어졌다.

“저를, 싫어하시나요?”

“...뭐?”

이어지는 질문에 강수가 얼빠진 숨을 내뱉었다.

마지막 질문인 만큼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다른 의미로 에상치 못한 질문이었기에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건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야?”

“그대로의 의미예요. 강수씨는 저를 싫어하시나요?”

“...그래.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면 안 됐지.”

칼 같이 이어지는 즉답에 강수가 투덜대며 한숨을 내뱉었다.

“싫어하지 않아.”

싫어하지 않는다. 일절 거짓도 포함되지 않는 발언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그녀를 죽인 건 어디까지나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 과거로 돌아와 그녀에게 호의를 표하는 건 자신의 계획에 이용해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결국 스스로의 이기심에 의해서 그녀를 대하는 자신이 어찌 그녀를 싫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말하면 좋아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자신을 적으로 두거나 방해를 하지 않는 이상 칼을 겨눌 생각은 없었다.

“그 말, 믿어도 되나요?”

“문답은 이걸로 끝내기로 한 거 아니었어?”

“........”

“...농담이야.”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린 강수가 여유로움을 표하듯 슬며시 양 팔을 벌렷다.

“어떻게 하면 내가 아가씨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믿어줄 거야?”

“몸을 빌려주세요.”

“........”

또 다시 이어지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나, 일단 아내가 있는 몸인데.......”

“그냥, 기대게만 해주시면 되요.”

“...농담이 안 통하는군.”

슬며시 자조를 지은 강수가 벌린 팔 중 하나를 회수했다. 머지않아 소연이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몸을 기울여 그의 어깨에 머리를 맞대었다.

몸을 빌린다는 것은 그저 그 정도의 의미일 뿐. 그녀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지친 몸과 정신을 지탱해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이제까지의 여정을 해소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앞으로의 불안함을 풀어내기 위한 것인지.

“강수씨, 저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그 누구보다도 더.”

그런 강수의 생각을 모르는지, 소연은 피로에 지친 몸에서 힘을 풀며 그의 머리맡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여왔다.

“그걸 위해서라면 전 뭐든지 할 거예요. 설령 그게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라도.”

그 말을 듣자마자 강수가 처음으로 생각한 건 의문이었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죽음까지 각오해야 할 일인가에 대한 시답잖은 의문.

하지만 그 의문은 머지않아 기억 속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말에 의해 괴리로 바뀌게 되었다.

[약간의 안식? 저희들은 그것을 위해서 이제까지 필사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이런 세계라도, 조금이라도 더 생을 갈구하고 ‘인간답게’살아가기 위해서.]

[설령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는다 하더라도, 남아있는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희들의 희생은 그만한 가치가 있게 되는 겁니다. 기회를 망쳐버리려고 하는 당신만 영원히 사라진다면.......]

“........”

슬쩍 밑으로 고개를 숙이자, 어깨 부근에서 머리를 비틀거리고 있는 가녀린 여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곤히 잠을 청하고 있는.......

그런 위태로운 여인의 머리를 무릎쪽에 조심스레 옮긴 강수가 그녀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속삭였다.

“날 따라온다면 인간답게 살아가는 건 포기해야 할 거야. 분명히.”

그 쓸쓸한 중얼거림에 서려있는 무게를,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이 여자가 언젠가 감당하게 될 날이 오게 될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설령 그녀에게 비참한 미래를 강요한다 하더라도......

========== 작품 후기 ==========

80화~83화 부근의 비밀이야기의 내용을 이제야 풀게 됐네요.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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