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나락으로 -->
산골 마을의 사냥꾼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밭을 서리하는 짐승을 잡으러 갔던 날이었다.
숲길을 둘러보고, 목표의 흔적을 쫓고, 끝내 마을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는 돼지를 발견했을 무렵 아버지는 그것을 향해 망설임 없이 화살을 쏘았다.
한치의 거침도 없이 쏘았던 화살이 사냥감의 몸을 꿰뚫고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을 때가 참으로 멋져보였다.
살생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에 의한 행동이라면, 덧 없이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다.
아버지의 사냥엔 ‘명분’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을의 농산물을 지키고, 더 나아가 그들의 고기로 배를 채우고자 한다는 뚜렷한 이유가.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존중하고, 존경하고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와 같은 사냥꾼이 되어, 당당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소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이제는 돌아올 리 없는 일에 대한 그리움.......
[정벌하라! 이들을 모두 산제물로 바쳐라!]
사냥을 끝마치고 마을로 돌아갔을 무렵 들려온 목소리였다.
그것이 발화제가 되듯 건물을 뒤덮은 화마는 더욱 거세지고, 한때 이웃이었던 자들이 숯덩이가 되어 나타나 쓰러졌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들의 손짓보다도 살을 태우며 나는 퀴퀴한 냄새가 정신을 더욱 아찔하게 만들었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를 대신해, 아버지는 앞으로 나서며 활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다.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인 그들의 손아귀에 구속되지 않도록 나를 내보내려던 것 뿐.
나는 그런 아버지의 희생을 등진 채 하염없이 도망을 쳤지만, 끝내 그들의 손에 붙잡히게 되었다.
그 후로 지옥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나를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두어, 매일 같이 약물을 주입하고 사술을 부리는 실험체로 써먹었다.
정신이 나가버린 광신도집단에게 말 따윈 통하지 않았다. 동정을 유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이 섬기는 신을 위해서만을 행동하고, 그에 위협이 되는 것들은 철저히 배제해버리는 괴물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유린당한 나는 악이란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런 내 심정에 반응하듯 그들의 연인은 실험에 영향을 받은 내 몸엔 변화가 일었다.
어느 한 순간부터 시야에 들어온 모든 이들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새어 나왔다. 지휘가 높을수록, 더 많은 이들을 처형한 사람일수록 그 색은 더욱 짙어졌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그것이 죄의 수치를 가르쳐주는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고작 그것 뿐인 능력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옥 속에 가두어진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도, 그들의 실험을 막아내고 견뎌낼 방도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날이 갈수록 내 세상이 흑빛으로 물들어지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점차 흑색으로, 흑색으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더욱 더럽혀지고.
그렇게나 잔인하고 추악하다 생각할 수밖에 없던 세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가두어져 있던 나를 향해 뻗어진 구원의 손길을 마주했을 때였다.
갑옷을 입은 중무장의 기사들이 그들을 처단하고, 나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나를 처형했던 자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그들과는 달리 나를 향해 가혹한 매질을 가하지 않는 그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손을 더럽힘으로써 누군가를 구해내는 존재였다.
그들이 그러한 짓을 행하는 이유를 알게 된 건, 그들에게 구제된 내가 그들의 주인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가엾은 아이로구나, 하지만 이젠 걱정하지 말거라. 오갈 데 없는 너를 이제부터 내가 거두어줄 테니 말이다.]
피폐해진 정신을 정화시켜주는 상냥한 목소리, 학대되었던 내 몸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 그 모든 것을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하고 있다.
사교도와도, 나를 구해준 기사들과도 달리, 너무나도 선하디 선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남자.
그 자가 나를 구한 은인이었고, 나에게 정의를 가르쳐준 자였다.
죄를 보는 눈으로도 티 한 점 보이지 않는 깨끗한 모습에 감회된 나는 그에게 매료되어 힘을 길렀다.
‘나는 평생을 바쳐 이 자를 섬기리라.’
그 다짐으로 시작된 노력으로, 나는 끝내 그의 곁에 남아있는 가장 ‘강한 기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기사가 되었을 때 내가 받은 첫 임무는 한 집단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국민들의 안정을 위하여 외지에서 받아들인 한 교단. 그는 나를 그 교단에 종속시키고, 왕국을 위해 그 곳에 무한한 봉사를 할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 집단엔 너의 힘이 필요하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모든 것을 그에게 바치기로 했던 나는, 오직 그의 명령만을 들으며 살기로 다짐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 명령에서 시작되었던 삶은,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되었다.
교단이 벌이는 봉사와 선의가 진행될수록 그의 나라는 번영되어갔다. 나는 그들의 앞에서 그들을 지도하며, 그들과 함께 정의를 집행하는 일을 행했다.
계기는 다르지만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이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등을 기대고, 그들에게 의지를 받고, 함께 나아갈수록 그가 바라는 평화에 더욱 가까워져가는 것을 자각했다.
그저 그 만을 위해 노력을 해온 내 주변이 서서히 풍족하게 변해갔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량한 기운을 가진 자들로 가득 찬 세계. 그것이야 말로 그가 바라는, 그리고 그를 섬기는 내가 바라는 세상이었다.
그 세상이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며 교단에 몸을 담은 채 정의를 행했지만, 어느 한 순간 그 모든 것은 한 줌의 재가 되듯 사라져버렸다.
역병이 돌기 시작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오갈 데 없는 마음은 종교에 의지하며 순수했던 신앙을 광신으로 변화시켜갔다.
그럼에도 절망은 잠식되지 않고, 그들은 자신들의 원성을 받아줄 대상을 끝 없이 찾아다녔다.
나는 그 대상을 찾아다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내가 속해있는 교단의 앞에 선 채로.
언제나 표적은 검은 기운이 솟아오르는 자들이었다. 나의 능력을 알고 있는 교단의 일원들은 그들을 ‘죄인’이라고 단정을 짓고, 나를 통해 그들을 붙잡아 잔인하게 처벌을 행해갔다.
마지막까지 나를 향해 살려달라는 절규를 토해내는 그들이 너무나도 애처롭게 여겨졌지만 그것을 등을 돌려 외면했다.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한 일이었다. 선고가 내려진 대상에게 얄팍한 동정심을 발휘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많은 일을 저질렀고, 앞으로도 많은 일을 저질러야만 했다.
그렇게 교단의 앞에 선 채 수많은 이들을 징벌해온 나는, 어느 날 끔찍한 꼴이 되어 나타나게 된 교주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나를 교단에 몸을 담게 한 주인을 만나, 이 상황을 구제할 길을 모색하려 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선한 기색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온 몸에 괴악한 촉수가 돋아나있는 그의 몸에선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없던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돌아오고 난 후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미 더럽혀져 있다. 그를 섬기는 자들은 모두 이단이다! 따라서 이 왕국의 국민들을 모조리 처단해야 한다. 우리의 손으로...그래,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해서!!]
처음으로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을 옳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며 손을 더럽히는 걸 달게 넘어갔다. 내 옆에 있는 동료들이 어느 한 순간 검은 기운으로 물들어져도, 그마저도 이 나라를 위해서라고 달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의 나는 그 나라의 주인이었던 자를 적으로 돌려야 하는 것일까.
이제까지 원망을 잠식시키기 위해서 벌였던 사냥은 대의라는 이름을 짊어진 학살로 변모했다.
죄책감은 쌓여가고, 그럼에도 행동은 멈출 수 없었다. 등을 돌리면 나를 향해 재촉을 해오는 동료들의 힐난이 들려오니까.
귀를 막은 채, 눈에 보이는 악만을 처단하는 행위를 이어갔다.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끝 없이 죽이기만을 반복하고.
끝내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이들이 ‘성전’이라는 이름 하에 시체로 변했을 때, 그 때가 돼서야 내가 벌인 참상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고개를 돌렸을 무렵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광신을 통해 추하게 망가진 몸을 들어올리며 이제껏 자신들이 죽여온 시체들의 위에서 축배를 들고 있는 신도들의 모습.
그들의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게 물들어져 있는 기운은...이제껏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 생각했던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무너트렸다.
[악을 처단하라, 우리가 섬기는 신은 이 모든 것을 허락할 것이다!]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하여!]
지켜야 할 이들은 더 이상 이곳엔 존재하지도 않는데, 무엇이 대의였다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에게 이토록 잔인한 의지를 강요하게 만드는 것일까.
한때 번영했던 왕국은 그들로써 어찌 하지 못하는 돌림병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선했던 자들은 타락하고, 고통 받지 말아야 할 자들은 죽어가고.
지켜야 할 자들은 이제 나의 주변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차례차례, 악이라는 명목 하에 이 손으로 모두를 처형했으니.
하지만 그들의 원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역병에 찌들었음에도 목숨을 연명하는 그들은 그 순간에도 자신들의 광신을 받아줄 대상을 찾고 있었다.
그 시선이 머지않아 자신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들로 향해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들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나를 신뢰하고 있던 그들을 향한 믿음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지만 그들을 해하는 데에 망설설임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과 달리 나는 광신이 아닌 한 대상에 대한 충성심만을 유지하며 일을 벌여왔으니까.
[그 미쳐버린 왕 때문이냐!? 더 이상 그 자는 네가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 땅에 재앙을 증식시킨 그 자를.......]
교주의 마지막 유언을 끝내 듣지 않고 화살을 쏘았다. 끝내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을 죽인 나는, 시체만이 가득 한 왕국에 홀로 선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떠올라있는 덧없이 맑은 하늘, 피로 물들어진 대지. 그 속에 홀로 서있는 것은 나.
그의 명령 하에 대의를 지켜왔던 나는, 끝내 그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무너트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까지의 역경과, 역병을 버텨내지 못해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으로나마 두 다리를 세우고 지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도 이 세계에 미련이 남아있기라도 한 것일까.
미련이라면 남아있다. 신앙을 대신하여 이 세상에서 정신을 유지하고, 정의를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준 대상은 아직 살아있었으니까.
그 대상이 어떤 일을 벌여왔는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제와서 관심을 준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모든 것을 여기서 끝내버리자. 그러한 생각이 들었을 무렵, 모든 이들이 죽어버린 그곳에 한 존재가 찾아왔다.
그는 탐욕스러웠고, 더러웠으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손을 뻗는 괴물이었다.
그 괴물이, 한때 내가 섬겼던 자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에 손을 뻗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기, 고기가, 필요해...신선한 고기가......]
추한 눈동자가 나에게로 향해졌다. 모든 이들이 죽고, 유일하게 나만 살아있다. 그에게 있어서 나라고 하는 존재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최적이자 유일한 자원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구해주었던 작은 소년도, 그를 섬기게 된 기사도, 하다못해 모든 이들을 제 손으로 죽여버린 대악의 죄인도 아닌...그저 고기에 불과할 뿐.
이미 그의 모습에선 내가 섬겼던 선량한 자의 기색 따윈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봐왔던 그 어떤 존재보다도 깊고 어두운 색으로 물들어져 있는 그는...이제까지의 기준이라면 내 손으로 죽여 마땅한 존재였다.
그가 그 정도로 죄를 쌓아올릴 때까지 나는 외면하며 다른 이들의 절망을 가라앉히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왔다.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해서.......
...아니, 처음부터 대의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에게 감회되었던 녀석이 철 없이 가지게 된 선한 감정, 충성심, 경솔한 판단.
결국 처음부터 나는 이기적인 녀석이었다. 절망적인 세계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치졸하게 누군가를 희생시켜오기만 했던, 그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무거운 악.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나를 향해 손을 뻗어오는 그 존재를 향해 최후의 말을 남겼다.
[왕이시어. 편히 잠드소서.]
그 후의 기억은 이제까지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눈앞에 있는 자를 향해 활의 시위를 당긴다.
그 행위를 앞으로 얼마나 반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화살은 그 어떤 때라도 스스로를 향해 겨누어지지 않으니까.
*****
(그는 왕이 가장 총애하는 신하이자, 그의 명령을 따라 교단에 몸을 담게 된 기사였다.)
(사교의 실험으로 인해 얻게 된 죄악을 보는 눈은 교단이 집행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이었다. 그는 그 눈을 통해 수 많은 죄인들을 처형하고, 그보다 많은 이들에게 안식을 누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집행인이었던 그조차도 역병의 여파에선 벗어날 수 없었다.)
(종교에 의지하기 시작했을 때, 그가 속해있던 교단은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고자 잔인하게 변해갔다. 죄를 지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처벌하고, 역병에 걸린 이들을 태워죽여 그들의 절망을 잠식시켜가고.)
(그 모든 일엔 심판자란 이름을 지닌 그가 앞장서고 있었다. 한때 자신이 지켰어야 할 자들을 향해 화살을 겨누어도 개의치 않았다. 심판자란 잔인하고, 비정해야 하며, 대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책임을 가지고 일을 했던 그는 자신의 동료들마저 타락해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마저 쏘아 죽였다. 그가 어째서 그들을 죽였는지에 대해선 알 방도가 없었다. 언제나 대의를 위해 살아온 자이기에 스스로의 자의를 발휘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자기들끼리 죽이게 될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단순히 그 또한 이성을 잃고 미쳐버린 것인지.)
(하지만 모든 이들을 죽이고 난 후 달밤 아래에 서있던 그는, 역병이 돌기 시작한 후 자신의 욕망을 잠재워줄 ‘미쳐버린 왕’을 대면했을 때 만큼은 제정신이었다.)
(제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무자비하게 그들을 죽여온 남자가, 추하게 더럽혀진 왕의 손을 내려다보며 처음으로 울부짖었으니까.)
(잔인했던 심판자라도 감정은 존재하고 있다. 그 감정이 자신이 평생을 섬겨온 주인을 제 손으로 해했을 때 어떤 식으로 일그러졌을까.)
(“나 자신이 지켜야 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쳤을 때, 비로소 스스로가 고수하는 대의는 무너지게 된다. 나는 그것을 내가 지켜야 할 존재들을 모두 내 손으로 해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왕을 죽이고, 그 후 제 손으로 목숨을 끊었을 당시 그가 남겼던 말이다.)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저 일그러진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물의 희생양...대의를 위해 싸우다 파멸로 치달은 비참한 영웅의 기록을 이 서적에 남긴다.)
[기록자의 회고록-심판자 카즈 엘펜의 기록 중]
*****
무너져 내리는 공간에서 피신해 통로를 벗어난 강수는 스마트폰에 온 메시지들을 확인하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연화와 요한이 보낸 메시지들을 살펴보며 대강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인질들은 모두 차례차례 구출해냈고, 광신도들도 수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참 기특한 자식들이라니까.”
세린의 소식은 접하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지덕지할 일이다. 계획했던 대로 이 교단을 무너트리는 일을 진행하게 된 것이니까.
정작 그 자식과의 약속을 지키려다 예상치 못한 위험한 일을 떠맡게 되었지만.
“그 미친 돼지일 줄 누가 알았겠어.”
미래를 기억하고 있는 그는 ‘돼지의 왕’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기억하고 있다.
어떤 이미에선 이 공간에 존재하는 보스 몬스터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존재.
그런 존재를 쓰러트렸던 자 역시도 강수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이 개구쟁이 아가씨를 어떻게 한다...”
슬쩍 자신의 옆에 쓰러져 있는 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카즈의 정신이 빠져나간 이후에도 소연은 의식을 잃은 채로 쥐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이후에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할지 알지 못한 채.
========== 작품 후기 ==========
절망교 에피소드가 끝났습니다.
휴재 이후에 피로에 찌든 상태에서 쓴 글이다 보니 이런저런 문제점이 엄청 많이 터졌네요 허허....
긴 글 읽어주시느라 고생많았습니다만 예정보다 이야기가 더 길게 이어질 것 같네요.
‘뭐야 완결 아직 멀었어!? 이 던전 깨부수고 또 다른 던전 깨부수면 한 1000화 정도에 프롤로그 끝나겠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하여 결정된 사항을 얘기하자면...이 소설은 그냥 보스 잡고 완결내는 걸 고려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몰라서 말이죠. 정신적으로 부담이 큰 상태에서 무리하게 연참을 이어간 결과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네요.
애초에 울적한 기분 풀어보고자 무료에서 연재하기로 했던 글이었습니다. 현재진행형으로도 그게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그런데 슬슬 저도 다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며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찾아오다보니, 마냥 이거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더군요.
그래서 이 소설을 느긋하게 하루에 하나씩 연재하며, 느리지만 최대한 간결하고 짜임새 있게 쓰고자 노력해볼 생각입니다.
보스전으로 들어가기 이전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강수와 소연의 미래이야기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할 예정이고, 이제까지 깔아두었던 떡밥을 정리하거나 풀어내는 시간일 겁니다.
과정은 그래도 완결만큼은 제대로 내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