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해 -->
절망을 버티지 못한 이들을 보듬어준다는 절망의 사도 아래에서 세워진 교단인 절망교.
전도활동과 더불어, 자신의 세력을 배척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정신 나간 집단은 그와 함께하는 이들에게 있어선 두려움의 대상이자 적이었고, 던전을 부수고자 하는 그에게 있어선 처리하지 못하면 이후에 시시각각 훼방을 놓을 녀석들이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는 그들을 쳐부수기 위한 공작을 펼치고자 먼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함이다.
눈앞에 있는 녀석은 그 정보를 건네줄 수 있는 최적의 정보원이었다.
“그 쪽이 절망교 소속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어.”
단서는 여럿 존재하고 있다. 연화와 같이 있었을 무렵 ‘어느 집단의 의식에 필요한 제물을 바칠 필요가 있다’라는 말을 거론했던 것이야 그 누구라도 절망교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절망교를 연상시킬 발언이며, 무엇보다도 소연의 행방이 절망교의 본거지에서 사라진 이후 소연의 몸을 지배하는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더군다나 이전에 보였던 실력. 소연의 능력과 지식을 빌리고 있다 하더라도 일개 신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단지 그것만 따져도, 눈앞에 있는 녀석이 절망교와 관계가 있고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제대로 된 의식과 지능을 갖추고 있는 몬스터가 교단을 꾸려나가고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그 쪽 말고도 교단 내에 제대로 말할 줄 아는 몬스터가 더 있나? 이를테면 교주라거나.”
-........
“...묵비권 행사하면서 시간 질질 끌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굳이 대답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머잖아 그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여 강수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싸움은그대가 이겼다. 하지만 포로로 잡았다고 해서, 집단을 해할 지도 모르는 자에게 정보를 넘기는 경솔한 짓은 하지 않는다.
“히야, 몬스터 주제에 참 양심적인 놈이야.”
패배했어도 마지막까지 완강히 의지를 발휘한다. 그로썬 심히 감탄스러운 일이었다.
“좋아, 그럼 질문을 좀 바꿔서........"
"소연이가 어째서 당신과 거래를 한 거야?”
질문을 내뱉으려는 순간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연화가 재빨리 질문을 건네었다.
“그 집단에 대한 정보를 가르쳐줄 수 없다면, 하다못해 소연이와 어떤 거래를 나누었는지 설명해줘. 왜 소연이가 그 쪽한테 협조하고 있는 건데?”
-교단에 해가 될 정보는 말하지 않는다.
“나를 제물로 데려가는 이유가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라고 몇 번이고 거론했었어.”
전투를 벌이며 몇 번이고 언급했던 사실을 야기한 연화가 그를 마주한 눈에 힘을 실어 넣었다.
소연의 얼굴을 빌린 몬스터를 마주한 그녀의 눈은 긴장이 역력해 있었다.
“교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라고. 그건 자신을 위해 자신과 하등 관계도 없는 다른 사람을 연루시켰다는 뜻 아니야? 그런데도 설명하지 못하겠다고?"
-........
바로 달려와 연화를 도우러 나선 강수는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관계도 없는 사람이 다른 이의 사정에, 하물며 자신이 감싸고 도는 친구가 휘둘렸다는 건 연화에게 있어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확실히, 그 때의 발언은 교단과 전혀 관계없이 개인의 의지에 따라 내뱉었던 말. 그 말이 그대를 신경 쓰이게 했다면, 이렇게 구속된 상태에서 그 의문을 해소시켜줄 필요가 있겠지.
무언가 결심을 한 몬스터가 다시 고개를 들어올려 연화와 눈을 마주쳤다.
이제까지와 다를 바 없는 싸늘하고 딱딱한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해졌을 때, 고양이를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양 손에 힘이 실려갔다.
연화의 감정을 읽은 강수가 입에서 담배를 떨어트린 채 깊게 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그 쪽에게 협조를 구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그 교단이랑 어떻게 대면할지를 정하는 건 우리니까. 이후에 방해를 하려 든다면 어떻게든 막겠지만, 당장은 그럴 처지도 아니니, 그에 대해선 당장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것은 내가 이 몸을 인질로 잡고 있다 생각하기에 그런 것 아닌가? 만약 몸을 빌리지 않은 상태였다면 고문이나 협박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정보를 수집했을 것을.
“...예리하셔라.”
강수가 그의 말에 긍정을 표했지만 반은 거짓이었다. 만약 연화가 없었다면 소연의 몸에 아랑곳하지 않고 험한 짓을 벌였을 지도 모른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잠재성이지, 누군가에 대한 호의와 정이 아니었으니까.
-이 공간에 구속되고 난 후, 나는 다른 이의 몸에 정신을 기생시키는 존재로 거듭났다.
“...네임드에 기생형. 참 기가 찰 조합이로군.”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내뱉어진 말에 강수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몬스터는 그 수만큼 형질이 다양하며, 대략적으로 분류가 나눠진다.
네임드 몬스터도 그런 식으로 분류된 형질을 따르게 되지만, 그들의 형질은 더 강력하고, 구체적이고, 세심하게 이루어져 있다.
평범한 기생형의 몬스터가 기생하여 육체와 정신을 파괴시키며 괴악한 형태로 바뀌는 단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네임드 급의 반열에 오른 기생형 몬스터는 대상의 형태를 온전하게 남기되 그 자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도, 원한다면 대상의 몸에서 안전하게 벗어나 새로이 다른 육신으로 갈아타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이 공간이 나타나고 난 이후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육신을 오갔다. 대부분 썩고, 의식도 유지하지 못하는 나약한 신체였지. 그들의 몸에 붙으며 정신을 장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의식이 없어, 그들의 몸을 차지하는 과정에 다툴 필요가 없으니까.
“육체를 지배하려 들면 통제권을 두고 다툼을 나누는 건가?”
-그 말대로. 그렇기에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이성을 지니고 있는 자들에겐 능력이 거의 통하지 않아.
“정신력으로 밀어붙여서 지배할 수도 있을 텐데.”
-저항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육체의 통제권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투게 된다. 몇 명에게 옮겨붙어본 결과 다툼을 버티지 못한 그들의 정신은 끝내 피폐해지고, 정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육신은 붕괴되어버리더군.
쉽게 말해 광인의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가 죽여온 몇 명의 녀석들처럼.
“그 말대로라면, 그 아가씨는 그 쪽이 육체를 차지하는 데에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육신을 잠시 빌리겠다. 빌리는 시간 동안 이 육체를 빌려 내 목적을 이루겠다. 그리하면 그대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겠다. 그것이 거래의 내용이었지.
“그럼 그 아가씨가 변심해서 원한다면 언제든 저항해서 육체를 가지고 다툴 수 있다는 거야?”
-의식은 잠재워진 상태다. 거래를 완전히 순응한 이 몸의 주인은 나에게 몸의 제어권을 완전히 넘겨주었으니, 결의가 흐트러지지 않는 한 변심을 할 리는 없겠지.
“즉, 지금까지 있었던 모들 일들을 모르고 있다는 거겠네.”
-하지만 유예 정도는 만들어두었다. 거래는 철저해야 하니까.
“유예...?”
-그것까지 말을 해줄 생각은 없다.
“........”
이어지는 침묵에 그가 조용히 입에 담배를 물었다. 굳이 다 설명을 해줄 거면서 유예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는 이유는, 타인이 알게 될 경우 거래에 치명적으로 다가설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일까?
말해주지 않을 거라면 굳이 추궁할 생각은 없다. 하나를 집요하게 캐기 보단 뭐든 좋으니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게 중요하니까.
“거래를 한 계기는 어떻게 돼? 이전에도 거론했다시피 아무나 붙잡고 거래를 요구한 건 아닐 텐데.”
-처음 이 몸의 주인을 마주했던 것은, 시체의 몸을 빌려 던전 내를 누비던 중 교단의 신도들에게 쫓기고 있던 것을 정면에서 마주했을 때였다. 몸이 멀쩡하지 않은 건 피차 마찬가지였지만, 만약 그녀가 만전의 상태였다면 이기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추적을 따돌리고 도망칠 수 있었겠지.
네임드 급의 의식을 갖출 몬스터가 인정을 할 정도의 실력자. 스스로의 강함에 도취되어 있다면 자부심을 가져도 될 법한 발언이었지만, 당시의 그녀가 쫓기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좋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었다.
결국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몰랐던 상황에, 이 녀석과 ‘재수 없게’마주함으로써 실패했다는 것이니까.
-그 후로 뒤따라온 신도들은 이 몸의 주인에게 책임을 물었다. 자신들이 데리고 가려 했던 이들을, 이 몸의 주인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떨어지게 되었으니까. 만약 그대로 두었다면 집회의 의식에 제물로 바쳐졌겠지. 혹은 봉인구를 채운 채 죽을 때까지 고문을 받거나.
그의 무미건조한 말에 연화의 몸이 크게 떨려왔다. 조금이라도 잘못되었으면 눈앞에 있는 이의 몸이 험하게 망가졌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고 만 것이다.
“그래서 그 쪽이 눈독을 들여서 겨우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건가. 궁금하네, 어떤 이유로 그 아가씨에게 매력을 느낀 건지.”
코웃음을 친 그가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물건을 하나 꺼내들었다. 이제껏 그가 자신의 왼쪽눈을 대신하듯 눈을 가리고 있던 렌즈였다.
“이 죄를 보는 눈이랑 뭔가 관계가 있는 거야?”
“그, 그건...!”
-무관계하다고 할 수는 없지.
다급함을 토해내던 연화의 말을 몬스터가 가로막았다.
-실제로 나는 그 여자에게 죄를 보았다. 확인해본 바 그대는 말할 것도 없고, 뒤에서 이 몸의 주인을 걱정하고 있는 여인보다도 훨씬 더 작은 죄악이었지.
“그 정도라면 별 거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이 공간 내에서 살육이라는 게 얼마나 흔히 일어나는지 그 쪽도 모르는 건 아닐 테고.”
-그 말대로 자신의 욕심을 위해 타인을 해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저 여인처럼 어쩔 수 없이 손을 더럽히는 경우도 있겠지. 이 공간에 들어오기 전에 쌓은 죄가 아니었다면, 나도 별로 신경 쓰지 넘어갔을 거다.
-먀아앙!
그의 말이 끝난 직후 고양이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양이를 끌어안고 있는 연화의 양 손에 힘이 실려 몸이 눌렸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변환시킬 수 있는 살덩어리인 만큼 피해는 없겠지만, 그녀의 감정이 얼마나 외적으로 표현될 만큼 거칠어졌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일 때문에...정말로 그거 때문에 소연이한테 거래를 제안한 거였어?”
-그 일이라는 것이 이 공간 내에 들어오기 전에 누군가를 살해한 것이라면, 그 말대로.
“너...!”
-자세한 건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건 ‘한 사람을 죽였다’정도지. 기억을 뜯어 보아도 어떤 사정으로, 누군가를 죽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뭐라 말을 하려는 연화를 향해 그가 곧장 자신의 의사를 표했다. 끝내 그의 올곧은 눈빛을 마주한 연화가 몸을 주춤거리며 이를 깨물었다.
-살아생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알고 있다. 죄의 수치가, 그 자가 선인인지 악인인지를 판단할 요소가 되어주지 않는다는 건. 바꿔 말하면,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자라 할지라도 ‘의도만큼은 선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지.
“그래서 그 아가씨에게서 그 ‘선함’을 읽었다는 거야? 그 선함을 이용하고자 거래를 제안했고?”
-내가 그 여인에게 거래의 대가로 제시한 건 선함을 가지고 있어야만 탐을 내는 것이니까.
그러면서도 이후에 강행할 일에서 손을 더럽힐 각오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죄를 저질러본 자라면 그 조건에 부합되기 적합할 것이다.
하물며 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죄를 저질러본 경험이 있는 자라면.......
-거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단 내에서 비밀리에 치르게 될 의식의 제물의 양이 충족될 때까지 육체의 통제권을 넘겨라. 그리하면 교단의 신도들이 구속시킨 모든 이들을 해방시켜주겠다.
“...뭐?”
이어지는 말에 연화가 의아함에 찬 숨을 토해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이어진 말은 그녀를 혼란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이었다.
“방금, 뭐라고...? 사람들을...해방?”
-믿기 어려운 일인가? 하기야, 교단에서 직접 자행한 일을 그르치겠다는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지. 그대들에게 있어서 나는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고, 그대들이 적으로 삼은 집단의 추종자 중 한 명이니.
몬스터는 그녀의 짙은 불신과 혼란을 마주하면서도 안색하나 바꾸지 않은 채 거듭해서 긍정을 표했다.
-하지만 지금 한 말에 거짓은 없다. 확실하게 말하지.이 여인에게 몸을 빌려 제물을 구하는 작업에 협조를 해준다면, 내 권한을 이용해 신도들에게 붙잡혀 있는 1057명의 인간을 해방시키겠다고 약속을 했다.
‘소수를 희생시켜 다수의 사람을 구한다.’
약속 대상의 몸을 빌린 몬스터는 그러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다.
머지않을 미래에 대의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비정한 인간과 똑같은 얼굴로.
========== 작품 후기 ==========
던부추 구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