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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브래이커-156화 (156/251)

<-- 37화. 심판자 -->

‘몬스터...아니, 인간인가?’

자신에게 화살촉을 겨누고 있는 자에게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온갖 괴악한 괴물들이 넘쳐나는 곳이긴 하지만, 몬스터들도 ‘인간의 형태’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 저런 식으로 팔다리가 온전히 갖춰진 녀석이 존재해도 이상하게 볼 리 없는 것.

하지만 연화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그의 형체가 아닌, 그에게서 풍겨오는 냄새에 관한 것이다.

이제까지 마주쳐온 녀석들과는 다르다. 시체썩는 냄새도 약물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의...사람이 풍길 법한 냄새다.

“당신, 내 말 알아들어? 알아들으면 대답해봐. 인간이야, 아니면 몬스터야?”

-몬스터.

무거운 목소리를 토해내자 그가 곧장 대답했다. 상당히 이질감이 감도는 목소리였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그의 태도였다.

-이곳에 휩쓸려온 이들은 나와 같은 존재를 그런 식으로 부르겠지.

이어지는 대답에 연화가 당혹을 표했다.

몬스터 중에 지능을 갖춘 놈들도 있긴 하나, 눈앞에 있는 녀석이 하는 말은 너무나도 뚜렷했으니까. 묘한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인간이라고 오해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하물며 자신의 말에 대답하거나 행동을 멈춘 것도 인간이 행할 법한 것이다. 그럼에도 몬스터라고 표한다면 상식 선에선 ‘사람이 몬스터 흉내를 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공간은 언제나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공간. 그런 것을 따지고 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으 짓인지 연화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자신을 공격한 자라면 더더욱.

“지금 할 일이 있어서 급히 가봐야 할 곳이 있는데 비켜줄 순 없을까? 지금이라면 공격한 거 무르고 넘어가줄 수 있는데.”

말을 내뱉으면서도 쿠크리를 들어 올리며 상대가 표하는 적의에 응수를 가했다.

몬스터건 인간이건 말이 통한다면 이 상황에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얄팍한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곳이니까.

그런 연화의 각오에 반응하듯, 스스로를 몬스터라 소개한 자는 시위를 당기고 있는 손가락에 더욱 힘을 실어 넣었다.

머지않아 시위 앞에 붉은 화살이 생기고, 연화는 예상했다는 듯 혀를 차며 쿠크리의 날을 세워갔다.

-푸슉!

화살이 날아든 직후 빠르게 휘둘러지는 쿠크리. 흡혈을 통해 늘어난 재주수치와 정신수치는 날아드는 화살에 칼이 정확히 맞닿게 만들었다.

끝내 붉은 화살을 이루고 있는 힘이 칼날에 잘려나간 직후, 연화는 자신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온 붉은 눈동자를 직시하며 이를 깨물었다.

-화악!

찰나의 순간 주변을 가득 메워가는 안개가 방 구석구석에 퍼져갔다. 안개화를 발동한 직후, 어둠 동화 능력을 이용해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연화는 그의 몸을 향해 빠르게 칼을 휘둘렀다.

살육을 즐기진 않는다. 이제까지도 누군가를 죽였던 것은 언제나 어쩔 수 없을 때 뿐.

아직 적의 강함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인 만큼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태다.

‘너무 원망하지 마라,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안개 속에서 그의 배후로 돌아선 연화가 곧장 쿠크리의 날을 세우며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 직후, 그의 그림자가 급격히 움직이며 붕대에 감겨진 왼쪽 눈이 연화에게로 향해졌다.

안개 속에서도 훤히 빛을 내는 그것은 정확히 연화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뭣!?“

당혹성을 토해낸 순간 이어지는 활의 휘두름. 급소를 노리고 있던 칼로 활대의 공격을 막아낸 연화가 힘에 밀려 자리에서 튕겨져 나갔다.

부유감 능력을 이용해 몸을 가볍게 만든 후 바닥에 착지하는 것도 잠시, 이미 태세를 바로잡은 몬스터는 연화를 향해 화살을 쏠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푸슈슉!

시위를 당길 때마다 생겨나는 붉은 화살이 이전까지 연화가 자리를 잡고 있던 곳에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어떻게든 자리를 벗어나 안개 속에 몸을 숨기려 했지만, 은신을 썼음에도 그의 붉은 눈은 연화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었다.

확실하다, 자신이 상대하는 자는 은신을 파훼하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의 근원은 분명 붕대에 감겨져 있는 왼쪽 눈일 터.

‘암살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식으로...!’

-푸슉!

자신의 손목을 칼로 그어 자해를 한 연화가 피에 힘을 실어 넣었다.

2레벨의 특성인 혈변화. 자신의 혈액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다.

흘러내리는 피들이 그녀의 의지에 따라 허공으로 치솟아 올라 원의 형태로 변해간다. 그것을 3레벨의 혈액응고 특성으로 단단하게 굳힌 연화는 안개 속에 보이는 붉은 눈빛이 있는 방향을 향해 쿠크리를 휘둘렀다.

쿠크리의 날에 정확히 치인 피의 탄환들이 쏘아졌다. 연이은 흡혈을 통해 근력은 약해졌지만 정신과 재주수치가 늘어나 정확도는 훨씬 높아진 상태.

하지만 안개속에서 이어지는 공격을 감지한 몬스터는 그것을 가뿐히 피해내고 다시 화살을 쏠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아무리 은신을 파훼할 수 있다 한들 뭘 하려는 지까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화살을 넘어선 속도로 날아드는 공격을 피한다는 건 눈으로 보고 피한다는 수준이 아니다.

보고 피하는 게 아니라 신경에만 의지해서 공격을 피해내는 것이라면 사각에서 공격을 가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은신을 통한 기습도 원거리에서 벌이는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면 남은 수단은 육탄전 뿐.

-촤학!

생각을 끝마친 연화가 소매를 걷어낸 자신의 손에 연이어 칼질을 가했다.

따끔함을 넘어서 살이 베이는 아픔을 견뎌낸 직후, 능력에 반응하여 체내에 존재하는 혈액이 혈변화의 특성에 반응하여 형체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혈액응고를 이용해 단단함을 포기한 대신 반고체상태로 만들어 부드러움을 자아내어 끝내 ‘채찍’을 만들어낸다. 연화는 그것을 안개 속에서 자신을 추적하는 몬스터를 향해 휘둘렀다.

-철썩!

활대를 휘둘러 채찍에 응수를 가하는 몬스터. 피의 탄환도 피해낼 정도이니 예상했던 일이다.

처음부터 노린 것은 원거리에서 가하는 공격의 봉인. 혈변화를 통해 제어되는 채찍이 곧 채찍을 막아세운 활대를 휘감싸기 시작했다.

-...!

활대가 채찍에 감겼을 무렵 몬스터의 몸이 흠칫 떨렸다. 화살을 쏘려 해봐야 채찍에 가해지는 힘이 그 공격을 방해하려 들 것이 뻔할 터.

그 찰나의 순간을 기회로 다잡은 연화는 몸을 낮춘 채 빠르게 그와의 거리를 좁히며 머리를 향해 쿠크리를 겨누었다.

-휘익!

위로 도약을 가하며 아래에서 위로 칼을 휘둘렀다. 턱을 도려낼 듯 휘둘러진 칼 공격을 몬스터는 절묘히 피해냈지만, 기습공격을 피해낸 직후의 불안정한 자세는 반격을 가할 찬스를 놓치게 만들었다.

자세가 불안정해진 상태에서 이어지는 연이은 칼질. 어떻게든 응수를 가하려 했지만, 손에 틀어쥐고 있는 활이 채찍에 휘감겨 쿠크리의 공격을 튕겨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을 피해내는 자세는 더욱 불안정해가고, 채찍을 감는 힘은 더욱 강해져간다.

끝내 자세가 완전히 흐트러졌을 무렵 허공으로 뛰어오른 연화가 채찍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실어넣으며 쿠크리를 이용해 자신의 피부를 갈라내어 피의 탄환을 만들어내었다.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테지만 활이 채찍에 잡혀있는 상태다. 그 역시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활을 쥐고 있는 손을 곧장 놓아버리며 연화가 쏘아보내는 피의 탄환을 피해 뒤로 몸을 물렸다.

공격은 맥 없이 바닥에 처박혔지만, 자신이 상대하는 자는 무기를 잃어 공격권을 상실한 상태. 끝내 바닥에 착지했을 무렵 연화는 자신의 채찍에 휘감긴 활을 유유히 들어올리며 안개 속에 숨어있는 녀석의 모습을 살펴갔다.

활을 잃어버린 그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 수작을 부리려는 듯 양 손을 허공에 흔들어대고 있었다.

뭘 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주력 무기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행하는 일이라 해봐야 헛된 저항일 게 뻔하다. 최대한 활을 채찍으로 멀리 던져버린 연화는 다시 공격을 가하고자 채찍의 형체를 변환시켜갔다.

끝내 그것을 투척용 창으로 만들어 집어 던지려던 직후.

-푸욱!

창을 쥐고 있는 쪽의 어깨에 안개를 갈라낸 무언가가 어깨에 처박혀버렸다.

사태를 직감하기도 전 어깨에 박힌 화살은 박히는 데에 끝나지 않고 연화의 몸을 밀어내어 벽에 처박히게 만들었다.

“...뭐야, 이거.”

고통을 억누르며 자신의 몸을 밀어낸 화살로 시선을 주었다.

붉은 화살, 이제까지 자신에게 쏘아 보냈던 것들과 같은 공격이다.

다만 이번에 어깨에 박힌 그것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을 벽에 그대로 고정시키려는 것처럼........

-푸욱!

그것이 반대쪽 어깨에 한 발 더 박혀 몸을 완전히 구속했다.

“끄, 윽...!”

양 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짙은 신음이 내뱉어졌다.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자해를 하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참을 수 있다 하더라도 괴로운 건 괴로운 것이다.

하물며 양쪽 어깨를 관통당한 상처는 고통만 느껴질 뿐 아니라 육체의 자유마저도 구속시킨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모를까, 당장 다가오는 공격에 대해선 대응수단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연화는 벽에 박힌 상태에서 다급히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개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와 붉은 눈동자.

끝내 안개화의 제한시간이 모두 다 되어 안개가 사라졌을 무렵 드러난 모습에는 이전에 자신이 채찍으로 빼앗았던 활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원래 자신이 빼앗았던 활은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다. 형태는 같지만, 활을 빼앗긴 순간 모종의 수를 이용해 자신의 손에 또 다른 활을 쥔 것이다.

“몬스터 주제에, 무슨 활을 저렇게 빨리........”

손에 쥐어진 활의 붉은 화살이 자신에게로 겨누어졌음을 자각했을 때 연화의 얼굴이 크게 우그러졌다.

이제까지 쐈던 화살들과는 달리 연화의 양쪽 어깨에 박혀있는 화살들은 고스란히 남아 어깨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화살 자체가 모종의 힘을 이루고, 그 힘을 유지하면 계속 그 자리에 남아있는 구조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의 자신은 양 팔이 구속된 상태에서 자신을 습격한 자에게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머리를 굴려갔다.

안개를 퍼트리고 일시적으로 모든 물리적 효과에 면역상태가 되는 안개화를 다시 사용하는 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설령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안개 속에 숨어있는 자신을 정확히 잡아내는 녀석을 따돌리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몬스터는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이기 위해 화살을 겨누고 있는 상태인데.

-죽이지 않는다.

"...뭐?"

화살이 겨누어진 채로 이어지는 몬스터의 말에 연화가 당혹을 터트렸다.

재차 몬스터가 있는 곳을 쳐다보자, 방금 전까지 자신의 머리를 향해 겨누고 있던 화살은 이미 거두어진 지 오래였다.

시위를 쥐고 있는 손가락에서 힘을 빼자 붉은 화살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끝내 활을 내려 적의를 거두는 모습은 마치 죽어가는 자를 향해 자비를 내려주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까지 마주쳤던 놈들과는 좀 달라 보였지만, 처음에 습격한 것도 몬스터로써 던전에 들어온 자를 습격하기 위함이라 생각했었던 그녀로썬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무슨, 속셈이야. 너."

-호의는 아니다. 그대를 불가피하게 습격한 건, 그대가 내가 노리고 있는 표적의 조건에 충족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니까.

연화의 말에 대답한 몬스터가 자신의 눈가에 손을 올리며 몸을 낮추었다.

눈높이가 맞춰졌을 무렵, 몬스터의 왼쪽 눈을 대신하는 붉은 렌즈에 연화의 모습이 비춰졌다.

-시기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이 아닌 이후. 지금까지 일곱 정도인가?

이어지는 말에 연화가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걸, 어떻게........

-한때 죄의 수치를 가늠하는 눈으로 세상을 보며 수많은 죄인들을 처형해온 몸이다. 몇 명을 죽였는지 정도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지.

곧 그가 자신의 왼쪽 눈에 배치된 붉은 렌즈를 손가락으로 감싸며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만약 그대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면 나 역시도 그냥 지나쳤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군.

========== 작품 후기 ==========

던부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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