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화, 광신도들 -->
-제가 부여받은 것은 오직 교리에 어긋나는 죄인들을 심판자로써 심판하는 것 뿐입니다.
카즈는 라셰타의 눈빛을 마주했음에도 개의치 않고 스스로의 의사를 표해갔다.
-어떤 세계를 누비더라도, 저는 제가 살아생전에 맹세했던 것을 지킬 것입니다. 관계없는 자들까지 희생시키는 걸 강요하는 건 제 소신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당신은 역시 우직하네요.
라셰타가 카즈의 각오를 듣고 조용히 입가에 웃음을 그려갔다.
-어라?
그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던 라셰타의 손짓이 중간에 멈춰졌다. 고개를 밑으로 내리자 머지않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작고 검은 생명체.
부드러운 털로 덮여있는 그것은 네 발로 움직이며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호박석을 연상케 하는 황금빛 눈동자가 라셰타에게로 향해졌을 때 그것이 입을 벌리며 작게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먀앙~
-어머나~ 귀여워라.
라셰타가 황홀감을 느끼며 그것을 양 손으로 안아들었다.
-뭔가요 이건? 처음 보는 생물이군요. 우리가 있던 세계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데...실험체를 길들인 건가요?
-고양이라고 불리는 생물입니다.
-고양이? 이런 생물을 어째서 카즈가 데리고 다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사냥을 도울 조력자가 필요한 참이었으니까요.
-이런 귀여운 생물을 사냥개로 쓰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귀여우니 보기는 좋네요. 고양이 씨, 저를 따라해 보세요. 먀앙~
-먀앙~
-어머나~ 너무 귀엽다 얘~ 이 애 저 주실 수 있나요?
-........
-농담인데, 그렇게 살벌한 눈으로 보지 말아요~
그의 붉은 외눈을 마주하던 라셰타가 손에 쥐고 있던 고양이를 도로 바닥에 내려다 놓았다. 고양이는 머지않아 카즈의 발치로 다가가 볼을 부비적 대었다.
그런 고양이의 턱을 쓰다듬는 카즈를 본 라셰타가 황혼빛의 눈동자를 깜빡이며 미소를 그렸다.
-그 작은 생물을 무척이나 아끼는 것 같네요.
미소가 벌어지며 내뱉어지는 목소리엔 온기 따윈 서려있지 않았다.
-목적을 제외하면 ‘정’따윈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던 당신이 애완동물을 기르다니, 정말로 그 여자와의 계약이 당신을 어떻게 만들어버린 것 같네요. 이러다 우리를 배신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드는데.......
-........
-농담이에요. 언제나 우리 교단을 위해 살아온 카즈가 그럴 리 없다는 건 그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애초에 ‘우리 같은 존재’가 그런 게 가능할 리도 없고 말이죠. 아하핫~
카즈를 향해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라셰타가 조용히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슬슬 집회시간이에요. 가보도록 할까요?
-.......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카즈가 라셰타의 뒤를 따라 조용히 통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통로 밑바닥에 흩뿌려진 미미한 혈흔이 그들이 가야 할 길을 비춰주는 것만 같았다. 그것을 따라 계속 움직이고 움직이길 반복하니 끝내 도착하게 된 곳은 수 많은 신도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방 하나.
방의 중심에 존재하는 거대한 오브젝트의 위에 머리가 터진 시체가 올라서 있다. 그 제단 위에 이전에 마주했던 신도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를 드리자, 머지않아 검은 불꽃이 치솟아 올라 제단 위에 올라선 시체를 집어 삼켜 살을 불태워갔다.
-우리들의 신을 위하여. 우리들이 안고 있는 이 절망을 품어주는 그 분을 위해서!
““찬양하라! 우리들의 구원자, 절망의 사도님을!!””
검은 목사복의 초췌한 노인이 십자가가 박힌 지팡이를 들어올리며 외치자, 주변에 모여있는 수 백의 신도들이 양 팔을 들어올리며 함성을 내뱉었다.
-교단의 가르침을 맹신하고, 그 분을 위해 이 하잘 것 없는 몸을 불사르리라! 그리하면 우리들에겐 구원이 찾아올지니.
““우리의 모든 것은 우리를 보듬어주는 신을 위한 것이니라!!””
-화르륵!
그들의 기도에 반응하듯 제단 위에서 타오르는 시체의 불길이 점차 치솟아 오르고, 머지않아 그 곳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은 안개에 가려져 있는 거대한 그림자가 안개 속에서 붉은 안광을 부라리며 그들을 주시한다.
키르륵, 키르륵. 괴성을 내지르는 그것이 불길에 타들어가는 시체를 손으로 집어 뭉툭한 입으로 가져갔다. 시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워가는 그것을 본 목사와 신도들이 감탄을 내뱉기 시작했다.
-오오, 사도님의 하수인이어! 우리가 바치는 제물을 먹고, 그 힘으로 사도님을 지탱하라!
““그에게 힘을! 우리에겐 축복을!!””
거대한 괴물의 포식행위에 전율하는 모든 이들이 그를 향한 찬양을 아낌없이 내뱉는다. 그들을 뒤에서 주시하고 있던 라셰타가 후드의 소맷자락으로 웃음을 감추며 몸을 떨었다.
-정말 멋진 광경이지 않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우리들이 그럴싸하게 꾸민 이 환경을 맹신하며 자신들의 목숨을 바치려 하고 있어요. 한때 우리들이 직접 참여했던 그 환경을 다시 이렇게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다니.
-........
-...설마 해서 묻는 거지만 보기 껄끄러우신 건가요? 죄 없는 자를 제단 위에 바쳐 불태우고, 그 자의 유해를 ‘신의 파수꾼’에게 바치는 게?
-그것이 교단을 위한 일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그것을 보고 있던 카즈가 끝내 그들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통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슬슬 전 여기서 벗어나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말인가요? 집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계약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행할 필요가 있으니 말이죠.
-저 집회를 보고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는 건가요?
““절망의 사도님이어!! 우리를 굽어 살피시옵소서!! 이 미천한 어린양들이 바라는 것은 그것 뿐일지니, 그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다 바쳐 그대를 위해 희생하겠나이다!!””
꺄르륵, 하는 라셰타의 웃음소리가 신도들의 함성에 집어 삼켜졌다.
-당신은 분명 기억하고 계시겠죠. 당신에게 심판자의 역할을 준 자는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는 걸.
통로를 거닐려 했던 카즈의 발걸음이 라셰타의 희미한 말소리에 멈춰졌다.
-당신을 움직였던 건 언제나 신앙이 아닌 충성이었죠. 어쩌면 그 감정에 충실한 삶이 당신의 우직한 성품을 유지하게 만든 것일 지도 모르죠. 하지만 카즈. 당신도 알고 있겠죠? 이 공간에 귀속된 순간부터, 어떤 수를 쓰더라도 순리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
라셰타의 말을 듣고 있던 카즈가 말 없이 통로의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우직한 카즈, 계약이 온전히 끝나건 실패하건, 당신에게 찾아올 미래는 비참함뿐이겠지.
끝내 그가 통로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때, 그의 흔적을 쫓는 라셰타가 안쓰러운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
-쾅!!!
굉음과 함께 디디고 있는 바닥이 격동하기 시작했다.
진동에 놀란 호란이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을 무렵, 방을 배회하는 거대한 몬스터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해지기 시작했다.
-구오오오오........
낮은 울음소리를 내는 그것은 온 몸 곳곳에 기괴한 선이 연결되어 있는 괴물이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타난 그 괴물은 호란을 포함한 일행을 발견하자마자 위화감을 느낀 듯 자신의 몸에 힘을 실어 넣어갔다.
등에 박혀있는 금이 간 유리통의 희끄무레한 액체가 힘에 반응하듯 출렁이며 괴물의 체내에 스며들어가고, 그에 반응하듯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비대하게 거대해져간다.
끝내 이전의 육중했던 몸이 배 이상 증가했을 때 호란이 질색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구와아아아아아아아악!
“와아아아아아아아앙!!!”
-퍼억!
이어지는 타성에 괴물과 호란이 내뱉는 비명이 집어 삼켜졌다.
끝내 자신의 공격에 당해 자리에서 밀려났을 때, 그 괴물의 곁으로 다가선 창완이 손에 쥐고 있는 야구배트를 들어 올리며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퍼억! 퍼억!!
알루미늄 배트가 연이어 휘둘러지며 괴물의 몸을 서서히 망가트려간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거대한 몸이었지만 창완의 빠른 매질은 괴물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그를 빠르게 압박하고 있었다.
“호란 누나! 템포 업!”
“어, 어...아, 알았어!”
창완이 뒤로 물러서며 외쳤을 때, 당황하고 있던 호란이 곧장 정신을 차리며 손에 쥐어진 기타에 힘을 실어 넣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리듬을 타는 비트위의 나그네 오만과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게 우리의 생각은 좀 더 빠르게-!!!!”
빠른 노래음에 반응한 모든 이들의 속도가 한층 빨라지기 시작했다.
2레벨의 특성인 템포 조절. 노래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듣는 모든 이들의 기동력을 상승시키지만, 그 효과는 ‘비례상승’으로 적용이 된다.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듣는 이의 격차가 상대와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창완의 능력은 ‘빠른 전진’. 전방으로 움직일 때에 자신의 기동력을 서서히 상승시키는 특성이다.
-퍼버버버버버벅!!
템포조절의 효과로 속도가 높아진 창완의 매질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거대했던 괴물은 증가된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채 매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창완의 공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능력의 효과로 인해 그 속도가 더해지고 있었다.
-콰앙!
끝내 늘릴 수 있는 최대치의 속도에 도달했을 무렵 가해지는 강력한 일격. 창완의 4레벨 특성인 ‘급속냉각(증가된 속도를 초기화시키는 대신 일순간 속도를 5배로 증가)’이 발동되어 이루어진 공격은 괴물의 머리통을 으깨어 바닥에 처박히게 만들었다.
“허억, 허억........”
배트질이 끝났을 무렵 창완이 그것을 바닥에 꽂은 채 힘겨이 숨을 내쉬었다.
창완이 지니고 있는 능력은 서서히 속도를 상승시키는 능력이지만, 그로 인해 줄어드는 체력의 소실량까지 감소시켜주진 않는다.
현재로썬 체력을 보강시키는 특성을 투자하지 않은 상태. 빠르게 움직일 때의 운동량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물론 체력을 보강시켜주는 특성을 투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체력을 땡겨써서 적을 빠르게 제압하는 데에 의의를 둔다면 백병전을 주로 선보이는 상당히 강력한 능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적을 빠르게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구오오오오오.......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망가진 괴물의 몸이 서서히 일으켜 세워지기 시작했다.
가속도를 최대로 끌어올려 난타를 했음에도 쓰러지지 않는 강인한 육체. 네임드 급도 아닌 주제에 저 정도의 맷집이라니.
“저건 반칙이잖아 젠장.”
“빠따 줘봐.”
당혹을 토해내고 있던 중, 창완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한이 손에 쥐어진 야구방망이를 강제로 빼앗아가는 것을 직시하며 당혹을 표했다.
“형, 잠깐.......”
-파즈즉.
전기가 튀어 오르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쥐어진 방망이에 전격이 실리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팔에 매달려 있는 쇠사슬과 연결된 방망이가 괴물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들고, 그것이 괴물의 머리에 처박힌 직후.
-퍼엉!
방망이에 실린 전격이 괴물의 안면을 파고들어 ‘번개탄’의 효과를 발동시켜 내부에서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끝내 괴물의 머리가 폭발을 일으켜 사방으로 뇌수를 퍼트렸을 때, 요한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호란과 창완을 돌아보았다.
“빠따질은 이렇게 하는 거야 임마.”
"아니, 그건......."
'형 능력이 반칙인 거잖아요.'
창완은 차마 요한을 향해 그렇게 말을 할 순 없었다.
========== 작품 후기 ==========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