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139화 (139/251)

<-- 34화. 그들이 보내는 마지막 편지 -->

그들이 편지를 받기 조금 이른 시간. 입구 부근에 모인 생존자들은 강수에게서 던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장비아이템들이 전부 사라지고, 레벨도 초기화?”

“그게 사실이에요?”

“믿고 안 믿고는 자유야. 솔직히 말해서 한 번 나가지 않는 한 증명할 방법도 없는 처지고.”

괜한 혼란을 방지하고자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것을 대놓고 가르쳐줄 생각이 없었던 그로썬 그들이 자신의 말을 순진하게 믿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대화가 더 빨리 진행될 테니까.

“...믿어요.”

곧 일행 중 가장 신중하리라 생각되는 희선이 입을 열었다.

“강수씨는 출구방에 도달하기 이전부터 출구 방엔 몬스터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고 계셨고. 그 정보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신뢰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희선의 말에 모든 이들이 하나 둘 씩 동조를 표했다. 태선도, 다윤도, 호란도, 모두 강수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자신이 어떻게 이 던전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은 들 법도 하건만, 아무래도 은혜를 입었기 때문인지 그에 대해 묻는 것은 불문율로 붙인 모양인 듯싶었다.

“이야, 참 신뢰가 돈독하셔라. 나는 긴가만가 한 상태인데, 이렇게 다들 믿어주면 나도 믿어줄 수밖에 없잖아?”

강수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지섭이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찔렀다.

“그런데 장비와 레벨이 초기화된다는 건 심각하네요.”

곧 얘기를 수긍한 다윤이 턱을 괴며 태산에게 시선을 주었다. 태산 또한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기껏 레벨을 올렸는데 다 초기화되고, 다시 들어오면 그 특성들은 전부 사용할 수도 없고.”

“그러면서도 특성은 다시 찍을 수도 없이 고정화되어 있으니 레벨을 초기화해봐야 한 번 선택한 진로를 바꿀 수도 없고. 나가봐야 손해는 크다는 거군요.”

“아니, 나간다 해도 벌려둔 게 많다면 보상은 충분히 얻을 수 있어.”

던전 밖으로 나가게 될 경우 가지고 있는 레벨과 아이템들은 모두 ‘조각’으로 환원이 된다.

그 조각들은 현대 사회에선 석유를 대신할 ‘신 에너지원’으로써 쓰일 수 있고,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연구가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실제로 그러한 보상 때문에, 던전이 출몰하고 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엔 각 나라의 정부에선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이 직접 안으로 들어가 자원을 수집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었다.

초기화됨으로써 얻게 되는 조각들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살아남고 적응만 할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일확천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얻은 가치가 이 던전 내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거지. 그 가루가 던전에 들어올 때 ‘전리품상자’로 다시 바뀌긴 한다만...B급 아이템 10개 정도를 갈아야 겨우 B급 하나가 나오는 등급의 상자가 나오려나??”

“...심각하군요.”

“돈만 얻으려고 한다면 그냥 이대로 나가도 어느 정도 이득은 취할 수 있겠지만...그걸 바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긴 하나?”

강수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던전 내에서 보름이나 살아남았고, 레벨도 10이상 올라선 상태이며, 아이템도 상당한 양을 모은 상태다. 그걸 그대로 던전 밖으로 나가면 엄청난 돈을 얻을 수 있다는데, 어찌 제물에 대한 욕구를 바로 떨쳐낼 수 있단 말인가?

“...확실히 돈이야 탐이 나긴 하죠.”

그들을 대표하듯 희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전부 잊은 채 편히 사는 건 어려울 것 같으니까, 여기서 그 마음을 덜어내고 가고 싶어요.”

“그래요! 저도! 희선씨랑 마찬가지예요!”

호란이 양 손에 쥐고 있는 마라카스를 이리저리 찰랑거리며 희선에게 동조를 표했다.

“밖으로 나가봐야 이제까지처럼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럴 거라면 차라리 여기서 뭐라도 이루고 나가는 게 낫지! 뭐, 돈도 탐이 나긴 하지만...그런 건 일하면서 겸사겸사로 버는 거라 치면 족하죠! 두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죠?”

호란의 마라카스가 태산과 다윤에게로 향해졌다. 애초에 두 사람에게 제안을 했던 것이 태산과 다윤. 그들은 이미 이 던전에서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결의를 굳힌 상태였다.

“나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괜찮지만, 밖은 워낙 심심하니까. 여기서 더 즐기다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뭣보다 이런 멋진 젊은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지섭이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며 손을 활짝 벌렸다. 처음에 던전 밖으로 나갈 경우 초기화된다는 점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요는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이니 나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인 듯 싶었다.

“일단 이들은 그렇다 치고 문제는 나머지 세 사람인데.......”

“안 나가.”

강수의 말에 요한이 곧장 부정을 표했다.

“목적 이룰 때까진 나갈 생각 전혀 없어.”

“밖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 있지 않냐? 가족이라거나, 여자친구라거나.”

“이대로 돌아가면 볼 면목이 없으니까 더 나갈 수 없지.”

“...그래, 그게 너 다워서 좋다.”

요한에게서 고개를 돌린 강수가 곧 세린과 눈을 마주쳤다. 세린은 옆에서 강수를 황홀감에 젖은 눈으로 쳐다보며 혀를 다시고 있었다.

“전 달링이랑 좀 더 오래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아요~”

“...그 달링이란 소리 그만 해줘.”

“꺄앙~ 그 무뚝뚝한 태도도 세린이는 너무 좋아영~♡”

앙탈을 부리고 있지만 눈에는 공허함이 감돌고 있었다. 순수하게 자신의 닭살스러운 태도를 보고 곤란해 하는 자신과, 주변의 반응을 즐기고 있는 반응이었다.

“뭐, 저는 그렇다 쳐도...요한 씨에게 그렇게 말하셔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건 달링도 마찬가지잖아요?”

“그 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더 돌아갈 수 없다는 거야.”

“얼마나 바가지 긁힐 일을 많이 했으면.”

“바가지라도 시원하게 긁어주면 더 좋지.”

요한의 딴죽에 곧장 대답한 강수가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홍연화. 그녀는 이제까지의 대화를 눈을 감은 채 잠자코 듣기만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마치 명상을 하는 것처럼 다소곳이 주저앉아 숨만을 고르고 있는 그녀.

“그 쪽도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지?”

“당연하지.”

연화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하며 눈을 치켜떴다.

“소연이를 찾기 전까지는 돌아갈 생각 없어. 아니...오히려 소연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았는데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연화의 시선이 서서히 요한에게로 향해졌다.

“슬슬 얘기해주지 않겠어? 소연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참는 것도 한계가 있거든.”

애초에 그녀가 이제까지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이유는 자신들에게 동참하기 위함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도 아닌, 자신의 친구를 찾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을뿐더러, 밖으로 나가 재정비를 하고 다시 들어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게 판별된 만큼 그녀로썬 여기에 남아야 한다는 데에 더욱 강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쉰 요한이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얘기를 이어갔다.

“일단 이 녀석한테도 얘기를 했지만, 나랑 그 여자가 같이 다닐 때 광신도 집단이랑 맞닥트렸었어. 한 10명 정도 되는 녀석들이 5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밧줄로 묶어놓고 어디로 데려가는 풍경이었고.”

“10명...50명...?”

"그 정도나 몰려있으면 몬스터들이 몰려오지 않나요? 위험레벨이라는 게 올라간다고 해서."

“마주했을 때에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낌새는 못 느꼈어. 아마 아이템 같은 걸 사용한 거겠지. 몬스터를 물리거나 하는 물건을.”

요한의 시선이 강수에게로 향해졌다. 강수는 그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 턱을 괸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쨌든 마주치게 된 건 정말로 우연이었고, 단순 광신도 집단들만 따져도 수 싸움은 8명 차이니까, 어지간해선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 그런데 내가 말리기도 전에 그 여자가 먼저 그 놈들에게 화살을 겨누더라고.”

“.........”

이어지는 말에 연화의 몸이 떨렸지만 요한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어쩔 수 없이 혼자만 쨀 수 없으니 같이 싸웠지. 결과만 말하면...그 광신도 놈들과의 싸움은 어떻게든 이길 수 있었어. 원래 잡혀있던 50명 중에 기회를 본 몇몇 이들이 나서서 뒤통수를 쳐줬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놈들이 증원을 요청하니까, 통로 몇 군데에서 또 20명 쯤 되는 놈들이 몰려오고........”

“...그 놈들 수가 엄청 많은 건가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거야.”

만 명이 넘는 인원이 이 던전 내에 휩쓸렸고, 그 중 몇 천의 사람들이 죽었고, 나머지 생존자들 중 상당수가 절망교의 이념을 받아들여 광신도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호출을 하자마자 부근에서 20명 정도가 찾아왔다면 전체로 따지면 어림 추정으로 세 자릿수는 가뿐하게 넘길 것이다.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 같은데...이런 공간에 갑자기 한 집단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리는 없지 않나요?”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이런 공간인 만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이 뭔가 기댈 곳을 찾기 마련이니까.”

태산의 의아함에 희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곧장 대답했다.

“포섭하고자 하는 대상이 부족한 것, 혹은 원하는 것을 적절히 집어 달콤한 말로 꼬드기고, 자신들의 집단에 속하게 만들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말을 전파하게 만들고...비유를 하면 암세포와 같은 거죠. 한 번 건드리면 수 없이 부풀어 올라 주변에 멀쩡한 부분까지 침식하는 거.”

“암세포보다는 다단계가 더 맞는 표현이지. 광신도가 연루된 종교들은 대체로 윗대가리가 이득을 취하는 경우가 많으니.”

요한이 희선의 의견에 보충설명을 건네었다.

이런 공간인 만큼 그 누구나 절박함을 느낄 것이다. 고작 몇 시간만 있어도 사람이 미쳐버리는 공간인데 그들의 달콤한 속삭임을 쉽게 내칠 수 있겠는가?

“...수가 많은 거야 괜찮아. 문제는 그 놈들이 반쯤 미쳐있는데다 잔챙이만 섞여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설명을 이어가는 요한이 자신의 머리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빙빙 돌려갔다.

“내가 만났던 여자처럼 그냥 의지할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 때 내가 만났던 놈들 중 ‘한 놈’은 정말 위험한 놈이었어. 정신적인 것도 있지만, 아무리 강한 전격을 때려 박아도, 머리에 화살을 박아 넣어도 계속 움직였으니까. 미치기로 치면 이 여자보다 더한데다 재생력으로 치면 이 놈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녀석을 어떻게 상대하겠어?”

“따위라서 미안하다.”

요한의 말에 표정을 우그러트렸지만,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능력적으로도 상당한 실력자라는 뜻일 것이다.

하물며 전격에 맞아도 끊임없이 재생한다면, 그 능력은 아마 이맘 때의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재생력 능력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일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모를까, 미쳐있는 놈이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보다 위험한 놈은 달리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 놈을 필두로 움직이는 광신도 놈들이 습격을 해왔을 때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들의 반수가 그들에게 잡히거나 죽어버렸고...나머지 사람들은 겨우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지. 그 과정에서, 추적해오는 광신도 놈들을 뿌리치겠다고 그 여자가 직접 광신도 놈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고, 포위망을 빠져나가서 반대쪽으로 도망쳤어. 광신도 놈들은 그 여자가 자기들 사이에서 난동을 부리고 째는 걸 보고 눈이 돌아가서 바로 쫓으러 갔고.”

정말로 냉정한 목소리였지만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는 눈살은 약간 찌푸려져 있었다. 그 때의 기억은 그 역시도 그리 좋게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머지 생존자들은 어떻게 됐나요?”

“그 이교 놈들이 무슨 수작을 써가지고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놈들이랑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몰려있는 건 위험하니까 각각 4명씩 짝을 지어서 흩어지게 만들었어. 이교 놈들이 또 습격을 해올 위험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몬스터 밥이 될 게 뻔하니까.”

슬슬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어가는 요한이 눈을 덮고 있는 선글라스를 벗어 바닥에 조용히 내려두었다.

“...그렇게 짝을 지어 보내고 나 혼자 돌아다니다 호란이를 만났고, 그 후에 이 녀석과 조우해서 여기에 오게 되었다."

머지않아 그의 굳어진 시선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연화에게로 향해졌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다 듣고 하고 싶은 말 없어?"

-쾅!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해졌다.

움푹 패어진 땅과 힘을 버티지 못해 주변 땅에 미미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연화의 작은 주먹이 일으킨 현상임을 직시한 모든 이들의 얼굴에 하나 둘 씩 경악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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