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그들이 보내는 마지막 편지 -->
던전이 출몰하고 난 후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초기에 생존자들이 출구로 나오는 일이 잦았던 때에 비해, 근래에는 그 수도 상당히 적어져 있었다.
이미 나올 사람들은 대부분 나왔고, 나머지 이들은 나오지 못해 고립되었기 때문일까? 휩쓸린 자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가는 생존자들을 보며 가슴을 조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구경만을 할 뿐인 이들에게 있어서 던전 내의 소식은 하나하나가 모두 희대의 관심거리들이었다.
[던전, 어느 날 돌연히 세계 각지에서 나타난 수수께끼의 건축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던전 내에는 수 많은 괴물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 던전의 출몰에 휩쓸린 이들은 이 괴물들을 상대로 목숨을 건 생존을 해온 끝에 탈출하여, 현재 정부 직속 기관의 아래에 보호와 관리를 받고 있는 상태이죠.]
[살아남았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 던전 내에 들어선 이들은 손에서 불꽃을 일으키거나 물을 조종하는 둥, 만화나 영화속에서나 보던 초능력을 구사하는 것이 확인되었으니까요. 이 능력이 악용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각 국가기관에선 능력을 보유하게 된 자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법회에선 능력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세간은 던전에서 생존해온 자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요. 보호에 있다고 한들, 정부에서도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자 기자들과의 인터뷰나 제한된 선에서 네트워크 연락망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하여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던전 내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 중 그들이 지니게 된 능력 다음으로 가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던전 내에 존재하는 생물체’들에 관한 것이죠. 그들은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라고 합니다. 마치 미쳐버린 것처럼 날뛰고, 지나가는 이들을 상대로 잡아먹어 식인이란 행위를 일삼는다고 하는데, 공포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이 직접 체험한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느껴질 지경입니다.]
[이런 야만적인 공간에서 발견된 몬스터들의 소식을 들은 몇몇 이들은 몬스터도 살아있는 생명이다. 그들을 죽이는 건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을 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네, 쓸데없는 이야기는 생략하고 다음 얘기로 넘어가도록 하죠.]
“.........”
스마트폰을 이용해 통신채널에 접속한 초희는 던전에 관한 소식을 중계하는 방송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비록 자신은 들어갈 수 없는 처지지만, 아직 자신과 관계있는 이가 던전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안에 대한 소식과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 던전이 출몰한 이례로 틈이 날 때면 줄곧 방송을 보기에만 시간을 소비했다.
슬슬 생존자들의 수도 바닥이 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오가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소중한 이를 기다리고 있는 초희에게 있어선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소식이 아니었지만, 아직 나오는 생존자들이 조금이나마 있는 상황에서 희망을 져버릴 수는 없었다.
[이번에 던전에 대해서 알려드릴 소식은 던전 내에서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그럼에도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다니는 생존자들의 존재. 마치 아무런 보상도 없이 선의를 베푸는 ‘모범시민’들과도 같은 자들이죠.]
[비록 정부에서 생존자들의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기 때문에 던전 내에 다시 들어가는 생존자들의 수는 극히 적은 상태라 그들과 교류를 맺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만약 그들이 던전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그에 따른 보상을 줄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잠시 그 구조대들을 마주한 생존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도록 하죠.]
스마트폰의 화면이 토크를 나누는 이들에서부터 시설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생존자들 쪽으로 바뀌어졌다.
[위험에 빠져있었죠. 거대한 식칼을 든 괴물이 제 옆에서 칼을 휘둘렀는데, 그 때 소방복을 입고 있는 젊은이가 와서 괴물을 밀쳐내고 저를 구해주었어요. 뒤에서는 막 바람이 휘몰아치고.......]
[거의 죽을 뻔했는데 치료를 해준 여성분 덕에 목숨을 부지했어요.]
[이야, 그 노래 엄청 좋았어요. 거의 반쯤 폐인이 되어있던 일행이 노래 한 번 듣더니 엉엉 울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 그 노래 제목이 뭐였더라. ‘방송 심의 따위 개나 줘버려’였나? 가사야 아무래도 좋지만 어쨌든 노래가 끝내주게 좋았.......]
-지직.
[비록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들의 손에 의해 구출된 이들은 하나 같이 던전 내에 있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이 던전 내에서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당사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아직 희망을 져버리기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무사하리라 생각합니다. 사고에 휩쓸린 당사자들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빌겠습니다.]
[그럼 다음 소식은........]
방송을 주시하고 있던 초희가 잠시 스마트폰의 화면을 덮고,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뽑아 시선을 전방으로 옮겨 보았다.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은 생존자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인 캠프. 이제는 제법 공간도 확보되고 여유가 생겨 시설도 상당히 좋아져있는 상태였다.
일부 기관에선 ‘이것도 다 세금이다. 이런 캠프에 돈을 투자할 가치는 없다’고 말을 하나, 국가에서는 던저이란 존재를 가벼이 여기지 못하여 주변 환경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 상태였다.
처음에는 경찰들을 중심으로 관리하고 있던 환경이, 이제는 어느 정도 무력이 필요하다 판단하여 입구 부근에 군대를 즐비시켜둔 상태다.
일반인들은 이제 입구 부근에 접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지만, 캠프에서 조금만 시선을 주어도 중무장을 한 군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중장비나 병기들은 도시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가지고 오기 어렵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임시 군기지가 설립되어 있는 상태다.
“세상이 망하려 하나, 내가 사는 중에 이런 말세가 벌어질 줄이야.”
“스물 다섯 밖에 안 된 녀석이 세상 다 산 노인네마냥 중얼거리는 거 보니까 진짜 세상 망하려는 것 같네.”
빈정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볼 부근에서 시원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에 반사적으로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했지만, 머지않아 자신이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음을 깨닫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 안 형사님?”
“그래, 나다.”
초희의 말에 코웃음을 터트린 영찬이 손에 쥐고 있는 캔커피를 초희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지난번 답례다.”
“여긴 무슨 일이에요? 땡땡이?”
“넌 내가 그렇게 일 내팽개치고 싸고 돌아다니는 놈으로 보이냐?”
초희의 말에 영찬이 혀를 끌끌 차며 초희의 옆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휴가나와서 들렸다.”
“휴가...? 형사도 휴가가 있던가?”
“경찰이 무슨 1년 365일 일만 하는 기계인 줄 아냐? 아직 세상은 그렇게까지 편리할 정도로 발전하지 않았어.”
쯧, 하고 혀를 차는 영찬이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캔커피의 탭을 따 내용물을 입에 삼켜갔다.
“원래 속해있던 수사반도 해체됐고, 던전 관리도 경찰에서 군대 쪽으로 넘어갔으니까. 이제까지 바쁘게 일했던 만큼 겨우 쉴 여유가 확보된 거지. 정작 한 것도 없는 처지지만.”
“그러니까 진짜로 땡땡이치러 왔다는 거네요.”
“휴가라고. 휴가.”
초희의 이마를 손날로 툭툭 내리친 영찬이 곧 코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여기에 있는 걸 보면 그 오빠라는 사람, 나오지 않은 것 같네.”
“나왔어도 계속 여기에 있었을 거예요.”
결국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뒤에 덧붙여진 말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제 관계자만 나왔다고 기뻐하고 떨어지기엔 스케일이 너무 크니까요.”
“....그래, 넌 자기만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애였지.”
초희의 여전한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은 영찬이 머지않아 초희의 옆에 대기하고 있던 이를 발견하고 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손에 쥐고 있는 종이뭉치의 글을 계속 읽어가고 있는 왜소한 체구의 여인. 묘하게 낮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 옆에 있는 아가씨는 저번에 만났던 그........”
“수아예요, 진수아.”
“아,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이전에 트러블을 일으켜 취조를 받으러 온 적이 있던 청각장애인 여성의 이름을 기억한 영찬이 손을 탁 치며 초희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계속 붙어있는데, 네가 보호자가 되기라도 했다 뭐 그런 거야?”
“수아 부모님도 몇 번 여기에 찾아오고는 하셨어요. 일이 바쁘고, 수아도 계속 돌아가라고 보채서 간간이 들리는 정도지만. 가족이 돌아왔을 때를 대비해서 터를 닦아놓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
안타까운 일이다. 속으로 그렇게 곱씹으면서도, 영찬의 관심은 자신이 다가왔음에도 글을 읽는 데에 열중하고 있는 수아에게로 향해져 있었다.
"근데 지금 뭘 읽고 있는 거야?“
“제가 쓴 소설을 읽고 있어요.”
“아, 그래. 네가 쓴 소설........”
초희의 말에 대답하다 영찬이 말꼬리를 흐렸다.
“...로맨스 소설을 쓴다고 했던가?”
“마음 같아선 공모전 수상작을 읽게 해주고 싶은데, 외부유출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고. 그래서 이번에 수아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걸 건네줬어요.”
“들려준 이야기라면 경험담 같은 거야? 무슨 내용인데?”
“세상을 주먹 하나로 평정한 불량학생의 가슴 따뜻한 사랑이야기, 그런 거려나?”
“뭐야 그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게 해드릴게요.”
장난스레 영찬을 향해 웃고 있자, 머지않아 수아가 종이뭉치를 한데 모은 채 묘한 얼굴을 하며 그것을 끌어안았다.
글을 다 읽은 것일까? 초희가 곧 수아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다 읽었어?”
구화로 또박또박 질문을 건네자 수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재, 쟈. 므이 이써서........”
“편하게 수화로 말해요. 수화로.”
초희의 구화에 수아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좋은 글 주셔서 고마워요. 무척 재미있었어요.]
[나야말로 좋은 소재를 줘서 고마워.]
서로 손짓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수화를 전혀 모르는 영찬은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언니가 오면 읽게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손짓을 하다가 문득 수아가 손가락의 움직임을 크게 떨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차린 초희가 다정히 웃으며 수아의 양 손을 맞잡아주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
슬픈 얼굴을 하는 그녀를 위로하는 초희를 본 영찬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생존자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체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일에 전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니 장례조차도 치를 수 없으니, 어찌 보면 그게 올바른 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여자는 자신의 사정조차도 내팽개친 채 옆에서 울고 있는 여인을 달래주고 있다.
아마 그것은 자신의 소중한 이가 살아남건, 죽건 변함없이 행할 것이다. 그것이 그녀 나름대로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일 테니까.
“야, 그거 알아?”
“뭐 말이야?”
문득 관심을 초희에게 심어주던 중 근처에서 몇몇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존자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부모를 따라 들어온 철부지 어린아이들이 조잘대는 소리였다.
========== 작품 후기 ==========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