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신을 섬기는 자의 올바른 마음가짐 -->
“히익...”
그가 풍기는 살의를 뒤에서 직시한 호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전까지 귀엽고 배려심 많은 연하의 남성이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어느 한 순간부터 사나운 맹수로 탈바꿈되었다.
‘다, 다른 사람 같아.......’
이전까지 자신에게 친절히 충고를 해주었던 사람은 어디가고 이런 무서운 남자가 나타났단 말인가? 저러한 모습을 대면하지 않은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길 지경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을 무렵, 문득 호란은 그를 대면하고 있는 여인이 정작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인은 자신의 명령을 듣고 그에게 달려든 일행들이 쓰러졌음에도 고개를 땅에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압도적인 힘과 패기에 짓눌려 겁에 질리기라도 한 것일까?
“오....오오........”
머지않아 탄성이 내뱉어짐과 동시에 여인이 자신의 얼굴을 양 손으로 움켜쥐었다.
미미하게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주시하며.
“이 무슨...절망이란 말인가!”
여인이 희열이 서린 절규를 터트리며 숙이고 있던 고개를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
“가르침을 거부하는 이단자가 저리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아. 이 자를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저는 저 이단자에게 철저히 유린을 당한 끝에 절망 속에 사무쳐 최후를 맞이하고 말겠지요. 그것을 상상하니 치가 떨려옵니다, 끝 없는 절망이, 이 몸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제 명을 갉아먹는 그 미래가...!!! 아아아아아-! 이 얼마나 고된 시련이란 말인가!!!”
높아져가는 목소리가 끝내 공간 내에 울려 퍼지고, 끝내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손으로 어루만지듯 여인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풀어헤쳤다.
“...그런 저의 절망마저도 포용해주신다면, 당신의 인도로 이루어진 시련마저 신도로써 겸허히 받아들이겠나이다.”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광기를 잃지 않은 미소가 그에게로 향해졌다. 그에 혀를 차며 대응을 가하려던 직후.
-털썩, 후두둑. 드득.
살과 관절이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들의 몸이 서서히 일으켜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걸 맞고도 바로 일어나?”
어이가 없다는 듯 요한이 혀를 차며 그들을 주시했다. 검은 후드가 전격에 의해 그을려진 흔적이 엿보였지만, 내부는 그을린 정도로 끝이 나진 않을 것이다.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출력을 조절했다고는 한들 인간의 몸이란 전격을 버텨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몸 속은 엉망진창이 되어있을 터인데 바로 일어나다니....
“놀라셨습니까?”
여인이 후드의 소매로 입가를 훔치며 가느다랗게 뜨여진 눈을 그에게로 향했다.
“이것이 바로 이 절망적인 공간에 휩쓸린 저에게 주신 사도님의 힘! 이 힘이 있다면 저는 저를 따르는 신도들을 끝없이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냥 회복계 능력이잖아. 사도님의 힘은 무슨.”
그가 보기엔 그저 쓰러진 놈들을 바로 되살려 낼 수 있을 정도의 회복능력을 퍼줬다는 것으로 여겨질 뿐, 운이 좋아 얻게 된 치유능력을 종교로 포장해 지껄이는 걸 보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저 여자한테 들었는데 너 회복말고 방어나 공격 쪽도 고려할 수 있었다며. 앞에서 싸우는 것만 봐도 그 쪽이 더 나을 텐데.]
[애초에 회복계 능력 자체가 귀한 편이니까 찍은 가치는 충분히 있어.]
[귀해도 너 혼자만 있는 건 아닐텐데 다른 회복능력자 구하면 되는 거 아니야?]
[100명 중 2명이 짝을 맺고 애를 삼대손 까지 만들어야 겨우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게 치유계 능력자인데 그걸 찾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설령 찾는다 하더라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면 골로 가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보스룸에 데리고 가겠어. 자기 몸 지킬 수 있는 힐러가 어디 흔한 줄 아냐?]
[그냥 귀하다는 걸 말하면 될 걸 가지고 자기자랑까지 덧붙여서 말해야겠냐?]
[...자기자랑이 아니라 힐러가 그만큼 귀하고 소중하다는 의미다. 너도 나 없으면 피부 타들어가서 여간 고생이 아닌 주제에, 항상 내 회복능력에 감사하는 습관 좀 가져라.]
[침 바르면 낫는 상처 치료해주는 걸로 무슨 감사를, 됐고, 설명 끝났으면 빨리 여기에 침 좀 발라줘.]
[내 능력이 침이냐?]
[네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침이지 그럼 빨간약이냐?]
그와 함께 다닐 적의 대화내용을 떠올린 요한은 자신이 그 귀하디귀한 치유능력자를 적으로 돌렸음을 인지하며 표정을 우그러트렸다.
정말로 100명 중 2명이 삼대손까지 낳아야 겨우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귀한 존재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런 귀한 존재를 주축으로 삼는 자들이 상대라면 싸움은 생각 이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무릎 꿇리고자 한다면 방법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치유조차도 불가능할 정도로 달려드는 이들을 숯덩이로 만들어버리던가.
다른 하나는 치유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대를 날려버리던가.
“날려버리는 쪽이 훨씬 더 쉽지.”
-피잉!
주변에 떠돌고 있는 대못 중 하나를 자력을 이용해 손 쪽으로 움직였다. 손은 그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검지손가락을 펼치고, 중지손가락와 엄지손가락을 직각방향으로 펼치고 있었다.
-지지직, 퍼엉!
곧 그의 능력에 반응한 대못이 전방으로 사출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그것은 지나가는 궤적에 푸른 잔상을 남기며 파공성을 자아냈다.
소리보다도 더 빠르게 뻗어지는 그것은 끝내 여인의 어깨 부근에 도달하여 사방으로 전류의 폭발을 터트렸다.
원래라면 그것만으로 어깨가 꿰뚫려 몸이 뒤쪽으로 튕겨져 나갔어야 할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중한 대상은 튕겨져나가긴 커녕 적중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아하하, 뭘 하는가 했더니 신도들이 아니라 바로 저를 노리신 겁니까?”
여인이 대못이 적중된 부분을 내세우며 요한을 향해 빈정거림을 토해냈다. 여인의 어깨에는 대못으로 인한 피해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적중되지 않은 것처럼 어깨를 향해 날아든 대못은 여인에게서 사라져 있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손가락만한 사이즈의 금속이라 하더라도 힘을 집약시켜 방출하면 총알을 넘어서는 속도로 사출할 수 있다.
그만한 공격을 어깨에 처박아 넣으려 했음에도 튕겨져나간 것도 아니고 그 흔적 자체가 사라졌다?
-푸칵!
여인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추측하던 중 요한의 귓속에 괴악한 타성이 파고들어왔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주변을 메우고 있던 추종자 중 한 명이 어깨가 역으로 비틀려 뒤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여인에게 쏘아보내었던 대못이 버젓이 처박혀 있었다.
“장수를 노리려면 먼저 말부터 쏘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아무래도 당신은 그 말의 의미조차 반대로 알아들으셨나보군요. 설마 저를 따르는 이들도 쓰러트리지 않고 저에게 다다르겠다는 말씀입니까?”
방어나 공격 무효화가 아닌 ‘피해 전가’.
저 여자는 자신이 입은 피해를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능력으로 피해를 무마시킨 것이다.
-꾸드득. 드득.
그로 인해 생겨난 피해마저 머지않아 재생되어가는 것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못이 뽑히지 않았음에도 뒤틀렸던 어깨의 뼈와 살이 머지않아 재생되어가는 것을 직시한 요한의 표정이 왈칵 우그러졌다.
“미친 새끼들.”
어깨에 총알 수준의 못이 틀어박혀도 우는 소리 한 번 안 내는 놈들이나, 그 정도의 피해를 전가시켜놓고 깔깔대는 여자나 아주 똑같아 보일 정도다.
“요한아. 나도 도울게, 별로 힘은 안 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란이 기타를 들어올리며 요한을 향해 말했다.
기타를 쥐고 있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다. 그것을 눈치 챈 요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못을 쏘았던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됐어. 자기 몸 간수나 해.”
“하지만.........”
“걱정 마. 그 자식이랑 그 여자랑 떨어지고 난 후에 손가락 빨면서 놀고만 있던 건 아니니까.”
-즈즈즉.
그의 감정에 반응하듯 피부를 통해 빠져나가는 전류가 더욱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자, 신도들이어, 우리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겁니다! 저 자를 쓰러트리십시오!”
-후웅!
여인의 외침과 함께 그들의 육중한 몸이 요한에게로 던져지기 시작했다.
상대는 어깨에 못이 꿰어박혀 팔이 역으로 꺾여도 앓는 소리 한 번 안 내는 광신도들. 비유를 하면 마약에 심취하여 중추신경이 반 쯤 맛가버린 자살테러범들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오는 새끼들 다 족친다. 그것만 알면 되는데...!’
-파즈즈즉! 퍼엉!
양 손에서 타들어가는 전격이 바닥을 향해 뻗어져 달려드는 광신도들을 향해 뻗어갔다.
8레벨로 올라섰을 무렵 습득한 특성인 ‘확산’. 전격이 적중한 지점을 기점으로 사방에 다소 약한 위력의 전격을 퍼트리는 특성이다.
아무리 벼락을 쏠 수 있다 하더라도 그의 반응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들을 직접적으로 노리고 쏴봐야 움직이는 만큼 적중하긴 어려울 터. 그렇다면 차라리 미약하게나마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광범위 공격을 가하는 편이 낫다.
전기라는 것은 아주 약간만 몸에 흘러도 마비와 충격을 유발하니까.
“그...르, 윽.”
전격에 적중당한 광신도들이 미약한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마비에 저항을 했다.
천천히나마 그에게로 다가서는 광신도들. 요한은 개의치 않고 다중 응축을 이용해 체내에 충전시키고 있던 전격을 다시 그들에게로 쏘아보낼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지지직, 퍼엉!
허공을 노리고 쏜 전격. 그곳이 머지않아 허공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그들을 향해 추락하기시작했다.
6레벨로 올랐을 당시에 얻은 특성인 ‘갈래번개’. 자신이 퍼트린 전류의 위력을 낮추는 대신 진행각도를 변화시키고 한 번의 전격을 여러 갈래로 쪼개는 것이 가능하며, 12레벨로 오름으로써 얻은 특성인 ‘피뢰침 생성’은 전류가 한 번이라도 퍼진 대상이나 지역을 한정으로 전격을 유도시킬 수 있다.
하늘에서 내리쳐진 벼락들이 끝내 퍼져나간 전류로 인해 ‘피뢰침’이 생성된 표적들에게로 추락했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전격에 의해 바싹 익혀진 그들의 몸이 무기력하게 쓰러져갔다.
보통이라면 거기서 끝이 날 법도 하건만.
“일어나시오, 신이 내려주신 시련에 굴해서는 안 되옵니다 신도들이어!”
후열에 위치한 여인의 외침에 쓰러졌던 그들의 몸이 다시 일으켜 세워지며 요한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빌어먹을 수준의 치유능력이다. 벼락에 맞으면 공포에 벌벌 떨 법도 하건만 그들은 미치광이 광전사라도 된 것 마냥 요한에게 끝도 없이 달려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쇄아악!
거리가 좁혀졌을 무렵 그들이 자신들의 후드에 감추고 있던 무기들을 하나 둘 씩 꺼내들었다.
각각 칼, 도끼, 망치...인간의 뼈와 살을 깎아내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무기들이다.
요한은 그들의 공격이 가해지기 직전 쇠사슬이 휘감겨져 있는 양 팔을 휘둘러 그들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카앙, 투캉! 터엉!
쇠사슬 끝에 매어져 있는 두터운 금속의 덩어리. 두 개의 방패가 휘둘러지는 공격의 궤적을 가로막고 그들의 몸을 밀쳐내었다.
“내가 앵간해선 반만 죽이려 했는데 니들은 숨넘어가기 전까지는 가야 할 것 같다.”
-투파파팍!
자력에 의해 주변에 떠다니던 대못들이 도형을 그리며 처박혔다.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 신도 중 일부가 그의 방어를 뚫고 거리를 좁혀오며 무기를 겨누고 휘둘러갔다.
끝내 쇠사슬의 궤적에서 벗어나 그들의 무기가 수녀복에 맞닿기 직전 요한의 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이동한 것도 피한 것도 아닌, 수녀복 밑에 감춰진 ‘부정한 자의 각반’의 효과가 지니고 있는 긴급회피 옵션을 통해서.
그의 몸이 이동한 곳은 바닥에 십 수 개의 대못을 박아넣은 지역. 그곳에 방패를 밑에 둔 요한이 양 팔에 매달려있는 쇠사슬을 방패에 고정시킨 채로 자력을 최대치까지 극대화시켰다.
-슈하악!
방패에 가해진 자력을 버텨내지 못한 대못들이 부러지고 땅에 깊숙이 처박혔다. 그 반발력으로 인해 방패에 탄 그의 몸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끝내 광신도들의 공격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그가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그들의 뒤에서 명령과 치료만을 하는 우두머리인 여인.
“장수를 쏠 수 있으면 장수를 쏴야지 말을 왜 쏴?”
-파즈즉, 즈즉.
허공으로 날아오른 그의 양 손에 몸에서 발산되는 전류가 집약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주인공은 미친 년 뚝배기 하나 깨는데 그 고생을 했는데 얘는 혼자 발리우드 찍으면서 주옥같은 말만 하네. 이런 사이다에 멘토스 넣어 먹는 자식.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