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123화 (123/251)

<-- 31화. 신을 섬기는 자의 올바른 마음가짐 -->

“......아?”

요한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던 여인이 미약한 탄성을 내뱉었다. 이전에 자신을 조롱하고 비아냥한 말 따윈 애초에 듣지 못한 것처럼.

후드를 쓰고 있었지만 둥그렇게 뜨여진 눈은 훤히 보이고 있다.

그 눈을 요한에게 집중시킨 채 말을 이어가던 여인이 곧 슬며시 웃음을 그리며 자리에 몸을 곤두세웠다.

“호, 그렇군.”

머지않아 후드를 벗은 그녀가 슬며시 요한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었다.

“환영합니다, 이 절망적인 공간을 누비는 어린양이어. 이 우리가 조우하게 된 것 또한 신의 인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반가운 목소리였다. 이전의 미친 듯이 웃어재꼈던 여자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평온한 목소리.

“누가 인도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발로 걷다가 우연히 만난 거야 이 년아.”

그에 요한이 반사적으로 비아냥을 터트렸지만 여인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우연 따윈 없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이 미친 여자가 뭔 20세기 물리학자들도 안 믿을 개소리를........”

“그럼 초면인 당신에게 저의 소개를!"

요한의 비아냥을 무시한 여인이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이들의 앞으로 나서며 정중히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이 공간에 휩쓸린 이들의 절망을 품어 구원을 선사하는 ‘절망의 사도’님을 섬기는 교단인 ‘절망교’의 신도이자 그의 가르침을 전도하는 전도사. 강지희라고 합니다.”

보는 이를 섬뜩하게 만드는 매서운 눈이 그에게로 향해졌다.

그를 마주한 요한은 말없이 치켜세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그것을 자신의 품 안에 집어넣었다.

“댁이 그 절망교인가 뭔가 하는 곳의 전도사라고?”

방금 전까지 대판 말싸움이라도 할 분위기를 만들려던 그가 묘하게 익숙한 단어를 들은 듯 귀를 기울였다.

“네~ 전도사입니다. 제가 배운 가르침을 타인에게 전파하는 일을 맡고 있지요. 이 절망적인 공간에 적응하지 못한 가엾은 자들을...제가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그들 또한 구원을 해주기 위해서!!!”

땅에 발을 굴린 여인이 다시 눈을 벌려뜬 채 요한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신 또한 이 공간에서 절망을 마주한 존재이겠지요! 그렇다면 저와 마찬가지로 이 절망적인 공간에! 저희들과 함께 절망교의 가르침을 받으시는 겁니다! 자, 이 손을 잡으십시오! 함께 사도님의 가르침을 경청하며 절망을 버텨내는 겁니다!”

“전도하는 중에 미안하게 됐지만 나 일단 기독교 신자거든.”

여인의 이어지는 말에 요한이 손바닥을 앞으로 뻗으며 부정의 의사를 표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의 그는 매일 아침 교회에 들려 기도도 드리고, 교회에서 주선하는 봉사활동에도 꼬박꼬박 참여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절망교인가 뭔가 하는 수상한 사이비 교단에 손을 댈 리 없잖은가?

“굳이 믿는 종교가 있는데 그마저도 강요하진 않겠지? 그러니까 날 포섭하려는 건 관두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좀........”

“기독, 교?”

그의 단호한 말에 절망교의 전도사임을 소개한 지희가 얼떨떨한 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겉으로 수녀복을 입고 있으니 종교에 관련된 인물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종교에 심취한 이에게 시각적으로 보이는 타 종교의 흔적이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으니까. 눈치 채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오, 그렇군요. 기독교...그렇군요. 예수의 가르침을...”

곧 그에게로 뻗었던 손을 거둔 지희가 입가에 그려진 비웃음을 감추었다.

행색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에게 표하는 조롱의 의사였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이들을 구하지도 못하는 신 따위를 섬기다니, 참으로 가엾은 남자로군.”

“...뭐?”

“그야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수라는 작자는 죽어가는 이들에게 손을 뻗어주지 않았지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무능한 신의 가르침을 아직까지도 기억하며 따르고 있다니, 당신에게 동정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인은 그런 요한의 소리를 자각하지 못한 듯 계속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이가는 소리를 들은 것은 뒤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호란 뿐.

“요, 요한아...화, 난거야?”

“어. 엄청.”

호란의 조심스러운 말에 요한이 베일 밑으로 흘러나온 금발을 쓸어넘기며 열이 섞인 숨을 내뱉었다.

"저 절망 뭐시긴가 하는 새끼들이 지랄한 것 때문에 그 여자랑도 떨어졌으니까. 한 번 만난 것도 좆같은데 또 나온 거 보면 앞으로 이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더 만나게 될 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말하는 뉘앙스로 보건데 아마 그녀와 비슷한 인간을 이 던전에서 마주한 적이 있는 듯 보였다.

그것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의미로.

“하지만 설령 당신이 이단자라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절망교는 이 끝도 없는 절망으로 가득 찬 공간을 버텨내지 못한 사람이라면 사상도, 신념도, 과거도 관계없이 모든 이들을 포용할 수 있으니!!”

그녀는 그런 요한의 감정을 읽지 못한 듯 비웃음을 지운 채 한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뱉으며 그를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자, 이 손을 붙잡으시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구원조차 내려주지 못하는 무능하기 그지없는 예수 따위가 아닌,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절망의 사도님을 함께 섬기시는.......”

-즈즈즉, 퍼엉!

폭음과 함께 무언가가 그녀의 옆을 스치듯 지나쳤다.

피부에 스며드는 저릿한 감각. 인간의 기준에서는 자각할 수 없었지만, 사출된 그것은 분명 음속을 초월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어?”

여인이 얼빠진 숨을 내뱉으며 차츰 시선을 뒤쪽으로 옮겼다.

자신이 등지고 있던 벽에 자그마한 무언가가 박혀있다. 그것은 그가 방금 전까지 손에 쥐고 있던 못 중 하나.

그것이 무언가의 작용으로 인해 고압으로 쏘아져 벽의 표면에 수 백 갈래의 균열을 일으켰다.

-후두둑, 우스스.....

균열에 따라 떨어져 내리는 파편은 그것이 환각이 아니라 정말로 물리적인 충격으로 인해 벌어진 현상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고작 손가락 길이와 그보다 얇은 두께의 대못 하나가 그 정도의 위력을 내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내가 이래서 개독 새끼들이랑 상종을 안 하려 해. 1절만 못하고 자기 말 들을 때까지 바짓가랑이까지 부여잡으면서 츄라이츄라이...그러다 화 좀 내면 불경한 자라는 말로 시작해 온갖 쌍욕을 다 쳐하지. 지들이 레지스탕스라도 된 것 마냥 신을 믿으면 세상이 바뀌어보이네 뭐네 지랄 떠는 꼴을 보면 청와대 앞에서 확성기 들고 테러하겠다고 선언하는 새끼들이 더 양반으로 보일 지경이야.”

그 현상을 일으킨 장본인이 손에 쥐고 있는 대못 중 하나를 반대쪽 손에 주절대고 있었다.

그 중얼거림이 자신의 귀를 거슬리게 만든 여인에 대한 힐난으로 변하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야 이 뇌 대신 우동사리 들어있다 못해 익지도 않은 면빨을 절구로 빻아서 만든 밀가루 알갱이 하나보다도 더 작다 못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뇌세포하나로만 사고회로를 돌리는 나머지 행동의 대부분을 척추반사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데에 익숙해져 개념이 덜떨어지다 못해 지반 뚫고 내핵까지 처박힌 정신 나간 년아. 내가 네 년한테 신성모독 들어 처먹으려고 매일 아침에 교회에서 십자가 앞두면서 하느님한테 기도하고, 등록금 충당하기도 힘든 처지에 매달 삼 만 오천 이백 원씩 불우이웃 돕기 성금 내고, 주말마다 장애인 복지시설에 봉사활동 다녀서 과제할 시간도 촉박해 매번 시험 전날에 핫식스 빨아가며 밤새도록 책상에 앉아서 펜 끄적이는 줄 아냐? 종교 좀 믿는다고 자기가 신 마냥 전지전능한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나머지 놈들은 다 미개한 유인원 정도로 여겨지나 본데, 정작 자기가 그보다 더 우둔하기 짝이 없는 단세포새끼라는 자각도 없는 거지, 어? 아니, 그래...뭐, 유인원보다는 낫네. 적어도 사람 말은 지껄이니까. 문제는 사람 대가리를 가진 주제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의무교육을 12년 동안 판타지로 받았다는 거지. 너네 교단에서는 성경책이랍시고 라이트노벨 12권을 세트로 쥐어주디? 꼴에 종교 믿는다고 커뮤니티 게시판에 설정집이나 올려대는 중2병 걸린 30대 초반 무직 백수 히키코모리 새끼 마냥 근거도 없는 자신감 가져대며 부랴부랴 떠들어대는 게 진심으로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는 거야?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하다못해 의미조차도 없는 해괴한 망상을 진리인 마냥 씨부려 대는 거 보면 한심해서 기가 차다 못해 가엾게 느껴질 정도인데...아, 됐다 씨발. 어차피 이렇게 말해도 안 들어 처먹을 게 뻔하고 뭘 물어도 ‘신이시어 부디 저 개새끼를 조져주시옵소서’라는 저주 토해내며 지랄할 게 뻔하니까 그냥 이것만 딱 말하고 갈란다. 네 놈이 절망의 사도를 믿는 전도사이건 위대한 젤나가를 섬기는 프로토스의 대신관인 아르타니스건 나랑 하등 관계도 없고 좆도 신경 안 쓰니까, 전도 실패했으면 ‘네, 알겠습니다’ 하며 곱게 알아먹은 다음 꺼져. 벌려봐야 똥만 쳐나오는 아가리 다시 못 열도록 이빨에 죄다 못 박아 넣고 턱주가리 깨버리기 전에.”

“.........”

“뭐, 왜. 불만 있어?”

장황한 욕설에 벙찐 표정을 짓는 여인을 보며 요한이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비웃음 하나 그리지 않은 태연한 얼굴로 상대를 마주하기만 할 뿐.

“불만 있으면 반박해보던가. 할 말 없으면 그냥 꺼지고.”

“이, 그....으.........”

요한의 말에 입술을 깨물기만은 하는 지희가 부르르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감한 호란이 요한의 곁으로 다가왔다.

비록 그 욕이 자신에게로 향해져 있진 않았지만,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도 훨씬 험악한 그의 모습에 그녀 또한 겁에 질려있는 상태였다.

“요, 요한아...”

“걱정 마. 넌 뒤에 가만히 있어.”

손에 힘을 실어 넣은 그의 푸른 눈동자가 체내에서 흐르는 전류에 반응하며 매섭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저 절망교인가 뭔가 하는 놈들, 사이비 신도들보다 더 한 놈들이야. 혹시나 싶어서 말 통할까 생각해서 좋게 해보려 했는데 저 년도 앵무새마냥 같은 말만 지껄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뭐라 반박을 하려 했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어버버 거리기만 하는 여자가 뒷목을 붙잡은 채 부들대는 모습.

“저 불경한 자를 잡아 죽여라! 우리들의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여인의 외침과 함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검은 후드들이 요한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그들이 자신의 주변으로 다가오기 전 요항는 오른손에 집약시킨 힘을 풀며 전방으로 손을 휘둘렀다.

-타다다닥, 파아아앙!

연이은 작은 폭음이 찰나의 순간 수 백 번이 터지고, 머지않아 그것이 주변의 공기를 폭발시키며 다가오는 모든 것을 밀어내었다.

9레벨로 올랐을 무렵 습득한 특성인 ‘번개탄’. 자신이 만들어낸 전격이 맞닿은 자리에 작은 폭발을 일으키는 능력. 그것이 충전과 응축으로 인해 집약된 전기와 조합되어 강력한 위력을 지닌 ‘전기폭발’로 변모한 것이다.

“마태복음에 네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도 내어주라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아냐? 시비터는 놈한테 선빵 맞으면 개 패듯이 쳐맞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원수가 되니까 시비거는 새끼가 먼저 선빵 갈기기 전에 내 쪽에서 먼저 조져놓으라는 뜻이다. 이 썩을 년아.”

폭발로 인해 발생한 열기에 타들어간 검은 후드들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고 뒹굴었을 때, 요한이 그들의 뒤에서 지시를 내렸던 여인에게 살기를 퍼트리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지금 죽었다고 실컷 복창해두는 게 좋을 거야. 내 손에 잡히는 순간 그 가증스러운 혀부터 태워버릴 생각이니까.”

-철컹.

그의 양 팔에 쇠사슬이 휘감김과 동시에 이전까지 손에 쥐고 있던 못들이 자력에 의해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그런 뜻 아니야 임마.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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