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122화 (122/251)

<-- 31화. 신을 섬기는 자의 올바른 마음가짐 -->

방송에서야 남성팬들이 많긴 하나, 그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유명세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지 이성으로써의 호감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하물며 방송인으로써의 활동을 제외하면 이성과 뭔가 이렇다 할 관계를 맺어본 경험은 없다. 기껏 해봐야 초등학교 때 정도였을까.

물론 남성을 꺼려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남자를 꺼려한다면 이렇게 그를 따라나설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이성과의 관계에 적극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꺼리지 않는 것과 관심이 많은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니까.

그래도 자신감을 가지고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남성에게 어필을 한 것이었다. 나름대로 용기를 가진 일이었지만.......

“여자친구 있어.”

고백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기회는 완전히 쫑이 나고 말았다.

“...진짜로?”

“의외야?”

“어, 으....음, 응. 좀 의외네. 하하.”

그의 말에 호란이 애써 웃음을 터트리며 볼을 긁적였다.

이전까지 그를 귀엽다고 생각했다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무래도 자신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겉으로 보기에 흉악하고 첫 인상도 별로였던 남자의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걸 계기로 좋은 사이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기야 자신이라고 두근거리게 된 남자에게 다른 여자라고 매력을 못 느낄까. 새삼 연애경험이 전무한 자신이 얼마나 헛된 망상에 시달리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만........

“뭔가 충격이네.”

“내가 여자친구 있다는 게 그렇게 충격이야?”

“아니, 그 쪽이 아니라....”

애매한 웃음을 터트리는 호란이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손을 굳게 틀어쥐었다.

'아니, 아직 포기하긴 이르지! 골기퍼 있다고 골대에 골 안 들어가나!?’

그저 가벼운 선에서 사귀는 가능성도 부인할 수는 없다. 또는 상대쪽에서 그를 헤프게 여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저기,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줘.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런 건데, 요한이의 여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

“...음.”

그의 말에 통로를 거닐던 그가 잠시 걸음속도를 늦추며 턱을 괴었다.

“딱 잘라서 말하면 바보지.”

“아하, 바보구....에?”

머지않아 이어지는 그의 말에 호란이 얼빠진 숨을 내뱉었다.

“바보맞아. 자기 주제도 모르는 바보.”

그러한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요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몸도 불편한 주제에, 자기를 불행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극도로 혐오하면서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매사에 적극적이고, 그러면서 일이 수틀려도 자존심이 강해서 절대로 남의 도움은 안 받으려 하고. 그런 애를 바보가 아니고 뭐라고 표현하겠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험담이라 여길 법도 하건만,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 없이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쓸쓸함이 묻어나 있었다.

“그런 녀석을 또 달리 누가 받아줄 수 있겠어, 어디서 잘못 굴러먹다 온 녀석 아니면 절대로 못 받아주지.”

“........”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음까지 지으며 말하는 그에게서 호란이 얼굴을 붉힌 채 시선을 돌렸다.

그에 대한 호감이 커졌기 때문이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에게 대쉬하려고 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게 여겨져서...그런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낯이 간지러워진 것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구나.’

호란이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뭔가, 아프네.”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중얼거림으로 속에 덩어리진 감정을 토해내었다. 그럼에도 응얼이가 남아있었지만 지금으로썬 감추는 것이 낫지 않을까.

“넌 사귀는 사람 있어?”

“어, 나, 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호란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주춤거렸다.

“너도 물어봤으니까 나도 한 번 물어보는 거야.”

혹시나, 싶어 생각하며 반응을 했지만 그저 이전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뿐이었다.

“어, 하하...지금은 없지.”

그에 안도를 느끼며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은’이라고 말을 하며 자신이 연애경험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숨겼다. 어떤 식으로 듣느냐에 따라선 ‘과거에 경험이 있다.’ 혹은 ‘조만간 생길 것이다’라고 해석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괜히 아무런 경험도 없다고 말하는 것도 부끄럽기도 하고, 또 이전의 말에 서려있던 감정을 눈치 채면 어쩌나 싶은 마음도 있었으니까.

“하긴, 아주 경험이 없진 않겠지. 그 정도 얼굴이면.”

“그래, 그래. 그런 식으...에? 얼굴?”

“귀엽잖아. 남자들이 좋아할 법한 상인데.”

“그럴 리가!”

호란이 양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전력으로 부정을 표했다.

"나, 일단 주근깨도 좀 있고...그리고 피부도 거친 편이고 눈매도 너무 둥글둥글해서 애 같다는 느낌이 많고........”

애초에 그녀의 방송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다른 미인들처럼 '여자의 외모'를 보고 끌려온 사람들이 아니니까. 청순발랄 뭐시기 하는 말도 결국 컨셉이고, 반쯤 장난으로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요한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솔직한 심정을 담아 호란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피부야 화장으로 어떻게 커버할 수 있고 동안인가 아닌가는 취향 문제지. 그리고 주근께도 너무 흉한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아 보이고.”

그런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호란을 향해 요한은 개의치 않고 칭찬을 이어갔다.

이어지는 요한의 칭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침묵을 하는 것이 신경 쓰인 것일까, 머지않아 요한이 작게 코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정 자기 외모에 자신이 없으면 던전 밖으로 나갈 때 내가 사람 한 명 소개시켜줄게. 아는 녀석 중에 메이크업을 전공으로 하는 녀석이 있거든. 그 녀석이라면 나보다 더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거야.”

“......어, 응.”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작게 대답을 했다.

어두운 통로였지만 행여나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눈치 챈 것은 아닐까, 하며 불안함을 느꼈다.

점점 호감을 사게 만들고, 관심을 가진 순간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차에 갑작스레 이런 식으로 또 자신을 배려해주는 말을 하다니,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이러면.......’

“잠깐.”

두근거림을 잦게 만들려던 호란의 앞으로 요한이 손을 들어올려 제지를 가했다.

이전까지 자신과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피냄새.”

“.........”

호흡이 굳어졌다. 그의 말을 들은 직후에 비릿한 쇠냄새가 흘러들어왔으니까.

그것이 혈액에 함유된 철분이 자아내는 것임을 깨닫고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던전 특유의 특성상 방에서는 통로 쪽의 환경을 아주 약간 확인하고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데에 비해, 통로 쪽에 있는 이들은 통로에 있을 때엔 던전 내부의 방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기껏 해봐야 인근에 도달했을 때 실루엣만 조금 보이는 정도. 방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방 안으로 직접 들어서는 수밖에 없다.

“뒤쪽에 있어.”

호란이 요한의 등 뒤로 몸을 움직였다.

이제까지 열다섯 방을 돌며 몇 번이고 위험은 있었고, 그 중에는 사람을 먹어치워 피비린내를 흩뿌리는 몬스터들도 있었다. 그 때마다 전위에 나선 것은 그였고, 자신은 언제나 뒤에서 기타를 쥔 채 대기만을 했다.

무능하지만 전투능력이 전무한 자신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까.

물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 혼자 어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필시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위험이 가해진다는 뜻일 것이다.

가급적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빌며 요한과 함께 방으로 들어섰고.

-푸욱.

머지않아 살을 찢어내는 소리가 두 사람의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

“어.......”

입 밖으로 숨을 내뱉었지만 그 목소리가 미처 새어나오기 전 호란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의 근원지는 방의 중앙. 그곳에 칼을 쥔 채 서있는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연이어 찌르고 있었다.

사람? 아니, 사람처럼 생겼지만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몬스터였다.

투구를 쓰고, 아래를 감추고 있는 하의를 제외하면 온 몸이 흉터로 둘러싸여 있는 괴물.

그 괴물의 급소에 몇 번이고 흉기가 틀어박힐 때마다 경련이 일어나길 반복하고 있다.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썩은 피가 서서히 증발하듯 사라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시체를 찌르고 있는 이 또한 그것을 눈치 채고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내버린 채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으흐, 하하하하!”

썩은 피로 버무려진 양 손으로 감싸쥔 얼굴에서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얼마나 추한 생명! 이 얼마나 안타까운 존재!! 굴레의 공간 속에 적응하지 못한 비참한 망령이어! 하지만 이제는 안심하거라. 내 이 손으로, 구원받지 못한 그대를 하늘로 올려 보내었으니!!!”

머지않아 양 손이 뻗어지고, 여인의 시선이 사라져가는 시체의 옆에 즐비해있는 다수의 인간들에게로 향해졌다.

검은 천을 뒤집어쓴 그들은 여인을 말 없이 주시하고 있을 뿐. 여인은 그들의 시선을 한껏 받으며 양 손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고 있어싿.

“아아아...우리들의 절망을 굽어 살피는 신이시어!! 이 한 몸 다 바쳐 그대를 위한 제물을 거두어 주시옵소서...이 손에 묻은 피를 정화해주시옵소서!!”

사라져가는 시체와 그로부터 튀어나온 피들이 서서히 증발해 가루가 되어 증발하기 시작했다.

사라진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몬스터가 자아내는 썩은 악취조차 감추지 못했던 선혈들. 자신의 몸에 묻어난 누군가의 피를 직시한 여인이 진한 미소를 그리며 양 손을 하늘로 뻗기 시작했다.

“보라 신도들이어. 우리들의 죄를 신님께서 사하셨도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해선 안 되는 것. 보다 많은 제물을 바쳐 그의 배를 불리고, 보다 많은 이들을 포섭하는 것이 우리들의 목적! 그것이 우리들의 신의 비원을 이루기 위한 일이로다!!! 찬양하라! 우리들의 신을! 우리들의 절망을 굽어 살피는 그 분의 말씀을 따라라!!!”

“사람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혼자 쇼 하고 자빠지셨네. 여기 전세내셨어!?”

여인의 찬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성난 목소리가 방 안에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대가리에 나사가 빠진 거면 대신 박아줄까? 마침 한 박스 정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인벤토리에 박스 형태로 짝을 이루고 있는 못 중 여럿을 꺼내든 요한이 손에 그것을 움켜쥐며 절그럭거리는 소음을 내었다.

========== 작품 후기 ==========

휴재 하고 돌아왔습니다. 휴재공지 올리고 13시간 동안 잘 쉬고 왔네요.

아이씡나!

한동안 6~8화 정도 요한의 시점에서 글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일단 고정 등장인물이라 선언한 주제에 이제까지 출현이 적었으니 활약하는 파트를 넣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보스전 돌입하기 이전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절망교'에 관한 떡밥을 깔아두기에 이 쪽이 더 적합하다 생각되고, 그 외에 주인공과 떨어진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기 위해선 이런 식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되니까요.

작중 시간상으로 주인공이 세린이 뚝배기에 철퇴 찍을 때로부터 2~3일 정도 흘렀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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