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너에게 선사하는 절망적인 최후 -->
“쿨럭.”
힘 없는 기침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쯤 나가버린 정신을 바로잡자마자 전신에 스며든 격통이 뇌리를 파고들어왔다.
움직이려고 힘을 줄 때마다 뼈가 빠질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해왔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이 뒤집힐 것 같은 감각이 머릿속에서 안면으로 솟아오르기를 반복했다.
겨우 빳빳하게 굳어진 고개만을 움직여 자신의 몸상태를 살펴보았다.
온 몸의 움직임을 관장해야 할 근육은 전부 망가지고 뒤틀려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감각이 남아 아우성을 치길 반복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 쪽 다리는 뭉개지고, 다른 한 쪽 다리는 잘려나갔다. 허리마저 깊숙이 파여 있어 주저앉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포션이 회복시켜주는 것은 상처와 고갈된 체력 정도, 소실된 육체를 수복하려면 더 제대로 된 물품이 필요하지만, 이제까지 사지가 잘려나간 적은 없었기에 굳이 만들어본 적은 없었다.
설령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지금 꼴에서 과연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약물 중독으로 인해 도리어 페널티가 발동하여 제 명을 깎아먹을 게 뻔할 터인데.
차라리 편하게 죽는 것이 나을 정도로 몸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있음을 자각한 세린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런 꼴로도...목숨이 붙어있다니, 참....대단하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힘겨이 측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깨에 삽을 기대고 앉아있는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엿보이고 있었다.
입에는 자신과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입에 물지 않았던 담배가 물려져 희미한 연기를 퍼트리고 있었다.
여유 끝에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겉부분 뿐이다. 그의 몸 역시 세린과는 달리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세린을 대상으로 유전변이 특성을 수 없이 사용하여 약물 부작용을 고스란히 몸에 받았다.
물론 그녀와는 달리 능력을 취소한 순간부터 약물의 부작용은 재생력을 통해 빠르게 회복되어가고 있는 상태. 거기에 더해 ‘무덤 파괴자’의 효과를 통해 반 시체 상태가 되어 육체의 고통과 괴로움을 상당수 덜어내고 있다.
그녀와는 달리 전투 이후에도 후유증을 빠르게 극복하고 살아나갈 수 있다. 승리를 전제로 했을 때에 가능한 일이지만, 자신이 땅에 눕혀진 것으로 그 전제는 이미 확정된 상태였다.
“........”
그는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손으로 감싸쥔 채 말 없이 세린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초췌한 눈에 서린 감정은 목숨을 노렸던 자에 대한 분노인가, 아니면 죽어가는 자를 향한 동정인가.
어쩌면 패배자를 향한 비웃음일 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손가락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발버둥 같은 걸 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의 감정을 받아들이며 고통 속에서 지긋이 눈을 감은 세린이 천천히 자신의 기억을 되새겨갔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는..,머리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을 꺼트리고 반복했어요...불이 태워지는 중에 그에게 자기 공장에서 죽어나간 유족들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는데도,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는지 머릿속이 익어버려 죽고 말았죠.”
첫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 이후에 자신이 저지르게 될 일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시작한 일을 아무것도 모른셈 칠 수는 없었으니까.
“두 번째로 죽인 사람은, 머리를 프레스에 넣고 힘을 점차 실어 넣었죠. 처음엔 동정을 구하고 자신의 죄를 정당화 시키려 했지만, 이후에는 무조건 잘못했다는 말만 반복하더군요. 그 과정에서 차로 치어 죽였던 여섯 살 어린아이의 이름을 대라고 몇 번이나 질문을 했는데도 전혀 대답하진 못하고........”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를 죽였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보다도, 그녀를 포함해 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혐오가 짙어져 일을 저지르겠다는 욕망이 더욱 커져만갔다.
“세 번째로 사람을 죽였을 때에는, 좀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한 사람을 앞두고, 죽일 대상이 저지른 죄를 밝히면서...그 과정을 이어가면서, 마지막에 그 남자가 자신에게 저질렀던 일을 가르쳐주었죠.”
당연한 것이지만 그 자는 남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심판하기를 선택했다. 가슴팍에 겨누어져있던 금속봉이 몸 안을 파고들어 헤집은 순간 피해자가 실성한 웃음을 터트렸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남고 있다.
그 때 당시 그녀는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남자를 죽이기로 결정한 피해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그 자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감사인사를 건네었으니까.
[당신은 나의 영웅이야.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나를 버렸을 때 당신만은...나를 이해하고 구원했어.]
그저 익숙함을 길들이기 위한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감사인사를 받았다.
자신의 이기심으로 인해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를 살해하는 그 과정에서.
마치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려는 것처럼.......
“네 번째는, 복수였어요. 이제까지 저질렀던 살인의...종착점.”
익숙함을 기르기 위한 그 과정의 결착을 짙는 그 순간. 복수를 다짐했던 대상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고, 그의 죽음을 찍은 영상을 해외 사이트를 경유해 전 세계로 퍼트렸다.
그 과정에서 그 어떤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익숙함을 느끼기 위해 세 명의 죄인을 제 손으로 처벌하고, 끝내 돌이켜보았을 때 자신이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을 정도로 추하게 더럽혀졌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제가, 옳은 짓을 저지른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제가 죽였던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움직였던 거니까........”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그들을 죽여 온 자신도 똑같이 더러운 인간이다.
그들과 같은 자신이 어찌 편안한 삶이 허락되겠는가? 이제껏 죽였왔던 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 역시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최후를 맞이해야 한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비참하게 기억하고, 자신이 묻혀있는 무덤에 침을 뱉어주며,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과정도 결말도 비참하기 그지없게.
그것만이 자신의 삶을 장식해야 할 끝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열 두 명의 죄인을 제 손으로 죽인 후 마지마긍로 저지른 일의 잔해를 세상에 퍼트리려 했다.
그 모든 일의 전말이 자신임을 밝히며, 그토록 원하는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
“...그 때 갑자기 이 기묘한 공간의 출현에 휩쓸리고 말았죠.”
마치 이 세상이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려는 듯 보였지만, 그에 절망하거나 좌절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런 공간인 만큼 기회를 얻기란 쉽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죄인들을 양성하고 그들이 활개치기 좋은 이 공간은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고 원하는 것들로 넘쳐나 있었다.
자신이 죽여온 이들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방법도다도 더욱 심하게 제 인생을 더럽힐 수 있는 수단이.
“그 사람, 처음 만났을 때 반쯤 미쳐있었어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어쩔 수 없었다면서...제 앞에서 울면서, 빌었죠.”
그는 어쩔 수 없이 이 공간에서 사람을 죽였던 인간이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마음은 머지않아 스스로의 모든 것을 좀먹을 것이 뻔했다.
미쳐버려 던전을 배회하거나, 혹은 절망하여 몬스터들에게 죽임을 맞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그는 미쳐가는 과정에서 만난 그녀를 희망으로 삼고 그녀에게 의지하려 든 것이다.
자신이 어떤 여자인지도 모른채 말이다.
“그 남자, 제가 기억을 잃기 전에 뭐라고 말을 했는지 알아요?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저는 구원받을 수 있었어요. 당신이 꿈꾸는 이상, 그 모든 것을 제가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라고...한 자도 틀리지 않고 똑바로 말했어요. 정신이 나간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또박또박. 그런 건 전혀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했던 말을 중얼거린 세린이 끝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스스로의 눈을 감추었다.
“...사람을 죽이는 의사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건, 그 누구라도 알 텐데도.”
어째서 의사인데 사람을 죽이고 있는가.
누군가를 죽일 때면 떠오르는 그 의문이, 그들을 죽였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스스로의 몸이 더럽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너무나도 괴롭게 느껴졌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자신을 도중에 막아주었다면...그런 생각이 죽어가는 이 순간에야 들었지만,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되돌리기엔 너무나도 늦어버렸다.
죄 많은 여자에게 허락되는 것은 그저 고통스럽게 숨이 멎어가길 기다리는 것뿐일까?
자신이 저지른 죄악감을 떠올리고, 받아야 하는 진정한 단죄를 받지 못한다는 자학감에 시달려 죽는 것이?
그마저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정당한 처벌이라면 달게 받아들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이 부족하다 여기고 있었다.
좀 더 비참하고, 비굴하게. 더럽고, 추하게. 세상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하잘 것 없이 여기고 비웃도록.
그런 절망 속에서 죽어가기를 바라는 그녀의 기대에 부흥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이제까지 침묵을 고수하고 있던 그가 조용히 세린이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충격에 의해 흉하게 파여 있는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고통에 의해 손이 맞닿은 감각은 희미했지만 심장의 고동이 그에게 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치료하는 거지.”
“...네?”
그의 말에 세린이 얼빠진 숨을 내뱉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여자를 왜 갑자기 살려주겠다고 말한단 말인가?
“말, 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요.”
“말이 안 되긴. 그 쪽도 했잖아.”
“...설마, 제가 했던 것처럼 더 고통스럽게 죽이려고, 그래서 치료하겠다는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지.”
담배를 물고 있는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내뱉어졌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눈빛엔 적의 따윈 서려있지 않았다.
분노도, 비웃음도 아니다. 하다못해 동정으로 인해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는 동정을 느낄지언정 그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거니와, 지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서린 것은 동정과 전혀 거리가 멀었다.
그는 지금의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나랑 같이 지옥에 갈 사람들을 구하고 있어.”
끝내 이어지는 말에 세린이 의아함을 느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눈에 서려있는 감정은 진실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눈이 주시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자신이 아닌, 머지않을 미래에 맞닥트리게 될 사건.
“지옥에서 겪게 될 일은 아마 그 쪽이 겪어온 그 어떤 것보다도 고통스럽고 절망으로 가득 차있을 거야.”
그의 말을 들은 순간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아차린 순간 몸이 제멋대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길 바란다고 했지? 그럼 날 따라와. 이제껏 네가 겪어본 적 없는 가장 절망적인 최후를 선사해줄 테니까.”
감정이 들떠오는 것을 느꼈다.
운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주제에, 자신을 죽이려고 한 녀석을 살려주는 것도 모자라 그 녀석과 함께 사지로 걸어가겠다니 어리석다못해 미쳤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그런 정신나간 제안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자신은 분명 그와 같은 족속이리라.
“그렇게, 살기 위해 발악을 한 주제에...기껏 한다는 게...나를 데리고 죽으러 간다는 거야? 대체 왜?”
“내 이기심을 위해서.”
단조롭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자신을 맞닥트렸던 남자가 대응하고자 퍼트렸던 살의 따윈 보이지 않는 감정.
“수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그냥,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있으니까. 그 쪽과도 직접 싸워보고서 알은 거야. 이 여자라면 내 목적에 도움이 되겠다고.”
자신을 한 번 쓰러트렸다고 오만을 떠는 것도 아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자신 따위를 죽이는 것보다도 더 큰 것이니까.
“아내, 당신의 아내와...관계 있는 거야?”
“......”
“...침묵은 긍정이라지.”
고요함 속에서 세린이 짙게 코웃음을 터트렸다.
그녀 역시도 한때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과는 달리 스스로를 더럽혀서라도 그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이 남자에게 느끼는 감정을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나와는 달리 그 쪽은 선택지가 있으니까 수락할지 말지는 자유야.”
천천히 그의 손이 세린의 눈앞으로 뻗어졌다. 그의 손을 잡는다면, 고통스러운 죽음을 바라는 자신은 분명 그를 따라 지옥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추구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자아낼 테지만 어째서일까? 그의 손을 붙잡는 데에 망설임이 느껴지는 이유는.
“사지로 들어갈지, 아니면 치료해주고 난 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지, 하지만 목숨을 살려줬을 때 다시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기억을 잃었을 때 당신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었어.”
뻗어지는 손을 가로질러 그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한 순간 대응하지 못한 그의 몸이 바닥에 추락하고, 세린은 그의 위에 올라타 자신의 몸을 밀착시켰다.
재생력에 의해 어느 정도 힘이 돌아왔다. 망가진 두 다리로 몸을 일으켜세우는 건 불가능하지만, 아주 잠깐 동안 관심있는 남자의 몸을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뭘 하려고? 그런 의문이 떠오르는 그의 얼굴에 망설임 없이 입을 가져갔다.
따스한 숨결과 비릿한 피냄새가 입을 타고 몸속을 헤집어간다.
갑작스러운 자신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듯 몸서리를 칠 무렵, 세린은 슬쩍 입을 떨어트린 채 망가진 손가락으로 입에 묻어난 침을 닦아내었다.
“순수하게, 사람을 살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에 나랑 닮았던 사람에게 끌렸었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나와 마찬가지로 추한 당신을 마주하고 있으면, 계속 가슴이 벅차오르는 게 느껴져,"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두근거림을 느끼는 그녀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입가에 진한 웃음을 그려갔다.
"...정말로 날 데리고 갈 생각이야? 내가 앞으로 당신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르는데도?"
연민과 살의, 두 감정이 뒤엉킨 애증.
그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과연 눈앞에 있는 남자는 감당할 수 있을까?
========== 작품 후기 ==========
길고 지루하고 재미도 없는 이야기 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편은 쉬어가는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