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100화 (100/251)

<-- 27화. 네가 죽는 이유 -->

“......읍.”

정신을 차렸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모든 것이 검게 물들어져 있는 어두컴컴한 방안이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잔영을 눈으로 쫓아갔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의지에 반응하는 손. 하지만 무언가의 거치대에 고정되어 제대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읍, 븝브읍....븝........”

뭔가를 말하려 했으나 어째서인지 입이 열리지 않는다.

숨은 쉬어지는 것으로 보아선 입만 막힌 듯 싶었다. 그것을 떨어트리려 해도 양 손과 발이 구속되어 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음속을 잠식해가는 혼란이 불안으로 바뀌어갔을 무렵, 어두웠던 시야가 무언가에 의해 밝게 비춰졌다.

머리 위쪽에서 새어나오는 강렬한 빛. 그에 깜짝 놀라 몸을 떨고 있던 중, 그림자가 자신의 앞에서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쓰고 있다. 자신의 몸을 밝히고 있는 빛이 닿지 않아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머리 부분에는 방독면 비스무리한 것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는 손에 쥐어진 톱을 자신의 손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눕혀져 있는 수술대를 구속하는 수많은 벨트는 자유를 억압하고 있었다.

“으으으브으읍!!! 브으으읍! 쁩!!”

비명을 지르며 간절히 호소를 해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곧 그의 손에 쥐어진 톱은 밧줄에 묶여있는 자신의 팔을 향해 겨누어졌고.

-우드득, 퍼석!

힘을 실어 넣어 가차 없이 팔과 의자의 팔걸이를 도려내었다.

“쁘으으으읍!!!”

톱의 날카롭고 거친 날이 살을 파고들고 뼈를 가르는 그 감각이 선명히 느껴졌다. 팔의 신경을 타고 뇌리를 파고드는 격통.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음에도 어째서인지 시야는 또렷하게 제 몸을 비추는 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입을 막고 있는 것을 떨어 트리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럼에도 방독면의 괴인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반대쪽 팔을 향해 톱을 겨누었다.

-우드득, 퍼석!

피묻은 톱에 다시 혈흔이 튀어 올랐다. 금속의 표면이 단절면을 비벼대는 아찔한 감각은 끝내 정신을 어지럽혀 고개를 떨구게 만들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그곳엔 원래 있어야 할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 뿐만이 아니다. 구속되었지만 선명하게 느껴졌던 양 손의 감각도 이제는 붕 떠오른 것마냥 사라져 있었다.

그럼에도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죄를 지었으면 그에 따른 대가는 치러야지. 안 그래?”

자신의 양 팔을 갈라낸 톱이 끝내 목을 향해 겨누어졌다. 살인자가 뒤집어쓴 방독면의 안쪽에서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해체 시간이야.”

******

“정신 차려. 내 말 들려?”

다급함이 느껴지는 익숙한 목소리에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고 있던 세린이 다급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습기로 젖은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볼을 타고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그녀의 앞에 언제부터인가 나타난 남자는 세린과 눈높이를 맞추듯 자리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강수, 씨...?”

“이름을 부르는 걸 보니 다행히 미치진 않은 것 같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린 후 품에 집어 넣은 강수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정신적으로 좀 부담이 큰 건 알겠지만, 일단 폰 좀 줘보겠어?”

“폰...이요?”

“아이템, 빨리 옮기지 않으면 증발해버리거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잠시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폰을 꺼내들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자는 자신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곧 그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자, 그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화면 내에 존재하는 인벤토리의 칸에는 한 가득 아이템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을 90칸이나 되는 그녀의 인벤토리에 옮긴 강수는 곧 그것을 다시 세린에게 건네주었다.

머지않아 그의 손에 쥐어진 다른 스마트폰의 전원이 꺼졌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저건, 강수씨께 아니죠?”

“방금 상대한 녀석 거야.”

“방금 상대한........”

강수의 말에 말꼬리를 흐리는 세린이 시선을 뒤쪽으로 옮기려 했지만, 고개의 움직임에 맞춰 강수가 몸을 움직여 시야를 가로막았다.

“확인하는 건 좋지만, 좀 심하게 망가트려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 거야.”

“그, 그래도........”

뭐라 말을 하려던 세린이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만 해도 끔찍한 악몽이 머릿속에 떠올랐었다. 포박된 채 양 팔이 잘리고, 이후 목아 잘려나가는........

‘...꿈, 맞지. 그건?’

슬며시 고개를 낮추어 자신의 양 팔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에 잘려나갔어야 하는 팔은 멀쩡히 붙어있는 상태였다.

그것이 진짜로 있었던 일일 리는 없다.

어디까지나 꿈이다. 그가 싸우는 중에 잠시 정신을 잃어 그런 악몽을 다시 꾸게 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꿈 속에서 나왔던 것은 분명 방독면을 뒤집어썼던 존재.

머지않아 그 존재가 그와 싸움을 벌였던 자와 ‘흡사한 모습’을 띄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자신의 양 손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안 볼게, 요."

시선을 돌리고는 구역질을 견디듯 욱욱거리는 세린. 강수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쳐다보다 끝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의 시선은 세린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처참히 망가진 시체’로 다시 향해져 있었다.

전투는 치열했다. 자신에게 흉기를 들고 달려들었던 거구의 존재는 육중한 몸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육탄전을 유도했다.

무기로 몇 번이고 내리찍어도 멀쩡히 움직인 데다, 미쳐버린 상태이기에 고통에 의한 망설임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망각한 채 계속 달려들기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상대하기 가장 껄끄러웠던 것은 그가 지니고 있는 능력이었다.

살에 닿은 것을 오염시키고, 방독면의 배출구를 통해 독이 서린 숨을 내뱉고, 피가 터질 때마다 일어나는 악취는 매 순간 그의 정신을 뒤흔든다.

싸움 당시엔 자신의 체내에 독 같은 것을 심고 그것을 외부로 배출하는 능력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실제로 그를 죽이고 난 후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확인했을 때에 자신의 생각이 들어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능력 ‘혈중독’. 자신의 체내에 흐르는 피를 오염시켜 피에 닿는 모든 이들을 중독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이다.

관련 특성으로는 피부에 닿는 자에게 부패를 유발하는 ‘썩은 살’이나, 노출된 피를 급속도로 기화시키는 ‘가스분출’...모두 체내에 흐르는 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들과, 출혈 유발율을 높이는 대신 신체능력을 증가시키는 강화계열들이었다.

독으로 인해 점차 썩어문드러져가는 살과 능력에 의한 육체 강화...자신이 알고 있는 녀석과 ‘유사점이 넘쳐났다.'

“저 녀석 보고 백일면이라고 했었지?”

세린이 그의 시체를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채 질문을 건네었다. 고개를 땅으로 떨구었던 세린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제가, 그런 말을........”

“했었어. 분명히.”

분명히 광인이 자신에게 달려들기 전에 그 말을 했었고, 그 말에 반응을 보였던 자신은 선공을 가할 찬스를 놓쳐 공방에서의 수고를 더하게 되었다.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지만, 백일면이라는 이름은 그로써 가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기억나는 게 있는 거야?”

“기억, 나는 거........”

강수의 질문에 세린이 자신의 이마를 왼손으로 감싸쥐며 식은땀을 닦아내었다.

“그 때......방독면, 보고...악몽에서...직접...방독면을 쓴 녀석이, 제 앞에서...그 때, 그 사람...방독면 쓰고 있었고........”

“이름을 들은 건 악몽에서 뿐이라는 거야?”

왼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세린이 반대쪽 손도 들어 올려 머리를 감싸쥐었다.

“...악몽에서만, 본 건 아니예요. 이곳에서도 ,본 적이 있어요.”

“본 적이 있다고? 날 만나기 전에? 아니면 기억을 잃기 전에...?”

“깨어났을 때.......”

그를 만났을 때를 떠올리듯 세린이 힘겨이 입을 열어갔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혼란스러울 때...그가 나타났어요. 괴물이라고, 생각해서...도망치니까, 비명을 지르고...칼을 들고 쫓아와서...그 때 절 쫓아오면서, 이렇게 외친 걸 들었어요.”

“무슨 말을?”

“.........”

강수의 거침없는 질문에 한 순간 세린의 입이 다물어졌다.

머릿속에는 아직도 선명히 떠오르고 있다.

기억을 잃고 정처없이 헤메일 무렵, 온갖 괴물들에게 쫓겨 도망치는 데에 급급한 자신의 앞에 돌연히 나타난 방독면의 살인귀.

그 자가 칼을 들어올린 채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자신을 향해 이렇게 외쳤었다.

[수 많은 이들을 죽인 네 녀석은 살 가치가 없다. 나 백일면이, 네 녀석을 직접...이 손으로 처형해주마.]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이 누군가를 죽여본 적이 있다는 것일까?

타인에게 기대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신이? 애초에 눈앞에 있는 남자가 없었다면 도태되어 죽음을 맞이했을 게 뻔할 터인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다니........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대체...누구였던 거지.’

자신의 양 손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두 눈이 둥그렇게 변해갔다.

그것은 분명 꿈이었지만, 마냥 악몽이라고 치부하기엔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따른 대가는 치러야지. 안 그래?]

“대답하기 어려운 거야?”

정신을 잃었을 무렵 떠올랐던 잔상을 되새기던 세린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올리자, 탐탁찮은 표정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강수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런 기억도 없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딱지가 붙었다는 말을 직접 하다니. 아무리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태세를 돌변할 지도 모른다.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한 번 젓는 행동을 취하자, 그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슬쩍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슨 말을 하든 비난하거나 하진 않을 테지만, 대답하기 어려우면 굳이 무리해서 말을 할 필요는 없어.”

그것은 나름대로의 배려일까, 아니면 물어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적어도 지금으로썬 자신을 갈굴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냥 이것만 확실하게 말해줘. 저 녀석이 아가씨를 쫓아왔을 때 자기 입으로 ‘백일면’이라는 이름을 거론을 했었어?”

강수가 시체 쪽으로 턱짓을 하며 다시 질문을 건네었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말이긴 했지만, 그것은 자신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신이 아닌 ‘백일면’이라는 이름 자체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째서 관심을 가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거론한 시점에서 숨겨봐야 의미는 없다.

“네, 분명히...거론했었어요.”

“...그렇단 말이지.”

끝내 강수가 쭈그려앉아있는 세린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얌전히 있어. 잠깐 둘러보고 올 테니까.”

주저앉아있는 세린을 자리에 내버려둔 채 강수는 시체가 있는 쪽으로 다가섰다.

아무리 미쳐있어도 말을 지껄인다면 그것은 자신의 기억에서 나온 것일 확률이 높다.

하물며 ‘백일면’처럼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칭호로써 쓰이는 것이라면 그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하물며 그는 눈앞에 있는 녀석에게서 미래의 친구와의 공통점을 수 없이 발견했다.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공격을 가해왔다는 것은 ‘미쳐 날뛰는 광인의 습성’과 유사했지만, 정신이상은 불치병이 아니다. 누군가가 치료를 해주거나, 던전 밖에서 지속적으로 케어를 해주면 어떻게든 회복시킬 수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란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 과정을 거쳐 자신이 알고 있는 녀석이 나타난 것이었다면?

마음 같아선 아니길 바라고 있지만,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는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숙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불행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해왔다. 실망을 느낄지언정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광인을 죽인 것은 자신을 습격해온 녀석으로부터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기 위함, 설령 그 행동이 자신이 알고 지내온 녀석을 죽이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하더라도 가벼이 받아 넘겨야 한다.

그 생각을 필두로 굳게 마음을 굳힌 강수가 악취가 흘러나오는 시체의 가면을 걷어내었다.

“...젠장.”

시체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능력인 ‘혈중독’의 효과로 인해 변색된 피부와 썩어문드러진 피부. 상태가 양호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얼굴의 상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이렇게 공통점이 많은 녀석을 또 어디 가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동료였던 자를 죽였다는 추정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결의를 세운 그의 마음속을 헤집어갔다.

========== 작품 후기 ==========

표지로 의뢰한 그림이 도착해주었습니다.

아내한테 잡혀살고 공원에 담배도 버리는데다 쌩 양아치인데다 운도 드럽게 없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사진빨이 잘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건 미래의 모습이고, 현 시간대의 주인공은 28세 중소기업 신입사원에 걸맞게 다크써클 쩔고 피부도 거친데다 허리도 구부정한 애늙은이 아저씨같은 모습입니다.

그런 주인공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초희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줍시다.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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