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래이커-99화 (99/251)

<-- 26화. 원치 않은 조우 -->

나래의 증언을 모두 들은 영찬은 끝내 보호시설을 벗어났고, 들은 이야기를 되내이듯 수첩에 적힌 증언을 읽어간 영찬은 도로로 나왔을 무렵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노년의 여성. 주름기가 자욱한 얼굴로 친근한 미소를 지은 ‘성수진’이 영찬을 보며 가벼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 안 형사. 반 년만인가?”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대학에서 교수일을 맡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교수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사건 조사를 맡는 것에 비하면 나은 편이지만.”

그녀는 불과 반 년 전까지만 해도 경찰 측의 프로파일러(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죄 수사를 돕는 사람.)이었다.

현재는 경찰측에서 은퇴를 하고 방송을 통해 범죄심리학에 대한 강연을 대중에게 전하거나, 대학에서 심리학 담당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상태이다.

현역 시절엔 다른 경찰들보다 많은 성과를 올렸고, 약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현장에서 일을 해온 경험이 있는 만큼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존경이란 감정을 지니고 있었고, 영찬 또한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적잖은 호의를 가진 사람이었다.

“안 형사는 왜 여기에 들린 거지? 얘기를 들어보니 현재 인력은 시내 쪽에 몰려있다고 들었는데.”

“...원래 맡고 있던 사건에 대한 단서를 발견해서, 윗선에 보고하고 잠깐 들린 겁니다. 지금은 증언을 듣고 돌아가는 상태고. 교수님께선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까. 관계자들이 날 직접 데리고 와서 상태 좀 봐달라고 하더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하는 수진의 눈이 날카롭게 변해갔다.

“맡고 있던 사건이라는 건 역시 ‘백일면’에 관한 건가?”

“........”

그녀의 일침에 영찬이 잠시 침묵을 했다.

반 년 전 은퇴하기 전만 해도 경찰청에서 검사관으로 일을 한 그녀도 백일면에 대한 조사에 협조를 했었고, 그 당시에 사건을 직접 조사하는 영찬과 몇 번 조우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백일면에 대해 조사하고자 이곳에 온 이유 정도는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작은 1년 전, 목과 손이 잘려있는 흉한 시체가 한강 부근에서 발견되었을 때였다.

얼굴을 구분 지을 수 없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보도를 하는 데에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겨우 신원을 확인하고 보도를 내리기 직전 사건지점 근처의 파출소에서 실종신고가 접수되었다.

별개의 사건이라 취급하며 넘어갔지만 접수가 된 실종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의 옥상에서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 그 시체 역시 목과 손이 잘려진 채 발견되었다.

시체는 대량의 화학약품에 물들어져 혈흔도 흐르지 않았고, 부패 역시 일어나지 않아 사망시간을 특정하는 데에 난해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어떤 물적증거도 주변에 존재하지 않았고, 시체가 있는 곳엔 목격자들도 단 한 명도 없었으며, 그 어떤 CCTV에도 시체를 내다버리는 이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

갑자기 사라진 사람의 시체가 목과 손이 잘려나간 상태로 발견된다는 끔찍한 이야기.......

너무나도 용의주도하게 일을 처리하는 그 행위는 대중으로 하여금 ‘괴담’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사회적으로 불온을 자아내는 사건이 3번 이상 일어났을 때, 경찰 측에서 이것을 ‘연쇄살인범의 소행’이라 받아들여 제대로 된 사건에 착수를 시작했고.

그런 경찰들의 움직임을 조롱하기라도 하듯,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는 익명의 이름으로 해외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렸다.

방독면과 더불어 검은 망토로 몸을 둘러 얼굴도, 신체의 특징도 확인할 수 없었다. 목소리조차도 자신이 직접 내지 않고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소리를 녹음한 것’이었기에 목소리로 대상을 특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수상한 동영상이 해외 사이트에서부터 SNS타고 국내로 전파되고, 머지않아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전파되었다.

동영상의 내용은 방독면을 뒤집어 쓴 그 자가 ‘고정된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를 고문하고 난 후 총으로 살해하는 영상’이었다.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고 난 후 피로 덮여진 몸을 이끈 그는 곧장 동영상을 찍고 있는 카메라의 앞에 선 채 영상을 보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제가 죽인 이 사람은 의료사고로 수술하던 환자가 목숨을 잃었을 당시, 함께 수술을 집도했던 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유족들의 증오와 법의 심판을 그들에게로 돌렸던 전과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더러운 돼지들에게 뒷돈을 받고 병원 운영은 반쯤 내팽개친 채 땅투기에 열을 올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에게 방해되는 모든 이들은 지위와 돈을 통해 전부 찍어 누르며 자신의 배만을 불려왔습니다. 이런 의사로서의 본분조차 망각한 쓰레기는 그 누구라도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고 표현을 하겠죠.]

[이 의사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까지 죽인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죽어도 싼 사람들이었어요. 관리미숙으로 직원 50명을 화재로 사망으로 몰아넣은 주제에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공장의 관리자, 6살밖에 되지 않은 유치원생을 차로 치어 죽였음에도 죄책감 하나 가지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동정을 구하며 자신의 죄를 무마시키려 했던 중년의 여사, 그리고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세상만사 다 가진 것 마냥 멋대로 행동하며 온갖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던 도련님까지.]

[제가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건 무능한 공권력을 대신해 죄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들의 꼴불견인 모습을 지켜보는 데에 구역질이 나서, 그거 하나 때문이에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뻔뻔스럽게 고개 들고 다니는 놈들이 버젓이 살아돌아다니는 걸 보기 싫으니까.]

[...그래요. 그런 이기심으로 사회의 틀에서 사건을 저지른 저는 법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존재겠죠. 하지만 그들처럼 죄를 숨기고 잠적을 탈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을 혐오하는 만큼 그들과 같은 짓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절대로 자수하지 않을 겁니다. 일을 시작한 이상 법이 저를 심판하기 전까지 이 일을 계속 반복할 겁니다. 그러니 경찰분들께선 열심히 저를 잡기 위해 뛰어다니셔야 할 겁니다. 이 정신 나간 살인자가 저지르는 사건의 희생자가 늘어나는 걸 더 보고 싶지 않으시다면.]

처음에는 그것이 조작된 것이고 연출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머지않아 길거리 한복판에 ‘영상에 나왔던 이와 똑같은 시체’가 발견되어 그 동영상의 주인공이 진범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동영상은 어디에도 올라오지 않았지만, 영상에서 한 발언이 단순한 허세가 아님을 증명하듯 ‘1년 동안 한 달 주기로 실종자들의 시체가 도시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살해당한 사람은 총 12명. 그 시간 동안 그 어떤 이들도 백일면의 정체를 파헤치지 못했다.

경찰청 내에서 가장 유능한 프로파일러라 불렸던 수진조차도 그에게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을 정도. 그런 만큼 자신이 잡지 못했던 범죄자의 단서에 대해 궁금증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비록 경찰 관계자는 아니지만 한때 협조를 했던 사람인 만큼 들어보고 싶은데...피해자로부터 어떤 증언을 들었지?”

수진의 질문에 영찬이 작게 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갔다.

“피해를 받은 여고생은 던전 내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위험한 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허.”

수진이 영찬의 첫 마디에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성년자에게 손을 뻗으려 든다는 건 현대 사회에서도 중범죄다. 처벌이 약하다는 말이 많긴 하지만, 실제로 일을 저지른 자는 그 죄명을 평생 달고 다녀야 할 정도.

영찬의 말을 통해 수진은 던전이란 공간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알게 되었다.

“도시 한복판에 떡하니 나타난 주제에 사회랑 격리된 무법지대 형성...괴물들에 이어 ‘외도’에 들어선 녀석들까지 생존자들을 위협한다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로군.”

“그 피해자가 덮쳐지기 직전에 나타난 게 ‘백일면’본인이라고 했습니다.”

방독면을 쓰고 신체를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것저것을 덧씌운 것은 영상에서 비추어졌던 그 녀석과 비슷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피해자인 강나래 역시도 그 영상을 친구를 통해 본 적이 있었다고 했으니 유사점 정도는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죽이고, 시체에서 팔과 목을 때어낸 후 피해자만 살려둔 채 자리를 벗어났다고 하더군요. 남의 앞에서 ‘직접’.”

“직접, 말이지?”

영찬의 말에 수진이 잠시 턱을 괴고는 입 밖으로 곱씹듯 중얼거렸다.

“그 녀석에게 있어선 완전 천국이겠군.”

수진의 말에 영찬의 몸이 크게 떨려왔다. 그런 영찬의 반응을 눈치 챈 수진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희미한 조소를 지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용의주도하게 사람을 죽여 왔던 녀석이지만, 그렇게 갑갑하게 사건을 저질러온 만큼 답답함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겠지. 그런 녀석이 ‘자신이 목표로 한 자들’을 눈치 보지 않고 죽일 수 있는 공간에 휩쓸린 거고, 거기다 환경이 환경인만큼 외도에 들어서는 자들도 많아질테니.......”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은 말에 영찬의 표정이 크게 우그러졌다.

“...그 녀석이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날뛰는 게 싫은 모양이로군.”

“당연한 겁니다. 저희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곳에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건데.”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저런 상황에 처해져 있는 만큼.”

영찬의 말에 수진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알아. 자네가 화가 난 이유가 막연히 자신이 추적하던 범죄자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어가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마 자네는 분노보다는 혼란이 더 앞서고 있겠지. 증언을 다 듣고 난 후, 자신을 구해주었던 사람이 ‘아무리 네 은인이라도 그 녀석은 사회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 녀석이다’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

“........”

수진의 말에 뭐라 말을 하려던 영찬이 끝내 한숨을 내뱉었다.

“여전히 많은 걸 알고 계시는군요.”

“아는 게 아니라 알아낸 거야. 30년 정도 이 일에 종사하다보면 표정만 봐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으니까.”

수진의 말에 영찬이 일그러진 입꼬리를 슬쩍 치켜 올렸다.

성가신 늙은이,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들춰낼 사람을 만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 이상 대화를 나눈다면 분명 경찰로써 가지고 있어야 할 존엄성마저 짓밟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슬슬 떠나기 전에 잠깐만...사적인 질문에 대답을 해줬으면 하는데 가능할까?”

“이제 관계자가 아닌 분에게 이것저것 상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정말로 사적인 질문이야. 경찰로써의 자네가 아니라 ‘안영찬’이라는 개인에게 하는 질문.”

“...그런 거라면 뭐.”

“좋아, 그럼.”

곧 수진이 눈을 날카롭게 뜨며 영찬을 향해 질문을 건네었다.

“백일면이 죽었으면 좋겠나?”

한 순간 영찬의 호흡이 굳어졌다.

“직설...적이시네요. 그 질문.”

“무슨 의미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해.”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라 불렸던 여자인 만큼 무시무시한 간파력을 지니고 있다. 이 여자는 지금 자신이 ‘경찰로써 가지지 말아야 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진작 파악한 상태였다.

세워진 법을 토대로 질서를 수호하는 그들은 ‘정의’를 중시해야 하며, 제 아무리 흉악한 존재라 하더라도 혼란을 막기 위해 질서와 절차를 중시해야만 한다.

제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경솔하게 ‘죽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건 경찰로써 가져선 안 되는 금기였다.

그것이 당연할 터이지만.......

“네,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찬은 자신의 마음을 파고들은 수진을 향해 숨김없이 본심을 얘기했다.

침묵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괜히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묵비권을 행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거짓말 따윈 통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제일 가는 프로파일러라 불리는 사람인 만큼 더더욱.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군.”

“아시지 않습니까. 그 녀석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도는.”

이제까지 강력반에 속해 온갖 흉악범죄자들을 마주했던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범죄자가 거론되었다.

만약 자신이 경찰이 아니었고, 그 범죄자가 자신의 앞에 있고, 손에 칼이 쥐어져 있다면 목이 잘릴 때까지 계속 칼을 휘둘렀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백일면과 연루된 영찬의 마음은 처참히 일그러져 있는 상태였다.

“...나도 좀 늙었나보군, 나름 자신있게 말했는데도 조금 헛다리를 짚어버리니 원.”

이내 영찬의 대답을 들은 수진이 긴장을 풀며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자네는 그 녀석이 던전 내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 던전 내에서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게 더 신경 쓰이는 거지?”

그 질문에 영찬은 조용히 끄덕였다.

던전이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날뛸 수 있는 공간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외도에 들어서는 것을 강요받는 공간이다.

제 아무리 사회적으로 흉악한 범죄자일지라도, 그 또한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그를 1년 간 수사해온 경찰인 영찬은 마음 한구석으로 ‘그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길’기도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저 던전 내에 존재한다면 말이다.

*****

“...젠장.”

지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삽을 바닥에 내래찍은 강수는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혈흔을 눈으로 쫓아갔다.

사방에 난자되어 있는 검고 짙은 녹색을 띄고 있는 피.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신이 상대하는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방어구도, 능력으로 인해 썩어 문드러져 있는 육체도, 그 외의 모든 부분이 그의 연이은 삽질에 의해 처참히 뭉개져 있었다.

급소에 몇 번이고 찔러 넣었음에도 생명력이 질겨 죽지를 않아 계속 공격을 가한 결과 육체의 형체는 제대로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인연이 있는 만큼 나름 호의적으로 대할 생각이었는데........”

그것이 한때 자신의 ‘친구’였던 자의 시체임을 다시끔 되새긴 강수는 입에서 담배를 떨어트리며 격하게 숨을 토해냈다.

“이런 식으로 만나길 바라지는 않았는데, 미안하게 됐어.”

연기와 함께 내뱉어지는 숨에는 씁쓸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미래에서 유일하게 곁에 두었던 동행자를 제 손으로 죽인 것은 그다지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세 번 빠꾸내서 이제 올림.

가시는 길에 던부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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